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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의 예수재판
감사의 글
대천 바다의 일렁이는 검푸른 물결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석양 속에 나는 서 있었다.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을 구상하고 쓰다가 지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나는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비가 오는 날에는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아무도 함께 해 주지 않는 고뇌를 씹으며 나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이 기간을 견디며 행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본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고 고비 고비마다 길을 제시하여 나의 시야를 넓고 깊게 지도해 준 분이 있다. 은사이신 김달수 박사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더불어 본 졸고를 세심한 곳까지 일일이 표시하면서 정성스레 심사하여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이숙종 박사님께 고마움을 전할 길이 없어 아련한 아픔이 있다. 학부시절의 인연에 이어서 이번에도 인연을 맺은 선우남 박사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못난 제자를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따듯한 말 한마디가 가슴 뭉클한 감동이 된다: “축하하네”
동료인 전해갑 목사와 나일호 목사가 대천에서 목회를 한다. 나는 그분들께 폐를 끼치고서야 글을 다 쓸 수 있었다. 두 분의 사모님들에게도 심려를 선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은근한 정성을 발견하고 느꼈을 뿐이니 그분들의 고초가 이중삼중이었으리라. 이 지면을 빌려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언제나 내 곁에서 말없는 조용함으로 응원해준 당신. 석양에 그을린 나의 얼굴을 오이 팩으로 보드랍게 감싸준 당신. 나를 향한 한없는 신뢰를 지속적으로 보내주는 아내의 사랑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져 내리는 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아내와 우리의 규태와 규백이에게 그리고 기도를 쉬지 않는 어머니에게도 넉넉한 감사의 이정표를 세우려고 한다: “사랑합니다”
1998년 6월 5일 시내산 중턱 천은관에서
목 차
Ⅰ. 서론 ……………………………………………………………………………………… 1
1. 문제제기 ……………………………………………………………………… 4
2. 연구의 목적과 범위 ………………………………………………………… 7
Ⅱ.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에 대한 연구동향 …………………………………… 9
1. 예수의 죽음 : 유대교의 적극적 개입 …………………………………… 9
2. 예수의 죽음 : 로마의 적극적 개입 ………………………………………… 11
Ⅲ.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재판 분석 : …………………………………… 13
마가복음 14장 53~64절을 중심으로
1. 산헤드린 공의회 소집(53절) ……………………………………………… 14
2. 증인심문(55~59절) ………………………………………………………… 19
3. 피고심문(60~62절) ………………………………………………………… 26
4. 사형에 해당하는 판결(63~64) …………………………………………… 34
5. 종합분석(53, 55~64절) …………………………………………………… 37
Ⅳ.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기소 이유 ………………………………………… 42
1. 하나님의 아들 ……………………………………………………………… 43
2. 인 자 ………………………………………………………………………… 50
3. 마가의 인자 이해 …………………………………………………………… 53
4. 기소 이유……………………………………………………………………… 62
Ⅴ. 결론 …………………………………………………………………………………… 65
참고문헌 …………………………………………………………………………………… 67
Abstract ………………………………………………………………………………… 73
Ⅰ. 서론
주후 30년 봄 유월절기에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결단이었다. 이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에 대한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의 설명은 회화처럼 그려진다: “기적을 행하여 군중을 몰고 다녔던자, 당시의 인습적인 지혜에 도전하고 변혁의 대안적 길을 가르쳤던 교사, 자기 백성의 구체적인 삶의 길을 고발했던 예언자요 재활성운동의 창시자였던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와 자신을 따르는 유랑제자집단을 예루살렘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곳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유대지도자들의 안배가 그물처럼 펼쳐져 있는 음모의 장소였다. 예수가 제자들을 향해서 고지했던 세 차례의 수난예고(마가8:31, 9:30-32, 10:32-34)를 돌아보면, 그는 이 예루살렘 여행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왜 그 마지막 여행을 시도했을까? 어떤 사람은 그가 죽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즉 그의 죽음은 그가 의도했던 바라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다. 세상의 죄를 인하여 죽기로 예정된 분이신 예수는 자기 목숨을 죄에 대한 희생물로 바치려고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 갔다는 것인데, 때로 이런 입장은 학자들의 세계에서조차 승인되었다. 그러나 마커스 보그(M. J. Borg)는 복음서의 많은 구절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지만 나타난 결과는 그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예수는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당위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세계를 향한 “역설적 의도의 실천으로써 변화를 요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예루살렘에 갔다.
로마이어(E. Lohmeyer)에 의하면 마가복음에서 이 예루살렘은 갈릴리와 대립구도로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갈릴리의 신학적 개념에 관한 연구에서 그는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사도행전에서와 바울사도의 이방선교를 토대로 한 초대 교회사의 발전 경로를 감안하면, 예루살렘이 가장 중심적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서에서는 예루살렘이 주변적 위치에 있으며, 때로는 적대적인 위치에 있다. 마가복음에서 갈릴리는 예수를 환영한 곳이요, 예수로 인한 중요한 사건들의 발생지인 데 반해서, 예루살렘은 예수를 배척하고 또 그를 처형한 장소다.” 이와 같은 분석은 마가 당대의 사상적 상황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고 평가하는 황성규는 로마이어가 갈릴리의 신학적 개념화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고 비평한다. 오히려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대립은 두 지역의 오랜 역사와 지리적․경제적․정치적․사회적 제반 상황들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대립․갈등적 구도는 마가복음 구조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동의할 수 있다.
예수가 성장하고 활동한 지역은 갈릴리였다. 마가는 그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입성시킨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생의 마지막 한 주간 동안 자기의 일을 계속했다.
예수는 그 한주간의 막바지에 나중에야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만찬이었음이 드러난 식사를 준비시켰다. 복음서에 의하면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예수는 임박한 그의 죽음을 예레미야가 말한 새 계약, 즉 외재적인 법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 언약의 봉인이라고 말했다. 그 후에 한 밤중에 그와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성벽의 동쪽에 있었던 기드론 골짜기로 가서 겟세마네라 하는 동산에 올라갔고, 예수는 거기서 체포되었다. 여기에는 예수 자신의 제자 중 한사람의 배신이 있었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체포를 지시한 주체가 산헤드린이라고 보도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를 배신한 제자는 산헤드린과 밀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예수를 체포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의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백히 설명하고 있는 본문은 찾기 어렵다. 복음서의 초반부에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는 유대지도자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보어스(H. Boers)는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될 때 그의 추종자들이 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로마에 대한 무력항쟁에 그가 관여한 증거로 채택한다. 물론 이 보어스의 입장은 자신의 신학적 성찰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는 일관된 목적에서 그 해석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견해를 반박할 만한 자료를 발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입장에 의하면 예수는 당시의 총독인 빌라도에 의해서 체포되었는가?
타이센(G. Theiβen)은 로마 당국의 입장에서 예수운동을 바라볼 때, 시골(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번져오는 소요의 한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이것은 빌라도가 예수를 주시하는 이유가 된다. 소요의 진압은 로마의 입장에서 볼 때 통치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치이다. 따라서 예수는 빌라도에게 요주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예수가 빌라도의 정치적인 입지문제에 걸림돌로 작용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예수는 로마군인들에 의해서 체포되었는가? 그러나 예수는 산헤드린의 의장 가야바 앞으로 끌려갔고 심문을 받았다. 만일 로마군이 개입했다면 예수는 즉시 로마당국에 끌려가야 했을 것이다. 로마총독 휘하에 있는 유대 당국은 범죄혐의가 있는 시골뜨기를 독자적인 경찰력에 의해 체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다. 예수를 체포하려는 무리들이 검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는 마가14:43절에 대한 그닐카(J. Gnilka)의 이해는 “유대교의 성전 경호원들도 검을 휴대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았으므로,……검을 휴대했다고 해서 반드시 로마군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들이 산헤드린 휘하에 있는 성전경찰이라는 입장을 지지한다. 예수는 그들에 의해서 체포되어 산헤드린으로 끌려왔다.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 문제제기
마가는 예수가 누구에게로 끌려갔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대제사장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을 보도할 뿐이다. 이 산헤드린의 의장인 대제사장의 정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수는 “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어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새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마가14:58)고 말했기 때문에 산헤드린에서 비난을 받게 된다. 이 성전은 예루살렘을 표현하고 있다. 타이센(G. Theiβen)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예수시대에 있어서 사람, 돈, 물자, 상업이 집중되는 경제행위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예수가 성전의 파괴와 재건을 고지했을 때, 성전에 자리잡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이 고지가 자신들을 향한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성전을 자신들의 손으로 지었고 자신의 사회적 재산 상태가 이 성전 건축에 달려있는 자들이 그것을 선전포고로 여겼을 것은 분명하다. 타이센은 이 예루살렘 주민들의 동요를 실존적인 불안으로 표현한다. 사실 마가는 이 성전 청결을 예수가 재판정에 서게 된 단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산헤드린에서의 예수 재판에 대한 키(H. C. Kee)의 입장은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이 모여 이룬 산헤드린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종교적이고 유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리브킨(E. Rivkin)에 의하면 유대에는 두 개의 산헤드린이 있었다. 하나는 정치적 산헤드린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산헤드린이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재판을 주관한 산헤드린이 이 정치적 산헤드린이라고 주장한다. 이 산헤드린이 대사제의 자문기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마가에게서는 예수가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명쾌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예수는 확실히 갈등과 위기의 담지자로써 유대지도자들에게 인식되었던 것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이것은 마가가 제시하는 이유로 기능한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 마가가 담고자 했던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마가는 그것을 밝히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산헤드린에서의 예수재판을 보도하는 것이다. 마가가 그의 복음서를 쓰던 당시는 로마의 네로황제 치하이며, 이 때는 그의 박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대적으로 확산되는 엄중한 위기가 거리를 휩쓸던 암흑시대였다.
그러므로 마가의 삶의 자리는 초대교회의 요청과 로마제국과의 관계를 순화시키는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배려해야 한다. 유대는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다. 리브킨(E. Rivkin)은 이 제국에 속해 있는 황제, 총독, 대사제, 대사제의 사적 자문회의(privy council) 등, 이 모든 것들은 두 가지 관심사에 서로 얽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권력 유지와 세금징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초대 교회와 마가의 삶의 자리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재해석하려는 이 마가의 의도가 밝혀져야 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청결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이들 연구 역시 마가복음의 구조를 관심있게 주시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 연구에서 갈릴리와 예루살렘이라는 두 지역이 서로 대조되고, 비교되며, 대립하고 있는 현상을 밝혀낸다. 그들은 이 두 지역을 마가복음의 두 중심축으로 삼아서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확대 편집한 마가복음의 구성은 확실히 반 유대와 반 예루살렘, 친로마를 지향하는 초기 수난사화를 수용한다.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이 때 분명히 드러나는 마가의 의도는 초대교회를 보호하려는 것과 초대교회와 바울에게서 이미 선포되던 케리그마의 결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요청하던 역사적 예수의 이미지는 유대 사회에서 대망하던 메시야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
2. 연구의 목적과 범위
본 논문은 마가가 자신의 산헤드린의 예수재판(막 14:53, 54~64)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구약전통 위에 있는 묵시문학적 인자를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가에 대해서 추적할 것이다. 이 인자 칭호는 예수의 자기발언들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닐카(J. Gnilka)는 산헤드린에서 진행된 예수의 재판에 대한 마가복음의 본문을 편집비평적인 척도에서 마가복음 14장 54절을 분리해 낸다. 이 구절은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잡혀가는 예수의 뒤를 따라와서 하졸들과 함께 빛을 쪼였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마가복음 14장 54절은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막 14:66~72)를 위한 삽입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 베드로의 부인설화가 하나의 주제 군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본 연구 주제와의 관련성은 희박한 것이다. 또 같은 이유에서 65절을 분리해 내는데, 이것은 대제사장의 하졸들이 벌이는 예수에 대한 조롱을 보도한다. 이 조롱 장면은 빌라도의 재판과 동화되어 나타나는 “로마 군인들의 조롱”(막 15:16~20절)에 대응한다. 그러나 각 삽화들이 단화에서 차지하는 성격과 비중은 서로 다르며, 다만 엠프튀(ἐμπτὐω; ‘침뱉다’)만이 군인들의 조롱과 결합되어 나타난다. 이 조롱의 삽화도 초기 수난사화에 마가의 첨가로 들어온 것이다. 그 성격을 살펴보면 본 연구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마가복음 14장 65절의 조롱은 산헤드린 재판과 구별되어 진다. 마가복음 14장 54절의 베드로에 대한 기록도 언급한 바와 같이 본문과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마가복음 14장 53절에서 65절까지의 본문 중에서 54절과 65절을 뺀 나머지 기록들과 대화하면서,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재판을 분석할 것이다. 본문의 구절들에 대한 구조분석은 다른 주석 학자들의 연구들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그닐카(J. Gnilka)의 마가복음 주석(Das Evangelium nach Markus)에 나오는 연구결과들을 기초적 자료로 삼으려 한다.
마가가 이 예수재판 보도를 통해서 예수의 기소이유를 무엇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예수가 자신을 인자로 시인한 부분에서 절정에 이른다. 마가는 제자들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진부한 관념을 넘어서고, 묵시문학의 정치적 이미지를 지운 새로운 의미의 인자를 예수에게 결합시키려는 의도를 이 장면에서 노출시킨다. 이 인자는 다시 하나님의 아들을 해석하고 그 칭호를 예수에게 부여한다. 따라서 마가의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이해에 대한 역학관계를 분석하고 기소이유를 밝히는 것이 본 연구논문의 우선하는 과제로 부여된다.
