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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밤
주 요 섭
어떤 추운 밤이었다. 좁쌀알 같은 싸라기눈이 부슬부슬 지면을 덮고 살을 베는 듯한 추운 바람이 눈보라를 지어 모든 지면을 눈으로 평면을 만들어놓았다. 밤은 깊었다. 거리에는 행인 하나 없고 집집마다는 평화스러운 단잠에 호흡 소리가 끊임없이 바람 소리와 화(和)했다. 사면 광야에 싸인 이 조그만 동리가 다 고즈넉한 현세를 떠난 꿈의 나라가 되었다. 좇아서 집집마다에 시커먼 창들이 지독히 부는 바람에 애원하는 듯한 무슨 소리를 들으며 물끄러미 눈 내리는 하늘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방 안에서 단꿈을 꾸는 사람들을 이 한기 (寒氣)에서 보호하고 있는 듯이.
모든 창은 검었다. 다만 동리 한끝 조그만 다 무너져가는 오막살이의 창이 다 죽은 가운데 혼자 살아 있는 것같이 희미한 불빛을 어두운 공기에 내보내고 있었다. 그 집은 한 번만 보아도 빈한한 집이었다. 삼 년 전에 이고는 아직 이지 못한 초가 이엉¹이 흉하게 썩어졌고 이끼 야(也) 자로 발랐던 얇은 담이 비와 눈에 부대끼어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맹렬한 바람이 사정없이 썩어진 이엉을 날리고 집이 무너질 듯이 독한 목소리로 둘러쌌다.
이 천병만마에게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있는 소옥² 속에 금년 십삼 세의 어린 병서가 졸린 눈으로 괴롭게 숨을 쉬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입에 웃음을 띠고 평화스럽게 잠든 그의 누이동생인 네 살 난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돌려 여기저기 뚫려진 구멍으로 들어와 쌓인 흰 눈을 보았다. 그리고 오슬오슬 떨며 눈물이 핑 돌았다.
흰 누더기 하나로 몸을 겨우 가리고 누운 병모(病母)가 다시 비명을 발하며 돌아누웠다. 괴로운 숨소리가 방 안에 분위기를 더하였다. 병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비어 있는 그의 부친의 이불을 얼른 들어다가 어머니를 덮어주었다. 어머니는 싫다는 듯이 두서너 번 손을 들었으나 가만있고 말았다. 어머니는 눈을 뜨지도 않고 그저 속으로 알아듣지 못하게 중얼중얼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병서는 꼭꼭 이불로 어머니 몸을 덮고 다시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의 어린 눈에서는 공포와 애련(愛憐)의 정이 넘쳐 뜨거운 눈물이 거침없이 흘렀다. 그리고 눈물이 뺨 위에서 얼었다.
바람은 여전히 그의 독특한 이상한 소리를 발하며 병서의 집 담 뚫려진 구멍으로 들이쳐 분다. 차디찬 눈이 방 안에 흩어졌다.
병서는 단 일 분간의 수면에서 깨었다. 그는 거의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아직도…….” 하고 원망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추움에 발발 떨었다. ‘밤도 몹시도 길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서 아침이 되었으면 했다. 어머니의 호흡 소리는 점점 급하여졌다.
하늘은 여전히 컴컴하였다. 바람은 역시 춥고 매웠다.
열흘 전부터 병석에 누운 어머니는 몹시도 피곤하였다. 죽 한 번도 변변히 쑤어 드리지 못하고 약 한 봉지도 사다 드리지를 못한 어린 병서의 마음은 터지는 듯하다.
병인(病人)은 벌써 자기의 최종기를 깨달은 듯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병서를 불렀다. 또 아기를 불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모깃소리같이 약하고도 슬픔을 띤 신음 소리였다.
