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청송 가는 길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9-40)
감옥에서 만나는 청송 형제들이 보내온 편지들입니다.
“요즈음은 겨울이라 7시 기상입니다. 취침시간이 저녁 8시이니 온전히 잠만 잔다면 11시간이나 잠을 자게 됩니다. 누구는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해서 몇 번 시도를 해 보았는데 저는 영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편지 쓰고, 성서쓰기 하고 책을 읽다보면 10시 반쯤이면 눈꺼풀이 무거워서 그냥 쓰러지고 맙니다. 대신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5시가 좀 넘을 정도 되면 눈이 떠져 혼자만의 아침을 준비하곤 합니다.”
“저번에 꿈속에서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신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제가 징역을 살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 자신이 어디에선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제대로 확인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죠. 그때의 그 안타까움이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몇 날 몇 일을 넋이 빠져 헤매었습니다. 마침 편지도 계속 없었구요. 저는 즉시 안부편지를 했었지요. 엊그제 편지가 왔는데 모든 게 다 어떻게나 고맙고 감사한지요.”
“이곳의 형제들이 알고 보면 빽이 없고 힘없는 가장 불쌍한 약자들인데 파렴치범 내지 흉악범으로 분류되어 사면 대상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늘 소외되어 아픈 상처만 갖게 되는 것이지요. 결코 우리의 크나큰 죄를 부인하거나 어떤 식으로든지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사면으로 속속 풀려나는 특수층이나 양심수라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어쩐지 가슴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울분이 응어리를 만들게 하는군요. 그 누가 양심수이고 그 누가 특수층이며 그 누가 파렴치범이며 흉악범입니까? 오늘은 예수님께 절실하게 기도하면서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내가 있고 싶은 장소에서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곳에선 금지된, 아니 제약된 일이지요. 왜냐면 자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문득 이곳에는 비둘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늘 비둘기들이 우리가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 모여들었는데 이곳은 비둘기가 통 보일 질 않습니다. 조그만 비둘기가 우리들에겐 심심치 않은 재미거리거든요. 땅콩이나 과자부스러기를 주었을 때 몰려드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영어의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거든요. 간혹 비둘기를 잡아보겠다는 욕심에 괜한 비둘기 다리를 다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비둘기는 저희에게 자유를 생각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조그만 한 평 반의 공간에 다섯 명씩 앉아서 하루 종일 책이나 보며 하루를 때우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낍니다. 꼭 죄의 대가가 사회 격리만 있을까? 라는 생각에 한 삼십분 고민해 보고, 과연 인간이 인간에게 죄의 처벌을 할 수 있는가에 또 한 삼십 분 고민했습니다. 요즘 저는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습니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자꾸 생각해 보게 되고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이 은근히 저를 괴롭힙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결론으로 끝을 내지만 어찌됐든 제 주변에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하나가 제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사회에 나가 잘 적응하면서 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과연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아무 능력도 갖지 못한 제가 무척이나 한심합니다.”
면회 오던 날
“이곳을 다녀 가셨나봅니다. 사발면 10개, 빵 10개, 사탕 5개, 마가린 1개, 고추장 1개, 참기름 1개를 받는 순간 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공장에서 제일 연세가 높으신 아홉 분에게 사발면 하나와 빵 하나씩 나눠드렸습니다. 그리고 사탕은 공장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순서로 열 분에게 반 봉지씩 나눠드렸습니다.”
“면회 오시던 날 저는 좀 놀랐습니다. 저에게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담당 근무자가 ‘1065번 접견’이라고 연출 왔을 때 저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미결에 있을 때는 같이 지내던 친구나 동생들이 찾아오곤 하였지만 청송으로 와서는 지금껏 한 번도 면회를 한 적이 없었거든요. ‘고맙습니다.’ 이말 외에는 더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저의 못난 탓으로 부모형제를 이별 아닌 이별을 하여 형제도 있는데 서로간의 왕래도 두절된 상태였습니다. 저의 얼었던 마음을 모두 녹여주셨습니다. 이제는 더욱 더 분발해서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출소한 후에도 언제나 곁에 계심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전과 같은 외로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곁에 계셔 주셨던 분들을 언제나 생각하며 저도 이 사회에 해로움을 주지 않고 진실되고 성실히 살아가겠습니다.”