이것을 위해 본 논문은 제Ⅱ장에서 지금까지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을 다루어 온 연구들의 쟁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동향에 대해서 살피고자 한다. 이 장에서는 본 주제에 대한 흐름과 주장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첨예하게 다른 해석적 입장에 서있는 연구들을 비교하게 될 것이다. 제Ⅲ장은 본 논문의 본문인 마가복음 14장 53~64절까지의 주석과 분석작업을 한다. 모두 4개의 단위로 나뉘어진 항목에서 산헤드린에서의 예수재판에 내포되어 있는 음모와 대립 그리고 긴장과 충돌의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본문에서는 예수의 인자 시인(是認)이 최초로 소개되고, 그것은 그가 정죄당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정황을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마가의 의도는 메시야 비밀을 드러내 놓는다. 따라서 제Ⅳ장은 마가가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는 문제와 그것들을 나사렛 예수와 결합시키는 방법론과 상황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입장과 마가가 제시하려고 하는 이미지 사이는 깊은 불일치가 존재한다. 제Ⅴ장은 산헤드린에서의 예수재판 보도에서 마가가 의도했던 것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대안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자를 밝혀내려는 것이었다. 이 인자는 예수를 이방인인 로마의 백부장의 입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의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 마가의 인자는 예수가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촉매로 기능한다. 그것은 예수를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게 한다. 이 목적을 위해 예수는 종교재판에서 신성모독을 이유로 수난을 당한다.
Ⅱ. 연구동향
예수의 수난사를 그리려는 시도는 라이마루스(Raimarus) 이래로 꾸준히 연구 업적이 누적되고 있다. 그러나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을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는 연구는 거의 손꼽을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언급되고 있다. 특히 그닐카(J. Gnilka)는 자신의 마가복음 주석을 통해서 이 본문이 마가의 수난사화의 절정에 속한다고 평가한다.
1. 예수의 죽음 : 유대교의 적극적 개입
1961년에 윈터(Paul Winter)의 예수의 재판(On the Trial of Jesus)이 출판되었다. 윈터의 연구에 의하면 복음서 기자들은 모든 것을 예수의 비극적 관점에서 관찰하였고, 그들의 책은 십자가의 그늘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특히 마가는 이미 처음부터 예수는 얼마나 점증하는 저항을 만나고, 당시의 유대교의 종교적․정치적 지도자들 쪽에 적대감정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헤드린에 의한 체포, 심문과 빌라도에게 인계함은 처음부터 그런 방향으로 흘렀고 매우 치열한 반대를 받았던 것의 불가피한 결과로 이해한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의 이 보고는 초대교회의 상황 안에 기초한 삶의 정황(Sitz im Leben)의 반영이며, 나사렛 예수의 역사 안에 자리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윈터의 분석은 초대교회와 믿지 않는 유대인으로 구분되는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짜여있다. 즉 교회의 대적자들이 역사적 예수의 대적자들로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난의 사화에서 주도적인 반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사두개인이지 바리새인은 아니라고 하는 그의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것은 예수가 바리새인이었다는 가정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의 문자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온전한 의지를 찾으려 애썼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스스로 바리새인이 될 수 없었다. 이것은 예수가 유대인들과 갈등을 빚고 대적자들의 저항을 유발시킨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옛 질서가 끝나고 새 질서가 오고 있다는 종말론적인 입장에 서서 예수를 이해하고 있는 샌더스(E. P. Sanders)는 그가 왜 처형되었는지에 대해서 두가지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는 예수가 성전을 공격하고, 그의 메시지는 죄인들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이 두 요소는 모두 예수가 율법이 적법한 것이냐는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수는 이것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에 가장 핵심적인 공세로 밀어 붙혔고, 이 문제는 그냥 간과되지 않았다. 산헤드린이 이례적으로 열리고, 예수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가 죽게 된 분명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다른 학자들처럼 샌더스(E. P. Sanders)도 예수의 죽음을 집행한 주체와 동기를 로마의 개입에서 찾는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를 보면서, 그 정도의 식견을 갖추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는 입장이다.
이 샌더스에게 자신의 관점을 이양해 준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예수에 대한 대적자들이라는 관점에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와 바리새인들 사이의 쟁점은 감히 죄인들에게 용서를 선포한 것이었고, 그러한 예수의 견해가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한다. 나아가 예레미야스는 예수가 더 많은 집단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물론 그는 예수가 정치적 고발 위에서 로마인들에 의해 처형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보른캄(G. Bornkamm)도 이 관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판결을 선고했다고 해도 이로써 유대 당국이 미움을 사고 있던 갈릴리 출신 예언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그에게 정치적 혐의를 씌워 로마인의 손에 넘겨주었다는 사실마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한다.
2. 예수의 죽음 : 로마의 적극적 개입
그러나 리브킨(E. Rivkin)은 철저하게 로마에 의해서 처형된 예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모든 연구들은 유대인들을 향한 강한 분노를 수반하게 된다고 문제제기를 한다. 그는 이제 무엇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는 로마의 유대총독 빌라도가 정치적 소요진압의 차원에서 유대교의 세분파로 구성된 유대사회의 지도집단들과 결탁하여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했다고 본다. 이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정치적 산헤드린이었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하게도 리브킨(E. Rivkin)에게 동의하는 사회학적 연구 방법론을 가지고, 예수가 로마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처형되었다는 증거를 십자가 사건에서 찾아내고 있는 연구가 있어서 주목된다. 카시디(R. J. Cassidy)는 누가복음을 연구하면서 누가가 예수를 로마제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자 고려했던 흔적들을 찾아낸다. 비록 예수가 사람을 겨냥한 폭력의 사용을 끈질기게 반대했고, 또 그 자신이 열심당원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예수는 여전히 로마 지배 체제에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다. 산헤드린은 서둘러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겼다. 그들은 예수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로마지배를 전복시켜 스스로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려고 했다는 기소이유를 가지고 갔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에게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눅 23:3) 산헤드린의 의장인 대제사장의 질문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산헤드린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수재판에 대한 보도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결론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될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복음서 기자들의 관심의 대상인 초대교회의 생존과 관련된 고충이 있다. 또한 그들의 신학적 관심은 예수가 로마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이라고 판단되어서 유대의 로마총독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흐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역시 마가에게서도 예수는 신학적 관심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편집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드러내 놓는다.
Ⅲ.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재판 분석
- 마가복음 14장 53․55~64절을 중심으로 -
불트만(R. Bultmann)은 “초기 수난사화”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수난사화가 본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케리그마였지만 현재 마가복음의 수난사화 형태로까지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그 발전경로를 다음의 네 단계로 제시한다: (1)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의 케리그마; (2)체포, 산헤드린과 빌라도 앞에서의 두차례 심문, 사형선고, 그리고 십자가 처형 등 역사적 보도를 첨가함으로써 케리그마가 확대됨; (3)배반의 준비 및 예고 등 최후의 만찬을 중심으로 한 복합물로 장식됨; 마지막으로 (4)마가복음 편집의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도유사건(마가14:1~8)을 부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Vincet Taylor)는 도유,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베드로의 부인, 바라바 석방, 희롱 등이 셈어적 특성(Semitism)을 많이 보이므로 베드로와 관련되어 있었다고 단정하며 모두 초기의 것으로 분류한다. 그는 수난사화에서 케라그마는 이차적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조태연은 케리그마를 기본적으로 신학적이며, 선언적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초기 수난사화에는 예수의 생애에 관한 역사적/전기적 관심이 지배하고 있다고 논증한다. 이 관점에서 그는 케리그마와 초기 수난사화의 차별성을 뚜렷이 구별한다. 그리하여 초기 수난사화는 케리그마가 아니라 한 독특한 예수전승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초기 수난사화의 성격을 반유대적, 반성전적 태도를 가진 설화자의 작품으로 파악하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가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게 된 배경에 대한, 즉 예수의 체포, 재판, 죽음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한 또 다른 한 시각을 확보한다.
본 연구를 위한 본문은 초기 수난사화와 마가 수난사화의 절정에 위치하고 있다. 그닐카는 마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산헤드린 단화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나눈다: 서막(53~54), 증인신문(55~59), 피고에 대한 신문(60~62), 판결(63~64), 조롱(65). 그러나 본 연구가 본문에 대한 적확한 분석을 고려했을 때, 채용할 수 있는 본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1. 산헤드린 공회의 소집(53)
2. 증인심문(55~59)
3. 피고에 대한 심문(60~62)
4. 사형에 해당하는 판결(63~64)
이 구조에 따라서 본 본문분석 연구를 진행하기로 한다.
1. 산헤드린 공회의 소집(막 14:53)
53절.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Καὶ ἀπἠϓαϓον τὸν Ἰησούν πρὸς τὸν ἀρχιερέα, καὶ συνέρχονται πάντες οἱ ἀρχιερείς καὶ οἱ πρεσβύτεροι καὶ οὶ ϓραμματείς
마가복음 14장 53절에서 대제사장에게 끌려간 예수는 산헤드린의 세 당파의 대표자들인 대제사장, 장로, 그리고 율법학자들과 대질한다. 유대의 원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은 총독 관구의 내정을 관장하는 최고의 행정기관이었다. 따라서 로마 공문서의 수신인은 ≪예루살렘의 정부와 원로원과 민중에게≫라고 되어 있었다. 이 산헤드린의 의장인 대제사장은 두가지 기구를 장악했다. 하나는 산헤드린이다. 산헤드린은 의장을 포함해서 71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구성원은 사제계층, 장로 그리고 서기관 등이었다. 이 기구는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했다. 저들에게는 국민을 다스리기 위해 최소한 매질할 권리와 투옥할 권리가 주어졌다. 사형권은 원칙적으로 부여되지 않았지만 로마총독의 동의가 있으면, 이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성전체제를 위한 세금징수를 결정할 권한이 주어졌다. 또 하나의 기구는 물론 성전이다. 성전운영은 대제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10명 내외의 제사장으로 구성된 상임집행부에 의해 집행되었다. 그 권한은 단순히 종교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막대한 것이었다. 그 중에 특기할 것은 경제발동권이었다. 이스라엘인은 유대지방은 물론 세계 어느 지역에 있든지 그 소득의 십분지 일을 공납할 의무를 가졌다. 그들은 종교행사 때마다 국내외의 유대인을 동원할 수 있었고, 다섯 번 있었던 축제 중 한번은 예루살렘에 와야했다. 물론 그 순례자들은 속죄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자신들의 재산을 털어야 했다. 외국화폐는 부정한 돈이므로 예루살렘에서의 통용화폐로 환전하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성전이 은행의 역할까지 겸한 것이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성전제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라고 안병무는 평가한다. 로마의 속주이면서도 강력한 자치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유대의 공회인 산헤드린의 의장 앞으로 예수가 끌려간 것이다.
마태는 예수를 체포한 무리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고 보도한다(마태26:57). 물론 그곳에는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모든 대제사장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태는 확실히 그들이 이미 모여 있었으며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는 먼저 안나스(Hannas)라는(22:57, 비교 요한 18:13~14․19~23)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간다. 그는 가야바의 장인이다. 요한은 예수에 대한 심문을 안나스 앞에서 실시한다. 그가 후에 예수를 결박하여 가야바(산헤드린의 사회를 맡았을 것임) 앞에 끌고 갔다는 간략한 언급만을 제시한다. 가야바 앞에 끌려갔다는 것은 산헤드린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예수가 누구에게로 끌려갔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이러한 마가의 동기에 대해서 그닐카(J. Gnilka)는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심문이 어디서 행해졌는지, 그리고 현직 대제사장이 누구인지는 마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마가에서는 현직 대제사장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가 없다. 직책이 인물보다 중요하며, 법정이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중요하다(행4:6). 대제사장의 이름이 왜 언급되지 않느냐는 주제는 자주 언급되어 왔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유물론적이고 사회사적인 방법론에 입각한 벨로에게서 이러한 대답을 얻게 되었다: 여기서 대제사장이란 단지 국가조직에서의 한 기능을 나타낼 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마가복음 14장 62절에서 궁극적인 천상의 능력을 선언했으며, 동시에 기존 사회적 코드의 파괴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부활절 이전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부르즈와적인 주석에서는 이것을 읽어내지 못했다.” 메시야적인 맥락에서 보면 예수의 죽음은 일종의 살해사건이었다―소위 신학이라는 것은 이러한 살해를 구원사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벨로는 지금까지의 연구 전반과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 린데만(A. Lindemann)의 지적이다. 그의 지적은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가에게 대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논의할 수 있는 의미의 창출은 아직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가의 편집적 의도의 반영이라고 하는 그닐카(J. Gnilka)의 견해가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폭넓은 관점을 제시해 준다.
