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심장이 허약하거나 비위가 약하신 분은 글읽기를 삼가
해 주시기 바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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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끼이이이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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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내 26개월 군생활의 1/3 정도는 1층화장실에서 보낸 것 같다.
힘든 일이 많았고,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하나를 손꼽아
보라고 한다면 바로 1층 화장실청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우선
이 화장실은 건물과 함께 그 수명의 한계를 보이고 있어 곳곳에
균열이 나 있음은 물론, 수도관에 녹이 슬어있기 때문에 큰 볼
일을 보고 난 후 물을 내리면 누우런 똥과 함께 검은 구멍 속으
로 빨려들어가면서 대변기는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1층 화장실이 보유하고 있는 소변기의 절반(2개)은 연결호스가
빠져있고, 나머지 절반은 아예 소변기가 빠져있다. -_-; 따라서
간부/사병 공용인 이 화장실의 호스가 빠진 2개의 소변기에는
전 간부들과 사병들의 소변이 집중되는 문제가 생기고, 수시로
차고 넘쳐흐르는 대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때면 열심히(
?)일하던 나는 오로지 '청소담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업무시간
중에도 수시로 끌려가 막힌 배뇨구를 뚫어야 했다.
소변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변기는 빗자루 하나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해결되었다.
빗자루를 거꾸로 쥐고 소변기에 담긴 소변60%+물40%의 용액을
뒤흔들어 소용돌이치게 만든 다음 한 번은 강하게, 한 번은 약
하게 휘젓다 보면 절반은 소변기 밖으로 흘러넘치고 나머지 절
반은 막힌 배뇨구로 쑤욱~ 빠져나간다. 마지막 한 무리의 소변
물이 구멍을 빠져나가는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상쾌하다.
' 쏴아악~~! 꺼으으으으어~~~~~! '
2. 문제는 대변기였다. 대변기는 모두 다섯개가 있었고, 그 중
하나는 장교용, 하나는 간부용, 나머지 두 개는 사병용, 마지막
하나는 청소용구함이었다. (다음페이지의 그림참조) 부대내의
장교:간부:사병의 총원비율은 대략 1:2:30. 언제나 모자라는 건
사병용 대변기였다. 만일 간부용 대변기에서 볼일을 보다 적발
되면 그 날은 군장 싸매고 돌아야 할 각오는 해야 한다. 그래도
간 큰 병사들은 간부용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기도 한다.
간부용은 청소할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데, 그것은 간부용인
까닭에 물을 내리면 그 물살이 어찌나 세찬지 가끔씩 얼굴이나
입 속까지 튀어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그림 1 < 제 **** 부대 본관 1층화장실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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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대변기│대변기│대변기│양변기┃
│용구함│ 1 │ 2 │ 3 │ 4 ┃
│ ──┴ ──┴ ──┴ ──┴ ──┨
│ (사병용)(사병용)(간부용)(장교용) 입
│ 구
│ ┃
│ ○ ● ● ○ 소변기들 ∵수도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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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장실 청소담당인 나에게 가장 강력한 특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배출의 자유'가 있다는 거였다. (다른 말로는 '신진대사
권'이라고도 한다.) 원하는 때면 아무때라도 1층 화장실로 달려
가 문을 잠그고 화장실 청소를 핑계삼아 볼일을 볼 수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문을 잠그고 그 안에서 말없이 혼자 눈물
을 훔치기도 한다. 어쨌든 화장실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자유공
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장교용 화장실 (이건 양변기다. 좌변기 중에서도 엉덩이를
갖다대고 편안히 앉아 볼일 볼 수 있는 거..)에 앉아 주로 볼일
을 봤는데, 언제라도 청소태세로 돌변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볼일을 봐야 했다.
