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딸이 사랑하는 엄마에게
2021106172 수산생명의학과 유송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랑이 무조건 좋다고 대답하지는 않더라도 싫다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아프다. 좋아한 만큼 익숙하게 여겼던 사랑을 낯설게 느낀다. 그중에서도 받으면 더 받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이 가장 아프고 낯설다.
늘 부족함이 많은 딸이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정이 게을렀고 눈물도 많았다. 좋게 말해도 끈기 있는 사람이 못 됐다. 술이나 담배를 하는 식의 방황을 하지는 않더라도 남들 앞에서 내세울 딸 역시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남들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서 뚱뚱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잘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상을 타와도 언제나 장려상을 타왔다. 거의 다 어중간하게 했다.
딱 하나 잘하는 게 있다면 말을 잘했다. 그 능력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좋게 말하면 긍정적인 사고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합리화를 잘하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안주하고 도망쳤다.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어했다.
게다가 엄마는 칭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잘한 것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을 찾아서 그걸 짚어주는 사람에 가까웠다. 가뜩이나 남들보다 잘났다고 할 수 없는 딸인데 엄마 앞에서는 정말 조금도 잘난 딸이 될 수가 없었다. 물론 엄마는 네가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가 웃는 걸 보고 싶기에 엄마를 만족시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잘난 딸이 되어서 그렇게 엄마를 웃게 만들고 싶었다. 현실은 정반대다. 아무리 감춰도 부족한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또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맞추지 못한 적 없던 최저를 수능에서 맞추지 못했다. 6개의 수시 카드 중 3개가 사라졌다. 친구들이 합격 소식을 알릴 때 불합격 문구를 손에 쥔 채 몸을 웅크려야 했다. 남들은 다 걷는 길인데 나만 걷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능을 망한 게 원인이었으니 정시로 대학을 가는 것 역시 불투명했다. 실패는 나 자신에게 해당하는 일이기도 했으나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새해는 우리 가족에게 침묵의 시간이었다. 엄마는 그게 네 실력이라며 못을 박았다. 그런 딸이어서는 안 됐다. 이건 내 실력의 전부가 아니라고 소리를 쳤다. 그런 날의 반복이었다. 나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것 같으면서도 언제든 터질 수 있을 만큼 서로가 날이 선 상태였다.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굴었다. 왜 엄마는 나를 좋게 봐주지 못하냐고, 단점이 많지만 장점 역시도 많은 딸은 엄마 앞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이 된다고. 나를 가장 초라하고 못난 사람으로 보는 건 엄마라고. 그렇게 엄마를 할퀴었다. 말싸움의 끝에서 항상 울었다. 겁도 없이 추운 겨울에 잠옷만 입은 채 집을 나가 가슴에 못을 박았다. 웃게 하기는커녕 엄마를 가장 많이 울렸다.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 나의 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사과했지만 입은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서로에게 상처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깊게 생각할 기회이기도 했다. 사랑은 어렵기에 머릿속을 더 괴롭혔다.
사랑의 크기는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차이가 날 것이다.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누구든 아프게 만든다. 주는 만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부족함을 느낄 것이며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는 사람은 부담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모양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는 사랑인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해서 하는 말과 행동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같아지려 노력한다. 사랑해서 크기와 모양을 맞춰가려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깎고 다듬는 과정, 우리의 모양을 정하고 다시 빚어가는 과정은 분명 아플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아픈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아팠다. 분명 아프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팠다. 그런데 그게 결국 사랑이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해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아프면 아플수록 사랑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불안해졌다.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고 여기면 더 불안해졌다. 들을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언제나 부족함이 많았고 그거로 모자라 또 하나의 부족함을 더한 상태였다.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하는 말이 사랑이라는 걸 아는데, 나는 이제 그 사랑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을 게 겁이 나는 것이었다.
힘들 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나는 그 사랑을 베풀고자, 갚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겁이 났다.
엄마의 사랑을 가늠할 수 없어서 그 사랑이 없어질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교통사고 이후 의식이 불분명한 와중에도 나와 동생의 목소리에는 반응하던 엄마의 움찔거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술이 끝난 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등 다른 가족들에게는 반응을 하지 않던 엄마는 나와 동생의 목소리에는 눈을 깜박였다. 엄마의 일상은 그 사고를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처럼 몸을 가눌 수 없고 목소리 역시 낼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행동이 엄마에게는 버거운 행동이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끝에는 웃는다. 그래도 너희가 있어서 엄마가 살아간다고 말한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포옹이나 뽀뽀 같은 스킨십 역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귀했다. 소중하고 받으면 좋을 게 사랑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던 사랑이었다. 사랑을 낯선 것으로 정의하게 된 이유는 당연하게 받기에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 그 깊이를 나는 영원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견뎌내며 우리를 삶의 이유라 말하는 크기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당연히 받기에는 엄마의 사랑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자 더 낯설어졌다. 무서워진 것이다. 왜 나를 사랑하냐는 아마 물을 수 없을 질문이 그즈음부터 목에 맴돌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사랑이 아프다. 엄마의 사랑은 날 아프게 한다.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귀해서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나는 사랑이 좋다. 여전히 사랑이 좋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무섭더라도 기꺼이 사랑할 것이다.
정시 대학 발표가 나기 전까지 우리 집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루를 넘기는 것조차도 벅찬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상처 입고 상처 주기를 반복하면서 사랑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사랑 역시도 재정의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온 내게 사랑은 아픈 것이자 무서운 것이 되었다. 동시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사랑이었다.
지금의 나는 역시 부족함이 많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하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대답할 수 있는 것보다 대답하지 못하는 게 더 많다. 그리고 사랑은 당연하게 받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다. 동시에 이제는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게 된 사람이다.
왜 나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인정하기 싫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남에게 발톱을 들며 부정하고 도망쳤다면 이제는 이렇게 하나씩 받아들이는 걸 배우는 것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을 찾아서 질문에 답을 완성하는 과정은 그 연장선이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의 빈칸을 채울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거듭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랑스러운 딸 역시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첫댓글 글쓰는 솜씨로 봐서는 인문대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요. 본래 개인사를 소재로 하여 쓴 글에는 군더더기를 붙이기 힘든 법이지만, 특히 입시와 엄마, 사고 등 그 또래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으면서도 특별한 경험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군더더기를 붙이기 어렵지요. 입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고,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게 되었다는 점은 퍽 공감이 됩니다. 그런 갈등 속에서 엄마의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반응, 그것에 대한 글쓴이의 반응 등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기도 하지요. 이런 과정에서 대개 가족의 중요함을 깨닫고, 성숙하게 된답니다. 다만 한 가지 보충되었으면 하는 부분은 이야기의 중요한 흐름을 차지하는 엄마의 사고 시점에 관한 스케치예요. 모든 글쓰기가 꼭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갈등 상황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지, 갈등상황을 해소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인지에 따라 글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