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219. 프랑스의 한 부인의 아들이 먼저 죽었다.(241113)
프랑스의 한 부인의 아들이 먼저 죽었다. 그래서 슬퍼 매일 우는데 하루는 환시에 젊은이들이 빛을 내고 예수님 하고 행진을 하고 가는데 자기 아들이 맨 끝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젖은 옷을 입고 힘겹게 따라 가더라, 그래서 왜 너는 다름 아이들처럼 빛이 나게 함께 까지 않고 맨 뒤에서 처져서 젖은 옷을 입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답하기를 자도 저 애들처럼 빛으로 함께 갈 수 있는데 어머니가 하도 눈물을 흘려서 제 옷이 다 젖어버렸기 때문에 따라 갈 수 가 없다고 하더란다.
죽은 사람을 슬퍼한다고? 죽은 그들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미성숙하게 대처한다. 하느님한테 맡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새로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죽음에 대해 신앙인은 긍정적이고 지향적이며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체념이 아니라 내세를 믿어야 한다.
계시(啓示) 신앙은 기복(祈福)신앙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복신앙은 세상의 복을 빌기 위한 믿음이고 계시 신앙은 죽은 다음의 문제, 즉 종말을 믿는 신앙이다. 영원히 산다는 믿음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 두가지의 신앙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종말에 대한 믿음이 우선 이어야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더 나은 복이 내려달라는 기대는 종말로 안전하게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필요만큼만 것이어야 한다.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