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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간의 음식문화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정제된 훌륭한 창작물이며,
불후의 이름을 남긴 큰 선비들과 영웅호걸들, 그리고 성현들의 풍류생활을 함께 해온 술.
선인들이 몹시 사랑하며 즐기다가 간 망우물을 후세의 애주가들이 마음껏 즐기며,
삶의 고뇌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오로지 밝은 내일을 향해 힘껏 질주해 볼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의 소망이라는 정신적 활력소로 재충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감한 결단과 용기에는 술의 마력이 필요하다.
술이란
싸움을 할 때 적(敵)과 같아서 처음부터 이겨 나간 즉
취기(醉氣)가 강(强)해져서 나는 점점(漸漸) 약(弱)해지고 마침내 패(敗)하게 된다.
취기(醉氣)에 패(敗)하면 신정(神情)이 상(償)하고
의지(意志)도 꺽여서 후일(後日)에도 장애(障碍)가 된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술을 들 때에는
언제나 최선(最善)을 다하고 반드시 이기고,
신정(神情)을 보(補)하여 지(志)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이리하여 군자(君子)는 날이 갈수록 상달(上達)하여
덕(德)이 높은 산(山)봉우리처럼 된다.
대처 군자(君子)가 주도(酒道)를 연마(鍊磨)하여
덕(德)을 높임에 있어 먼저 삼가는 것은 정(情)을 손상(損傷)하는 일이요,
후(後)에는 널리 사물(事物)에 접(接)해 학문(學文)을 넓히는 일이다.
술에 취(醉)하면 마음이 빠르며 넓은 까닭에
짧은 시간(時間)에도 긴 세월(歲月)이 있으므로
군자(君子)는 취중(醉中)에 다양(多樣)한 인생(人生)을 수양(修養)할 수 있다.
옛 선인(仙人)이 말하기를
취중(醉中)의 하루는 평시(平時)의 한 해와도 같다고.
이는 취중(醉中)의 마음에 정(情)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널리 여행(旅行)을 할 때도
그 지방(地方)에 도착(到着)해서는
그 지방(地方)의 술부터 음미(吟味)하는 것이다.
만일,경치(景致)만 구경하고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그 지방(地方)에 있었다 하리요.
한평생(一平生)을 살면서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世上)에 있었다 하리요.
술을 마신 즉 천하(天下)가 정(情)답고
천하(天下)가 정(情)다운 즉 만상(萬象)이 일어나고
만상(萬象) 중(中)에는 큰 뜻이 있는 것이다.
만일(萬一) 어떤 사람이 천하(天下)에 나서 별 생각(生覺)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금수(禽獸)와 다르지 않다.
사람은 생각(生覺)이 많으면 뜻이 많고 뜻이 많은 즉 그 중(中)에서 도리(道理)를 찾을 수 있다.
군자(君子)의 생(生)에 있어서 술을 마셔 흥(興)이 많다면
이는 천행(天幸)에 크게 참여(參與)하는 것이니
술 마시는 일이 어찌 대사(大事)가 아니리요.
공자(孔子)는 말하였다.
말 안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라고....
술 또한 이와 같다.
술을 권(勸)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勸)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勸)할 사람에게 권(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는 술을 권(勸)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이규보 (고려의 문인)
본관 황려(黃驪:驪興). 자 춘경(春卿). 호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초명 인저(仁氐).
시호 문순(文順).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 참군사(參軍事)·사재승(司宰丞)·우정언(右正言)을 거쳐
(고종 6) 좌사관(左司諫)으로서 지방관의 죄를 묵인하여 계양도호부부사(桂陽都護府副使)로 좌천되었다.
(고종 7) 예부낭중(禮部郞中)·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를 거쳐 30년 위위시판사(衛尉寺判事)가 되었으나,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蝟島)에 유배되었으며 (고종 19) 비서성판사(毗書省判事)에 승진하고,
이듬해 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을 거쳐
(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시(詩)에
〈천마산시天摩山詩〉 〈모중서회慕中書懷〉 〈고시십팔운古詩十八韻〉 〈초입한림시初入翰林詩〉 〈공작孔雀〉
〈재입옥당시再入玉堂詩〉 〈초배정언시初拜正言詩〉 〈동명왕편(東明王篇)〉, 문(文)에모정기茅亭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이 있다.