“저는 자치 사동으로 전방되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종교방에서 나와 자치 사동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저의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레지오 활동도 많이 하고 기도도 더 열심히 많이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사를 보는 제 마음이 왜 그리 서글프고 답답한지 성가 121장 “한 많은 슬픔”라는 성가를 부르는 도중에 눈물로 제 마음을 예수님께 바치고 말았습니다. 성서 말씀을 듣고 또 신부님의 말씀 중에 제 마음이 가시를 찌르듯 죄송했답니다. 왜냐고요? 신부님 말씀처럼 처음에는 성서도 보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활 속에 나태해지는 내 모습을 읽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형제를 만나러 가는 길
지난 2월 1일에는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에 기고한 청송교도소 이야기를 보시고 도움을 주신 분이 몇 분 계셔서 이번 청송 가는 길의 음식 보따리는 평소보다는 푸짐했습니다. 청송교도소의 열다섯 명인 우리 형제들이 너무 고기를 먹고 싶어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피를 줄이고 양은 많게 가져갈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돼지머리 편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기를 눌러서 썰면 최대한 부피를 줄일 수 있습니다. 스물다섯 근을 정육점을 하시는 재호씨에게 부탁해 놓았습니다. 출발하기 전날 저녁에 돼지머리 편육을 찾아서 차에 실어놓고, 가래떡도 네 상자 실어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새벽에 출발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네 시 알람 소리에 일어났습니다. 예쁜 딸 모니카와 함께 서둘러 세수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민들레의 집 첫 식구인 대성씨는 세 시쯤 일어나서 동인천지하도를 거쳐서 집까지 걸어서 왔다고 합니다. 날씨가 아주 춥습니다. 네 시 반에 청송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대성씨가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 이야기를 이야기해 줍니다. 요즘 국수집에 형제가 식사하러 오는데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생은 정신지체 1급 장애고요. 형은 청송교도소에서 나와서 동생과 함께 노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여성 분 이야기도 했습니다.
원주에서 중앙고속국도로 가다가 단양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죽령 터널을 넘어서니 서서히 날이 밝아옵니다. 목요일에 푹 쉬었던 덕택에 평소보다는 조금 빨리 가랫재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청송교도소까지는 십 분이면 됩니다. 셋이 아침을 먹는데 휴게소 식당의 난로 기름이 떨어져서 떨면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진보에서 청송3교도소에서 저와 자매상담을 하는 열다섯 명의 형제들과 나눌 간식을 마련하고 아홉 시 이십 분에 청송 3교도소로 들어갔습니다. 정문에서 신분증과 휴대전화기를 맡기고 출입증을 받았습니다. 천주교 담당 교도관이 정문까지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함께 자매상담을 하는 장소가 있는 교육교화과로 가서 형제들을 기다렸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아야
천주교 담당 교도관이 새로 바뀐 바람에 형제들을 연출해 오는 시간이 아주 길었습니다.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은 독보권이 없습니다. 독보권이란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권리입니다. 재소자는 교도관과 동행하지 않으면 이동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천주교 담당 교도관이 이곳저곳 분산되어 있는 자매상담 대상자들을 한 곳에 모아서 함께 오기 때문에 숙련되지 않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됩니다. 또 교도소를 방문하는 사람도 교도관과 동행해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교육교화과 자매상담실에서 형제들과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몇 분이 출소했고, 새로 몇 분이 모임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3-24)는 복음 말씀입니다. 한 분 한 분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쉬운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나눴습니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부자가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자는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늘나라 문이 바로 앞에 있어도 찾을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모임에 새로 참석한 형제가 “노숙자에게 밥을 주니까 게을러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한참을 의견을 나눴습니다.
준비해 간 햄버거와 과자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담당 교도관이 자매상담 대상자들의 명단을 대성씨와 모니카에게 주고 갔나봅니다. 명단에는 죄목과 징역 기간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명단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나오면서 명단을 보고 놀란 이야기를 합니다. 죄명을 알게 되면 선입견을 가지게 되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도소 정문을 나와서 모임에 나온 열다섯 명의 영치금을 민원실에서 만 원씩 넣어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점심을 먹고 오후 자매상담을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다시 진보로 나왔습니다.
청송교도소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아무래도 돼지고기를 담은 통이 너무 부피가 커서 작은 통에 옮겨 담았습니다. 청송 3교도소에 들어갈 때와 같은 절차를 받고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오늘의 주제를 서로 이야기를 하고 그런 다음에 준비해 간 음식을 나눴습니다. 맛있는 김치가 곁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면서 돼지머리 편육을 눈 깜짝 할 새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아주 기분 좋아합니다.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나오게 되었습니다. 민원실에 가서 영치금 넣어드리고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영남(베드로)
수도자로 살다가
지금은 평신도로서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서영남 2008-02-14] |
첫댓글 80년대 매주 목요일이면 늘 그곳에서 많은 형제들과 미사를 드리던 생각이 차곡차곡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