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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4년 10월 8일(흙날).
2시 30분께, 고광찬 회원이 고서까지 델다 준다. 고맙다고 시제 때 보자고 허고는 고서 사거리에서 뚤레뚤레했다. 창평 가는 길에 봉고차 한 대가 서있다. 뒷문을 열었더니 젊은 아낙 한 분허고 어린애 둘(새내담, 새미랑)이 앙거있다. 맨 뒷자리에 한 사내가 있고....
조수석에 올라 인사를 건넸다. 운전허시는 분 얼굴이 낯익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예, 고맙습니다. 근디 어디서 뵌 듯헌디요, 이?”
“교찾사 연수 때 뵀습니다.” “강사로 오셨등가요?”
“아니, 강사는 아니었고요. 그냥 놀러갔습니다.” “아예. 근디 이름이 어치고....”
“권오산이라고 합니다.” “권오삼씨요?” “권. 오. 산입니다.”
창평나들목 미쳐 못 가서 잎술 여섯 병허고 불량식품(붕어 싸만코 5개)을 샀다. ‘쐬주가 더 불량식품인가? ㅋㅋ..’ 우리를 태운 희망스타렉스가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가자, 또 부산으로!’
3시 30분, 섬진강휴게소에 이르렀다. 광주희망버스 바로 옆에 차를 댄다. 박고형준 동지를 비롯해서 아는 얼굴들이 쏟아진다. 칠순의 노투사 배종렬 어르신도 내려오신다.“아이고, 선생님 오셨습니까?”허고 고개를 숙이자 손을 내미신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푸고 희망스타렉스에서 가방을 내렸다. 사람들이 버스 뒤 한적한 데로 가서 백설기며 김밥을 묵고 있다. 낮밥을 안 묵었능갑다. 가방에서 오징어 꺼내고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잎술(잎새주) 풀었다. 희망스타 기사를 딴 사람으로 바꾸라고 허고는 권오산 동지한테 잔을 건넸다. 박고형준 동지를 비롯해서 야닐곱 사람들이 잎술을 비웠다. 기분 허벌나게 좋~다!
차에 올랐다. 서로 인사를 헌다. 그런디 젊디젊은 푸르싱싱헌 청춘들이 있다. 누군가 한빛중학교 학생들이란다.
“한빛중학교는 없는디?” “아, 한빛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한빛고 2학년들이란다. 근디 무려 열 사람이나 타고 있다. 새삼 둘째 놈이 미워질라고 헌다. 낯익은 얼굴도 있다. 암매도 진도민협 의장 조성옥 동지 둘째딸 맹이다.
“혹시 조은채씨?” “예, 맞아요.”
“그래? 와, 이쁘다. 나 원석이 아빠여.” “아, 그러세요?”
“언니 은별이도 한빛 나왔지?” “예~.”
6시 5분. 부산 나들목을 통과허는디 짭새들이 검문을 헌답시고 차를 가상에 대라고 헌다. 대지 말고 걍(그냥) 밀고 가불자고 했다. 근디 운전사가 차를 한 쪽으로 대자 견찰놈들이 어디 가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사람들이 열 받아서 항의헌다. 그 통에 견찰들이 차고를 열어보더니 한참 만에 가라고 헌다. 6시 14분에 출발헌다. 쥐새끼 충견들한테 육두문자를 날렸다.
“이 씨팔놈들, 아나 엿 묵어라! 이맹배기 똘마니새끼들!”
6시 30분. 무슨 굴길(터널) 앞에서 또 막는다. 이번에는 기사 양반도 호락호락허들 않는다. 질 가상으로 빼라고 허는 견찰의 협박에도 끝끝내 안 빼고 길 한가운데서 버틴다. 그러고 기사양반이 견찰들한테 소리친다.
“당신들이 90만원 줄라고? 왜, 영업 방해 하냐고?!”
6시 40분. 질 한가운데 서있어서 지기들도 부담시뢌는지 차를 통과시킨다.
7시 부산역 광장에 도착했다. 지하도에서 조희주, 이을재, 박범성 동지들을 만났다. 곧바로 행진을 헌다. 7시 39분, 제주에서 봤던 무키무키만만수를 만났다. 무키무키는 목포 사람이고 만만수는 경기도 사람이란다. 뜻은 미처 못 물어봤다. 제주에서 키타를 치던 만만수씨는 뿔나발을 연신 불어싼다. 장구 치던 무키무키씨는 걍 빈골(손이나 몸에 아무 것도 들거나 걸치지 않은 상태)이다.