투화풍(妬花風)-꽃샘 바람-이규보(李奎報)
花時多顚風(화시다전풍) : 꽃 필 땐 광풍도 바람도 많으니
人道是妬花(인도시투화) : 사람들 이것을 꽃샘 바람이라 한다.
天工放紅紫(천공방홍자) : 조물주가 주홍빛 자주빛 꽃피우니
如剪綺與羅(여전기여라) : 마치 비단들을 가위질해 놓은 하다.
旣自費功力(기자비공력) : 이미 그렇게도 공력을 허비으니
愛惜固應多(애석고응다) : 아끼는 마음이야 응당 적지 않으리라.
豈反妬其艶(기반투기염) : 어찌 그 고움을 시기하여
而遣顚風加(이견전풍가) : 광풍을 남겨 보냈을까
風若矯天令(풍약교천령) : 바람이 만약 하늘의 명을 어긴다면
天豈不罪耶(천기불죄야) : 하늘이 어찌 죄를 주지 않을까
此理必不爾(차리필불이) : 이런 법이야 반드시 없을 것이니
我道人言訛(아도인언와) : 나는 사람들의 말이 잘못이라 말하리라.
鼓舞風所職(고무풍소직) : 노래하고 춤추는 건 바람의 맡은 일
被物無私阿(피물무사아) : 만물에 은택 입히니 사사로움 없으리라
惜花若停簸(석화약정파) : 꽃을 아껴 만약 바람 다 그친다면
其奈生長何(기내생장하) : 그 꽃 영원히 생장할 수나 있을까.
花開雖可賞(화개수가상) : 꽃 피어 감상하기 좋으나
花落亦何嗟(화락역하차) : 꽃 지는 것을 슬퍼할 게 뭐 있나.
開落摠自然(개락총자연) : 꽃 피고 꽃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이니
有實必代華(유실필대화) : 열매가 생기면 반드시 꽃 피어 대신한다.
莫問天機密(막문천기밀) : 묻지 말게나, 오묘한 이치 자연의 이치
把杯且高歌(파배차고가) : 술잔 잡고 소리 높여 노래나 불러보자구나.
초당삼영1(草堂三詠1)-초당에서 읊은 노래-이규보(李奎報) 素琴(소금) : 거문고
天籟初無聲(천뢰초무성) : 자연은 처음부터 소리가 없어
散作萬竅鳴(산작만규명) : 흩어져 만 구멍의 소리를 낸다
孤桐本自靜(고동본자정) : 오동은 본래 고요하니
假物成摐琤(가물성창쟁) : 다른 힘을 빌어서 소리가 난다
我愛素琴上(아애소금상) : 줄 없는 거문고를 좋아하여
一曲流水淸(일곡유수청) : 맑은 물에 유수곡을 부르노라
不要知音聞(불요지음문) : 친구가 들어주지 원하지 않고
不忌俗耳聽(불기속이청) : 속물이 듣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只爲寫我情(지위사아정) : 다만 내 정과 흥을 쏟기 위해
聊弄一再行(료롱일재행) : 애오라지 한두 줄을 희롱하노라
曲終又靜黙(곡종우정묵) : 곡조가 끝나면 고요히 침묵하고
夐與古意冥(형여고의명) : 아득히 옛뜻과 화합하노라
초당삼영2(草堂三詠2)-초당에서 읊은 노래-이규보(李奎報) 소병(素屛)
君看五侯家(군간오후가) : 그대가 보는 다섯 오후의 집
黃金柱北斗(황금주북두) : 황금기둥으로 북두를 떠받친다
牆壁煥丹靑(장벽환단청) : 담과 벽에는 단청이 두르고
土木衣錦繡(토목의금수) : 흙과 나무에는 비단 옷을 입히었다
坐張百寶屛(좌장백보병) : 앉는 데는 백보병풍을 쳤는데
仙鬼互馳驟(선귀호치취) : 신선과 귀신이 분주하게 달려간다
那憂氷谷寒(나우빙곡한) : 어찌 얼을계곡이 찬 것을 근심하여
