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설악산 흔들바위를 압니다.
손가락으로만 밀어도 흔들거려 흔들바위라죠?
제 고향 대구, 대봉동과 봉산동 경계에 대구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다 아는 흔들바위와 이름 비슷한
건들 바위가 있습니다.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피부 미끈하고 동그스름한
바위는 아니랍니다.
기괴하게 사각의 기둥처럼 우뚝 솟았고, 거친
피부는 갈색입니다.
형상이 특이하다 보니 제 어릴 적 그곳에서는 흔히
굿판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무속인이 한판 굿거리를 펼치노라면, 신령님이
정말 눈앞에 떡 나타날 것만 같은...
그래서 바위 곁을 지날 때는 늘 종종걸음이
되었습니다.
대낮에도 어두운 그곳을 겁먹은 채 지나다 보면,
타다 남은 굵은 초와 과일 조각들이 어질러져 있곤
했습니다.
전설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예전에 그 옆으로
개천이 흘렀고 풍경이 좋았다고... 건들바위의
다른 이름이 삿갓바위였다는 설명만 간략하게
있고 딱히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어쭙잖은 이야기꾼인 저라도 하나 지어야지요.
옛 달구벌 건들바위 가까이 향교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고요.
그 향교에 공부하러 다니는 잘 생긴 도령이 있었는데,
이 도령은 공부도 잘했지만 시창도 잘했습니다.
향교 오가는 길 지루할 때면 곧잘 시창을 하곤 했지요.
특히 향교를 가자면 넘어야 하는 마지막 작은 고개
언덕에서 쉬는 듯 걷는 듯 시창을 했습니다 그려.
그 언덕엔 백 년을 사람이 되겠다는 열망으로
살아온 백 살 된 암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네요.
마지막 백 년이 되는 해.
한 해 동안 살생을 금하고 오로지 곡식으로만
연명을 해야 하는데...
사람으로 그것도 어여쁜 처녀로 환생할 여우라,
그 도령의 시창만 들으면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랬던가 봅니다.
환생 전이라도 변신은 가능하니, 저 멀리서 도령의
시창 소리가 들려오면 때론 길 가는 처자로, 때론
빨래터로 가는 아낙으로, 때론 들놀이 나가는
기생으로 변신하여 그 도령 가는 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도 함께 걸었지요.
남녀유별하니 도령이 한마디 말도 붙여온 적
없지만,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여우는 충분히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처녀로 환생을 하면 도령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비책을 마련하는 일도 행복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드디어 하루만 더 지나면 백 년.
저 멀리서 도령의 시창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녀로 환생하면 입으려고 준비해 둔 예쁜 옷을
차려입고 도령이 가는 길, 미리 나가 천천히 앞서서
걸었습니다.
귀에는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도령의 시창 소리
낭랑하고 들려오고...
근데 이를 어쩌나...!
전설... 아, 싫다 슬픈 전설은...
뒤따라 오는 도령이 지나갈 길섶 수풀더미에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잔뜩 배고픈 얼굴로 혀를
날름거리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도령을 돌아보니 전혀 모르는 얼굴로 태평하게
시창을 하고 있고...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시간을 늦출 수 없는 일이라 여우가 구렁이에게
덤벼들었고, 처녀로 변신한 몸이라 힘으로 구렁이를
당할 턱이 있나요.
엎치락뒤치락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뒤따라 오다
그 광경을 본 도령이 함께 달려들어 싸우고...
그렇지만 글읽기만 한 도령이 뭔 힘이 있었겠어요.
금세 땅바닥에 넘어졌고, 구렁이가 한 입에 삼킬 듯
입을 쩌억 벌렸지요.
생각할 겨를 없이 얼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여우는 백 년 쌓아온 신력을 다해 구렁이의 목을
물고 늘어지고... 결국은 구렁이 명을 끊고 말았지요.
구렁이에 놀라고, 변신한 여우에게 놀라고...
놀란 도령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우.
살생을 했으니 백 년 공이 도로아미타불이요,
여우꼴도 들켰으니,
하구야~! 세상 살 낙이 없어졌구나...
낙심에 낙심.
그만 언덕 높은 곳에 올라 몸을 던져 죽으니...
그 떨어진 자리에서 불쑥불쑥 바위가 솟아나더라.
희망을 잃은 거친 마음이라 그런지 그 겉이 거칠고,
상한 마음이 깊어서인지 그 색이 갈색이더라.
그 후로 잘 생긴 도령이 그 길을 지나가면...
“날 좀 보고 가오~ 도령요. 날 좀 보고 가오~“
손짓하며 부르니, 그 길을 지나던 사람들들이
보기엔 바위가 제 스스로 건들거리는지라...
한 사람 두 사람, 건들바위라고 불렀다는 전설.
어때요? 그럴듯합니까요? ㅎㅎ
어릴 때 제 살던 곳 가까이 건들바위 있었습니다.
새 도로가 나면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껏 살아남아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사는
건들바위가 제 고향에 대구에 있습니다.
첫댓글
글도령을 사랑하려 했던 백년 여유가
그만 구렁이를 죽이게 되었지만,
글도령이 살았음에 사랑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싶네요.