모친은 견딜 수 없는 듯이 얼굴을 찡기며 힘없는 팔로 잠든 아기를 안았다. 희미한 아주까리기름 등에 몽롱히 비추이는 그의 찡긴 얼굴에는 그의 마음속에 타는 듯한 고민을 똑똑히 드러냈다. 그는 ‘휘―’ 하고 한숨을 쉬고는 다시 병서의 손을 맥없이 쥐었다. 그는 벌써 자기의 최후를 각오한 듯이 그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무엇인지 알지 못할 어떤 비성(悲聲)을 겨우 발했다.
병서는 그만 견딜 수 없이 되었다. 그는 어머니를 불렀다. 자꾸자꾸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입은 영원히 다시 열지 아니하려는 듯이 꼭 다물었다. 병서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리고 제 얼굴로 어머니의 얼굴을 문질렀다. 그는 쉬지 않고 어머니를 불렀다. 휘― 하는 한숨 소리와 같이 어머니는 눈을 반쯤 떴다. 그리고 병서를 바라보는 그 눈은 참으로 사인(死人)의 눈 그것과 같았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병서를 안았다. 그러나 그 손은 조금도 힘이 없었다. 그는 무슨 말을 좀 해보려고 애쓰는 것이 그의 부들부들 떠는 입술과 열정에 끓는, 그러고도 힘없는 그 반쯤 뜬 눈 위에 똑똑히 드러났다. 그는 한참 만에 겨우
“병서야!” 하고 말을 꺼냈다. 말을 더 이을 힘이 없는 듯이 어머니는 다시 괴롭게 숨을 쉬다가
“애기야!’ 하고 다시 입술을 떨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최후의 힘으로 병서를 껴안았다. 그리고 잘 들리지도 않는 슬픈 곡조로
“병서야― 너…….” 어머니의 말은 중도에 끊어지고 말았다. 병서를 안았던 그의 팔은 맥없이 풀리었다.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그의 고통을 호소하는 듯이 부르짖었다. 병서는 어찌할 줄을 몰라 어머니 가슴을 짚고 부르르 떨기만 했다. 그의 놀라서 크게 뜬 눈에는 눈물이 말랐다. 그의 기막힘과 슬픈 눈물로써 나타낼 정도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의 슬픈 눈물로써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눈물 이상의 극도의 슬픈 것이었다. 그의 크게 뜬 눈이나 벌린 입이나 부르르 떠
는 손들이 그의 이 극도의 놀람과 슬픔을 넉넉히 드러냈다.
몹시 부는 극한(極寒)의 바람에 등불이 거의 꺼질 듯 꺼질 듯하며 펄럭거리었다. 쫓아서 여름내 파리똥으로 새카맣게 된 그의 천장에 불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소리 없이 움직이었다.
어머니의 머리맡에 놓인 요강 속에 어머니의 게워놓은 밥찌끼가 딴딴하게 얼어서 혹은 빛나게 혹은 꺼멓게 보였다. 윗간 모퉁이에 하얗게 쌓였던 눈이 어떤 바람을 받아 하얗게 성에가 쓴 습한 담으로 기어오르다가는 다시 내려지기도 했다.
병모는 손을 내저었다. 그 손을 내젓는 것이 삼십 년이라는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을 그동안에 그가 너무도 학대를 받고 몹시도 버림을 받던 이 무정한 세상을 하직 하느라고 작별의 인사를 하는 것같이 보였다. 마는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괴로움을 받고 그렇게도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그래도 이 세상과는 무슨 인연이 있는지 참으로 떠나기가 싫어서 그
의 눈앞에 와 섰는 사(死)의 신을 막느라고 내젓는 것같이도 보였다. 적어도 이것이 무정신(無精神) 상태에 있는 병인은 이 두 가지 뜻을 다 겸하여 그의 손을 내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너무도 힘이 없었다. 그는 다시 팔을 늘어뜨리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 만에 병인은 최후의 힘을 모아 병서를 껴안았다. 그리고 신음의 소리를 연발하며 힘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그를 들여다보았다. 그 눈은 마치 병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불쌍한 병서야! 내가 죽으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또 애기는! 아아! 너는 참으로 불쌍한 아이다. 그러나 병서야, 결코 너의 아버지는 원망치 마라. 그리고 또 이 추운 겨울에 너를 내버리고 혼자 가는 이 어미를 야속되게 생각지 마라. 죽음이라는 것은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니라. 너는 지금 어렸으니깐 잘 모르겠지만 너도 이제 크면 알게 되리라…… 참으로 이 세상이란 것은 괴로우니라. 참으로 나는 그새 눈물도 많이 흘리고 기막히는 일도 많이 당했다. 너도 그사이에 여간 당하기는 했지만…… 아아! 병서야, 이 추운 겨울에 너 혼자 어린 아기를 데리고 어떻게 지낼 터이냐. 아아! 너의 아버지는 너무도 무심하다. 그러나…… 결코 조금도 원망치는 말아라…… 아니 나는 죽지 않는다. 결단코 너를 두고 아기를 두고 어떻게 죽겠니…….’