누가는 이 산헤드린이 모인 시간을 “날이 밝았을 때”(ὡς ἐϒὲντο ἡμὲρα)라고 명시한다. 마가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의 체포에 이어서 밤중에 재판을 받는 예수를 제시한다. 밤 시간에 재판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뒤에 삽입된 베드로의 부인설화를 통해서만 분명히 알 수 있다(막 14:72). 마가의 시간과 누가의 시간이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베드로의 부인설화의 위치를 바꿔놓았다. 산헤드린 회의가 밤중에 소집된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성을 가진다고 하는 사실은 잘 알려진 것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밤중보다는 아침에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 더 역사적인 근거를 가진다. 린네만(Linnemann)은 심문 자체에 대한 마가의 설명이 시간언급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르게 지적하였다. 따라서 밤 시간에 대한 표현은 마가의 편집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이 편집에 따른다고 해도 남겨진 문제가 있다. 그런데 시간의 문제와 함께 대두되는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 재판의 날짜에 대한 불일치가 마가와 요한 사이에 내재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바레트(C. K. Barrett)는 그들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예수의 연대기를 쓰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진술을 피력한다. 마가의 윤곽은 아마도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행한 설교에 기초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가 제시하는 설교의 윤곽은 예수의 세례에서부터 죽음까지의 전기를 요약적으로 다루는 것이었다는 견해를 밝힌다. 이것은 불트만(R. Bultmann)이 제시하고, 조태연이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초기 수난사화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마가에 의하면(마태와 누가도 마가를 따르고 있다)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였다. 즉 식사는 니산월 15일 일찍 행해졌던 것이다. 체포와 재판은 같은 날 밤에 행해졌고, 그 다음 낮(해가 뜬 동안)에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이 모든 사건들이 니산월 15일에 일어났던 것이다(이것은 수난해의 목요일 오후 6시경부터 금요일 오후 6시에 걸쳐 있다). 한편 요한에 의하면(13:1, 18:28, 19:14․31․42), 십자가 처형은 니산월 14일, 즉 과월절 전날 행해졌다. 최후의 만찬은 분명히 그 전 날 저녁에 있었다. 따라서 사건들은 마가보다 하루 일찍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은 결코 유월절 식사가 아니었다. 예수는 성전에서 유월절 희생제물을 죽이고 있을 바로 그 때 죽었다. 여기에도 역시 마가와 요한 사이에 모순이 있다. 이에 대한 바레트(C. K. Barrett)의 의견은 마가의 진정성에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요한은 이미 바울 시대에 형성된 예수가 참된 유월절 제물이라는 주제를 반복하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정확한 역사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요한의 신학이었다. 보른캄(G. Bornkamm)은 이 문제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과 체포와 산헤드린의 심문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적절하게 명시한다. 그리고 그는 명절 전에 예수를 제거하려는 유대 당국의 결의(막 14:2)가 실행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긍정을 한다. 이것이 마가의 선택이라면 그는 이 장면에서 유대지도자들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그들은 불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예수를 처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대인들의 소송법에 규정하기를 중범(重犯)은 낮에만 판결을 받고 명절 때는 전혀 재판하지 않고 하루만의 재판으로써는 판결을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산헤드린은 그들 스스로 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때는 유월절이었다. 이것이 마가가 그의 청중들과 공유하는 정서인 반유대․친로마를 위한 철저한 상황설정에 속하는 부분이다.
2. 증인심문(막 14:55~59)
55절.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οὶ δὲ ἀρχιερείς καὶ ὅλον τὸ συνὲδριον ἐζἠτουν κατὰ τού Ἰησού μαρτορίαν εἰς τὸ θανατώσαι αὐτόν, καὶ οὐχ ηὕρισκον
마가복음 14장 55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온 산헤드린이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 대한 불리한 증거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보도가 소개되고 있다. 마가복음 14장 53절에서 이미 등장했던 그들이 또 다시 등장한다. 이 현상을 그닐카(J. Gnilka)는 베드로에 대한 언급(막 14:54)이 흐름을 단절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미 시작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56절.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πολλοὶ ϒὰρ ἐψευδομαρτύρουν κατ̓ αὐτού, καὶ ἴσαι αἱ μαρτυρίαι οὐκ ἧσαν
마가복음 14장 56절에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침묵이다. 이 침묵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계속된다. 차이가 있다면 대제사장 앞에서는 처음에 침묵하고, 빌라도 앞에서는 나중에 침묵한다는 순서가 다를 뿐이다. 예수가 시종일관 침묵으로 자신의 입장을 증언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법정 증언은 두 설화에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그것은 두 재판 진행자의 심문이 메시야 신분에 관한 것일 때에는 비교적 긍정적인 대답을 한 것으로 서술되었다. 이 예수의 대답이 긍정이었다는 것에는 마샬(I. H. Marshall)도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짓증인들이 나서서 예수를 고발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당시에 환호하던 그들인가? 아니면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이 내세운 조작된 증인인가? 마가는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태는 보다 확실한 두 사람을 첨가하여 증인으로 삼는다. 그래서 두 증인의 증언을 참된 것으로 삼는다. 그들이 예수의 성전예언을 재현했다고 슈바이쳐(E. Schweizer)는 해석한다. 그러나 누가는 거짓증인에 대한 보도를 삭제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 곧바로 들어간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여기서 마가가 설정한 장면을 재구성하면 그의 의도가 보인다.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을 위한 거짓증인들의 집단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보여진다. 산발적인 불특정 다수를 “증인”의 대열에 합류시켜서 자신의 신학적인 특성을 살려내기 위한 설정이다.
57절.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καί τινες ἀναστὰντες ἐψευδομαρτύρουν κατ̓ αὐτού λέϒοντες
58절.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ὅτι Ἡμείς ἠκοὺσαμεν αὐτού λέϒοντος ὅτι Ἐϒὼ καταλὺσω τὸν ναὸν τούτον τον χειροποίητον καὶ διὰ τριών ἡμερών ἅλλον ἀχειροποίητον οἰκοδομὴσω
59절.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καὶ σὐδὲ οὕτος ἴση ἦν ἡ μαρτυρία αὐτών
마가복음 14장 57~59절은 또 다른 거짓증인들이 증언한 내용을 소개한다. “우리는 이 사람이 ‘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만에 세우겠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증언의 내용은 사형 판결이 내려지기에 충분한 것이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마가 11:15절 이하에서 보여주는 성전청결의 파격적 행위를 노출한다. 이는 전승의 입장에서는 과잉노출이었다고 보른캄(G. Bornkamm)은 지적한다. 그는 이 성전청결이 예수가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멸을 통고하는 거창한 묵시문학적 설화에 연결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예수와 이미 세력화되어 있는 적대자 그룹들과의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거짓증인들의 격렬한 증언양상은 성전을 수호하려는 이해집단의 생존권의 문제와 맞물려 돌아간다.
성서연구에 “사회학적인 방법론”을 도입한 타이센(G. Theiβen)의 분석에 의하면 성전의 청결과 맞물려진 예수의 성전 예언은 도시와 시골간의 긴장의 장 가운데 있는 예언으로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본래 성전 예언은 유대교 전통에서 끌어낼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성전 예언은 원시 그리스도교에서 끌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성전 예언은 예수의 활동 범주와 잘 들어맞는다고 한다. 역사의 진행에 걸 맞는다고 부언(附言)한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사회학적 성서 연구에 근거한다. 그에 의하면 유대교 역사에 있어서 예수만이 성전에 대한 위협의 말씀을 선포한 것은 아니다. 미가와 우리아와 예레미야도 위협의 말씀을 받아 증언한 바 있다(미 3:9ff; 렘 26:20ff 26:1ff). 그밖에 신약시대에는 아나누스(Ananaus)의 아들 예수가 첨가되는데, 그의 재앙 예언에 대해 요세푸스는 성전 파괴의 전조를 들어 상론하였다(Jos Bell 4, 300ff):
“무지한 시골 사람, 아나누스의 아들 예수가 전쟁이 발발하기 4년 전… 축제에 나타났다. 그때 모든 유대인들은 관습에 따라 성전 근처에 하나님을 숭배하는 장막을 세워 놓았다. 거기서 그는 갑자기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
‘올라가는 소리
내려가는 소리,
사방에서 부는 바람의 소리 :
예루살렘과 성전에 관한 소리,
신랑과 신부에 관한 소리,
전 민족을 위한 소리!
그는 밤낮으로 도시의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이 소리를 외치고 다녔다.
이 미친 사람은 유대 전쟁이 터질 때까지 이 비탄의 외침을 계속했으며 예루살렘이 점령되자 죽었다. 이것은 5가지 점에서 예수의 등장과 유사하다. 1. 성전에 대한 반대의 말씀. 2. 축제라는 선포 상황. 3. 그 지방 귀족에 의한 체포. 4. 로마인에게 넘겨짐. 여기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섯 번째 사실이다. 즉 성전에 반대하는 예언자는 모두 시골 출신이라는 점이다. 미가는 모레셋 출신이고(미가 1:1), 우리아는 키랏여아림 출신이며(예레 26:30), 예레미아는 아나돗 출신이고(예레 1:1), 그리고 예수는 갈릴리 출신인 것이다. 아나누스의 아들은 무지한 시골 사람으로 성격지워져 있다. 이러한 타이센(G. Theiβen)의 연구는 도시로 표현되는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다시 재건한다는 예수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는데 모아져 있다. 그는 이 성전예언을 단서로 도시와 시골의 대립과 긴장을 설명하는데 투자한다.
그러나 호슬리(R. Horsley)는 타이센이 사회학적인 역학관계에 집착하고 있어서 역사를 유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록 유다 팔레스틴의 주요 갈등이 근본적인 정치-경제-종교적인 삶의 구조에 어떻게 뿌리를 두었느냐 하는 것은 분명해졌다 하더라도 유대 팔레스틴이 로마통치에 복속된 현실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로마제국 관리의 명령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팔레스틴은 로마제국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제국들에 관한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분석은 그 제국들이 근대적이지도 않으며, 사회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근대 사회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 제국들은 귀족들의 지배를 받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농경사회들의 집합일 뿐이다. 로마가 통치한 지역과 같은 넓고 고도로 복잡한 제국 안에서, 심지어는 로마의 분봉왕 헤롯이 몇몇 특수한 지구들을 통치했던 팔레스틴 같은 정복지역 안에서조차 그와 똑 같은 유형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사회체계라는 개념은 팔레스틴에 적합하지 않다고 호슬리는 주장한다. 이것은 타이센이 예수운동을 시골에 기반을 두고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번져가는 일련의 흐름이라고 규정하는 근거인 ‘도시와 시골의 갈등’에 의한 반목과 대립의 2중 구조론을 조정하는 의미를 가진다. 호슬리는 “예수운동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것이 ‘지역공동체’의 형태를 취했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그는 “Q자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수운동의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와 그 주변 인접지역에 연고를 둔 지역공동체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지역공동체의 성격은 마가복음과 마가 이전의 자료를 연구하면서 소개한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의 민중 전통을 복원시키고 있다. 이 민중전통이 주변적이거나 부정한 지원자들(candidates)이 새 집회에 모여졌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운동이 도전적이라거나 또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사회적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일종의 표준적인 관습이나 규범적인 견해를 가진 소수 유다 서기관들과 현인 계층의 특별한 관심을 오해하는 것이다. 일련의 기적 이야기는 오히려 모세와 엘리야-엘리사(유다 지방이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의 민중 전통에서 유래한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백성들의 삶과 그 가능성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예수와 회복된 그 백성들은 단지 사회질서와 특권상의 차별을 유지하는 데 기능했을 뿐인 깨끗한 것-부정한 것이나 순수-(보통)-주변과 같은 제사장적이며 서기관적인 바리새인들의 쟁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새로운 출애굽을 제시하며 백성들의 회복(revitalization)을 묘사하고 있는 이기적 이야기들의 조합은 무가치한 자들(the worthlessness)이나, 또는 당국의 억압성까지도 예견하고 폭로한다. 그 사회적 위치는 분명해 성전과 공식 전통과는 동떨어진, 갈릴리의 민중 문화이다. 그는 이것에 기초하여 예수의 성전예언을 분석한다. 예수가 고위사제 통치자들(마가12:1~9)이나 성전(마가11:15~17; 13:2; 14:58; 15:29~30)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는 자료가 많고, 이러한 전승들이 어느 정도는 원래 예수로부터 유래되고 전승되었다는 것은 예수운동이 성전과 고위성직자들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히 대망하고 선포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호슬리(R. Horsley)는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여기에서 예수의 성전예언이 로마와 산헤드린으로 대변되는 유대지배 계층과 성전에 기대어 생업에 종사하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갈등과 긴장의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사회․역사적인 준거틀을 볼 수 있었다. 마가의 산헤드린 재판 보고에서 거짓증인들이라고 분류된 그들은 예수에게서 위기와 갈등과 도전을 경험한 자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예수를 제거하려는 그들의 의지는 성전을 지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려는 거룩한 담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가는 14장 59절에서 이들의 증언도 서로 맞지 않았다고 하여 예수의 사형 확정판결의 이유로 채택하기를 거절한다. 큄멜(W. G. Kümmel)은 이것을 마가의 신학적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데, 마가는 지리적인 장소로서 갈릴리에 대한 신학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마가의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극명(克明)한 대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예수는 갈릴리 출신이며(1:9), 거기서 그의 설교를 시작하였다(1:14, 39). 거기서 그는 자기의 첫 제자들을 얻었고(1:16), 무리들이 따랐으며(1:28; 3:7), 자기의 수난을 선포하였고(9:30), 부활 주로 갈릴리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였다(14:28). 같은 관점에서, 예루살렘은 역사적인 전승이 분명하게 확인해 주듯이 예수의 죽음의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냉담의 근원지이기도 하다(3:22; 7:1; 10:33; 11:18). 예수를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도 나타난다(비교, 3:6; 7:6, 8; 9:31; 10:33; 12:12; 13:2; 14:41; 15:38).