7시 45분, 롯데백화점 앞 광장을 지나 번화가로 접어드는디 낯익은 얼굴이 지나간다. 지난 8월, 교육혁명 전국대장정 때 만났던 청년이다.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멀리서 오셨습니다.”
아고라 깃발이 보인다. 새삼스럽다. 2008년 촛불을 주도했던 세력이 바로 아고라였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친다. 뿔나발(만만수씨들)이 장단을 맞춘다.
“조남호를~!” “구속하라~!!!!” “부부부~, 바바바앙~!”
“김. 진. 숙. 을~!” “살. 려. 내. 자~!!” “조. 남. 호. 를~!” “처. 벌. 하. 라~!!”
8시 5분. 네거리다. 광복로, 중구로 네거리란 푯말이 있다. 나중에 알았는디 여그가 피파 네거리란다. 우리 행렬 뒤로 지나가던 여성 한 분이, “희망버스 아이가?”헌다. 더는 행진을 안 허고 집회를 헌다. 네거리 한 쪽에 방송차가 서고 그 욱에 한 사람이 올라가서 선동을 헌다. 그것도 잠시, 12분께 경찰이 밀려들어온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친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15분께, 견찰이 밀려난다. 희망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다비치안경’이 마지막 저지선이다. 평소 허든 대로 짭새들허고 희망이들 사이를 오감시로 동정을 살핀디 한 쪽이 소란스럽다. 가봉게 짭새들이 한 사람을 연행허고 있다. 그 젙에 한 여성이 울먹임시로 왜 잡아가냐고 항의헌다. 그런 항의에도 까딱 않고 견찰들은 닭장차로 그를 끌고 간다. 사진을 찍었다.
8시 25분, 짭새들이 또 밀린다. 그런디 그 과정에서 한진노동자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연행당헌다. 나는 이럴 때 어치고 해야허냐? 참말로 쪽팔린다. 악이라도 써야헐 것인디 찍소리도 못허고 사진기만 눌러댔다. 한진노동자를 삼킨 차는 72무 2006이었고 그 차 배통아지에는 가증시론 글그림이 나를 조롱허고 있었다.
8시 35분, 막고있던 견찰들이 질을 터준다. 박고형준 동지가 광주희망 깃발을 들고 나타난다. 반갑기도 허고 안심도 되야서 행길에 주저 앙겄다. 바로 앞에서는 전견들허고 대치허고 있고 뒤에서는 공연을 헌다. 견찰놈들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을 지껄인다.
“여러분들은 지금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안전하게 해산하십시오. 여러분의 집회로 부산 시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선진 집회문화를 보여주십시오. 지금 즉시 안전한 인도로 해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뭐시라고? 선진 집회문화?’
8시 53분, 방송차가 있는 네거리(Piff)로 올라갔다. 전교조울산지부 깃발이 펄럭인다. 반갑다. 그리로 갔다. 지난 여름, 부산서부터 서울까지 동부쪽 도보대장정을 했던 울산지부 신윤철 동지랑 일제고사로 해직당했던 조용식(?) 동지를 비롯해서 여남은 사람들이 앙거있다. 그 분들허고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또 여그저그 어정거리고 돌아댕겼다. 백기완 선생이 말씀을 허시다가 노래를 부르신단다. 섬집아기다. 노래가 끝나자 희망이들이 환호헌다.
9시 20분, 뜻하지 않게 합창단 후배 김경원 선생을 만났다. 지난 7월 서울교사대회 때도 만났던 이다. 반갑다. 자존심 상해헐지도 모르는 물음을 던졌다.
“누가 꼬셨어, 가자고?” “꼬시기는요? 제가 왔어요, 선배.” “하하하하, 미안, 미안.”
갈옷을 입은 사람들이 방송차 젙으로 다가온다. 제주에서 날아온 평화지킴이들이다. 민속보존회장 이영자 아짐을 비롯해서 지난 평화강정문화제 때 사회를 봤던 이국적 모습의 여성도 보인다. 이영자 아짐이 구럼비 바우가 깨지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미어져내렸다고 허고는 민요를 부른다.
“이 바당 저 바당 강정 바당 우리 바당 갱~개개갱 갱~개개갱 갱~개개개개 갱~개개갱
물러나라 물러나라 해군기지 물러나라 갱~개개갱 갱~개개갱 갱~개개개개 갱~개개갱
이 바당 저 바당 구럼~비도~ 우리 바당 갱~개개갱 갱~개개갱 갱~개개개개 갱~개개갱..”