마음자리님, 더 연세 더시면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전설 이야기를 찾아내어
전설집을 만들면 훌륭한 전설 작가와
어린이를 위한 아동문학으로도 성공하시겠습니다.
새로 만든 전설, 건들바위는 참 재미있습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긴 역사에 이미 전설들이 넘쳐나게
많지만 보완도 하고, 없으면 만들기도
하고... 그렇게 살면 남은 세월 보람이
클 것 같습니다. ㅎ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설이란 이루어진 러브 스토리 보다는 이루어지지 않은 스토리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 이 마음자리님의 창작인 전설은 훌륭합니당
그런데 그 건들 바위는 정말로 흔들리는 바위 입니까?
충성 우하하하하하
바위가 균형이 덜 잡혀 곧 넘어질 듯도
보이니 건들바위라 했을 겁니다.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ㅎ
건들바위 전설 재미있습니다.
전설 등록하는데는 없어요?
위 사진이 건들바위?
대구에 있는 갓바위인 줄 알았는데 모양이 다르군요.
네. 위키피아에 올려진 사진,
가져 왔습니다.
갓바위는 동화사 부근에 있고
훨씬 더 크고 웅장합니다.
건들바위는 시내 아주 가까이 있고
어두침침했는데, 언젠가 그 옆으로
새 길이 나며 밝은 곳으로 나와서
보호되고 있습니다.
한번 넘어지기도 했다는데
복원 되었다는 소식도 았습니다. ㅎ
어릴 때 그 가까이 살아 자주
지나다녔습니다.
우와~~
스릴이 넘치는 건들바위 전설입니다.ㅎ
저는 비산동쪽에서 오래 살아서
건들바위는 모르겠네요.
나중에 대명동쪽으로 이사를 갔지예.
여우가 왜이렇게 불쌍하게 느껴지는지요.ㅠ
처녀가 되어 도령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을텐데요.ㅎ
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베리아님 잘 계시지요?
저도 이야기가 해피엔딩이길 바랬는데
맘자리님이 여우를 죽이고 말았어요.ㅋ
맘자리아재 떼찌~~~
@제라 ㅎㅎㅎ
제라 님, 반갑습니다.
안 보이면 혹시 또 몸이 안 좋으신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내일 이사하는데, 남들 이사할 때 쓰는 그 정도
신경썼다고 숨쉬기가 힘드네요.ㅠ
숨쉬기 힘든 날, 이런 글 읽고
한참 웃고 나면 좀 좋아져요.ㅎ
요즘은 건들바위 전철역도 있고, 건들바위 버스 정거장도 있다네요. ㅎㅎ
전설이 대개 좀 불쌍하거나
슬프더라구요.
저도 아쉬워요~ ㅎㅎ
전설의 고향을 보는거 같아요.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어지네요.
전설이 왜이리 슬퍼요.
도령을 구하기 위해 백년이 허사가 되니
이런~~~
맘자리님은 이야기꾼 맞네요.
계속 더 듣고 싶어져요.^^
제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주시네요. 이야기꾼. ㅎㅎ
담에 더 재밌는 이야기 가져올게요.ㅎ
재미있네요.
마음자리님은 타고난 재담꾼이에요.ㅎㅎ
석촌대형님께 재담꾼으로 인정 받으니
기분이 최고로 좋습니다. ㅎㅎ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길에도 비슷하게
생긴 바위가 몇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다음엔 해피엔딩으로 끝내주세요 ㅎ
부탁 중에 가장 어려운 부탁입니다. ㅎ
해피엔딩 전설....
한번 고민해보겠습니다. ㅎㅎ
재미 있어요
새드엔딩으로 끝난게 좀 아쉽지만
그래야 전설이지요 ㅎ
마음자리님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신것 같아요^^
대구는 저와도 인연이 많은 지역이라
마음자리님 글이 반갑게 읽힙니다.
그렇지요? 뭔가 미진한 아쉬움과
아픔이 있어야 전설이지요. ㅎㅎ
해피엔딩은 전설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ㅎ
전설따라 삼천리를 보는것 같습니다
살생을 하고 환생을 못하고 죽었을지라도
도령님의 목숨을 구했으니
여우의 삶은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제 어릴적 밤 10시에 라디오로 듣던
'전설따라 삼천리'가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졸아가며 듣던 수많은 전설들이
여전히 귓전에 맴돕니다. ㅎ
슬픈 여우 전설이군요.
하지만 더욱 슬픈 건 천년을 기다린 구렁이 낭자.
여우는 바위가 되었지만, 구렁이는 앞 강이 되어 눈물 로 흐른다는..
아? 그 구렁이가 낭자 되려고 천년을
기다렸나요?
덕분에 이야기에 살이 붙겠습니다. 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백년의 꿈도 목숨도 바친 여우는
고귀한 사랑을 완성했네요.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안타까워요.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전설을 만드네요.
제가 듣거나 읽은 전설 중에는
종을 치며 목숨 바쳐 은혜 갚은
까치가 가장 슬프게 남아있습니다.
그럴 듯 합니다 .ㅎㅎㅎ
마음자리님은 참 재미있으세요 .
손자 손녀 생기면 "옛날에 옛날에 ~~"
이야기 많이 해 주실것 같아요 .
여우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