이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거짓증인들의 증언을 침묵으로 청취하는 것은 마가에게 있어서 명백한 의사표시로 보여진다. 즉 예루살렘이 마가와 그가 속한 공동체에 의해서 거부당하고 있다는 극(drama)적인 진술이다. 또한 예수를 죽이려는 그들의 진술은 예수가 죽어야 했던 참된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마가의 판단이었다. 이미 마가가 그들을 가리켜 “거짓증인”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그들의 증언은 마가에게 거부당한다.
3. 피고에 대한 심문(막 14:60~62)
60절.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καὶ ἀναστεὰς ὁ ἀρχιερεὺς εἰς μέσον ἐπηρώτησεν τὸν Ἰησούν λέϒων, Οὐκ ἀποκρίνη οὐδέν; τί οὗτοί σου καταμαρτυρούσιν;
61절.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ὁ δὲ ἐσιώπα καί οὐκ ἀπεκρίνατο οὐδεν. πἀλιν ὁ ἀρχιερεὺς ἐπηρώτα αὐτὸν καί λέϒει αὐτῷ, Σὐ εἶ ὁ Χριστὸς ὁ υἱὸς τού εὐλοϒητού;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ὁ δὲ Ἰησούς εἶπεν, Ἐϒώ εἰ- μι, καί ὄψεσθε τὸν υιὸν τού ἀνθρώπου ἐκ δεξιών καθήμενον τής δυνάμεως καί ἐρχόμενον μετὰ τών νεφελών τού οὐρανού.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던 자들이 이제는 그들의 거짓 증언을 동원해 가며 예수를 몰아세우고 있다. 예수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제 대제사장의 공세가 조용하게 예수를 향해 질문된다. 절정의 순간이 점점 다가온다. 대제사장이 의회의 가운데로 나온다. 로마의 재판과는 달리 대제사장은 개별적인 심판관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세 개의 질문을 예수에게 던진다. 첫 질문은 마가14장 60a에 나오는 예수의 침묵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거짓증인들의 격렬한 증언이 예수의 침묵과 대비되는 것에 대한 대제사장의 격노(激怒)를 반영한다. 예수를 제거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 순간에 모아져 있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인내하고 있다. 그것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예수가 처형되었음을 공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보어스(H. Boers)에 따르면 그들은 여전히 산헤드린의 법조문을 지키지 않고 있다. 마가복음 14장 60b에서는 둘째 질문으로 증인들의 진술에 대한 견해표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는 이 물음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는다. 마가는 구약에서 차용 가능한 이미지를 빌려오는가? 박해받는 의인의 침묵에 관한 모범이 시편에 나온다 : “나는 아예 귀머거리가 되어 듣지도 않았고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습니다. 고소를 당하면서도 그 말이 들리지 않아 변명조차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만을 기다립니다.”(시 38, 14-16; 참조. 19:10). 이것은 시편 22장의 주제인 수난받는 의인의 모습을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 추적할 수 있다고 하는 웨버(H. R. Weber)의 견해에 대한 상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침묵은 하나님의 종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아사야 53장 7절에 의존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가에게 있어서 대제사장은 예수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막 14:61a).
마가복음 14장 61b절에 나타난 대제사장의 셋째 질문이 중요한 물음이다. 이 질문은 예수의 메시야 신분에 관한 것인데, 그리스도 칭호를 하나님의 아들 칭호에 의해 설명하는 점이 특이하다. 마가는 처음부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한다(막 1:1). 마태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하나님의 아들이란 관점에서 이해한다(마 16:16). 예수는 세례를 받을 때(막 1:11)와 변화산상에서(막 9:7)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워졌다. 사탄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정 아래 그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하였다(마 3:11; 눅 4:11). 귀신들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였다. 본문에서는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이냐?”고 힐난하듯 물어온다. 그닐카(J. Gnilka)는 하나님의 아들 칭호가 왕의 칭호이며 메시야의 신적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찬송을 받으실 분으로 하나님을 표현한 것은 유대교 문서들에도 그 병행구를 가지고 있지만, 찬송을 받으실 분의 아들이란 표현은 병행구가 없다. 그는 당시의 유대교에서 메시야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는지는 오늘까지도 분명하게 입증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한 래드(G. E. Ladd)의 견해는 보다 확실하다. 그는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한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나라를 권능으로 세우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영계를 다스릴 수 있는 그의 권능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환영을 받았다(막 3:11; 5:7).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를 향해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스스로 구원하라고 조롱하던 유대인들의 냉소는 예수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심문내용이 성전예언과 연계된 것이 아니다. 대제사장은 지금 예수를 향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묻고 있다. 이 질문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마가는 거짓증인들이 고발했던 예수의 성전예언을 어느 곳에서도 소개하지 않는다. 그것은 거짓증언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대제사장의 질문은 갑자기 심문의 전면에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보른캄(G. Bornkamm)은 이 대제사장의 질문을 후대교회의 그리스도 고백을 뚜렷이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그닐카(J. Gnilka)에 의하면 대제사장의 심문내용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음을 들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이 물음에 대해 분명히 시인할 수 있다. 유대교적 메시야 기대가 정치적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물음에 대해 시인하는 것은 그다지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의 메시야 시인(Messiasbekenntnis)은 율법학자적인 성찰을 통해 계속된다. 이 성찰은 구약성서의 두 구절, 즉 시편 110편 1절과 다니엘 7장 13절에 관련된다. 신약성서에서 시편 110편 1절은 예수의 올리움에 대한 표준이 되는 증빙구이다. 그는 하나님의 오른편 자리에서 하나님 대신 다스린다. 랍비 유대교의 고대적 신명(神名)인 권능(gebura)은 자신을 계시하는, 특히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는 신을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를 여기서는 인식할 수는 없으므로 사람들은 묵시문학적 유대교에서 권능은 심판하기 위해 당당하게 출현하는 하나님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다니엘서 7장 13절을 통해 메시야 고백은 인자(The Son of Man) 칭호와 결부된다. 하늘에서 나타날 때 인자는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온다. 그렇다면 대제사장의 세 번째 질문은 마가에 의해서 그의 대사로 처리된 흔적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이어지는 단서로 기능하도록 배려되었다. 여기에서 마가는 예수에게 네가 정치적인 의미에 있어서 그리고 다윗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 즉 정치적인 의미의 메시아냐 하는 의미를 가지고 묻고 있는 대제사장을 등장시켰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대망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대제사장의 질문은 예수에게 정치적인 메시야인가를 심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마가의 의도를 대변한다. 예수는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려는 것이다. 사실 예수 자신의 말들 가운데 메시야란 칭호는 고작 두 번 나타날 뿐이다: 마가복음 9:41(관사없이)과 마태복음 23:10(관사와 함께). 또한 예수는 자신을 묘사함에 있어서 한번도 다윗의 아들이란 칭호를 사용한 적이 없다.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이것을 극히 주목할만한 사실이라고 하면서, 예수가 스스로를 다윗의 후손으로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피한 것은 그것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대제사장의 질문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예수의 답변으로 명확해 진다. 예수는 이 대제사장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표시한다.
마가복음 14장 62절에서 예수는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대답했다. 예수는 이 답변을 통해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른다. 불트만(R. Bultmann)은 인자에 관한 어떤 말씀 즉 묵시문학적 인자의 미래사업을 말하는 말씀은 예수의 본래적(authentic) 로기아로 승인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자신을 인자와 동일시하지 않고 오히려 마가복음 8장 38절과 누가복음 12장 8f절(마가와 Q가 다 증명하는 말씀)이 분명히 보여 주는 대로 자신과 전혀 구별되는 모습으로서 나타날 인자의 도래(到來)를 기대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관점에 있는 킹스베리(J. D. Kingsbury)에 의하면 마가는 인자를 예수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 정체성을 알리는데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을 일컬어 공공연하게 인자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적용되며, 그의 특수한 삶과 사역을 그려내는 데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러한 인자는 예수가 자신에 대하여 사용한 유일한 칭호로서, 그 진정성(authenticity)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예레미야스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가 자신을 인자로 부른 것은 사복음서 모두의 일치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콘첼만(H. Conzelmann)은 왜 인자 칭호가 다른 사람들이 친히 말한(on the lips) 신앙고백으로서가 아니라 예수가 친히 말한 것으로만(the lips of Jesus) 발견된다고 말하게 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답변하려고 한다(이 문제가 인자 로기아의 신빙성을 찬성하는데 가끔 사용되는 논지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초대교회에서 예수는 인자로서 고백된 것이 아니라 인자로서 오리라고 기대되었다는데 있다고 콘첼만은 말한다. 그러므로 인자칭호는 초대 기독교 예언자의 창작에서만 사용되는데 거기서 높이 들리우신 예수는 도래할 인자로서 말하고 그를 대망하는 교회의 인자로서 자신을 계시한다. 미래적 말씀까지 제거하려는 필하우어의 시도는 더욱 더 철저하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선포에서 중심되는 개념이었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승인된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로기아는 일반적으로 순수한 것으로서 용납되어야 하고 세 유형의 인자말씀은 부활 이후의 교회 창작으로서 용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 전승에서도 인자와 하나님 나라의 결합이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로써 한층 더 실증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고무적인 것이다. 그런데 슈바이쳐(E. Schweitzer)와 로빈손(John A. T. Robinson)은 더 보수적인 입장에 서있다. 이들은 지상에서 일하는 예수와 인자를 동일시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도래할 인자에 대한 말씀을 부활 이후 교회의 창작으로부터 제거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이들의 주장에서 마가가 인자를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선정하여 쓰고있다는 결과적 진술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지칭한 말인 인자의 문제는 묵시문학적 표상 속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구약의 인용구를 가지는 표현이다. 인자(ὁ υἱός τού ἀνθρώπου)라는 칭호는 복음서에서 모두 82회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69회는 공관복음서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13회는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동안에 학자들은 이 인자 칭호를 그리스도론 칭호에서 제외시켜 왔다. 그러나 그 사용 빈도와 출처를 고려할 때 그 결정들은 재고되어야 한다. 김달수 교수는 모울(Moule)의 예수에 대한 4대 칭호 속에 인자가 포함된다고 소개하면서 이 칭호의 중요성을 입증코자 한다. 이 인자 칭호의 매우 특별한 것 중의 하나는 다른 중요한 칭호들(“메시야”, “다윗의 자손”,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아들”)과 분리되어 있으며, 그 성격도 다르다. 마가는 이 인자가 다시 올 것이라는 표상을 제시하고 있다.
본문을 형성시킨 인자의 도래에 대한 출처는 다니엘 7장에서처럼 하나님의 보좌에 앉는 것으로, 따라서 아들의 올리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도래가 보좌에 올라가 앉는 것이므로 인간을 향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예수를 심판한 산헤드린 의원들은 내림 때에 그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리고 인자-심판자로서 보게 될 것이다. 지금 비천한 자리에서 행한 그의 메시야 시인(是認)이 그 때에는 하나님에 의해 확증될 것이다. 이 인자에 관한 언급은 구약의 세 본문에서 취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볼 것이다”는 스가랴 12장 10절의 “그러면 그들은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고서”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로서의 예수와 그를 고대하던 모든 눈이 그를 보게 될 것 사이의 명백한 연결을 발견한다(비교. 마 24:30과 요 19:37). 잘 알려진 대로, “우편에 앉으시고”는 시편 110편 1절에서 온 것이고,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는 다니엘 7장 13절에서 온 것이다. 마가가 문학적인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를 살려내고자 의도하는 방편으로써 가지고 온 묵시문학적 표현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돌발적으로 예수에 의해 시인된 인자문제는 산헤드린의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시인이 정치적인 메시야 시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대제사장이 한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이냐는 심문에 대한 긍정을 내가 그니라고 답변했다. 마가는 이것을 또 다시 추가적으로 예수의 시인(是認)인 인자의 표상을 제시함으로써, 찬송받을 자의 아들과 인자를 결합시킨다. 또한 불트만(R. Bultmann)은 예수가 메시야로 선포될 때마다 올 메시야로서 즉, 인자로서 선포되었다고 규정한다. 래드(G. E. Ladd) 역시 복음서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메시야 칭호들 가운데 하나가 인자라고 한다. 불트만에 의하면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가 되어 다시 오는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니고 메시야로서 그가 도래(到來)함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미 지나간 그의 지상활동을 아직 메시야의 활동으로 보지 않았다. 사도행전이나 서신들 가운데서 초대교회가 예수를 인자로 부른 흔적이 없다. 이 칭호가 복음서 밖에서 한번 나타나는데, 그것은 스데반의 환상이다(행 7:56). 그러나 콘젤만(H. Conzelmann)은 인자에 대한 모든 언급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론의 구조를 통해서 전부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재림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오실 인자가 예수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예수도 인자칭호로 해석되어 졌다. 이와 견해를 같이 하는 학자로는 필하우어(P. Vielhauer)와 페린(N. Perrin)이 있다. 그런데 교부들은 이 명칭이 일차적으로는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의 인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인자의 역사적인 배경과 의미를 소홀하게 취급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래드는 비판한다.