이어 ‘늬영 나영(너냐 나냐)’을 희망이들허고 항꾸내 부르잔다.
“늬영 나~~영 두리둥실 좋아서 낮이 밤이냐 밤이 낮이냐 참사랑이로~구나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단다....”
노래가 끝나자 임꺽정 같이 생긴 분이 써온 글을 읽는다. 근디 중간중간에 글씨가 안 보인다고 젙에 서있는 아낙한테 자주 묻는다. 그 때마다 희망이들이 “와~!”하고 웃는다. 김진숙 동지가 276일째 하늘감옥에 갇혀서 싸우고 있는디도 비정규직이 판치는 이 암울한 사회를 깨쳐내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 강정평화비행기를 타고 이곳 부산에 날아왔다고 헌다.
“이 모든 모순은 미국과 자본의 침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FTA를 막기위해, 군사복합체의 이익을 위한 분단과 군사주의, 분단이데올로기를 분쇄할 각오로 강정에 평화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와아아아~~!!!!”
강정의 평화지킴이들은 한진의 희망과 항꾸내 끝까지 투쟁허겄단다. 강정마을 식으로 구호를 외친다. 삼채 장단에 가락을 실었다.
“해~군 기지!” “결~사 반대!!” “정~리해고!” “철~회하라!”
연세대 학생이 소리대를 잡는다. 연세대 노동자 학생이 시급 4천 몇 백원을 포도시 올려놨는디 학교허고 용역이 짜고 민주노조를 깨고 있는 작태에 대해 분노한다. 그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허다.
“연세대 돌아가서 열심히 싸워나갈 것입니다!” “와아아아~~!!!!”
다음으로 일본 오사카 노동자들이 긴 글판을 들고 나선다. 일본말로 써놯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겄다. 그들은 세 가지 주장을 헌다. 첫째, 일본에서 모든 원전은 철거하라! 둘째, 모든 미군기지는 철수하라! 셋째, 비정규직을 모두 철폐하라!
9시 55분, 담양 한빛고 학생들이 차 욱에 차 앞에 나래비로 선다. 그 중 한 학생이 야그를 헌다. 자신들을 당당한 동지로 대해도란다. 언젠가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대표가 토론회 때, 대통령을 ‘이명박씨’라고 부른 것이 생각난다. 토론자로 있던 전교조 조합원을 ‘교사동지’라고 헌 것도....
“저희들은 담양 한빛고 학생들입니다. 열 명이 왔는데요. 너무 뿌듯합니다. 그런데요 저희들한테 어린 나이에 기특하다고들 하시는데요. 저희들도 당당한 주체들입니다. 기특하단 말씀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도 한진노동자들과 연대투쟁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10시, 깔깔깔 공연을 시작헌다. 대치하고 있던 견찰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외국인들도 자주 눈에 띈다. 어떤 사내가 손을 내민다. 처음 보는 분인디 자기 소개를 헌다. 청주에서 온 김창룡 목사란다. 원래 방송차가 있던 데에서 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젊은이들이 노래를 헌다. 공연용 차인디 양쪽 배통아지를 들어올려서 꼭 새가 날개짓허는 꼴이다.
10시 29분, 공연패들을 놔두고 한진으로 출발허잔다. 강정사람들을 만났다. 반갑다고들 험선 활짝활짝 웃는다. 그분들이 원없이 웃는 시상이 언능 오믄 쓰겄다. 사람들이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친다. 길가의 시민들이 박수를 친다.
10시 47분, 다시 롯데백화점 광장에 멈춰섰다. 견찰들이 막아선 때문이다. 경고방송을 해싼다. 대치선 젙에 서서 얼쩡거리다 이 놈들 교신 내용을 들었다. 한 번 더 경고를 허믄 물대포를 쏘고 밀어붙인다는 내용이다.
10시 55분, 물대포를 쏘고나서 희망이들을 밀어붙이더니 연행작전을 편다. 장애우들이 온몸으로 물대포차를 막아선다. 여경들이 장애동지들을 감싸더니 한길 배깥으로 나가자고 사정을 헌디, 그 분들은 요지부동이다. 여경 몇이 움직여볼라고 해도 전동의자는 꿈쩍도 않는다. 암매도 브레이크를 볿아놔부렀능갑다.