只詑銅山富(지이동산부) : 다만 동산의 풍부함만 자랑한다
百年歸山丘(백년귀산구) : 백년 산 수에 산으로 돌아가
等是一丘土(등시일구토) : 똑같이 한 줌의 흙이 되노라
我有一素屛(아유일소병) : 나에게 하나의 소박한 병풍 있어
展作寢前友(전작침전우) : 침실 앞에 벌여 놓았도다
素月炤我容(소월소아용) : 흰 달이 내 얼굴 비추어
白雲落我首(백운락아수) : 흰 구름은 내 머리맡에 떨어졌다
翻思天地間(번사천지간) : 생각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此身亦假受(차신역가수) : 이 몸 또한 가탁하여 받은 것이다
求眞了無眞(구진료무진) : 진실을 구하여도 끝내 진실 없고
一物非我有(일물비아유) : 한 물건도 내 소유는 없는 것이다
초당삼영3(草堂三詠3)-초당에서 읊은 노래-이규보(李奎報) 죽부인(竹夫人)
竹本丈夫比(죽본장부비) : 대는 본래 장부에 비유도니
亮非兒女隣(량비아녀린) : 참으로 아녀자의 이웃은 아니로다
胡爲作寢具(호위작침구) :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
强各曰夫人(강각왈부인) : 억지로 부인이라 이름하는가
搘我肩股穩(지아견고온) : 어깨와 다리 걸치어 평온하게 하고
入我衾裯親(입아금주친) : 내 이불 속으로 친하게 들어와
雖無擧案眉(수무거안미) : 눈썹과 나란하게 밥상 드는 일은 못해도
幸作專房身(행작전방신) : 다행히 사랑을 독차지하는 몸은 되는구나
無脚奔相如(무각분상여) : 상여에게 달려가는 탁문군의 다리도 없고
無言諫伯倫(무언간백륜) : 백륜 유령에게 간하는 말도 없도다
靜然最宜我(정연최의아) : 고요한 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드니
何必西施嚬(하필서시빈) : 어찌 반드시 아름다운 서시가 필요할까
유가군별업서교초당1(遊家君別業西郊草堂1)-아버지의 별장 서교초당에서-이규보(李奎報)
春風扇淑氣(춘풍선숙기) : 봄 바람은 맑은 기운 부채질하고
朝日清且美(조일청차미) : 아침 해는 맑고도 아름답구나
駕言往西郊(가언왕서교) : 말 타고 서쪽 들로 가나니
塍壟錯如綺(승롱착여기) : 밭두덩이 얼기설기 하구나
土旣膏且腴(토기고차유) : 흙이 이미 기름지고 비옥하니
況復釃潭水(황부시담수) : 하물며 다시 못물을 대리오
歲收畝千鍾(세수무천종) : 한 해 추수가 천종은 되리니
足可釀醇旨(족가양순지) : 맑고 맛난 술도 빚으리라
何以度年華(하이도년화) : 무엇으로써 세월을 보낼까
日日花前醉(일일화전취) : 날마다 꽃 앞에서 취하리로다
念此任胝手(념차임지수) : 이것을 생각하며 손에 못 박히도록
意欲親耘耔(의욕친운자) : 부지런히 내가 직접 갈고 김을 매리라
乘興自忘返(승흥자망반) : 흥겨워 돌아가기 잊었나니
岸幘聊徙倚(안책료사의) : 관 재껴쓰고 애오라지 머뭇거리는구나
遠岫煙蒼茫(원수연창망) : 먼 멧뿌리에는 안개기운 창망한데
曜靈迫濛氾(요령박몽범) : 해는 져서 어둠이 다가오는구나
月明返田廬(월명반전려) : 달이 밝아 시골집으로 돌아니
醉歌動隣里(취가동린리) : 취해 부르는 노래 이웃 마을 흔드는구나