그러므로 마가가 사용하는 인자는 전적으로 예수에게만 적용되었고, 그의 대적자들과 만났을 때 주로 사용하셨으며, 신적 권위와 인간성을 동시에 나타냈다. 이것은 신성모독인가?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는 자신을 인자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 예수의 주장은 묵시문학적 인자 말씀에 의해 강화된다. 이 예수의 답변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도전과 위기를 담고 있다. 예수의 답변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소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들의 암울한 역사와 함께 살아온 전통과 전승 그리고 민족의 정치적 메시야 대망을 교묘하게도 송두리째 변형시켜 놓는 예수의 답변을 듣고 있는 산헤드린의 분노를 대제사장의 태도에서 읽을 수 있다.
4. 사형에 해당하는 판결(막 14:63~64)
63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ὁ δὲ ἀρχιερεὺς διαρρήξας τοὺς χιτώνας αὐτού λέϒει, Τί ἔτι χρείαν ἔχομεν μαρτύρων;
64절.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하고: ἠκούσατε τής βλασφημίας τί ὑμίν φαίνεται; οἱ δὲ πάντες κατέκριναν αὐτὸν ἔνοχον εἶναι θανάτου.
대제사장은 예수의 답변을 듣고 옷을 찢는다. 그리고 예수의 죄를 산헤드린에 고발한다. 마가14장 63a절의 대제사장의 반응은 격정적인 흥분이 아니라 신성모독의 말을 들은 재판관의 의례적인 행위로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신성모독이 입증되면 재판관들은 미슈나에 따라 일어나서 그들의 옷을 찢어야 한다(Sanh 7:5; 참조. 열하18:37, 19:1). 원래 이 행동은 슬픔과 고통의 표현이었다(삼하1:11~12; 열하2:12). 그러나 레위기 10장 6절과 10절에 의하면 사제복을 찢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에스겔 42장 14절과 44장 19절에 의하면 대제사장 예복(禮服)은 성전 밖에서 입을 수 없었다. 대제사장이 옷을 찢었다고 표현하는 마가의 의도는 판결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청중과 독자에게 고지시킨다. 구약 전통에서 보면 하나님 앞에서 민족적인 죄(罪)의 통회를 할 때나 결백을 주장할 때 옷을 찢었다. 대제사장의 행위에 담긴 상징성은 의외로 큰 영향력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문화적인 판결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매우 전통적인 방법으로 판결한다. 그러나 본문의 대제사장의 행위는 마가에게 있어서 작위적인 행위로 보여지도록 안배되어 있다.
그는 예수를 죽일 기회를 노리던 산헤드린의 의장이다. 이제 그 기회의 결실을 맺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증거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젠 대제사장이 직접 질문을 한 것이다. 그 때에 예수가 침묵을 깨뜨렸다. 이 예수의 답변은 산헤드린 모두를 격동시키는 예수의 자기 선언이었다. 그닐카(J. Gnilka)에 의하면 예수는 다른 사람들의 거짓증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시인(是認)이 그의 정죄의 계기가 된다. 만일 하나님이 로마인들이 십자가에 처형한 교사이며 예언자인 나사렛 예수를 다시 살리고 메시야로 삼았다면, 그리고 그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와서 심판을 주재하고 신의 나라의 구원을 가져올 인자로 그를 올려놓았다면, 이것으로써 막연했던 메시야의 신화적 모습이 구체화되고 분명해졌음은 물론이다. 차원 높은 질서에 속한 아들 됨에 대해서 이와 유사하게 주장되는 경우는 산헤드린 앞에서 한 예수의 시인을 통해 발견된다. 재판 과정을 보면 그를 비난하는 여러 죄목들이 붙여졌지만, 그는 그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은 그에게 맹세를 시키고(마 26:63) 직접적인 질문을 하였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 대제사장이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를 정죄한 근거를 찾고 있었다면, 질문에 미심쩍은 점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제사장의 입에서 찬송 받을 자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진술된 것이 메시야직의 명칭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는지, 또 그러한 표현이 그리스도와 동일한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 술어가 메시야를 가리키는 친숙한 칭호가 아니라는 사실로 볼 때, 대제사장의 질문 속에 보다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예수의 대답은 어느 정도의 모호성을 제거해 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 14:62). 이 말을 산헤드린은 예수를 정죄할 근거로 채택한다. 이것은 산헤드린이 예수가 이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혐의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은 이것을 ‘참람하다’고 규정한다. 예수가 참람한 이유는 인자로 자신을 지칭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시인하고 인자로 선포한 것은 당시 묵시문학권 사상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팔레스틴의 유대지도자들에게 위기와 갈등의 담지자로써 그를 인식하게 한다. 예수의 인자 시인(是認) 부분에 대해서 위기의 인물로 추정하고 잡아죽이기만을 고대하던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는 대담하게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야임을 긍정한다고 그닐카(J. Gnilka)는 해석하고 있다. 나아가 예수의 메시야 시인은 신성모독을 확인하기에 충분하였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인자 시인을 메시야 시인으로 본다. 즉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공인했다는 것이다. 인자라는 지칭에 대하여 키(H. C. Kee)도 예수가 처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명백히 밝혔다고 한다. 이러한 해석들은 마태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라고 보여진다. 복음서에는 마태만이 예수의 사형을 결정한 대제사장의 판결을 전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을 모독하였소.” 그러므로 더 이상의 증인은 필요 없었다. 예수의 대담한 메시야 시인은 예수의 유죄를 입증하는 일치된 증거를 찾기 위한 산헤드린 의원들의 노력을 덜어주었다. 대제사장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들은 신성모독을 범죄행위로 확정한다. 이 산헤드린의 결정은 예수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옷을 찢은 다음, 대제사장은 마치 판결문을 낭독하듯 산헤드린의 회원들에게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막 14:63b) 하고 묻는다. 대제사장의 질문에는 요식적인 절차를 밟는 행위만이 남겨져 있다. 대제사장이 그들의 의견을 묻자 산헤드린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수는 “사형에 해당한다”(막 14:64)고 판결한다. 예수는 산헤드린에서 신성모독을 이유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예수 이외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정죄되지 않았다. 또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유대인들에게는 스스로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할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레위기 24장 16절과 민수기 13장 30절은 신성모독에 대해 사형(투석형)을 규정한다. 따라서 보어스(H. Boers)는 예수와 산헤드린 사이에 있었던 사건이 무엇이든 간에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정죄한 재판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유죄판결이 있은 뒤, 예수는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고, 다시 재판을 받은 결과 “유대인의 왕”(마가15:26)이란 죄패(罪牌)를 매단 채 십자가에서 죽었다. 보른캄(G. Bornkamm)에 의하면 이 형벌은 로마의 사법권에 속해 있는 것이고 또 정치적 범행에 대하여 내려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산헤드린에 의해서 정죄를 받은 그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예수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로마의 총독에게 관심거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묵시문학적인 유대인의 왕으로써의 메시야라고 주장한 일로 빌라도에게 고소를 당하였다(누가23:2).
그러나 케제만(E. Käsemann)에 따르면 마가의 주된 관심은 역사적 예수의 생애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마가복음에서 로마에 대한 정치적 항거의 형태에 대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그런 의미에서 설명되어 진다.
5. 종합분석(마가14:53, 55~64절)
마가의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은 역사적 예수 재건을 위한 학자들의 모임인 미국의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에서는 거의 그의 창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보어스(H. Boers)는 산헤드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그의 저서 예수는 누구였는가? 에서 선언하고 있다. 그들은 1세기 팔레스틴의 사회적 세계를 알기 위한 주변 학문의 연구 결과들을 신중히 도입한다. 그것은 편집사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의 산물들이다. 그러나 마가의 의도는 그대로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불트만(R. Bultmann)은 초대교회가 예수를 예언자요 교사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한 동시에 예수는 메시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는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는 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가 위험스러운 유혹자이자 사기꾼이라면 예루살렘 제의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제거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산헤드린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입장을 대변한다. 노트(M. Noth)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라는 자신의 주장과 예루살렘 제의 공동체의 전승들 간에 담판을 벌이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다.……그가 입성하자 열성적인 무리들은 그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적인 왕으로 환호하였고,…” 이들의 환호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저주하며 고함치던 무리와 대조된다. 그리고 예수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이 처형은 산헤드린에서 예수가 자신이 메시야이고 구약의 말씀을 따른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신성모독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결과이다. 이 메시야는 쿨만(O. Cullmann)에 따르면 메시야-왕의 기원에 관한 한 표상이라고 한다. 즉 다윗의 아들(son of David)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후손인 한 왕의 종말론적 출현에 대한 소망은 유대인의 민족주의가 로마의 지배하에서 발전되어 감에 따라 특히 활성화되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기적적으로 지상에 출현할 어떤 하늘의 존재가 아닌, 완전히 지상적으로 정치적인 한 왕을 대망했다. 그들 중 얼마는 예컨대, ―스가랴 9장 9절을 쓴 한 선지자는 ―그가 평강의 왕일 것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 왕은 전적으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인물이었다. 기타 유대인들의 대다수의 기대는 그 왕이 이스라엘의 적들을 정복할 전투적 통치자이기를 바랬다.
이 같은 메시야적 소망들이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 중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이 메시야적 왕은 최종적 나라를 이룩한다. 좀더 오래된 자료에 따르면 그 나라는 여호와 자신이 이룩한다. 그래서 메시야를 대망하는 유대인들은 쿨만의 독특한 표현인 종말론적 중간시대에 살고 있다. 콘젤만(H. Conzelmann)은 이 메시야를 그리스도(Χριστός)라고 한다. 그도 역시 메시야를 민족주의적인 유대교적 종말론에 속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본래 메시야는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구원자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여러 형태의 희망들과 함께 구원자에 관한 표상들이 융합되어졌다. 그래서 메시야의 모습은 초월적인 것으로 고양되어졌다고 한다. 전통적인 메시야상과는 달리 모든 정치적 요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메시야 상이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해석하기 위해 사용됨으로써 인위적인 의미의 전환을 초래했다고 한다.
래드(G. E. Ladd)는 그 의미의 전환을 보여주는 본문을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에서 찾고 있다.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직접 질문했다: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마가14:61). 대제사장이 의도한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전제하는 그는 이 용어가 일반적인 메시야 칭호가 아니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예수가 스스로 그런 주장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마가의 설명에 의하면 예수는 단적으로 “내가 그니라”(Ἐϒώ εἰμι: 막 14:62)고 했지만, 곧 이어서 메시야직의 의미를 정의(定義)한다. 그것은 메시야적인 왕이 아니라 천상적인 인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키(H. C. Kee)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두 개의 성서 인용문을 통해 정의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윗 왕조의 왕이 권능의 자리인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는 구절(시 110:1)이며 다른 하나는 인자(와 같은 이)가 하나님 나라에서의 권세를 떠맡기 위해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다니엘 7장 13절이다. 여기에 메시야로서의 예수에 대한 마가의 이해의 핵심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갖는 다윗 자손의 왕으로서의 역할과 하나님의 나라를 부여받은 다니엘서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대표로서의 종말론적 역할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 마가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된 인자로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마가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를 인자와 결합시킴으로써 출발하고 있다. 마가복음을 구성하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두 지리적 배경이 당시의 사회적 세계를 풍자적으로 상징한다. 예수와 적대관계에 있는 유대지도자들을 수구의 전형적인 모델로 제시한다. 따라서 예수는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는 새로운 메시야가 된다. 이를 통해서 마가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 변증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동시에 그는 로마제국의 위협적인 정치적 탄압에 대한 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쟁점의 핵심인 예수가 메시야됨을 인정한다. 그러나 구약적 맥락과 묵시문학에서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변증과 호교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마가의 관심이 변증과 호교에만 있었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은 이러한 마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의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마가의 설정일 가능성을 배제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시대의 정황은 세례요한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운동의 조짐들이 산발적으로 시도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예수를 잡아죽이려는 음모와 시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위기의식을 대변할 뿐이다. 이것을 마가는 그의 복음서 초반부에서 소개하였다. 그 이후로 줄곧 예수가 여행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 중에는 항상 산헤드린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마가복음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예수의 체포와 산헤드린의 재판에 대한 마가의 설정은 성전 청결이라는 문제와 만난다. 예수가 환전상들의 탁자를 둘러엎고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변했다고 소리질렀을 때, 그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묘사보다 훨씬 더 격렬한 시위였을 것이라는 견해를 리브킨(E. Rivkin)은 제시한다. 성전은 산헤드린이 존립하는 생존의 근거이다. 마가는 예수의 성전청결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이해하는 단서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정작 마가에 의해서 제시되는 예수가 정죄된 이유는 이러한 상황들의 이해와는 무관하게 보인다. 예수는 자신의 인자 시인을 이유로 해서 정죄된 것이다. 마가는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상적인 선재자로서 묵시문학에서 열망하던 인자가 아닌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로서 규정되는 새로운 인자를 등장시킨다. 그는 예수를 전통적인 하나님의 아들과 새로운 인자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위해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가는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선포(막 1:1)하고 있는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마가의 인자 구조는 단계적인 개방을 허용할 준비를 갖추었다. 마가는 이 인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특화시키는 역할을 맡긴다. 그러므로 다음 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드러난 마가의 주요 개념인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 문제가 역학적으로 서로에게 관계하고 있음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다. 이 관계를 풀어내는 것은 마가의 신학적 의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마가는 그 완성을 십자가에서 본다.
