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기계임대료를 제때 받지 못한 채로 일하던 어느 날, 계약 당사자인 하도급자가 불현듯 종적을 감췄다. 하도급자와 연락할 방법이 없어, 원도급자를 찾았지만 그들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하도급자와 연락이 닿지 않고, 이미 기성지급을 끝낸 상태여서 우리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뿐이다. 원도급자는 물론 발주처에까지 하도급자에 대한 관리소홀의 책임을 따져 물었지만, 이렇게 될 줄 미처 몰랐다는 입장이다.
위 사례는 얼마 전 충북의 한 관급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렇듯 건설기계임대업자와 임대차계약을 맺은 하도급자가 점적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면서, 체불된 임대료에 대한 책임문제 또한 불거지고 있다. 체불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원도급자가 도의적으로 체불을 해소하겠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건설기계임대업자는 체불 임대료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들이 불가피하게 집회 등에 떠밀리는 이유다.
하지만 체불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원도급자나 발주처에 과연 책임이 없을까? 대한건설기계협회 체납신고센터는 체불 없는 환경조성을 위해 각 주체별로 충실한 역할이행을 당부했다.
대건협 “원도급자, 임대료지급 확인만 제대로 해도”
계약당사자인 하도급자와 건설기계임대업자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체불현장의 경우 일반적으로 곤란해 하는 이는 다름 아닌 원도급자다. 체불로 현장이 멈춰서기라도 할 경우 공사기간 지연에 따른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도급자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서라도 하도급자를 대신해 체불 해소에 나서곤 한다.
하지만 발주처로부터 대금을 수령한 원도급자가 하도급자에게 건설기계임대료를 포함한 기성금을 지급할 당시, 건설기계임대업자에게 대금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확인과정을 거치기만 했어도 체불은 당초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대한건설기계협회 임대료체납신고센터(이하 체납신고센터) 관계자는 “충북 체불현장의 경우 원도급자가 앞서 건설기계임대업자에게 임대료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사실을 파악하고, 하도급자에게 추가기성을 집행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당시 원도급자가 직불처리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발주처, 지급보증 확인 등 현장 전반 관리감독 철저해야”
체납신고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체불은 원도급자보다 발주처의 책임이 더 크다. 발주처는 건설기계임대차계약에 따른 하도급자와 건설기계임대업자간 계약서 작성 여부나 임대료지급보증서 발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 현장 전반의 관리감독 기관이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기계임대료지급보증의 경우 건설산업기본법 제68조의3 제6항에 ‘발주자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기관인 경우에는 건설기계대여대금이 보호될 수 있도록 건설업자가 건설기계 대여업자에게 제1항에 따른 보증서를 교부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 지난해 8월 4일부로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체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발주처의 역할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실제 체납신고센터가 지난 6월 16일까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체불신고 건수는 관급공사가 1402건, 민간공사가 1468건이었다. 관급공사는 민간공사와 달리 수많은 체불방지 법안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지만, 체불신고 수치가 민간공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은 체불방지 법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허울뿐인 체불없는 관급공사…건설기계업계 ‘신음’
“하도급지킴이 등 체불방지 시스템 효력 높여야
체불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발주처에서 건설기계임대업자로 이어지는 대금의 불투명한 흐름을 꼽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조달청이 내세운 방안이 ‘하도급지킴이’다. 발주처가 온라인을 통해 공사대금을 청구·지급하고 공사대금 지급여부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조달청이 개발·운영 중인 은행연계 공사대금 지급 관리 시스템으로, 조달청은 최근 LH 전국 건설현장에 하도급지킴이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체별 고정계좌를 통해 발주처로부터 원도급자, 하도급자에서 건설기계임대업자 등으로 이어지는 대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조달청의 취지대로 발주처가 모니터링을 통해 체불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부실한 적용 의지다. 조달청은 이미 지난 2013년 1월 하도급지킴이를 구축·운영해 왔지만, 관급공사 현장에서의 체불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모양새다. 사실상 시스템이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건설기계임대업자는 “관급공사가 민간공사 현장보다 체불이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관급공사만이라도 체불방지에 보다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안선용 기자 bird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