快哉農家樂(쾌재농가악) : 유쾌하구나, 농가의 즐거움이여
歸田從此始(귀전종차시) : 지금부터는 농촌으로 돌아가 시작하리라
유가군별업서교초당2(遊家君別業西郊草堂2)-아버지의 별장 서교초당에서-이규보(李奎報)
日高醉未起(일고취미기) : 해가 높이 뜨도록 취하여 일어나지 못하는데
簷燕欺人飛(첨연기인비) : 추녀 끝의 제비는 사람 속이고 날아가는구나
童僕方巾車(동복방건차) : 아이 종은 작은 수레 대어 놓고
苦促南畝歸(고촉남무귀) : 억지로 남쪽 이랑 가자고 재촉하는구나
起坐罷梳沐(기좌파소목) : 일어나 앉아 세수하고 빗질하기를 마치고
長嘯出松扉(장소출송비) : 길게 휘파람 불며 소나무 사립문 나서는구나
林深日未炤(림심일미소) : 숲이 깊으매 해는 아직 비추지 않아
草露猶未晞(초로유미희) : 풀 끝의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구나
徐行望淸甽(서행망청견) : 천천히 걸으며 맑은 들을 바라보니
決渠雨靃霏(결거우확비) : 개울물 터졌는데 비는 보슬보슬 내리는구나
田婦白葛裙(전부백갈군) : 농가의 아낙은 흰 갈포치마 입고
田夫綠麻衣(전부록마의) : 농부는 푸른 삼옷 입었구나
相携唱田壟(상휴창전롱) : 서로 손으로 끌며 밭두덕에서 부르니
荷鋤如雲圍(하서여운위) : 호미 메고 구름처럼 모였드는구나
勉哉趁菖杏(면재진창행) : 부지런하도다, 힘써 창포와 살구 찾아
耕穫且莫違(경확차막위) : 철따라 갈고 거두기에 때를 어기지말아라
謝友人送酒(사우인송주)-친구가 술을 보내온 것에 사례함-李奎報(이규보)
邇來杯酒乾(이래배주건) : 요즈음은 술마저 말라버려
是我一家旱(시아일가한) : 이것이 우리 온 집안의 가뭄이었는데
感子餉芳醪(감자향방료) : 그대에게 고맙구나, 좋은 술을 보내주다니
快如時雨灌(쾌여시우관) :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상쾌하구나.
復遊西郊草堂(부유서교초당)-다시 서교초당에서 놀다-李奎報(이규보)
初日映短霞(초일영단하) : 아침 햇빛이 자욱한 노을 비추고
長風卷宿霧(장풍권숙무) : 먼 데서 온 바람 묵은 안개 거두네.
四望喜新晴(사망희신청) : 사방을 보니 말끔히 갠 것 보기 좋아
傍林聊散步(방림료산보) : 수풀 곁으로 다만 천천히 걸어보네.
造物固難料(조물고난료) : 만물의 조화란 본래 예측하기 어려워
陰雲忽紛布(음운홀분포) : 홀연 검은 구름이 여기저기 일어나더니
電火掣金蛇(전화체금사) : 번갯불이 온통 금빛을 끌여드리고
雷公屢馮怒(뢰공루풍노) : 우뢰 소리가 어러 차례 허공을 뒤흔든다.
兒童報我來(아동보아래) :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알리기를
入郭及未雨(입곽급미우) : 비오기 전에 성으로 들어가시라 하네
我言天地內(아언천지내) : 나는 말하기를, 이 천지 사이에
浮生信如寓(부생신여우) : 덧없는 인생 붙어사는 것 같으니
彼此無眞宅(피차무진택) : 어딜 가나 참된 내 집은 없고
隨意且相住(수의차상주) : 마음 따라 가다가 멈추면 그만인데
何必戀洛塵(하필련락진) : 하필이면 성중의 티끌을 못 잊겠는가.