병서는 무슨 말로 어머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될 지를 몰라 그저 가만히 정열 있는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병서는 저를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눈이 차차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를 안은 쇠약한 팔이 차차 강하여지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모친의 머리가 맥없이 늘어졌다. 그리고 병서를 안은 팔은 영원히 병서를 놓지 않으려는 듯이 꼭 쥐었었다.
그의 머리는 베개 아래로 맥없이 늘어졌다. 거의 다 빠진 검은 머리털이 그의 이마에 되는대로 흩어지고 뺨 위를 지나 자리 위에 엉키어 있었다.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띤 그의 입술은 다시 떨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고요하게 감은 작은 눈이 그의 슬픔을 드러내는 듯하였다. 그가 며칠을 끌어오던 그 괴로운 숨소리가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짜내는 듯하던 슬픈 신음이 스러지고 말았다.
병서는 무서움에 떨었다. 그리고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한없는 슬픔에 그의 가슴이 쪼개질 듯했다. 그는 눈물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마는 어머니는 다시 대답이 없었다.
그는 미친 듯이 어머니 얼굴에 수없이 입 맞추고 울며 쓰러졌다. 그의 얼굴은 푸르고 희었고 그의 입술은 몹시도 떨렸다.
몹쓸 바람은 여전히 나는 모른다 하는 듯이 요란히 문창(門窓)은 울리고 방 안으로 차고 흰 눈을 들이밀었다. 가늘고 흐린 등불이 조상³하는 듯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따라서 모든 불 그림자들이 역시 우줄우줄 슬픔을 띠고 조상을 하는 듯하였다.
한참 만에 병서는 얼굴을 들었다. 찬 바람이 그의 뺨을 스칠 때 그는 어떤 예민한 감각이 그를 떨게 함을 깨달았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그의 최후의 일 호흡을 끌던 그 순간에 띠었던 비웃는 듯한 미소는 여전히 그의 입술에 떠돌았다. 그 꼭 다문 입술은 마치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그 누구인가’ 하는 원망하는 듯한 표정이 었다.
“아아! 어머니!” 하고 그는 외쳤다. “어머니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그것은…… 그것은…… 아아! 아버;지…… 아니…… 아니” 하고 그는 마치 무슨 수수께끼나 풀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이 어머니의 찬 얼굴이 묻고 있는 그 물음에 대답을 구해내려고 무한히 애썼다. 어떤 생각이 맹렬히 그의 가슴을 충동시켰다.
“아아! 어머니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하고 그는 외쳤다. 그리고 그는 견딜 수 없는 마음과 증오의 염 (念)을 감(感)했다.
“아아! 그것이다. 그것이다!”
하고 마치 무슨 물건이 보이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그는 다시 엎디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사흘 전 지낸 일이 똑똑히도 추상⁴이 되던 것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사흘 전날 밤에 그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던 모양이 너무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얼굴과 의복에 흙칠을 하였었다. 그리고 그의 걸음은 완전한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그 입에서는 쓸데없는 잔소리와 입에 담지 못할 더러운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의 주머니에는 어머니에게 죽을 쑤어 드려야 할 돈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도 일 원 돈이나 빚을 졌다고 자꾸 병서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였다. 마침내 그는 비틀비틀하는 걸음으로 어머니의 병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때 그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난 어머니를 때렸다……
병서는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정신없이 외쳤다. “아아 그것…… 그것…… 그것…… 그것이 우리 어머니를……”
그는 일종의 한기가 그의 몸에 핑 돎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미친 듯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정신없이 토방(土房)에 세워두었던 지겟작대기를 들고 눈 위로 달음박질하여 갔다. 그의 몸은 화끈화끈 달고 그의 눈에는 불꽃이 날렸다.
