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 Kelton Orbison (April 23, 1936 – December 6, 1988)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이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이처럼 극찬했던 가수 로이 오비슨은 1936년 텍사스의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화적인 존재 중의 하나로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영 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는 목소리와 노래를 탄탄하게 결합시켰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 는 흔치 않는 힘을 지녔다. "1975년 앨범 [Born to Run]을 녹음하러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나는 밥 딜런(Bob Dylan)과 같은 가사를 만들 수 있기를 원했으며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사운드를 내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로이 오비슨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80년대 미국 노동 계층의 영웅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역 밴드를 전전하던 로이는 조니 캐쉬(Johnny Cash)의 조언에 따라 싱글 "Ooby Dooby"를 선 레코드사(Sun Records)의 창립자였던 샘 필립스(Sam Phillips)에게 보낸다. 샘은 이 노래를 마음 에 들어 했으며 로이는 곧바로 멤피스로 와서 1956년 첫 번째 싱글을 내놓게 된다. 그렇지만 선 레코드사와 함께 보낸 시간은 그리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Ooby Dooby"만이 차트에 등장했을 뿐, 그 시절에 발매된 "Sweet And Easy to Love", "Chicken Hearted", "Rock House" 등은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그 당시의 히트곡들을 들고 와서 똑같이 부르라는 식의 주문을 하던 샘과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로이는 그곳을 떠나 Acuff-Rose와 계약을 하고 자신의 천직은 작곡가 라고 확신해 버린다. 그가 작곡하고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가 부른 "Claudette"는 1958 년 30위권에 드는 성적을 올렸다.
60년대 초 그는 고향 동료인 조 멜슨(Joe Melson)과 공동으로 작곡했다. "Dream Baby", "Crying", "Running Scared", 그리고 2위까지 올랐던 "Only The Lonely(Know How I Feel)" 등 의 히트곡들은 그와의 작업에서 나온 것으로, R&B와 컨트리를 수준 높게 혼합한 곡들이었다. "Only The Lonely(Know How I Feel)"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전적인 발라드 사운드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애상적인 갈구를 잘 표현하고 있는 곡과 오페라적인 요소를 지닌 보컬은 로이의 천부적인 재능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로이는 슬픈 곡만이 히트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분명히 "Dream Baby", "Mean Woman Blues", "Running Scared" 등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즐거운 곡이었다. 60년에서 64년 사이에 나온 일련의 히트곡들은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인 "Oh, Pretty Woman"이 나 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영국 밴드들이 미국을 점령하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그에게 커다란 부와 명성을 안겨다 주었으며 영국에서도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크게 히트하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어쿠스틱 기타와 스네어 드럼의 연주가 도입부를 장식하는 이 곡은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1990년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리차드기어, 줄리아로버츠 주연>에 삽입되어 다시 한번 로이의 선풍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 1990 의 한 장면
뒤를 이어 "It"s Over" 까지 차트 정상에 올랐다. 그는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이라 불리는 영국의 강세 속에서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보컬리스트였으며 영국으로 정기적인 투어를 떠나기도 하였다. 그는 영국으로 간 첫날에 비틀즈(The Beatles)의 존 레논(John Lennon)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시 작된 그들의 관계는 계속 우호적이었으며 로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비틀즈는 "Please Please Me"를 불러 그에 대한 헌정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는 1965년에 소속사를 MGM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 조건에는 엘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로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조항도 있었다. 그리하여 1968년 영화 [The Fastest Guitar Alive]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나 소속사는 이내 재정난을 겪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부인이었 던 클로데트(Claudette)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게 되며, 얼마 안 있어 그의 두 아들이 화재로 생명을 잃는 등 개인적인 최악의 불상사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는 70년대에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는 린다 론스테드(Linda Ronstadt)와 돈 맥클린(Don McLean)과 같은 가수가 그의 초 기작들을 리메이크하여 다시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와의 듀엣곡 "That Loving You Feeling Again"으로 그래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보다도 그가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데이 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영화 [Blue Velvet]에서 그의 1963년도 히트작인 "In Dreams"가 삽입되면서였다. 이러한 결과로 그는 버진 레코드사(Virgin Records)와 계약을 맺고 과거 히트곡들을 새로 녹음하 여 더블 앨범 [In Dreams]를 발매한다.
1987년 그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The Rock & Roll Hall of Fame)에 헌정되었으며 얼마 후 톰 페 티(Tom Petty), 밥 딜런,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제프 린(Jeff Lynne)과 더불어 그룹 트레 블링 윌버리스(The Travelling Wilburys)를 조직하였다.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 했던 로이는 1988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다. 그에게 영향을 받았던 수많은 뮤지션 중의 하나인 유투(U2)의 보노(Bono)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를 위해서 곡을 쓰는 것은 그의 유일한 비교 대상인 엘비스를 위해서 곡을 쓰는 것과 같다. 그의 가장 위대한 재능은 그가 겪었던 고통과 불행을 곡 속에 절묘하게 삽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보노는 그를 위한 곡 "She"s A Mystery to Me"를 만들었다. "그는 록큰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말이다.
1989년 사후에 발매된 앨범 [Mystery Girl]은 그가 생전에 누리지 못했던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 다. 톰 페티와 제프 린이 쓴 "You Got It"과 "I Drove All Night"은 톱 텐 히트를 기록하였다. 1992년에는 그의 미발표곡들을 모은 앨범 [King of Hearts]가 버진 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다. 새 로운 천년을 향해 가는 이 시기에 세상은 시대를 초월해서 가장 위대했던 뮤지션의 부재를 슬퍼 하고 있다. 그의 노래는 언제나 꿈을 대변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