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께 치정세계의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1999년에 방영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MBC 드라마 《허준》에 배우 임현식이 유의태 밑에서 잔심부름하면서 의술과 처방전을 조금 얻어서 의원행세하고 싶어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혹시 아세요? 배우 임현식 씨는 유의태 약방의 감초 같은 인물인 '임오근'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극 중에서 임오근은 유의태 밑에서 오랜 세월 약방의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풍월과 처방전 몇 개월 어치를 가지고 속칭 '야매'로 의원 행세를 하거나 환자를 보려다 유의태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하는 등 극에 유쾌한 재미를 더했던 캐릭터입니다. 이후에는 허준의 충실한 조력자이자 동반자로 오래 곁을 지키게 됩니다. 작가가 되면 이런 다양한 인간 케릭터를 내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며 세상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걸 시인 이상은 수필 <비밀>에다 치정세계의 비밀이라고 아래와 같이 재미있게 표현 합니다. 치정이라는 말에 이끌려 이 글을 클맄하신 분들은 낚시 밥에 걸린 것입니다.^^ 그래도 제 낚시밥에 걸린 물고기는 두 번 다시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의 평론이나 기성 질서에 매몰되지 않고, 내면의 거울에 비친 진실을 고도의 압축으로 담아내겠다는 자기 다짐이 확실해져야 진짜 작가가 됩니다.
아래 작품은 지금부터 16년 전인 2010.06.21. 에 쓴 글입니다. 지금의 저는 이제 더 이상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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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못한 편지
(부제: 문학이 지향해야하는 가치와 그 보편성)
어제 무려 1시간 3분 46초나 핸드폰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짧은 듯 긴 시간은 예수께서 우물가 여인에게 “너희가 주는 물은 마시고 나서도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말씀을 떠 올리게 합니다. 독서의 기쁨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수필이 무엇인지 문학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갈증은 영적인 갈증인지라 진리를 만나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합니다. S씨의 평론을 읽어보라고 하셨을 때 저는 당시 수필을 궁구하고 있던 터라 평론가인 그가 “관조”의 뜻도 모른다고 한 것이고 선생님께서는 기성의 정통평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으니까 저의 “오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관조와 오만의 충돌입니다.
저는 참 문학이라면 삶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신변잡사를 소재로 쓰더라도 그 정신은 “한 여름의 냉수” 같은 시원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형상화이며 문학성이고 진리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이후>에서 “눈빛이 달라졌어요”를 읽지 않았다면 “감꽃”은 늙어가는 여인의 추억회상문 정도로 읽고 말았을 겁니다. 버림받은 아이가 지니고 있는 숨겨진 맑은 눈동자(마이크로의 세계)를 읽어 내는 분이라면 감꽃 피는 마을은 다른 의미로 부활(맥크로의 세계)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요. 작가는 모르고 썼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쓴 것은 아니지요. 마음 거울에 비친 그대로를 쓴 것이니 참이지요. 의식 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모스크바 여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자기 여행체험을 그냥 썼는데 독자들은 자기의 입장에서 철의 장막과 남북 분단을 읽어내지요. 그러나 우리는 작가임으로 국경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영안으로 본 의미, 즉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감춰진 진실(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한 부분) 까지 드러내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작가정신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야 그 작품이 민족애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인류애적인 가치를 지니는 글로 승화(개인적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변환)된다는 것입니다. “관조”란 바로 이를 말함인데 어찌 유독 수필에만 관조가 필요하다하겠습니까. 소설도, 시도, 희곡도, 평론도 모든 문학예술이 전부다 깊은 관조를 통한 작가적 통찰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원고 15매 내외의 제한된 지면에다 어떻게 이를 다 담을 수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작가적 능력이 이때부터 필요한 것입니다. 우주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고도의 압축이 필요합니다. 문학적으로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바로 여기에 달린 것입니다. 작가의 눈이 밝지 못하면 더 넓고 더 깊은 곳에 감춰진 세계가 보이지 않으니 그런 것들을 그려내지를 못합니다. 글 욕심이 개입하니 자기마음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이는 양 마구 집어넣습니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 책에서 배운 이야기,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 나오는 이야기를 써 넣습니다. 그게 바로 허구입니다. 참인 듯 보이는 거짓을 쓰는 것이지요. 거짓을 쓰면 마음이 사악(邪惡)해 집니다. 맑은 마음 앞에서면 거짓된 마음이 그대로 보입니다. 부족하지만 내가 보이는 데까지만 쓰면서 나머지는 궁구하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문학공부는 가장 먼저 “예면 예하고 아니면 아니요” 하는 불기심(不欺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필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나면 의식이 들어와서 작동하여 “마음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본 듯이 꾸며서" "자기 글이 아닌 것을 자기 글인 것 처럼" 지어낸 이야기를 쓰는데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 하나로 연결 된다”는 말은 모든 인간들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목마르니 물을 찾고, 거짓 속에 살수 밖에 없음으로 참을 목말라한다는 것이지요. 모두가 간절하게 찾는 그것(참)을 드러내어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문학의 사명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는 종교조차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문학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수필계는 작가가 본 세상을 고도로 압축시켜 놓으면 독자들, 심지어는 수필가라 칭하는 이들 조차도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게 우리 수필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할 뿐만 아니라 더 불쌍하다. 치정세계의 비밀- 내가 남에게 간음한 비밀, 남을 내게 간음시킨 비밀, 즉 불의의 양면- 이것을 나는 만금과 오히려 바꾸리라. 주머니에 푼전이 없을망정 나는 천하를 놀려먹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큰 부자 일수 있다.”
이상의 <비밀>이란 수필입니다. 이상의 글이 대부분 그러 합니다만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지요. 내일 아침 끼닛거리가 없을망정 삶을 통찰하고 있는, 일면이 아닌 양면 아니 모든 면을 훤히 꿰뚫고 있는 작가만이 가지고있는 긍지(문학의 긍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관조가 무엇이란 것을 웅변보다 더 큰 울림으로 말하고 있지요. 이상 드린 말씀은 그동안 수필을 궁구해온 제 작은 견해입니다.(2010.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