局促首歸路(국촉수귀로) : 소견 좁게 돌아갈 길을 향할 건가
換酒傾一壺(환주경일호) : 사온 술항아리를 다 비우니
胸膈無細故(흉격무세고) : 가슴에 아무런 생각 없어라.
頹然臥前榮(퇴연와전영) : 그냥 쓰러져 평상에 누웠으니
萬木蒼煙暮(만목창연모) : 온갖 나무에 푸른 연기만 저물어 가는구나.
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3(초당단거화자미신임초옥운3)-초당에 살며 두보의 시에 화운하다-李奎報(이규보)
漸漸階苔紫(점점계태자) : 여기저기 섬돌엔 이끼 푸르고
茸茸徑草靑(용용경초청) : 길섶에는 푸른 풀 수북하구나
殘生浮似夢(잔생부사몽) : 남은 인생 허무한 삶 꿈과 같고
破屋豁於亭(파옥활어정) : 허물어진 초라한 집, 정자보다 넓구나
不省室囊倒(불성실낭도) : 빈 주머니 사정 생각 않고
猶嫌一日醒(유혐일일성) : 하루라도 술 깬 인생 오히려 싫어라
詩成誰復愛(시성수복애) : 시를 지어도 누가 다시 보아줄까
自寫枕頭屛(자사침두병) : 스스로 베개머리 병풍에 적어둔다
적의(敵意)내 마음대로-이규보(李奎報)
獨坐自彈琴(독좌자탄금) : 혼자 앉아 거문고 타면서
獨吟頻擧酒(독음빈거주) : 시를 읊으며 자주 술을 마시노라
旣不負吾身(기불부오신) : 이미 내 몸도 가누지 못하고
又不負吾口(우불부오구) : 내 코도 가누지 못하게 되었네
何須待知音(하수대지음) : 어찌 반드시 친구를 기다리고
亦莫須飮友(역막수음우) : 또 함께 마실 벗이 있어야 하나
敵意則爲歡(적의칙위환) : 기분에 맞으면 그게 곧 즐거움인 것을
此言吾必取(차언오필취) : 이 말을 내 반드시 좇으리라.
春暮江上送人後有感六言(춘모강상송인후유감육언)-늦은 봄날 강가에서 사람을 보내며 느낌이 있어 -李奎報(이규보)
暮春去送人歸(모춘거송인귀) : 늦은 봄날 가시는 이 보내고 돌아오니
滿目傷心芳草(만목상심방초) : 눈에 가득한 향기로운 풀을 보니 마음 아파라.
扁舟他日歸來(편주타일귀래) : 다른 어느 날 조각배 돌아오면
爲報長年三老(위보장년삼노) : 뱃사공에게 알려 주리라
煙水渺瀰千里(연수묘미천리) : 물안개 낀 강 아득하여 천 리인데
心如狂絮亂飛(심여광서란비) : 마음은 버들강아지처럼 어지러이 날리네.
何況落花時節(하황락화시절) : 하물며 꽃 지는 이 시절에
送人能不依依(송인능불의의) : 고운 이 보내고 서운하지 않을까
殘霞映日流紅(잔하영일유홍) : 노을에 석양 비쳐 강물 붉게 흐르고
遠水兼天鬪碧(원수겸천투벽) : 멀리 흐르는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름을 다투네.
江頭柳無限絲(강두유무한사) : 강가 버들 휘늘어진 가지들
未解絆留歸客(미해반유귀객) : 가는 이 얽매어 떠날 줄 모르네.
차이시랑수부화울회시(次李侍郞需復和鬱懷詩)-시랑 이수가 다시 화답해 온 “울회시”를 차운하다 -이규보(李奎報)
身老病得攻(신로병득공) : 몸은 늙었는데 병까지 드니
不奈胸沈鬱(불내흉심울) : 내 가슴이 답답하니 어찌하랴
時時頗自慰(시시파자위) : 항상 조금씩 스스로 위로는
唯是杯中物(유시배중물) : 오직 이 술 한 가지뿐이도다
尙未足豁然(상미족활연) : 아직 마음에 시원하지 못하나니
只此手端一筆奔騰天地如驥逸(지차수단일필분등천지여기일) : 오직 손안의 한 자루 붓이
달리는 기마처럼 천지를 휩쓸어 달리는 것이로다.
