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 해병대의 혹독한 실상, 미화없이 보여줘
전쟁에 대한 풍자… 3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상황에 의미 더해
미국에는 베트남 전쟁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일 것이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베트남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이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자유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세계 평화의 수호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우리에겐 든든한 우방으로서 한반도 평화 유지에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영화 ‘풀 메탈 자켓’은 미국의 베트남전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전쟁에 참전하는 여러 유형의 젊은 병사를 통해 전쟁의 실체와 아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동시에 국가와 전쟁이 젊은 군인에게 주문하는 용맹성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면에 주목한다.
베트남 전쟁 치르는 미 해병대 이야기
영화 전반부는 미 해병대 훈련소 이야기고, 후반부는 실제 베트남전 참전 이야기다. 전반 훈련소 이야기에선 미 해병대의 혹독한 훈련과정을 사실적으로 소개하며, 후반부에선 베트남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글 속에서의 전투 대신 북베트남군이 퇴각한 지역의 폐허를 수색, 전투하는 병사들 모습을 그린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인 1960년대, 조커(매슈 모딘)와 로렌스(빈센트 도노프리오), 카우보이(알리스 하워드) 등 미국 청년 3명이 해병대 신병 훈련소에 입소한다. 그들은 첫날부터 “인간쓰레기”라고 윽박지르는 훈련교관 하트만 상사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중 뚱보 별명을 가진 로렌스는 도중 자살하고, 조커는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스’ 종군기자로, 카우보이는 최전방에 배치된다. 이후 후방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조커가 명령을 받고 최전선을 취재하던 중 카우보이를 만난다. 이 훈련소 동기 둘은 함께 전투에 나선다.
영웅 대신 병사들의 현실적 갈등 보여줘
영화엔 ‘람보’ 같은 전쟁 영웅은 없다. 작전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적을 소탕하거나 고지를 탈환하는 등의 작전 대신 전장에 던져진 병사들의 사실적인 전투만을 보여준다. 북베트남군의 저격수에 무참히 당하는 미 해병대의 모습을 포함해 살벌한 전쟁의 실상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인물을 크게 부각하진 않지만 가장 눈에 띄는 병사가 두둑한 배짱을 지닌 주인공 조커다. 첫날 훈련교관에게 빈정거리다가 ‘조커’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는 전우애가 남다르다. 전반부에선 훈련교관에게 찍혀 왕따당하는 뚱보 로렌스를 도우며, 후반 전투 시엔 절친 카우보이가 북베트남 저격수에게 당하자 종군기자임에도 저격수를 찾아 나서는 공격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리곤 뜻밖에도 저격수가 어린 여자임에 망설이지만 오랜 갈등 끝에 사살한다.
이 장면을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데 이후 조커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행군하는 병사들과 함께 한목소리로 “M-I-C-K-E-Y M-O-U-S-E(미키 마우스)/공정하고 땀 흘리는 단합된 해병…”이란 노래를 부르며 전진해 간다.
“해병은 허락 없인 죽어서도 안 된다”
영화 전반부는 평범한 청년에서 무적의 미 해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해병대의 군기와 기질을 나타내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해병은 허락 없인 죽어서도 안 된다” “해병은 죽는다. 그게 해병의 목표다. 하지만 해병대는 영원하다. 고로 제군들도 영원하다” 등의 대사를 통해 미 해병대의 사기와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전쟁에서 여자와 아이들을 보는 잔혹한 시각도 보여주는데, 헬기를 타고 최전선으로 가는 도중 “어떻게 여자와 아이를 쏠 수 있죠?”라는 주인공 조커의 질문에 무용담을 자랑하는 한 베테랑 병사는 “쉽지, 그것들은 느리니까. 그게 전쟁 아닌가?”라고 답한다. 전쟁에서 가장 위험하게 노출된 대상이 여자와 아이들이라는 전쟁의 비극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으로 완성된 영화의 메시지
감독은 문제작 ‘시계태엽 오렌지’를 연출한 영국 출신의 스탠리 큐브릭이고 , 음악은 감독의 딸인 비비안 큐브릭이 맡았다. 영화엔 여러 노래가 나오는데 영화의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베트남전에 대한 풍자가 강하다. 병사의 합창 등 영화의 여러 장치가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의 남성성을 희화화하는 데 주로 쓰였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0여 년, 영화가 제작된 지 30년이 지난 2017년 지금 돌이켜 보면 이 풍자조차도 긍정적인 메시지로 읽힌다. 특히나 우리처럼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한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영화가 전쟁의 참상을 다루고 맹목성을 비판할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전쟁은 어리석은 짓이야’ 식의 풍자를 위한 풍자, 비판을 위한 무책임한 비판이어선 안 된다. 풍자조차도 당연히 전쟁을 막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모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