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행기로 여행한다 해도 그다지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물론 시간의 간격이 있지만 긴 세월 속에서 긴 여행입니다. 그러나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아닙니다. 어쩌면 뜻하지 않은, 아니 결코 바라지 않던 삶의 여행입니다. 목숨 붙어있으니 살고자 한 여행이지요. 그런 삶을 꿈꿔본 적도 없습니다. 희망으로 시작하였을지는 몰라도 절망으로 이어지는 삶이고 여행이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 짓밟힌 인생입니다. 그러니 고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선뜻 나서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꿈을 꾸며 기나긴 시간을 버텼습니다.
조선 사람, 그것도 군인으로 징발된 남자가 아니라 어린 여성들이 어떻게 미얀마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전쟁은 특히 어린아이들과 여성에게 가혹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이 자그마한 지구촌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나 싶게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역사 속에 ‘백년전쟁’이라는 사건도 있었지만 일제 36년을 배경으로 한 우리네의 전쟁도 꽤나 오래 지속된 사건입니다. 대한제국을 합방하기 위한 작업부터 시작해서 해방의 그 날까지 이어져온 크고 작은 전쟁들을 지나며 특히 젊고 어린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은 이렇게 표현해도 저렇게 기록해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1944년 8월 일본의 강제 동원으로 미얀마 미치나에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0명은 연합군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뒤 이후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미치나의 조선인 위안소 현장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조선인 ‘위안부’ 20명의 귀국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미얀마 미치나와 인도 레도 등에서 현장답사와 증언 확보 등을 통해 귀국 행적 파악에 들어갔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와 스위스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을 찾아 미공개 자료 발굴을 통해 이름과 출신 지역을 바탕으로 실제 강제 동원됐을 할머니 한 명의 존재도 확인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그 추적과정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두 시간이 넘어가도록 적은 분량이 아니지만 최대한 압축한 이야기입니다.
‘병원에서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기야 전쟁 중이었으니 부상병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봐주면서 다른 한편 돈도 벌 수 있는 일이니 특히나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젊은이들에게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고국을 멀리 떠나 하는 일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돈 좀 벌고 나서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창 젊은 때인데 무슨 일은 못하랴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식민지 하에서 많은 백성이 어렵게 살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생활의 돌파구를 찾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봉사와 돈벌이가 병행할 수 있으니 이래저래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과감히 고국을 떠났습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당도한 곳은 기후도 환경도 전혀 다른 낯선 곳입니다. 무엇보다 언어가 달라서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해야 하는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대했던 일이 아니었지요. 그렇다고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 다음부터는 물리적 강제력이 따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에 힘이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디인지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고, 그러니 탈출해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릅니다. 어쩌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단 살아야 궁리를 해보지요.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연합군에 의해 포로(?)가 됩니다. 그리고 심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통역을 붙이는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일본어를 하는 미국군 장교가 맡아서 심문을 진행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영어를 알 턱이 없고 일본어도 서툽니다. 그러니 우리 젊은이들을 관리하던 ‘마마상’이나 ‘파파상’(우리 식으로 하면 ‘포주’일 것입니다)을 상대로 심문을 진행합니다. 우리의 아픔을 대변해줄 리가 만무하지요. 자기네 측 변명으로 일관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그러나 심문자는 그런 것에 관심 가질 리도 없습니다. 그 보고서가 후일에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도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고서가 나중에 이 위안부를 왜곡시키는 자료가 됩니다. 그들이 사치스런 생활을 누렸고 매우 이기적이라고요? 좋아서 시시덕거리며 살았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한 마디로 ‘매춘부’였다니, 당한 것만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데 불명예까지 덮어씌웠습니다. 그것을 미국의 유튜버가 이용하였고 유명 대학교 교수까지 논문으로 썼습니다. 누구를 위한 짓거리입니까? 아마도 일본 우익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많은 우리 백성이 이국땅에까지 가서 삶을 짓밟혔습니다. 사진 속의 딱 한 사람만이 파악이 되어 이렇게 추적하였지만 얼마나 많은 백성이 피눈물을 흘리며 먼 외지에서 삶을 마감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집니다. 기록영화 ‘코코순이’(KOKO SunYi)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보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을 빕니다. *)*
잘보고가유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