因睹子之詩(인도자지시) : 이에 그대 보낸 시구를 살펴보니
穿天又出月(천천우출월) : 하늘을 뚫고 달은 또 떠오르는구나.
起予者迺君(기여자내군) : 나를 흥기시킨 자 곧 그대이니
捨君誰復噵我平生一一皆具實(사군수복도아평생일일개구실) : 그대가 아니면 누가 다시
내 평생을 인도하여 일일이 진실할 수 있을까
翁雖縮凍龜(옹수축동구) : 이 늙은이 마치 추위에 움츠린 거북 같으나
中有所難屈(중유소난굴) : 속에는 꺾지 못할 바가 있도다.
복고가(李奎報)-이규보(李奎報)
君不見豪家子弟宴華屋(군불견호가자제연화옥) : 그대는 못보았나, 부호 자제들 화려한 집 연회를
撾鍾擊鼓間絲竹(과종격고간사죽) : 종 치고 북 두드리며 간간이 줄 퉁기고 피리 분다.
城西先生獨不然(성서선생독불연) : 성 서쪽 선생은 홀로 그렇지 않으니
醉後高歌鼓大腹(취후고가고대복) : 취하면 노래 부르며 큰 배를 두들긴다.
是中可容數百人(시중가용수백인) : 이 안에는 수백 사람 수용할 수 있고
亦能貯酒三千斛(역능저주삼천곡) : 또 삼천 섬의 술도 저장할 수 있다.
膏田得米釀醇醅(고전득미양순배) : 기름진 밭에 쌀 얻어 좋은 술 빚어
數日微聞香馥馥(수일미문향복복) : 며칠 만에 맡아보니 향내가 물씬 풍긴다.
何必壓槽絞淸汁(하필압조교청즙) : 어찌 반드시 틀로 걸러 진국물 짜내야 하나
頭上取巾親自漉(두상취건친자록) : 머리 위의 두건 벗어 내 손으로 걸러야지.
一飮輒傾如許觥(일음첩경여허굉) : 한번 마심에 문득 양껏 마시고
佐以辛蒜或腥肉(좌이신산혹성육) : 야채나 고기로 안주를 한다.
腹爲皮鼓手爲搥(복위피고수위추) : 배는 북이 되고 손은 북채 되어서
登登終日聲相續(등등종일성상속) : 둥둥둥 종일토록 소리가 계속된다.
隴西窮叟得酒少(롱서궁수득주소) : 언덕 너머 궁한 늙은이 얻은 술 적어
矮屋低頭鶴俛啄(왜옥저두학면탁) : 작은 집에 머리 숙여 학이 머리 숙여 쪼듯한다.
腹如椰子猶未充(복여야자유미충) : 배는 야자 열매만하나 여전히 채우지 못하니
只見靑盤堆苜蓿(지견청반퇴목숙) : 보이는 것은 푸른 소반에 비름나물뿐이다.
暫盛水醬俄復空(잠성수장아부공) : 잠시 장물로 채우지만 이내 곧 다시 배 고파
有如蹶鞠氣出還自縮(유여궐국기출환자축) : 공에 바람이 빠지면 쭈그러짐과 같다.
那將雷吼飢腸聲(나장뢰후기장성) : 어찌하면 우뢰같은 굶주린 장에서 나는 소리 가져다
往和先生鼓腹太平曲(왕화선생고복태평곡) : 선생이 배 두들기며 부르는 태평곡에 맞출까.
