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20/옥수수 이야기 4]찐 옥수수를 맛있게 먹으려면…
옥수수, 어제는 92상자, 오늘은 26상자를 미수꾸리(포장)해 택배로 보냈습니다. 불볕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도 딸 것은 따고, 보낼 것은 보내야 하는 게 농촌의 일입니다. 따는 데 적기適期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生物의 성장이나 부패는 하루가 다르게 표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후 5시, 정신없이 헤매다 택배트럭이 떠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습니다. 샤워를 합니다.
툇마루에 앉아 96세 아버지께 과감히 ‘일’을 시킵니다. “아부지, 옥수수 삶아놓은 것, 우리가 다 먹을 수도 없고, 알을 까놓으세요. 냉동실에 넣었다 밥할 때 한 줌씩 넣어 옥수수밥 해드릴게요” 아버지는 이제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같이 사는 66살 자식이 “마늘을 까놓으시라” “멸치를 다듬어놓으셔라”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은 뭔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할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5년여 전 귀촌한 남원 친구가 그러더군요. “어이, 친구. 난 정말 행복하네. 아침에 일어나면 '뽑을 풀'이 있지 않는가 말이네” 그러던 친구도 이제 좀 살아보니 '풀과의 전쟁'에서 지쳤나 봅니다. 예초질을 배우려 하는데, 이것만큼은 손과 팔이 떨려 도저히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한 수' 가르쳐주었지요. 흐흐. 아무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의 또다른 축복’일 것입니다.
찐 옥수수를 까는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쉐프’ 백종원이 유튜브 동영상에 이미 공개했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옛날처럼 대가족이 아닌데, 20-30개를 삶아 어떻게 다 먹겠습니까? 그런데 안삶을 수도 없습니다. 자칫하면 B급 옥수수는 쉬 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옥수수 킬러들’은 한 자리에서 15개도 먹는다 하더군요.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되지만, 부피 때문에라도 부담이 가 많이 넣지 못하니, 옥수수 알을 까서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하면 좋습니다. 밥을 할 때 조금씩 얹어먹으면 ‘옥수수밥’이겠지요. 먼저 알알이 박힌 옥수수알을 한 줄 까면 한 줄의 공간이 생기겠지요. 그 옆의 줄에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대고 옥수수 알들을 살짝 오른쪽 빈 공간으로 밀어봅시다. 한꺼번에 많으면 10개도 자빠지지만, 대부분 대여섯 개는 떨어집니다. 촘촘히 박힌 옥수수 알갱이가 '옥-수-수'가 아니고 '우-수-수' 무너집니다. 그것을 일일이 하나씩 따는 것은 따분하고 싫증날 일입니다. 아, 이런 방법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알고 나왔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는 것이 은근히 쾌감이 있습니다. 은근한 희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지요? 다슬기(대수리)를 까먹을 때에도 하나, 하나씩 까 먹어야지만, 옥수수는 이렇게 10여개를 모아 한 입에 털어넣는 ‘묘미’가 있고, 제법 중독성까지 있습니다. 한번 해보시지요? 불쑥 최양락의 '알 까기'가 생각나 웃음이 나옵니다. 그 알까기와는 천지차인데 말입니다.
생물生物은 무엇이든지 바로 따서 먹어야 제맛입니다. 옥수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따 막 삶아 먹어야 전분이 분해되지 않아 훨씬 더 맛있습니다. 하루이틀 묵히면 냉장고에 보관해도 맛이 덜하다는군요. 늙은 아버지와 툇마루에서 갓 삶은 옥수수 30여개의 알들을 모두 까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두었습니다. 툇마루는 이럴 때도 유용합니다. 앞을 쳐다보면 멀리 산 허리길이 완주-순천 고속도로이기에 온갖 차가 쉼없이 지나갑니다. 그 아래 동네앞을 가로지는 철로는 전라선(익산-여수EXPO)입니다. 광양제철과 여천단지가 있어서 화물열차가 간단없이 지나가고, KTX와 무궁화호도 지나갑니다. 들판 가운데의 도로는 17번 지방국도입니다. 세 길이 놓여 있기에 조금만 앉아 있어도, 아니 한밤중에도 기차나 자동차, 트럭이 쉴새없이 지나갑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어낸 용어가 ‘들멍’입니다. 툇마루에 앉아 들판(초록들판이든 황금벌판이든)을 바라보며 ‘암 생각없이’ 멍때리는 시간을 갖는 게 '나의 즐거움'입니다.
물론 요즘엔 ‘그넘의 옥수수’ 처리에 골머리를 썩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굿뉴스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찬샘레터’를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사전 주문이 폭주하여 대박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툇마루에 앉은 것도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겠지요. 그것을 ‘야속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한 친구의 어부인이 박스당 6-7개가 덜 여물었다고 어필을 해왔는데, 이런 때가 가장 난감합니다. 어필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잘한다 해도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요즘같은 불볕더위에 자칫하면 상자속에서 열이 많은 열매이기에 떠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못먹겠지요. 또 까딱 잘못하면 받을 사람의 이름이나 주소, 휴대폰 번호가 틀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도 있는 법이지요. 이럴 때 난감難堪은 배가 됩니다. 한숨이 쉬어지면서 ‘내년엔 내가 이 농사 짓나봐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농촌의 삶은 고난의 연속일까요? 소비자들에게 생산자들을 이해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경우의 수’(선의의 실수) 때문에 멍이 드는 농민들을 조금은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흐흐.
아무튼, 옥수수 처리가 끝나면 이제 좀 쉬었으면 좋으련만, 논두럭의 풀들이 며칠 사이에 또다시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정말 기승을 부립니다. 신새벽에 예초기를 둘러메어야 합니다. 또한 추석이 아직도 멀었기에 1차 벌초도 해야 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벌초를 하려면 키를 넘게 자란 풀들로 더욱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하. 오늘도 이렇게 <옥수수 이야기>가 시리즈처럼 이어집니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옥수수 삶는 법은 어제 약간 소개했지요. 소금 한 스푼, 뉴슈가 4분의 1 스푼, 중불로 30분. 벌써 다섯 개째 뜯어먹고 있다구요? 그럼 “고맙습니다” 절하며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