Ⅳ.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기소이유
편집사적 연구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사실은 단순한 작가, 수집가, 편집자가 아니라 전승을 의도적으로 구성한 신학자였음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신학적 관점들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같은 관점에 있는 김득중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마가의 주요 의도는 그를 신적 능력의 소유자, 하나님의 아들(막 1:1),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 하나님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킹스베리(J. D. Kingsbury)는 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마가의 의도가 수정적 접근방법에 의하여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마가는 먼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곧 영광의 신학의 전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신적 인간으로 소개하다가, 그의 이야기가 진전됨에 따라 그 자신의 십자가 신학으로 이를 수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구는 인자 칭호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칭호로 수렴되던 예수의 이미지가 인자 칭호에 의해서 재해석된다는 주장을 한다. 그 재해석의 관건이 산헤드린에서 벌어진 예수재판에서 드러나고 있다. 마가는 대제사장의 심문을 부추켜 예수로 하여금 인자를 자신에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하나님의 아들 개념을 변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쿨만(O. Cullmann)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피하지 않았으나, 인자와 같은 전형적인 자칭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묵시문학적 표현인 인자는 나사렛 예수와 결합되어 하나님의 아들 개념을 수용한다. 페린(N. Perrin)은 마가가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바로잡고, 창조적으로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가의 공동체 내부에 있는 한 부류들의 예수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기적적인 능력과 초인적인 지혜를 향유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칭송받은 예수를 헬라의 문화권에서의 신적 인간(δείος ἀνε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위든(T. Weeden)의 견해에 따르면 데이오스 아네르 기독론(divine man Christo- logy)은 복음서 내의 두 주요 등장인물인 예수와 제자들의 갈등을 초래케 하는 요인으로 본다. 이 때 제자들의 입장이 바로 데이오스 아데르 기독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페린(N. Perrin)은 마가가 그의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던 거짓 기독론을 바로 잡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그는 마가가 인자라는 칭호를 통해서 의도한 것은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 칭호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한다.
1.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은 예수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른다(막 1:11, 9:7). 귀신들은 그를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고(막 5:7), 대제사장은 예수가 지극히 찬송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묻는다(막 14:61). 하나님의 아들은 마가에게 있어서 다른 많은 칭호들과 함께 하나의 그리스도론적인 존칭이다. 뿐만 아니라 마가는 산헤드린 앞에서의 예수의 재판 장면(막 14:53~64)을 그리스도의 고백이라는 의미로 구성해 놓았다는 주장이 보른캄(G. Bornkamm)에게서 제기된다: 매우 극(drama)적으로 구성된 이 보도는 서로 어긋나는 거짓 증인들을 소환하는 것을 비롯해서 대제사장 앞에서 비로소 공개하는 예수 자신의 메시야로서의 자기 증언에 중점을 두고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그의 사형 판결로 끝을 맺고 있다. 이처럼 이 보도는 그의 적대자들의 격분과 잔인성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의도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가에 의해 설정된 대제사장의 심문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막 14:61)로 이해되어 진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은 부활체험의 빛 속에서 예수를 아들로 고백했던 초대 교회의 신앙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닐카(J. Gnilka)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가장 최초의 고백이 그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는 가정은 확실해 보이지만(롬 1:4), 마가복음에 나타난 전승들에서는 그 고백들이 부활신앙에 근거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한다. 그는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가 카리스마적인 기적행위자로서뿐 아니라 왕적인 메시야와 종말론적인 구원의 담지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막 15:39; 참조. 막 15:32)고 한다. 마가복음에 하나님의 아들 칭호는 총 8회가 나온다. 이 용어의 사용빈도수가 많은 것은 아닐지라도 마가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은 중요한 개념이다. 그것은 메시야 칭호 중에 하나였다. 또한 마가는 그의 복음서 구조에서 이 용어를 의미있게 배치한다. 이상훈은 마가가 독특하게 전개하는 구성과 수사학적인 기교가 있다고 한다. 그닐카(J. Gnilka)에 의하면 마가는 이 하나님의 아들 칭호를 그의 복음서 초반부(막 1:1, 11)와 중반부(막 9:7) 그리고 종반부(막 15:39)에 배치하는 편집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스타이헬레(H. J. Steichele)에게 있어서도 그닐카의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배치의 문제는 긍정적으로 수용된다. 그에 의하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세 번의 선언(막 1:11, 9:7, 15:39)은 서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세례받는 장면과 변화산상에서의 하나님의 선언은 백부장의 고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역으로 백부장의 고백은 다른 두 선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로마의 백부장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는 세례장면과 변화산상에서 나타난 왕된 메시야이다. 그리고 세례장면과 변화산상에서 하나님이 보여준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수난받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1) 예수의 세례(막 1:9~11)
콘젤만(H. Conzelmann)에 의하면 마가는 예수의 세례받음을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때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막 1:11)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졌다. 이 장면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는 마가의 배치이다. 킹스베리(J. D. Kingsbury)는 마가복음을 하나의 이야기로 볼 것을 전제한 뒤, 여기에서 하나님이 직접 배우로 등장하신다는 입체적 설명을 시도한다. 그 목적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마가복음 1장 11절에 세례장면을 가지고 온 마가의 의도는 이제 분명해졌다.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비교, 막 9:7, 창 15:4, 신 4:36, 단 4:31). 하나님은 예수를 시편 2:7절과 이사야 42:1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여 택한 종은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이 택한 자이다. 창세기 22:2절에서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은 그의 독자(獨子)이다. 그리고 시편 2편에서 하나님이 엄숙하게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한 자는 다윗의 집에서 왕으로 지명된 자이고, 그의 기름부음은 그의 대관식의 날에 그가 유대의 권좌에 앉을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이 구약의 배경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하나님의 아들은 종말론적 사역을 위하여 부름받았다는 입장을 마가가 선언하고 있다고 킹스베리는 해석한다. 곧 예수는 왕적 메시야라는 것이 마가의 선언이 가지는 의미이다. 이 세례장면에 연관된 하나님의 음성의 내용에 세가지 관점을 부과하는 글뢰게(G. Gloege)의 설명은 그 선언의 의미를 심화시켜 준다. 첫째는 하나님이 예수를 자기의 아들로 선언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양자로 삼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의 자격을 주는 법적 선언이다. 둘째는 하나님이 예수를 자기의 아들로 택했다(사 42:1-4)는 제2 이사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 백성들의 꿈이 이제 목수의 아들 나사렛 예수에게 전하여졌다. 하나님이 친히 예수에게 말한다. 예수는 묵시문학자들이 꿈꾸던 선택된 자이다. 셋째는 하나님이 그의 영을 예수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영은 황홀감, 꿈들과 환상의 능력이요 동시에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야 할 표적들의 힘이다(요엘 3장).이 영은 개인과 사회, 인류와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간구를 듣는다. “원컨대 주는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사 64:1).
그러나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예수가 선지자임과 영을 소유하였음을 의식하였고, 또 그러한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 단순하게 그가 구약의 많은 하나님의 사자들(messangers : 使者들)의 계열을 잇는 연결고리로서 위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지자적 연속성(prophetic sequence)은 이미 깨어졌기 때문이다. 영이 끊어졌다는 것은 회당의 확신이었다. 마지막 정경 예언자(wrighting prophetic)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의 죽음과 더불어 영이 끊어졌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다. 그 영이 예수의 세례체험 때에 예수에게로 돌아왔다. 영이 되돌아 왔다는 것은 심판의 때가 끝나고 은혜의 때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돌이키고 있다. 예레미야스에 의하면 예수의선포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마지막 최종적인 사자(last and final Messanger)이다. 마가는 예수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된 것이라고 한다.
2) 변화산상의 예수(막 9:2~8)
콘젤만(H. Conzelmann)은 변화산상(막 9:7)에서 들렸던 너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의 의미를 분석한다. 그것은 이제 예수가 세례받는 장면에서 획득한 하나님의 아들됨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이 구절의 후반부에는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권고가 이어진다. 이 구절에 대해서 스타이헬레(H. J. Steichele)는 예수가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 이후에 한 1차 수난예고(막 8:31-38)와 뒤에 오는 두 번의 수난예고(막 9:12, 31; 10:33-34), 즉 메시야로서 그가 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고지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마가의 의도에 따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킹스베리(J. D. Kingsbury)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에 따르면 마가의 의도는 예수가 왕적 하나님의 아들로써 십자가에 죽고 부활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입증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예수가 산헤드린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마가복음의 구성과 배치를 유기적인 관련선상에서 볼 때 이들의 주장은 긍정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변화산상에서 있었던 이 극(drama)적인 장면은 그닐카(J. Gnilka)의 분석에 의해서 명백한 의미를 구성한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표현이 시편 2편 7절에 의존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유일한 관계를 서술하는 말로서 이미 정형화된 술어라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의 칭호로 사용되는 일은 유대교에서 분명하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는 로마서 1장 3-4절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허용한다. 또한 그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신약성서에 그리스도론에 속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예수는 자기와 하나님의 관계는 독자적이라고 확신했고 하나님은 아버지요 자기는 그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가졌다. 킹스베리(J. D. Kingsbury)는 여기에서 마가복음 8장 29절에 있는 베드로의 고백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가의 의도가 아직 채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는 한 이적 행위자로서가 아니라 수난예고에 뒤이은 수난의 순종적 성취로써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쿨만(O. Cullmann)에 의해서 연구됨으로써 변화산상에 하나님의 아들 선언에 대한 마가의 의도 가운데 일부가 확인되었다고 하겠다.
예수가 세례받을 때와 형상을 변화할 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의 소리로 등장하였다. 이 하늘은 하나님인가? 콘젤만(H. Conzelmann)에 의하면 유대교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헬레니즘적 세계관과는 달리 구약성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다. 그래서 하나님은 높은 곳에 군림하신다. 하늘은 그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다(사 66:1=행7:49). 마가는 이러한 유대교의 하나님 이해를 빌어와 하늘로부터의 소리로 하나님을 표상(表象)한 것이다.
3)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막 15:39)
래드(G. E. Ladd)는 예수의 자기 현시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메시야 술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규정한다. 보른캄(G. Bornkamm)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다시 사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가복음 15장 39절의 로마의 백부장이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하는 예수를 보면서 한 고백인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막 15:39)는 마가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본다. 마가는 죽어가는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 칭호를 부여한다. 보른캄(G. Bornkamm)은 다음과 같이 마가의 의도를 읽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기 메시야를 로마인의 손에 죽게 하는 바로 그 순간 그에게 향한 최초의 고백은 이방인의 입에서 울려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닐카(J. Gnilka)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비로소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가 파악될 수가 있다고 의미있는 해석을 한다. 즉 그의 기적과 능력있는 행위들을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아들의 계시(막 3:11, 5:7)는 십자가에서 필요한 보충이 이루어지면서 절정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십자가 앞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가졌다는 것이 공적으로 선언된다.
십자가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된다. 마가복음의 표제어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 1:1)은 그 목적에 이른다. 그 목적을 성취한 예수의 십자가의 고백은 한 이방인의 고백으로 끝난다. 메이트라(F. J. Matera)에 의하면 이 이방인은 마가복음서에 등장하여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로 나타난다. 이 고백의 의미를 추적하는 킹스베리(J. D. Kingsbury)는 예수가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사형을 판결(막 14:61~64)받았다고 해석한다. 그 재판에서 예수가 했던 하나님의 아들 시인과 백부장의 고백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는 그 이방인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에 이를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을 가정한다. 이 질문의 답변을 그는 세가지로 준비한다. 첫째는 그 백부장이 두가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산헤드린 재판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을 시인한 것에 대한 입증과 참람하다고 정죄한 대제사장의 판결에 대한 입증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긍정으로 입증되었고 후자는 부정으로 입증되었다. 둘째는 백부장의 고백인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에서 이 “이었도다”라는 동사의 시제가 과거형인 것을 문제삼는다. 이것을 예수의 지상의 사역이 성취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셋째는 마가복음에 있어서 백부장의 고백이 인간 편에 있어서 최초의 공개적인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사역이 완성되는 시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는 관점을 유지한다. 마가는 로마의 백부장인 한 이방인을 배우로 등장시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고, 초대교회에 대한 로마의 경계를 풀어주고 있다.
마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입장을 지켜가기 위해 치밀한 최초의 복음서를 썼다. 지금까지 살펴본 마가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구성은 그 횟수에 상관없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를 자신의 신학적 구상을 전개하는 두 개의 큰 축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에서 예수의 자기지칭인 인자가 하나님의 아들과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인자는 아직 정확한 의미와 쓰임새가 드러나지 않았다. 마가가 지시하는 인자는 그의 독창적인 창작의 산물이 아님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개념은 독창적이다.