살수차들이 뒤로 물러선다. 그렇게 한동안이나 광장을 점령허고 있던 장애우동지들이 인도로 물러나온다. 한 남성은 물을 너무 많이 맞아서 춥다고 헌다. 몸도 성허들 않는디.... 그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한 여성이 수건으로 그 분 몸을 닦고 네모난 천으로 몸을 덮어준다.
11시 8분. 롯데백화점 쪽에 한정없이 보락꼬 서있었다. 한길은 차들이 씽씽 지나가고 길 건너에 견찰비랑빡 그 너머 깃발들이 움직이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견찰들은 계속 경고방송만 되풀이헌다.
11시 24분. 오줌이 매랍다. 그라고 봉게 언제 싸고 안 쌌는지 모르겄다. 대충 쌀 데가 없는가 허고 뚤레뚤레 해봐도 으슥헌 데마다 백화점 직원인 듯헌 떡대들이 서있다. 지하도가 보인다. 그리로 들어갔다. 지하상가 한 쪽에 반가운 칫간이 나를 반긴다. 개완허니 갈기고는 반대 편(희망이들이 서 있을 법한 곳)을 어림잡아 올라갔다.
11시 34분. 희망대열에 합류했다. 견찰들이 곧바로 물러난다.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외침시로 광장으로 진출헌다. 근디 이것이 이놈들 꼼수였을 줄이야!
11시 40분.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폴짝춤을 추고 광장 한가운데서 놀다가 한 쪽으로 비끼는 순간 견찰들이 바로 또 밀어붙이고 연행작전을 편다. 반짝이던 진보신당 깃발이랑 기수가 견찰들한테 끌려온다. 아, 열 받는다.
11시 45분.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이 인도로 올라가라고 헌다. 안 올라가믄 바로 연행헌다고 협박헌다. 나도 잡아가라고 악을 쓸라다가 참았다, 비굴허게. 그러고는 인도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디 진보신당 빤짝이 깃발이 보인다. ‘움마? 아까 분명히 잽혀갔는디?’해서 물었다. 깃발이 두 개가 왔단다. 그럼시로 겁나게 애닳아 헌다.
지난 10월 1일, 제주 오감선 봤던 스마일님이, “여기까지 오셨어요?” 내 손을 잡고는 좌우로 흔들어 싼다. 한진중공업 주방장이 아고라 깃발을 들고는 피파 광장으로 가자고 헌다. 한진 동지 한 분이 더 따라 붙는다. 이 거리 저 거리 지나는디 외국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국제영화제 땜신지도 모르겄다.
12시. 피파 네거리다. 원래 부산역에서 행진해 와 집회를 했던 데다. 광주희망깃발이 보인다. 그리 가서 그들 젙에 앙겄다. 한빛고 아그덜이 피곤헝가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도 있고옹송거리고 앙거들 있다. 한 여성이 나와서 소리대를 잡더니 연행 장면을 떠올림시로 분통을 터뜨린다. 한 사람을 견찰들 여럿이서 운동화를 벗기더니 양말도 벗기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쓰러져 거품을 물고 있는디 견찰들은 119 부를 생각도 안 허드란다. 왜 응급차를 부르지 않냐고 거세게 항의를 허자 그제사 부르고 한참만에 온 응급차에 실려가는 사람을 끝까지 채증을 허드란다. 망헐 놈의 종자들....
그 뒤로 ‘대학생 다함께’한 사람이 나와 투쟁을 외치고 개인 참가자 한 사람이 나와서 다음에는 꼭 ‘개인 참가자’ 깃발을 들겠노라고 헌다.
사회자가 자유발언자나 공연자를 나오라고 헌디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럴까 저럴까 허다가 젙에 있는 고등학생 동지들한테, "내가 한번 해보까?”허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나가기가 그래서 가게를 찾아갔다. 키다리 맥주 한 깡통 사서 홀짝임시로 짱구를 굴렸다. 일단 산토끼 내놓고 같이 부르고 노동자뱃노래 부르기로 맘 묵었다. 사회자한테 가서 말했더니 ‘가야하네’ 노래 다음에 해도라고 헌다.
차례가 되야서 발악을 했다. 산토끼를 부르고 노동자 뱃노래를 불렀다.
“어기야 디여~차 어기야 디여~ 어기~여차 노동해방 쟁취하세~~~~”
무키무키씨가 장구를 들고 오더니 장단을 쳐준다. 뱃노래를 부름시로 이 사람 저 사람 입에다 소리대를 갖다댔다. 재기발랄한 무키무키씨한테도....