그렇다면 이 넓고넓은 1층 화장실을 혼자 청소하느냐 ? 그건 아
니다. 조수가 있었다. 내 화장실 청소의 파트너는 함 이병. 성
이 '함'씨라서 당시 유명했던 '릴레함메르'가 별명이 된, 조금
괴퍅하고 눈빛이 맛이 간 후임병 하나가 내 화장실 청소 파트너
였다. (앞으로는 그를 '함메르'라 부르겠다.) 성격상 일 시키고
이러는 걸 잘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둘은 고통을 분담하는 형식
으로 청소에 임했다. 하루는 함메르가 대변기, 나는 소변기, 다
른 하루는 내가 대변기, 함메르가 소변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리 둘은 이 부대가 생긴 이후 최상의 화장실청소콤비였다. 지
금 생각해도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원래 군대란 화
장실에도 군기가 들어있어 화장실이 더러우면 군기가 해이해진
다 " 는 묘한 논리를 펴는 인사계(선임하사) 덕분에 이전까지의
청소담당들은 화장실청소에 대해 심각한 피해망상증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콤비는 과거 최 모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똥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신조로 대소변 제거에 임했다. 어
떻게 그런 열악한 조건의 화장실을 그렇게 깨끗히 유지할 수 있
었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4. 나와 함메르는 그날도 청소를 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오늘도 소변기에서는 물과 오줌이 절묘하
게 범벅이 되어 뒤섞여 비취빛을 내며 출렁이고 있었고, 문을
열자 예상대로 대변기 하나하나마다 똥이 그득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지라, 우리는 흘러나오는 향기도 잊은 듯 고물스피커
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박자맞추며 대소변 제거작업에 나섰다.
치카치카칙칙~~~~ 오늘은 내가 소변기, 함메르가 대변기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손가락으로 소변기를 휘
휘 저었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출렁이는 소변... 갑자기 통돌
이 세탁기와 같은 스피드로 마구 돌던 물살은 어느덧 콰과과광
소리를 내며 깊고 어둡고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들었다. 1단계
끝!
그리곤 치약 조금 묻히고 청소용 솔로 소변기를 문질러낸다. 지
린내가 나면 안되기 때문이다. 치약의 절반은 청소용 솔에 묻힌
다. 나머지 절반은 주머니에서 꺼낸 치솔에 묻힌다. 한 손으로
는 소변기를 청소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양치를 한다. 그만
큼 시간이 절약되는 장점과, 그 시간동안 들이마셔야 하는 화장
실 향기에의 단점이 공존했지만 익숙해졌기 때문에 문제 없었
다.
천정에서 쥐 뛰어다니는 소리가 났다. 참말로 군대는 쥐들의 천
국이었다. 가끔씩 엠16 총맞아 죽는다는 걸 제외하고는 쥐들은
행복했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곳이 들쥐까지 잡아가며 살 만큼
그리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쥐들은 화장실 위에 상
주하며 군인들의 똥을 먹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왠지 천정에서 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쥐 뛰어다니는 소리 외에도 평소 들어보지 못한 소음이 들려오
고 있었다. 물샐 틈이 많아 항상 똑~똑~하고 떨어지던 물방울
(정확히 말하자면 소변방울)의 굵기가 오늘따라 무척 커보였다.
약간의 위기감이 느껴졌다.
내 조수 함메르는 여전히 열심히 쉬펄쉬펄~거리며 열심히 막힌
똥을 빼내고 있었다. 천정에서 들려오는 끼이이~~~~~거리는 소
리가 기분나빴다.
함메르에게 남은 대변기 청소를 시켜놓고 나는 장교용 양변기에
들어가 큰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끼이이~~거리는 소리가 멈추더니 우두둑~ 거리는 괴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함메르의 외마디 절규,
" 임 상병님, 어서 피하십시오 !!! "
" 함메르 ! 뭔 일이냐 ? "
나는 볼일보던 바지를 추스릴 새도 없이 후다닥 나갔고,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천정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2층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더기를 다량 함유한
이상한 형태의 물질들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대변기의 문을 연 나는 비명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 안에
서는 함메르가 우뚝 선 채 미동도 않고 있었고, 임자없는 똥이
그의 얼굴을 머리부터 발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함메
르를 구출하기 위해 전선으로 뛰어들었으나 뒤이은 2차공습에
그만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5. 냄새는 사흘 밤낮을 온 부대에 진동했고, 단장님을 비롯한
전 간부들은 변비를 참아가며 업무에 임해야 했으며, 함메르보
다 군번이 낮은 후임병과 훈련병들은 말라붙은 똥덩어리 떼내느
라 하루종일 화장실에서 엎드려 살아야 했다.
그날 이후로 함메르와 나의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해졌으며, 주
위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특히 얼굴빛이 누렇게 떠 있었다고 한
다. 약 일주일간 하루 세 번 이상의 샤워와 목욕의 고행을 거친
결과 나와 함메르는 냄새의 공포에서 다소 해방될 수 있었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아직 아물지 않았으며, 똥으로 범벅이 된 우리
의 주황색 체육복은 영영 쓰레기장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땐 정말 눈물이 나도록 서글프던 일이 이젠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바다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