2. 인자
인자(ὁ υἱός τού ἀνθρώπου)라는 칭호는 통속헬라어(secular Greek)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관사를 가진 아람어 연계형 “바르 에나샤”(bar nasha)를 문자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바르”(bar)는 집합적인 용어로써 사용된 “에나쉬”(사람)에 속하는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 에나샤”는 “그 사람”(the man) 혹은 “한 사람”(a man)을 의미한다. 이것은 독일어의 Menschenkind처럼 단순히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키(H. C. Kee)는 이 표현이 에스겔서 2장 1절에서처럼 단순히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이것을 초대교회의 전승이 그 속에서 인자(Son of man) 칭호를 발견했던 것으로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추측한다. 이 인자에 대한 불트만(R. Bultmann)의 이해는 공관복음서의 전통에 따른 초대교회의 지배적인 칭호로 분류된다. 이것은 묵시문학의 희망에서 생겨났고 초지상적․선재적 존재를 뜻했으며 마지막 때에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심판을 주재하고 구원을 가져온다. 콘젤만(H. Conzelmann)에 의하면 한정된 묵시문학권 안에는 종말론적 인물인 인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묵시문학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원시 그리스도교적 칭호는 이와 관련이 있다: 인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올 것이다(분명히 다니엘서에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러나 유대 묵시문학과는 달리 공관복음서는 인자의 천상적 선재에 대하여는 모른다.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인자의 칭호와 기원에 대한 탁월한 연구를 진행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최초의 전승층으로 인정한 묵시문학적인 인자 말씀들은 필연적으로 예수자신에게 소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1896년 릿츠만(H. Lietzmann)은 인자가 유대주의에서 메시야적 칭호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말이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에 예수 당시의 유대주의가 이 명칭으로써 메시야를 칭했을 이유가 없으며, 예수가 무의미한 지칭을 자신에게 부여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벨하우젠(J. Wellhausen)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비평적 유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휘비크(P. Fiebig)는 릿츠만과 벨하우젠이 끌어낸 그것이 메시야적 칭호가 아니라고 한 결론의 옳지 못함을 증명한다. 또 발덴스페르거(W. Baldensperger)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단어가 사실은 종말 때에 출현하게 될 한 중보자의 칭호라는 것을 발견한다. 쿨만(O. Cullmann)은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사람”에 대해서 단일한 인격체로 받아들일 것을 요청한다. 그는 에디오피아 에녹서(Ethiopian Enoch)에서, 인자는 창조 초에 옛적부터 계신 자 앞에서 그의 이름이 지어진 자라는 사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인자는 세상을 심판하고 통치하기 위해 도래할 종말까지는 숨겨진다. 이 인자는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다. 그는 바로 시간의 시작에서 시간의 끝이 지상에 이를 때까지 하늘에 살고 있는 선재의 천적(天的) 존재이다. 이와 같이 인자는 묵시문학에서 구속자의 칭호가 되었다. 그는 온 세상을 위하여 구원을 가져오는 자인 것이다(마 25: 31~46).
그러나 인자 칭호는 공관 복음서의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어디에서나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유대 묵시문학적인 인자가 마가 이전부터 이미 넓게 회자되고 있었다고 할 때, 그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관 복음서에는 인자에 대한 표상구들이 풍부하게 자리하고 있다. 콘젤만(H. Conzelmann)에 의하면 그것의 성격은 수난당하는 인자와 지상에서의 인자, 그리고 도래할 미래적 인자 등 크게 세 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여기에서 인자가 수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해 비하된 모습으로 땅에 임할 것이라는 개념은 유대교에서나 초대교회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래드(G. E. Ladd)의 분석이다. 이것은 십자가 신학의 동기로써 마가의 인자와는 거리가 있는 설명이 된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수난예고를 하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며,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는 인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수난당하는 인자의 상(象)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불트만(R. Bult- mann)은 도래할 미래적 인자에 대해서만 언급하면서 예수가 묵시적 인자로 자신을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는 인자를 자칭함으로써 수난당하는 인자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칭호가 예수 자신에 의해서 65회나 사용되고 있음에도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3. 마가의 인자이해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련성 아래서 인자에 대한 주장을 펴고 있는 킹스베리(J. D. Kingsbury)의 설명은 분석적인 설득력이 있다. 그는 마가가 이 두 용어를 서로 다른 목적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데 사용되지만, 인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그 차이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인자 칭호는 다른 고백적 칭호들, 곧 “메시야”, “다윗의 자손”, “유대인(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아들” 칭호 등과 같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이것이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마가는 예수를 매우 분명하게 다윗적 메시야-왕,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인자는 독자들에게 예수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 흔적이 없었다. 마가복음에 있어서 인자는 다른 어떤 인간에게가 아닌 예수께만 적용된 특수한 용어인 것이다. 문학 비평적 시각에서도 인자는 특수성을 지녔다. 무엇보다 이 용어는 예수의 어법적 관점(phraseological point of view)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용어는 오직 예수의 입을 통해서만, 그리고 오직 이 형태로만(인자; The Son of Man), 그리고 오직 예수 자신만을 지칭하면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인자 칭호의 사용권을 예수자신에게 돌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될 수 없다고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주장한다. 또한 신약의 모든 자료들 속에서 예수만이 인자를 자신을 지칭하는 술어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단 하나밖에 없는 확고한 비평적 입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래드(G. E. Ladd)는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들이 정당하다고 할 때, 마가의 인자 이해를 위한 기초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려내려고 의도하는 인자는 나사렛 예수와 결합되어 있다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가는 인자로서의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정당하고 새로운 가치평가를 기획했던 것일까? 산헤드린의 예수재판 보도에서 마가는 예수에게 인자 칭호를 부여했다. 마가에 의하면 인자이기 때문에 신성모독이 되고, 유대인의 왕이 되고,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다. 인자로 인정하는 순간 예비된 수난이 예수에게 몰려들었다. 이로써 예수는 인자로 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여기서 마가의 인자는 예수의 인자가 되었다. 그 인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십자가에 처형되고 운명하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졌다. 그 인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인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었다.
마가는 세가지 형태의 인자에 대해서 모두 보도하고 있다. Q문서는 수난당하는 인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구절만을 보도한다. 마태의 자료와 누가의 자료는 지상적인 인자와 묵시적인 인자에 관한 구절들을 보도한다. 마가가 인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그 구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지상적인 인자(막 2:27)
마가복음 2장 10절과 2장 27절이 마가의 지상적인 인자이해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예수는 직접 인자를 자기자신에게 적용시킨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일하는 것이 가한 것인지를 물을 때,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막 2:27)고 답변하였다. 그 헬라어 본문은 그 아람어 어근 barnasha를 ἀνθρώπος로 정확히 단순 재생시킨다. 예수의 답변은 그 신적 사람, 곧 인자가 아니라, 분명히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한다. 그 다음절은 “그러므로 인자(ὀ υίος τού ἀνθρώπος)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이다. 쿨만(O. Cullmann)은 이 변형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한다: 마가는 적어도 예수가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지칭키 위해 인자를 사용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절을 이해했다. 이 입장은 인자 이해에 대해서 콘젤만(H. Conzelmann)의 지지를 얻는다. 래드(G. E. Ladd)에 의하면 예수는 인자로서 안식일에 대한 서기관들의 규정들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주장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예수는 바리새인에게 자신을 인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예수가 인자를 자칭할 때에 제기되는 독특한 관점을 문제삼는다. 그에 의하면 예수가 자신과 인자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것은 인자가 3인칭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예수가 인자를 3인칭으로 말함에 있어, 그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인물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재 상태와 미래에 승귀된 상태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삼인칭은 예수와 인자 사이의 신비적인 관계(mysterious relationship)를 표현한다: 그는 아직 인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자로 승귀될 것이다. 이 견해는 마가의 인자 이해에 대하여 독특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마가가 의도한 것이 예레미야스의 해석처럼 논리적이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묵시문학에서 대중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인자를 나사렛 예수라는 한 인물과 결합시키고 있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진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주요한 것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높아가는 적의(敵意)의 원인이 되고 있는 율법과의 공공연한 충돌이다. 이 경우 이들은 자주 자구의 형식적 권위를 고집한다. 예수가 병자를 고친다든가 제자들이 곡식 밭을 지나가는 길에 이삭을 딴다든가(막 2:23 이하) 하는 경우의 수많은 안식일 충돌들(막 3:1 이하; 눅 13:10이하; 14:1 이하; 요 5:1 이하)이 묘사하는 예수의 태도는 결코 율법 자체에 대한 공공연한 위반이 아니라고 보른캄(G. Bornkamm)은 예시한다. 유대교에서 특별히 까다롭게 내세워진 결의론의 위반이다. 그런데 그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막 2:27)라는 근본적인 말씀이 그런 의미로 다른 랍비의 입에 오르내린 예는 아직 없었다고 한다. 마가복음 2장 10절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신적 권위자로서 인자를 마가는 밝혔었다. 이것은 예수가 세례(막 1:9~11)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의 소리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한 이후 신적 권위를 가진 인자로 등장하도록 마가에 의해서 배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제 다시 율법을 새롭게 적용하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인자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인자에 대한 마가의 자료 사용은 인자개념에 대한 수정을 의도하는 마가의 치밀한 목적이 감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유대 묵시문학의 인자가 예수자신에 의해서 적용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유발시킨다. 이 문제는 오히려 초대 교회의 적용 쪽으로 기울어진다. 마가는 이미 작가적 상상력으로 인자의 문제의 틈새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ὀ ἀνθρώπος)이 인자(ὀ υίος τού ἀνθρώπος)가 된다. 그러나 마가는 이미 예수 속에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굳이 예수와 초대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마가는 예수를 통해 말하고 활동한다.
2) 수난당하는 인자(막 8:31, 9:31, 10:33)
수난당하는 인자에 대한 마가의 이해는 마태나 누가와 차별하도록 하는 독특함이 있다. 이 개념은 마가의 독자성을 확보하게 한다. 그는 이사야 53장의 수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야 사상을 다시 묵시문학적인 영광의 인자 사상과 결합시킨다. 마가 이전에는 유대교에서 메시야와 수난당하는 종과의 어떠한 융합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난당하는 인자에 대한 공과는 마가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가 도입하고 있는 인자에 대한 13개 구절 중에 8개를 이 주제를 위하여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 차례의 수난예고(막 8:31; 9:31; 10:33)가 포함되고 있다. 그닐카(J. Gnilka)는 수난받고 부활하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로기온(막 8:31)과 비슷한 형태의 말들이 나머지 두 개의 수난예고 안에 들어 있다고 한다. 이 첫 번째 수난예고는 9장 12절과 14장 21․41절에 있는 짧은 형태의 수난예언(그리고 9장 9절의 부활예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인용된 모든 구절들은 인자 칭호를 모두 사용하고 있으며, 본 주제인 수난당하는 인자와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마가복음 8장 31절과 9장 31절, 그리고 10장 33-34절에 나오는 세 수난예고들은 모두 죽음과 사흘 후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 8장 31절의 수난예고가 예수에 대해서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로 고백한 베드로의 예수인식 이후에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마태(16:21)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첨가되고 있다. 이 때까지 베드로는 올바른 예수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어진 수난예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수난과 죽음이 포함되어진 역할을 해야하는 것으로 선언되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예수의 선언을 거부한다. 베드로는 인자 칭호에 이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역할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죽임을 당하는 인자 또는 메시야란 개념은 믿을 수 없는 모순된 술어이다. 그러나 이 베드로가 예수에 의해서 다시 거부된다. 이것은 베드로 개인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마가는 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에 대한 메시야 인식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출발신호가 된다. 물론 아직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은 그 인식을 교정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마가는 초반부 이후로 줄곧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여야 할 것을 예고했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메시야와 관련시키지 않고 인자와 관련시켜 진술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에게 문제를 더 심화시킬 뿐이었다. 만일 메시야가 그 입술의 기운으로 원수들을 궤멸시킬 다윗 계통의 왕이라면 인자는 천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러한 인자는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래드(G. E. Ladd)는 예수가 수난의 종이라는 내용을 인자 개념 속에 불어넣었다고 규정한다. 이 첫째 수난예고와 관련한 그닐카(J. Gnilka)의 견해는 인자에 대한 묵시문학적 기대 안에서도 초월적이고 천상적인 인자를 지상적-메시야적 모습으로 이해하는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것은 마가의 인자이해를 위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마가복음 9장 31절에 나오는 수난예고에 대해서도 같은 유형이 적용되는 현상을 본다. 이 수난예고는 예수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변형되는 모습을 보여준 변화산상(막 9:2~8)의 보도 이후에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예수는 또 다시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막 9:7)로 확증된다. 산에서 내려온 예수는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귀신을 축출한다. 예수를 알아보고 놀란 군중들이 인사하기 위하여 몰려든다(막 9:14~29). 이 기적설화에 대해서 그닐카(J. Gnilka)는 마가의 의도를 잘 드러내 준다고 평가한다. 즉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되었던 변화산상의 보도와 연결을 지으려는 배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설화에 이어서 나오는 두 번째 수난예고는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과 수난당하는 인자를 다시 한번 연결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예고를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상황이 연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지리라”(막 9:31)는 두 번째 수난예고는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죽음으로 안내할 산헤드린에서의 예수재판 논쟁을 고려하고 있다고 쉬툴마허(P. Stuhlmacher)는 주장한다. 마가는 이것을 하나님의 아들과 만나게 하고 결합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마가는 그의 의도를 반영하는 배치를 이 장면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호보완 작용을 하고 있다. 원래 인자사상은 묵시문학적인 영광의 메시야 사상이다. 따라서 수난당하는 인자의 개념은 묵시문학에서 유도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적인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와 같은 전통적인 메시야 칭호들도 수난의 기대는 없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니어(D. Senier)에 의하면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과 영광과 승리의 인자에 대한 고정관념의 교정을 시도한다고 한다. 예수가 수난예고를 한 지역이 이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간다. 마가는 이 두 번째 수난예고에 의해 예수의 활동을 예루살렘에서의 최후와 연결시킬 수 있었다.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이 수난예고를 그 간결성과 불명확성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의 용법들을 살펴볼 때, 최초의 수난예고 자료로 인정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마가는 아직도 예수가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 속에 노출되어 있다.