그는 마침내 어떤 집 앞에 우뚝 섰다. 별로 좋지도 못한 그 집 창으로는 희미한 불빛이 흥분한 어린 병서의 얼굴에 비치었다.
그 집 주위에는 견딜 수 없는 악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전력을 다해 방문을 열었다. 쉽게 열렸다. 화끈화끈 더운 김이 그의 언 코를 막히게 했다. 그는 핏빛이 된 눈으로 얼른 방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단 일 초 동안에.
방 안에는 불을 켜놓은 채 삼사 인이 되는대로 누워 있었다.
농부들의 무곡조한, 집을 울리는 코 고는 소리와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합한 괴악(怪惡)한⁵ 냄새가 그를 불쾌케만 할 뿐 아니라 정신을 아득하게 하였다. 그의 이는 박박 갈리고 그의 몽둥이를 든 손은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소름이 오싹하며 온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그는 왼 윗간에 배를 내놓고 누워 있는 그의 아버지를 보았다. 그리고 일종 원망스럽고도 경멸스러운 안광(眼光)으로 그를 일 초간 쏘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곧 살이 피둥피둥한 이 집주인 곧 술장수인 노인을 보았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증오의 염이 크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는 다시 그의 부친을 보았다. 아무 근심 걱정 없는 듯이 단꿈을 꾸고 있는 그의 부친이 슬프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칵 들어가서 쓸어안고 실컷 울고 또한 어머니의 임종이 어떠하였던 것을 일일이 말도 하고 싶었다. 만일 그가 그 일을 실행하기에는 그의 마음은 너무 급급하였다. 그는 뛰어들어가 집주인 영감을 실컷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그 방 아랫목 머리맡에 놓인 술단지를 볼 때 그의 전 시력과 전 정신 전 능력은 다 그리로 모이고 말았다. 뜨거운 피가 쫙 머리로 모였다. 그는 바삐 뛰어들어가,
“이 미운 놈아” 하고 몽둥이를 들었다. 일격지하에 그 몽둥이는 맹렬한 소리와 함께 그 술단지를 깨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솨르르 하는 술 흐르는 소리와 이 의외의 음성에 잠을 깬 주인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발이 액체에 젖은 것을 감했다. 그러고는 제 의복 바람에 겨우 팔락거리던 등불이 죽어버린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뛰어나왔다.
그는 정신없이 아까 왔던 길을 도로 뛰어갔다. 그의 마음은 얼마만큼 보복을 행한 듯한 시원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자기 집 방문을 열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원한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는 좀더 원수를 갚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술집들을 다 저주하고 싶었다. 그는 방문을 열어놓은 채 펄썩 주저앉아서 팔을 뽐내고 제 목소리를 다해서 고함쳤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모든 술집들을 저주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곧 자기 아버지부터라도 부덕한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어떤 위대한 인물이 생겨서 이 천하의 모든 술집을 다 헐어버리고 오늘 제가 소부분으로 실행한 것같이 이 세상 모든 술독들을 모두 다 때려부수어 없이할 수가 있게 되기만 위하여 기도하였다. 열심으로 성심으로 그것을 바랐다. 그리고 이제 이내 그런 인물이 날 것을 믿고 싶었고 또 그렇게 믿었다.
추운 바람에 귀성(鬼聲) 같은 소리는 자기의 이 열심 있는 희망의 기도를 하늘 위의 하느님 앞까지 전해주는 사자(使者)의 소리 같이 그의 귀에는 들리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그 일의 실행이 목전에 임박한 것 같은 쾌감을 깨달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내리는 흰 눈은 곧 소원을 이루어주리라는 하느님의 계시같이 생각되었다.
