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윔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이들 공동체로 인해서 대구주교좌성당에서 1980년도 세례를 받을수가 있었고
금융대란 이후에도 난곡동 달동네를 찾을수 있게 한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저에게 이들의 삶을 잠시 보여주신것입니다. 제가 이해되지도 못한 시기에
말입니다. 아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신앙의 신비라 여겨집니다
창설자신부님은 지난 남미에쿠아도로의 선교25년을 맞이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십니다
그안에서는 그분은 분명히 아나윔공동체에 대한 언급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헌장에서 들어있는 아나윔정신은 초기회원에 의해서 많이 언급이 되었지만
요즈음 회원은 저를 포함해서 이를 본적도 느낀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선교보고서에서 신부님은 수도자의 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1980년이 오기전에 대구 제일모직 공장에서 만난 수도자는 분명 아나윔정신으로
살아가는 수도자였고 그 수도원의 이름은 예수님의 작은자매들의 우애회였습니다
그들을 처음만날때에는 세례받기전이라서 수도자가 무엇인지도
알기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 공동체를 찾아가서 함께 미사를 드리기도 하였지요
그이후에 인터넷에서 그공동체의 자매가 이런 인터뷰를 합니다
지금 와서야 그들이 진정한 아나윔공동체이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구나 하는 마음을 받았습니다
인터뷰내용 일부를 올려봅니다
-1979년에 수도회 입회하고 사당동 산동네에서 5평짜리 집에 살면서 공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동네가 있는 줄도 몰랐고 공장에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제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좋은 동네이지만 당시 사당동 산동네에는 5평짜리 집 약 500여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루핑이라는 기름종이 집은 겨울에 방 안에 널어 놓은 빨래가 일주일 동안 얼어 있을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때 저희는 연탄을 아끼느라 불구멍을 꼭 막고 살았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자기네는
연탄난로를 때고 있으니 빨래가 잘 마른다고 자기네 방에 옷을 널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손님이 오실 때 그릇을 빌려 주거나 물을 길을 때 꼬마들이 등을 밀어 주기도 하는 등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희도 이웃 아주머니가 해산하셨을 때
시아버지 상을 당해 조문객이 오는 동안 저희 집에서 함께 지냈는데 그때 벌어진
우스운 일들이 가끔 생각나기도 합니다.
특히 폐결핵을 앓던 이웃 아주머니 수산나 씨가 기억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수산나 씨는 저희가 소개해서 요양소에 보내 드린 분입니다.
초등학생과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셋을 집에 두고 요양소에 가셨는데
그곳에서 간식이 나오면 잡수시지 못하고 보관해 놓으셨습니다.
아이들 몫과 저희들 몫을 따로 구분해서 모아 놓았다가 저희가 방문을 가면 내주셨습니다.
건강상 잡수셔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즘도 조금 시든 사과를 보면 사과가 비싸서 사 먹지 못하던 시절
수산나 씨가 주셨던 사과를 늘 떠올리게 됩니다.
그 후에 집이 철거되고 수산나 씨 아이들과 남편과 할머니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셨습니다.
저희가 찾아가면 어느새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장에서 일하던 큰딸이 항상 차비를 챙겨서
일부러 버스 타는 곳까지 따라오곤 했습니다. 나중에 둘째 딸은 결혼하면서 남편 될 사람도
동의했다고 치매로 사람을 못 알아보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이들이라고 할 만하지요. 가장 걱정이 되었던 아이들이
이렇게 자랑스럽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희생을 피부로 느끼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이들처럼 복음의 산 증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넝마를 걸친 하느님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화덕처럼
나의 이기주의를 천천히 태우시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이런 길로 들어설 힘이 없었을 것이다.
안개와 피곤을 가르며
하느님께서 새벽처럼 계시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목자들을 보내시는 중에
그분의 자비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결국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삶으로 전하기 위해 더듬거리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저희 수도회와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려는 많은 사람들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내게 마시게 해 주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나를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에는 내게 입혀 주었다. 병들었을 때에 나를 찾아왔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내게로 와 주었다”는 마태오복음서 25장에 나오는 말씀의 영향을 받아서
주님께 다가가듯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증언은 1979년에 입회하고 살은지 36년이 되셨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리 오래되지않았으며 지금도 그런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는 그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유있는 부자만이 할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이를 체험한 이들만 가능할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아나윔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난한 삶을 산다면 그들의 어려움을 느낄것이고
이들안에서 예수님의 삶을 만날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테오 5장 3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