소리대를 놓고 광주희망 자리로 가는디 순천 이규학 동지가 와서 나를 잡아끈다. 아까 우리 앞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도 한 잔 허고 가란다. 어허, 이런. 꼭 이라고 나서야 찾아주니, 원!
순천희망이들이 있는 데서 술 묵고 있는디 제주도에 같이 갔던 한진 해고 동지 한 분이 찾아온다. 당신들이 있는 데로 가자고 해서 일어설라고 헌디 순천 사람들이 잡는다. 허는 수 없이 두어 잔 걸치고 일어서서 그 동지가 간 쪽으로 갔다. 근디 그 분이 샌드위치를 맹글어서 가져온다. ‘순천 쪽은 묵을 것이 많응게....’허고는 낼름 받아서 한빛고 학생 동지들한테 건넸다. 고맙다고 험시로 맛나게 묵어싼다. 고맙고 오지다.
3시 17분. 무지개 깃발이 보인다. 아무 이름도 없다. 근디 깃발 아래 주장들이 씌여있다. 그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헝게 마다고 헌다.
3시 20분. 순천식구들허고 또 만났다. 후배 김경원 선생이랑 술잔 나누고 있는디 양쪽에서 소리통이 울린다. 한 쪽은 공연을 허고 또 한쪽은 쥐떼 정권을 성토허고 있다. 내 귀를 어디에?
4시 무렵. 광주희망깃발 아래 기어들었다. 몸땡이를 뉘였다. 아, 편허다. 박고형준 동지였는가 누구였는가는 모르겄는디 내 몸땡이에다 침낭을 덮어준다. 따땃허다.
단기 4344년 10월 9일(해날)
6시 38분. 잠에서 깼다. 사람들이 벌써부터 일어나 아스팔트 구들장들을 치우고 있다. 시장끼를 느낀 사람들은 벌써부터 아침밥을 묵고 있다. 광주희망이들이 버스를 타고 간단다. ‘벌써 가지는 않을 틴디?’험서 따라나갔다, 비몽사몽간에. 그런디 짭새들이 희망이들의 노숙터로 몰려간다. 뭔 일 벌어질랑갑다. 광주 식구들 따라가다가 전견들을 뒤쫓았다.
7시. 못 돼 묵은 견찰놈들이 잠도 없는가 새복 댓바람부터 끼대와갂고 시민들을 밀어붙인다. 밥 묵을 때는 개도 안 건드는 법이거늘! 허기사 이 놈들한테 인간이길 기대헌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여그저그서 격허게 저항해 보제만 피파 네거리는 삽시간에 저 놈들 차지가 되야부렀다.
하릴없이 아까 버스 탈라고 지달린 데로 갔다. 꿩 궈묵은 자리다. 박고형준 동지한테 전화를 했다. 8번 버스를 타고 오란다. 한진 앞으로 간다는 말이었다. ‘그러믄 그렇제.’
봉래 네거리께에서 내렸다. 순천식구들이랑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근디 견찰놈들이 미리 진을 치고 있다.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갔다.
7시 40분. 길을 되짚어오는 희망이들이 있다. 더는 못 간단다. 골목골목 다 깔렸단다. 소금꽃동지가 계실 한진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허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ㅠ..
8시, 다시 봉래 네거리. 순천식구들을 만났다. 9시에 부산역에서 다시 모인단다. 버스 타고 가자는 사람들도 있었는디 걍 걸어가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순천식구들이랑 광주식구들이랑 항꾸내 걸었다.
9시 정각. 부산역 광장에 도착했다. 손상용 동지 말이 이주탁 동지가 어젯밤에 짭새들한테 끌려갔단다. ‘아히고, 부끄럽소.’
이러구러 시간이 간다. 9시 30분에 안내방송을 헌다.아침밥 맛나게 묵고 10시에 마무리 집회를 헌단다. 부산역 출입구 쪽이 시끄럽다. 한 시민이 견찰 지휘관 놈허고 실갱이를 벌이고 있다. 어젯밤에 왜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어서 쏴댔냐고 항의를 헌다. 견찰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간이 쫄따구들한테 채증해라고 헌다. 그러자 그 시민, “해라, 해! 많이 해! 그라고 우애 난 안 잡아가는데? 백기완 선생은 잡아가고! 나도 잡아가라, 마!”헌다.
