며느리는 여전히 일어나지를 않는다.
김 여인은 아예 며느리가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은 잠도 없는 사람이다.
가족들을 위해서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마음을 먹는다.
오늘 아침도 화장실 때문에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매일 아침마다 겪는 일이지만 이젠 짜증스럽다.
다행한 것은 막내인 종원이가 군 입대를 해서 선미가 자신의 방을 혼자서 쓰게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고 있었다.
손자 녀석은 이제 학교엘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에미라는 사람이 아들이 학교를 갈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 내다보지도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영빈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자 그나마 집안이 조용해진다.
김 여인은 방방이 돌아다니면서 빨래 감을 찾아낸다.
며느리 방문을 연다.
아이들 둘이서 잠에서 깨어서 놀고 있다.
“할머니!”
아이들은 할머니의 품속에 안긴다.
여기저기 아이들의 옷가지며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아 이고!
내 새끼들이 일어났구나!“
“할머니!
배고파!“
둘째 영훈이가 할머니를 보자 밥을 달라고 한다.
“오냐!
어서 나가서 밥 먹자!“
김 여인은 방안에 어질러져 있는 것을 대충 치우고 빨래 감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세 아이를 키우는 며느리는 세상모르고 잠에 떨어져 있다.
세탁기를 돌리면서 아이들을 밥을 먹인다.
초인종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맏딸이 아침부터 친정엘 온 것이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웬 일이냐?”
“엄마!
나 돈 삼천만원만 해 줘요!“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니?”
“방을 전세라도 놔서 좀 해 줘요!”
“갑자기 무슨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해?”
“지금 음식점이 좋은 곳에 나왔는데 해 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이의 월급만으로는 평생 이렇게 밖에는 더 살겠수?“
“그래!
할 수만 있다면 같이 버는 것도 좋지!
허지만 내가 그렇게 큰 돈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이층에 한 가구를 전세를 놓으면 그 정도는 받지 않겠수?”
“그야 그러기는 하지만 아직 계약기간도 남았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냐?”
“지금 남의 사정을 봐 줄 때유?
그러지 말고 해 줘요!“
“글쎄, 갑자기 와서 돈을 해 놓으라고 하면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그런 큰 돈을 마련을 하니?”
“우선 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라도 받아 줘요!
그리고 전세를 놓고 빠지면 은행을 갚으면 되고 그동안의 은행 이자는 내가 갚아줄게요.“
“.........................”
“걱정하지 말아요.
매달 지금 나오는 월세를 내가 꼬박꼬박 물어 줄게요.“
자식이 살겠다고 하는데 모른 척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 좀 해 보자!”
“생각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오늘 내일이 아니면 그 식당을 놓친단 말이에요.“
“그럼 진즉에 말이나 할 것이지 갑자기 와서 돈을 해 내라고 한다면 내가 무슨 재주로 그 많은 돈을 마련을 해?”
“그러니까 융자를 신청하면 될 일을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한다고 그래요?”
“융자를 신청한다고 해도 어디 오늘 내일 바로 나오는 것이냐?”
“이 집을 담보로 삼천 정도는 이 삼일이면 바로 나와요.
엄마가 그렇게 해 준다면 난 이 길로 바로 그 식당에 가서 계약을 해야만 한단 말이에요.“
선경이는 막 무가내다.
김 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자식들마다 부모를 도와주기는커녕 무엇이든지 뜯어 가려고만 하고 있었다.
“어디 알아보자!”
선경이는 그제야 조카들이 눈에 들어온다.
“올케는 어디 갔어요?”
“아니!”
“그럼 아직도 잠을 자요?”
“그냥 내버려 두거라!
젊어서 한때 잠이 많은 법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선경이는 올케를 깨우려 하는지 몸을 일으킨다.
“앉아!
내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관섭하지 마라!
네 볼일이 끝났거든 어서 가기나 하고.“
선경이는 일어서려던 몸을 다시 앉는다.
“엄마는 무엇 때문에 며느리에게 할 말도 못하고 그래요?”
“할 말이 뭐가 있니?
만일 지금 며느리가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딸이 자고 있다면 깨우겠니?
우리 선영이를 봐라!
그 애는 어디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는 적이 있는 줄 아니?
며느리나 딸이나 다 매한가지가 아니냐?“
“어휴!
엄마가 그러니까 올케의 버릇을 고치지를 못하지요.
애들이 셋씩이나 있는 여편네가 지금이 몇 시라고 아직도 잠을 자고 있으니........“
선경이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퍼부어 댄다.
“나 가우!
지금 가서 바로 계약을 할 테니까 엄마가 은행엘 가서 신청하고 돈이 언제 나오는지 전화를 해 줘요!“
“그래!
알았으니 어서 가라!“
김 여인은 선경이를 잡지 않는다.
저 성격에 며느리가 깨서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성질대로 퍼 붓고 말 것이다.
집안이 시끄러운 것이 너무 싫다.
자신의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조용하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죽으면 썩어질 몸뚱아리를 아껴서 무엇에 쓸 것이냐고 스스로에게 반문을 한다.
김 여인은 며느리가 일어나 나오자 아무런 말도 없이 은행엘 간다.
맏딸도 아이가 셋이나 된다.
게다가 시부모를 모시고 있으니 적은 식구가 아니다.
사위 혼자 벌어서는 힘든 생활이다.
