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자유로운 인생 /박철
나무가 옷을 벗는 계절, 한 줄기 바람처럼 그렇게 세상을 살다 가고 싶다. 많이 소유해야 행복할 것 같지만 적게 소유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이다. 많이 소유하면 더 많이 만족해야 하는데 사실은 많이 소유할수록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것을 바라게 마련이다. 소유는 또 다른 소유를,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집착은 또 다른 집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단출하고 간소하게 살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나를 괴롭힐 수 없다. 가난하라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적은 것에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라는 말이다. 부자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재산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욕심이 없어야 부자이고, 그것으로 충분할 때 부자이며 마음이 충만할 때 부자이다.
많이 가지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가진 것이 없어질 때 괴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적게 가지면 아무런 걸림 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 적게 가졌을 때, 욕심을 다 놓아 버렸을 때,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행복은 시작될 수 있다. 가지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많이 가지더라도 갖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하 사진=박철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서도 소유물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다 가지고도 다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든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것'이라는 상을 내지 않는다. '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괴로울 일이 많은 사람이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하겠다.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놓아 버리고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소유함 없이 소유해야 한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하리라.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자작나무의 잎에도 행복은 깃들어 있고, 벼랑 위에 피어있는 한 무더기의 진달래꽃에서도 하루에 일용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 속에 행복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빈 마음으로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로 만족해야지, 둘을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건 허욕이다. 그러니 하나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그 하나 속에 있다. 둘을 얻게 되면 행복이 희석되어서 그 하나마저도 마침내 잃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다 언제 잘 살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런 어려운 시대에는 작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행복의 비결은 결코 크고 많은데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모두가 입만 열면 경제 타령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경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그런 일에만 치우쳐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찍이 우리가 큰 그릇을 만들어 놓지 않고, 욕심껏 담기만 하려고 한 결과다. 이 불황은 우리들 마음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다. 그릇을 키우려면 눈앞에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개체를 넘어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넉넉해진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꽃이 있다. 각자 그 꽃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 성인이 말했듯이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꽃을 피워낼 수 없다.하나의 씨앗이 움트기 위해서는 흙 속에 묻혀서 참고 견디어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큰데 있지 않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조그만 데 있다.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 기쁨을 느껴라.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 보라. 이런 어려운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이나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제비꽃은 민들레꽃을부러워하지도 닮으려하지도 않는다.어디 손톱만한 냉이 꽃이 함박꽃이 크다 하여기죽어 서 피지 않는 일이 있는가.사람이 제각기 품성대로 능력을 키우며 사는 것,이것도 한 송이 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정채봉 '스무살의 어머니')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느 것에도 쉽게 만족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늘 목이 마르고 불안 초초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이 보일 때가 많다.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호사스럽게 잘 사는 것 같아 보여도 정신적으로 늘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좋고,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도 참 많이 있다. 살뜰함과 사랑스러움, 고마움을 늘 잃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이다.행복이라는 것은 조그마한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다. 향기로운 차 한 잔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삶의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산을 지나다 무심히 피어있는 제비꽃 한 송이에서도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에서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곳에서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것이지 결코 크고 많은데 있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 나오는 천국의 비유에서도 밭의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의 비유가 소개된다. 이것은 천국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그것은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의미다.그런데 후반부에 들어가면 감추인 보화와 좋은 진주 비유가 나온다.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좋은 진주를 만난 사람은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야 그 나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들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부자청년처럼, 롯의 아내처럼, 보이는 큰 것 때문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을 어리석게도 놓치고 있다.일상 속에서 작은 것들을 무시한 채 큰 것만 바라보고 일상에서 게으르고 신실하지 못하다면 행복은 파랑새처럼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피안(彼岸)의 이야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가을 한복판 나무가 옷을 벗는 계절, 적게 가지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한 줄기 바람처럼 그렇게 세상을 살다 가고 싶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해인. '가난한 새의 기도')박철샘터교회 동사목사. 시인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출처 : 가톨릭일꾼(http://www.catholicwork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