1,000여 명 모여든 것 같다. 한빛고 동지들허고 광주 사람들허고 모닥모닥 앙거있는디 누군가 나한테 인사를 허고 지나간다. 도통 모르겄다. 내가, “나는 인사를 주고 받아도 누군지 몰라.”허자, 주위에 앙거있던 사람들, “와하하하..”허고 웃는다.
충북지부 산수유 동지가 다가와 인사를 헌다.
“저는 한번씩 오면 살이 쪽쪽 빠져유~.” “계속 오셔야겄는디요? 허허허허....”
10시에 한 사내가 소리대를 잡고 말을 헌다. 사람글씨를 맹글잔다, CT(Control Tower) 85!
"우리는 85번째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1,500명 가량으로 사람들이 불었다. 사람들이 글자를 거자(거의) 맹글자 우아래 까망 옷을 입고 까망멀크락에 푸른 물을 옅게 들인 여성이 사회를 본다. 이 집회는 5차 마무리이자 또 다른 시작이라고 헌다.
10시 15분에 집회를 시작헌다. 충북에서 온 한 사람이 끝까지 투쟁허자고 헌다. 이어 대전지부 김영주 동지가 소리대를 잡는다. 동래경찰서로 면회투쟁을 갔는디 경찰서장이란 놈이 안내는커녕, “다 연행해버려!”하고 공갈협박했다고 분노헌다. 그러고 김진숙 동지가 살아서 내려오는 그 날까지 끝까지 연대투쟁허잔다.
이어 한진중 스머프(왜 해고동지들을 스머프라고 부른지는 아직도 모름) 한 분을 소개헌다.
“.... 1차부터 5차 희망버스는 절망의 순간,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 죽을 때까지 그 은혜 잊지 않고 보답하겠습니다!”
그 뒤로 광주저팔계란 분이 더 많이 분노허고 더 많이 외쳐야 한다고 제안허고, 무지개 버스 타고 온 사람이 스머프노래를 부르고, 기획단에서는 어젯밤 59명이 연행당했다고 발표헌다. 우리 이주탁 동지도 그 중 한 분이리라.
김진숙 동지 목소리라도 들어볼라고 했는디 그것도 여의치 않응갑다. 포기허고 10시 50분 집회를 끝냈다. 구호를 외친다.
“우리가 희망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우리가 희망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정, 리, 해, 고, 철회, 투쟁, 결사, 투쟁~!!”
분수대 앞 계단에 앙거서 광주희망이들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한길로 나선다. 광주희망버스 있는 데로.... 한진해고자동지들허고 그 가족들이 두 줄로 나래비로 서서 우리들을 배웅헌다. 엊저녁 공연허기 직전에 나한테 크레인사진엽서 팔았던 여성동지는 끝내 눈물 바람을 헌다. 마음이 짠허다. 아까 죽을 때까지 은혜 잊지 않겄다고 말씀허시던 동지가 나한테 손을 내민다.
부산역을 뒤로 허고 버스가 움직인다. 박고형준 동지가 동래경찰서에 가보자고 헌다. 이구동성으로 가야헌단다.
11시 40분. 동래경찰서에 이르렀다. 우리 몇 사람이 경찰서 정문으로 들어강게 짭새 두 명이 나와서 기겁을 허고 막는다. 한참 실갱이를 허고 있는디 안에서 여럿이 몰려나온다. 상황 보는 이가 와서는 네 사람씩 한 모둠으로 면회를 허게 허겄단다.
칫간에 갔다온 새에 상황이 달라졌다. 경찰 아그덜이 정문 안 쪽에 나래비로 겹겹이 서있고 대장인 듯헌 전견옷 입은 놈이 손소리통(핸드마이크)를 매고 고압적으로 지껄여싼다. 광주 여성 한 분이 그놈들한테 호통을 친다. 나는 아까 약속헌 대로 허믄 되지 않냐고 했다. 한참을 지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출입증을 내준다. 나허고 나이 좀 드신 분, 광주저팔계, 김우경 동지 넷이 올라갔다. 면회실에서 지달리고 있는디 배종렬 선생도 오신다. 간수(?) 말마따나 10분 정도 지달링게 이주탁 동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가심이 먹먹허다. 배종렬 선생부터 한 마디썩 건넨다. 나도 마지막으로 한 마디 했다.
“미안허요, 이주탁 동지. 투쟁!”
<땡>
첫댓글 보성소리대회땜에 못가봤어요.....조남호 개객끼....다음에는 솟터가 다 갑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