그렇다고 시댁에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도 없이 남의 전셋집에서 그 많은 식구들이 살아 나가고 있다.
선경이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다.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연애를 해서 일찍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바람에 직장 생활도 해 보지를 못하고 결혼이라는 굴레를 쓰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고 보니 생활의 궁핍함을 느껴서 막상 취직을 해 보려고 해도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 오라는 곳도 없다.
게다가 전공과목이 영어라든지 뭔가 특이할 만한 것이라야 그래도 어디라도 비벼보기라도 할 텐데 가정과를 나온 아줌마를 누가 오라고 할 것인가?
선경이는 닥치는 대로 돈 벌이가 되는 것이라면 파출부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식당 설거지에 파출부 같은 거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남편하고의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에 그런 일들이 힘들다거나 짜증이 나지를 않는다.
그들 부부는 유난히 정이 많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아껴주고 있다.
그런 맏딸 부부의 모습은 김 여인을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해 준다.
은행에서 돌아오니 집안이 시끄럽다.
학교에서 돌아온 영빈이가 매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영빈이를 왜 때리고 그러니?“
“어머님은 참견을 하시지 마세요.”
성경화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악을 쓰면서 영빈이를 때리고 있었다.
“어멈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어쩌니?
아버지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신다는 걸 너도 알잖니?“
“그럼 아버님 때문에 내 자식을 마음대로 야단을 치지도 못하나요?”
“그래!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이를 조용히 타이르면 될 일이 아니냐?“
“조용히 타 일러서 되는 일이라면 제가 왜 악을 쓰겠어요?”
“무엇을 그렇게 잘 못했더냐?”
“제일 큰 녀석이 제 동생들 노는 것을 방해하고 동생들을 울리고 있으니까 그렇지요.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동생들이 노는 꼴을 보지 못하니 저 녀석을 어떻게 해야만 할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올라와요.“
그때 안방에서 남편의 화가 나는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
시끄러!
조용히 해!“
웬만해서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는 남편이다.
김 여인은 얼른 방으로 들어간다.
“미안해요.”
“쟤네들 나가라고 해!
맨날 시끄러서 싫어!“
남편은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겋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만 진정하시고 화를 푸세요.“
김 여인은 우선 남편을 진정 시킨다.
남편은 화를 참느라고 한참을 씩씩거린다.
자신이 잠깐 없는 사이에 이런 분란이 일어 난 것이다.
시아버지가 시끄럽다고 하면 그만 두었어야 하는데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소리를 무시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며느리에게 더 화가 난 남편이다.
“나 저애 보기도 싫어!”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되지요.
밉든 곱든 간에 우리 자식이 아닙니까?“
남편은 이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어린 아이로 변해간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화를 내거나 아무거나 집어 던지기도 한다.
오랜 세월 병석에 있는 남편의 마음이 다른 사람처럼 변해간다.
이젠 예전의 남편 모습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참으로 점잖고 멋진 남편의 모습이었다.
서로 집안의 중매로 만난 사이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다독이며 살아왔던 세월들이다.
남편은 매우 가정적인 사람이다.
그 흔한 바람을 단 한번도 피우지 않고 오직 아내뿐이고 자식들뿐인 사람이다.
술에 취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식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기를 즐겨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회사가 파산을 하고 집안에서 두문불출을 하고 있을 때도 집안의 분위기는 어둡지가 않았었던 것도 남편의 성격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남편이다.
자식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언제나 정이 담뿍 담겨져 있었고 얼굴에는 항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던 남편의 모습을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선경이 아부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남편의 화가 가라앉자 김 여인은 남편의 마음을 알고자 묻는다.
“내가 시끄럽다고 해도 자꾸만 영빈이를 때리고 야단을 치잖아!”
“그래서 화가 많이 나셨어요?”
“엉!
나를 무시하잖아?
내가 그만 두라고 하면 그만 둬야지!“
“네!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며느리를 야단을 칠게요.“
“엉!”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역성을 들어주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완전히 풀린다.
어느 한날 조용한 날이 없다.
아들네들 들이고 나서 더욱 집안이 시끄럽다.
또한 모든 일이 자신이 감당하기가 힘이 들어진다.
식구는 많고 일도 몇 배로 늘어난 것이다.
삼일에 한번씩 남편을 목욕을 시키는 일도 이제는 자꾸만 힘이 들어진다.
어느 자식 하나 거들어 주는 자식들이 없다.
아버지에 대한 일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라는 생각들을 해서인지 아무도 거들고 나서는 자식이 없다.
남편의 체중을 모두 자신의 몸에 의지하는 것이 이제는 힘에 버겁다.
그러나 김 여인은 그런 내색조차 하지를 않는다.
하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것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자식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활이 있기도 하지만 아무도 엄마의 힘든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한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꾸벅
넵 너무 늦게 올려 드렷죠? 점심 맛나게 드셨는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8회는 언제 올리시는거십니까?중국에 살면서 이런 좋은글들에 목말라있습니다.
에구 넘 늦게 올려 드려 죄송 합니당...
방조 하나도 없는 자식들...자기들끼리만이래도 잘 살고 있다면 그것이 부모님들께는 효도가 되지 않을가 싶군요,,,
그렇죠? 효도란 별게 아닌데.. 부모 한테는 잘사는거 보여드리는게 가장 큰 효도일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