어머니의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포함한 듯한 얼굴의 표정이 그로 하여금 더욱더욱 슬픔을 감케 했다. 잠깐 동안 가만히 앉아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그는 다시 새 슬픔에 새 눈물을 흘리며 제 힘껏 소리쳤다.
“아아. 서주를 받을 너, 너는 만세전(萬歲前)⁶으로부터 기만(幾萬)의 생명을 살해했고, 현금(現今)에도 또한 수없는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구나. 또한 이 뒤로도 너는 너의 독한 행실을 꺼림 없이 발휘하겠구나. 저주를 받아라. 이 간악한 자여. 우리 인생에게 모든 불안과 공포와 불행과 죄악과 해독을 끼치는 너 악독한 자여, 영원한 저주를 받아라” 하고 부르르 떨며 술을 저주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자를 가리켜 (물론 자기 부친까지) “불쌍한 자여!” 하였다.
이 모든 소리에 곤히 잠들었던 아기가 깨었다. 아기는 울 듯 울 듯 하다가 병서를 보고 방긋 웃었다. 병서는 말없이 쓴웃음을 웃으며 아기를 일으켜 안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체 위에 쓰러졌다. 몸이 오싹오싹하고 심한 졸음이 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에 어머니의 사(死)를 생각하고 슬피 울었다.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 볼 수가 없다 하는 생각이 그의 가슴을 몹시도 괴롭게 하고 슬프게 했다. 아기도 꼼짝도 아니하고 가만히 있었다. 새벽이 되어오는지 공기가 차차 더욱 차졌다.
끊임없이 내리던 싸라기눈도 어느새 뚝 그치고 살을 배는 듯한 찬 바람이 여전히 눈을 휩쓸며 조금이라도 구멍만 있는 데면 한 군데도 아니 남겨놓으려는 듯이 쏴쏴 불었다.
병서는 다시 얼굴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의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누구입니까’ 하는 그 표정도 보지 않았다. 한참 동안이나 술에 대한 증오의 염이 맹렬히 다시 그의 가슴에 끓었다. 그러다가 그 원한의 염은 집에는 불 땔 나무도 없고 밥 지을 쌀도 없이 저 혼자 나다니며 술을 마시는 그의 부친에게로 옮겼다. 그러다가는 또 그 원한은 술을 파는 이 서방에게로 갔다가는 다시 또 술이라는 물건 자체로 갔다가는 또다시 자기 부친에게로 갔다. 해서 어느 것이 과연 나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마침내 이렇게 생각했다. ‘술을 먹는 사람이나 술을 파는 사람이나 술 그 자체이나 다 한가지로 나쁜 것이라’고.
그러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오랫동안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조그만 집에 지붕이 벗겨지고 하늘문이 크게 열린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로부터 저의 어머니가 눈이 부신 찬란한 옷을 입고 날아 내려오는 자태를 보았다. 그는 황홀히 “어머니!” 하고 외쳤다. 어머니는 사랑스럽게 웃으면서 그와 그의 아기를 양수(兩手)에 안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말로 위로해주었다. 그는 이제는 춥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고 다만 따스하고 즐거웠다. 그는 그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거워할 수가 있었다.
이튿날 아침 밝은 해는 다시 열어놓은 그의 창문으로 들이비추었다. 찬 세상을 영원히 떠난 어머니의 표정은 역시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누구입니까’ 하는 어젯밤 표정 그것이었다.
어머니 옆에 쓰러진 아기의 뺨에는 밤새도록 운 눈물이 얼음이 되어 있었다. 그는 꼭 어떤 재미있는 꿈을 꾸는 얼굴 같았다. 어머니의 가슴 위에 쪼그리고 앉아 영원히 잠자는 그의 얼굴에는 ‘나는 행복이외다’ 하는 표정이 똑똑히 나타났다·…‥
-끝-
2016년 4월 1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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