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섭리역사와 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역사적인 나
여러분이 알다시피 역사는 시간성을 따라서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과거․현재․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이루어진 역사는 반드시 어느 한 때의 사람들과 인연되어 이루어집니다.
만일 내가 미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나는 한 사람의 미국 국민으로만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의 운명이 나와 관계되어 좌로도 갈 수 있고 우로도 갈 수 있습니다.
여자들을 두고 보면, 언제 대통령의 부인이 될지 모릅니다. 학교를 안 다녔더라도 어떤 동기로 말미암아 대통령 될 사람이 좋아하면 퍼스트 레이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조금 다릅니다. 남자들은 대통령이 되려면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되지만, 여자는 특정 케이스로 대통령 될 사람이 좋아서 지적만 하면 벌써 역사적 인물로 등장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시시껄렁한 어촌, 농촌의 누구도 돌보지 않는 아가씨였는데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국가를 움직이는 대통령의 일생의 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 여자를 누구도 귀하게 보지 않았지만, 일단 그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다 할 때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는 천지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과거는 나 혼자 가는 길이었지만 현재부터는 미국이면 미국의 국가 운명, 세계정세면 세계정세를 대표한 대통령이 가는 길과 직결되는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고 할 때,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한번 되어 보자.” 하고 꿈을 꿉니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4년 임기 동안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 우주의 영원한 주권자라고 생각할 때, 그분의 아들이 된다 하는 것은 문제가 좀 다릅니다. 그분 앞에 내가 진정 그분의 아들이 되었다 할 때는 문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이 되기 전과 됐다 할 때는 아까 말한 그 아가씨의 입장과 비교가 안 됩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할 때는 하나님과 공동운명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그 아들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그 아들의 소망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일은 그 아들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쉬게 될 때는 그 아들도 쉴 수 있습니다. 어떤 산을 말하게 된다면 한 편이 하나님이면 한 편은 아들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서는 데는 하나님 혼자 설 수 없습니다. 아들과 같이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하나님은 바른 발로 튼튼한데, 아들의 발이 짧아 절름발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양 발이 다 같이 완벽해지려면 하나님과 같이 돼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역사시대에 얼마든지 있었고, 섭리과정에 얼마든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어 보면 다 손을 들 것입니다. 안 되고 싶다는 사람은 머리가 부족하든가 어딘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사람 축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미국 사람, 한국 사람, 까만 사람, 어린 사람, 큰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싶어합니다. (79-284, 75.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