마가복음에서 세 번째 수난예고(막 10:32~34)는 10장 33절에서 선언되고 있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보다 앞서서 간다(32). 그리고 그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수난예고를 제자들에게 한다. 예수는 자신이 산헤드린의 구성원으로 등장하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그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판결한 것과 이방 사람인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준 일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33). 빌라도가 주재하는 로마법정에서 일어날 일들까지도 정확하게 예고된다(34). 그닐카(J. Gnilka)는 마가가 이 수난예고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했다고 한다. 예수가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갔다는 데서 그는 이 수난예고의 그리스도론적인 의미를 연출한다고 한다. 콘젤만(H. Conzelmann)은 이 사화를 교의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러한 그의 죽음에 대한 마가의 의도가 가장 적확하게 드러난 곳은 이 수난사화와 연결을 이루는 10장 45절이다. 이 구절은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 것이 인자로서 담당해야할 메시야적 사명이라고 가르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는 하나님이 설정한 목적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야했다.
이렇게 마가가 제시하는 수난당하는 인자는 유대교에서는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예수의 수난예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의 수난이 현실로 다가오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두차례의 수난예고(막8:31, 9:31)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수난당하는 인자의 결합이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번째의 수난예고는 예루살렘에서 곧 다가올 배반과 체포와 심문, 그리고 십자가의 처형에 이르는 수난의 현실을 예비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예수를 본다. 이것은 마가의 인자에 대한 제자의 무지를 반영한다. 곧 이어지는 야고보와 요한의 간구(10:35~45)는 역설적인 배치이다. 마가는 여기에서 대속물(lutron)로서의 인자의 수난을 예수와 동일화시킨다. 마가의 인자이해를 설명하고 있다.
3) 묵시적인 인자(막 14:62)
마가복음에 나오는 묵시적 인자를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 가운데 산헤드린의 예수재판 보도에 삽입된 내용이 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 14:62)는 표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론적 칭호에 대한 요약적인 진술로써 다니엘 7:13절과 시편 110편 1절이 결합된 것이다.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심문했다. 산헤드린의 입장에서 대제사장은 예수가 그의 전(全)사역을 통하여 그 자신에 대하여 주장한 것을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하나의 진술로 자백하기를 원하였다고 킹스베리(J. D Kingsbury)는 분석한다. 예수는 주저하지 않고 “에고 에이미”(Ἐϒώ εἰμι; I am: 내가 그니라)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즉시 묵시적인 인자에 대한 표현으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대제사장은 이러한 예수의 주장에 대해 옷을 찢는다. 그리고 참람된 말로 규정하여 예수를 정죄한다. 산헤드린은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결한다. 그리고 예수는 이방인 빌라도에게 넘겨진다. 이 모든 진행은 일사천리로 하루만에 종결되었다. 세 번째 수난예고의 내용은 장로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지만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실현되었다.
마가는 여기에서 묵시적 인자로 규정되는, 즉 미래에 올 자로서의 종말론적인 인자를 소개한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갖는 다윗 자손의 왕으로서의 역할과 하나님 나라를 부여받은 다니엘서의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댸표로서의 종말론적인 역할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키(H. C. Kee)는 주장한다.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나타났고 그렇게 바르 에나샤(barnasha)의 역할을 떠맡은 예수는 동시에 세상의 심판자인 미래적 인자, 즉 묵시적 인자이기도 하다. 그러나산헤드린에서 예수는 자신을 묵시적 인자로 드러냈다는 것은 표면적인 해석이다. 마가의 인자이해가 이 산헤드린에서 풀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가는 그 동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막 1:1)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고심해왔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구조에 있어서 절정부분에 속하고 있는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에서 감추어 있었던 예수의 정체성(identity)을 예루살렘의 적대자들 앞에서 공포(公布)한다.
마가가 예수의 답변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인자는 수난당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전혀 새로운 입장과 그 하나님의 아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자였다. 이는 대제사장의 물음에 나타난 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또한 묵시문학에서 구원자로 등장하여 영광 중에 통치하는 유대적 종말론의 표상도 마가의 인자를 대신할 수 없다. 예수의 답변은 묵시적 인자뿐만 아니라 마가의 인자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4. 기소이유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기소이유는 마가의 의도를 강화해 준다. 하나님의 아들과 수난당하는 인자가 결합되고, 이것이 다시 나사렛 예수와 융합되는 과정의 역동성을 그는 여기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가의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 이해는 전승들의 복잡한 유기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유대교의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표현되는 다윗 계열의 정치적 메시야이다. 둘째로 묵시문학에서 고대하는 인자이다. 이것은 천상적 선재의 종말론적 메시야이다. 셋째로 구약전통의 수난받는 의의 종이다. 이것은 수난당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메시야이다. 이들은 적어도 마가의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하나의 과제로 남겨지는 유형들로 분류될 수 있다.
마가는 표제어로 선택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고 하는 명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로 복음서를 쓰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시대적 물음과 치열한 대화를 한다. 그것은 묵시문학적 인자와 수난당하는 하나님의 종을 융합시키는 것으로 제 1단계를 지나고 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의 인자 표상구는 적절한 증거가 된다. 제 2단계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아들로 선포(막 1:11)되고 확증(막 9:7)된 예수를 수난당하는 인자와 결합시키고 있다. 이것을 위한 마가의 방법은 인자 칭호를 오직 예수만이 사용한다는 것과 하나님은 예수를 자기의 아들로 확증하고 있다는 나사렛 예수를 통한 결합이다. 마가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무대로써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을 통해서 예수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자이다”라고 선언하도록 한다. 그러나 예수는 이 선언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수난을 겪고 죽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이방인인 로마의 백부장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서 수난당하고 죽어가는 예수를 향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주제를 완성한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 마가는 여기에서도 곧 이 인자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읽을 수 있도록 이중장치를 설치하였다. 그것은 “이 사람”(ὀ ἀνθρώπου)에 관계하는 “인자”와의 언어유희의 문제이다. 마가가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수사법적인 기교 중의 하나이다(막 2:27~28 참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과 백부장의 고백은 구별되어야 한다. 마가의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서 수난당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백부장의 고백 설화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백부장의 고백은 마가의 편집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이 고백은 마가의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마가는 수난당하는 인자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와 융합시킨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은 예수에게 신성모독 죄를 구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마가의 그리스도론적 의도가 집중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근본적인 기소 이유는 그들의 신성모독이다. 이것은 마가의 의도를 결정지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Ⅴ. 결론
예수는 산헤드린의 예수 재판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 이것을 위한 예수의 자발적 참여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결정을 유보없이 실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막 9:32). 마가에 의한 예수의 수난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가가 예루살렘을 향한 행진의 계속적인 단계들을 묘사하기 위해 위치시키고 있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세 요약 보도들은 인자가 사람들에게 넘겨지고 죽음을 당하리라고 한다. 이 보도들 가운데 마지막 수난예고가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 도중에서 진술되고 있다. 이 내용은 가해자의 명단에서 장로들이 빠지기는 했으나 산헤드린과 빌라도의 재판이 암시되고 조롱당할 것까지 예고되는 세밀한 것이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의 수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 이 재판에서 마가는 예수를 따라다니며 잡아죽일 음모를 꾸미던 산헤드린의 회원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위기의식의 산물인 법정증인들의 증언을 거짓증인들로 규정함으로써 일축해버린다. 이것은 마가복음서가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에 내재되어 있다고 연구되어진 도시와 시골의 긴장과 대립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또한 예수의 성전청결과 성전예언의 문제가 기소이유로 제시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시점에서 마가의 고려는 세 번째 수난예고 이후 철없이 감투싸움을 벌이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수난당하는 인자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그것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 10:45) 하는 예수의 설명이 초점이다. 지금은 수난의 입구인 산헤드린의 재판정 앞에 끌려와 있는 예수의 침묵도 마가의 의도를 지지한다.
산헤드린의 재판을 주재하는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심문한다. 이 하나님의 아들은 베드로의 고백(막 8:29) 속에 담겨있는 수난과 죽음이 없고 영광과 권세가 넘치는 다윗 계열의 왕적 메시야를 상기시켜 준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그러면 대제사장의 심문 내용도 거부하거나 침묵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는 “에고 에이미”(Ἐϒώ εἰμι; I am: 내가 그니라)라고 말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많은 사람들과 적대자들 앞에서 시인한 것이다. 마가복음 1:11절의 세례보도와 9:33절의 변화산상에서 예수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선언되고 확증되었었다. 그 때마다 마가는 수난당하는 인자에 대한 예고를 통해 수난당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예수이해를 위한 배려를 다했다. 지금도 역시 마가는 예수의 긍정적인 답변 직후에 신속하게 묵시적 인자의 모습을 배치하는 순발력을 보여준다. 대제사장이 가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해를 교정하기 위해서 인자가 제시되었다. 이것들은 산헤드린이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신성모독죄로 정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달린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마가의 수난당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물이 되는 자로 묘사된다. 따라서 마가의 산헤드린의 예수재판은 하나님의 아들의 수난에 집중되어 있다. 그 도구는 십자가였다. 십자가에 달릴 수밖에 없었고, 십자가에 처형되고 있는 예수를 향해 이방인 백부장은 인간 최초의 고백을 한다. 이것을 마가는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으로 본다. 그는 이 자료를 편집하면서 길고 긴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을 수난당하는 인자로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이 수난당하는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과 예수와 연합한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의 집필 목적에 대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것으로 삼았다(막 1:1).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막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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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Trial of Jesus in Sanhedrin
Kim, Seung Dae
Department of Theology
The Graduate School of
Kangnam University
Jesus was sentended to death at the trial of Sanhedrin for religious reasons. The voluntary involvement of Jesus in this suffering is shown in his will that he decided to march toward Jerusalem without hesitation. Mark's interpretation of the Suffering of Jesus is based on Christology held by The Early Churches. Mark wrote three brief episodes about the suffering of Jesus to describe the consecutive steps of the march toward Jerusalem. A these episodes predict the Son of Man would be handed over to the people and executed. The last implication of the Suffering is given on his way to Jerusalem. The episode is written in detail, hinted at the trial of Sanhedrin, Pilate's words and their mocking at Jesus, even though the names of the elders do not appear on the list of the persecutors. According to mark, Suffering of Jesus had been already begun.
In this sense, The Trial of Jesus in Sanhedrin is a part of God's plan. In this trial, Mark concludes it to be the false testimony against Jesus. The testimony is given by the members of Sanhedrin who had schemed to arrest and kill Jesus and court witnesses. This testimony is the product of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This shows the gospel written by Mark pays little attention to the tension and antagonism between the rural and urban area, which had been existed in Galilee and Jerusalem. The issue of the cleanness of the temple and prophecy by Jesus is not presented as the reasons for the indictment of Jesus. At this point, Mark considerately reminds of the meaning of the Son of Man, who is to suffer, the disciples who are fighting for the prize after the implication of the third Suffering. The focus is on the Jesus's saying,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Mark 10:45). Mark's interpretation is also supported by the silence of Jesus who is forcibly brought before the Courtroom of Sanhedrin where his suffering begins.
The chief priest presiding over the trial of Sanhedrin Questions Jesus if he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This Son of God reminds us of the Messiah, the King of Israel descended from David, who is free from suffering and mortality and full of glory and authority, as we see in Peter's confession. Jesus had been declared and proven by God to be his son, as we can see in the reports of baptism(Mark 1:11) and the event on the mountain of Transfiguration. On each occasion, Mark, through the prophecy for the Son of Man who is to suffer, made sincere efforts to give his own understanding of jesus, the Son of God who is to suffer. Mark also promptly demonstrated apocalyptic image of the Son of Man right after he gave the affirmative answer. The Son of Man was presented to correct the chief priest's interpreation of The Son of God. All these become the decisive factors to condemn Jesus to be Charged with blasphemy, which is worthy of death sentence. Jesus was crucified under the written notice of the charge witch read "the king of the Jews" and Mark described the Son of God as the one who suffered to give his life as a reason for many. Thus, The trial of Jesus in Sanhedrin is fourced on the suffering of the Son of the God and the tool used for persecution was the cross. A Centurion, the Gentile, gave the confession first made by any human being to the Jesus who was destined to be crucified and Mark saw this as the completion of God's plan. Mark newly arranged and interpreted the ever-long theory of Christ held by The Early Churches with his interpretation of the Son of Man who was to suffer. This Son of Man who suffered ranks equally with Jesus, the Son of God. Mark's intention of writing his gospel was to declare Jesus as the Son of God(Mark 1:1)
"Surely this man was the Son of God!"(Mark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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