방각월사(訪覺月師)-각월 스님을 방문하여-이규보(李奎報)
步步行隨入谷雲(보보행수입곡운) : 걷고걸어 구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서니
自然幽洞辟紅塵(자연유동벽홍진) : 자연스런 깊숙한 골짝, 세정을 멀리했구나
已將蚊雀觀鍾釜(이장문작관종부) : 이미 봉록을 모기나 참새처럼 여기고
曾把螟蛉戲搢紳(증파명령희진신) : 일찍이 마디벌레나 잠자리 처럼 희롱했도다
俯仰歸來推幻化(부앙귀래추환화) : 굽어보고 올려보고는 돌아오는 것을 환화로 보고
死生得喪任天鈞(사생득상임천균) : 죽고 삶과 이해득실은 하늘에 맡겼도다
多師雪裏猶賖酒(다사설리유사주) : 고맙게도 선사가 눈 속에 술 사와
借與山中一日春(차여산중일일춘) : 산속의 하루 봄날을 빌려 주셨었구나
중구일(重九日)-중양절-이규보(李奎報)
去年尙州遇重九(거년상주우중구) : 지난해 상주에서 중구절을 지났는데
臥病沈綿未飮酒(와병침면미음주) : 병으로 오래 누워 술을 마시지 못했다
强携藜杖起尋僧(강휴려장기심승) : 억지로 지팡이 짚고 중을 찾아가
手撚寒香空自嗅(수연한향공자후) : 손수 향불 피워 스스로 향내를 맡았다
去年已去莫追悔(거년이거막추회) : 지나간 지난해를 뉘우친들 무엇하랴
却待今年作高會(각대금년작고회) : 올해는 좋은 모임 꼭 가지려 별렀건만
豈知今年又病手(기지금년우병수) : 뉘 알았으랴, 올해도 또 손병 나서
未趁好事時酒輩(미진호사시주배) : 좋은 시주 모임에 나아가지 못한다
亦復起飮嚼霜蘂(역복기음작상예) : 또다시 일어나 물 마시고 국화 씹으니
未能免俗聊爾耳(미능면속료이이) : 속됨을 못 면하고 그저 지낼 뿐이로다
山妻笑勸良足歡(산처소권량족환) : 아내 웃으며 권한 술도 정말 족히 기쁘니
何必登高爛慢醉(하필등고란만취) : 어찌 산에 올라 잔뜩 취해야만 하는가
書生命薄何足道(서생명박하족도) : 서생의 기박한 운명 어이 말하리오
佳節年年病中度(가절년년병중도) : 해마다 좋은 절기를 병중에 지나는구나
落日愁吟遶菊籬(락일수음요국리) : 석양에 울 두른 국화를 읊으며 소요하니
西風有信猶吹帽(서풍유신유취모) : 그래도 서풍은 신의 있어 모자에 불어온다
아삼백음주(兒三百飮酒)-아들 삼백이 술을 마시다-이규보(李奎報)
汝今乳齒已傾觴(여금유치이경상) : 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술을 마신다니
心恐年來必腐腸(심공년래필부장) : 앞으로 창자가 썩을까 마음으로 두렵구나
莫學乃翁長醉倒(막학내옹장취도) : 아비의 늘 취하여 넘어지는 일 배우지 말라
一生人道太顚狂(일생인도태전광) : 한 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하는구나
一生誤身全是酒(일생오신전시주) : 한 평생 몸 망친 것이 오직 이놈의 술이니
汝今好飮又何哉(여금호음우하재) : 너조차 마시기 좋아하니 어찌하랴
命名三百吾方悔(명명삼백오방회) : 삼백이라 이름한 일, 나는 이제야 뉘우치니
恐爾日傾三百杯(공이일경삼백배) : 네가 날마다 삼백 잔씩 마실까 두려워 한다.
憶吳德全(억오덕전)-오덕전을 생학하며-李奎報(이규보)
心將萬里長雲遠(심장만리장운원) : 마음은 하늘에 뜬구름과 멀어지고
淚逐空庭窓雨零(루축공정창우령) : 눈물은 빈 뜰의 창문에 빗방울처럼 쏟아진다.
一別君來誰與語(일별군래수여어) : 한 번 자네를 이별한 후 누구와 이야기하랴
眼中無復舊時靑(안중무복구시청) : 눈앞에는 옛날처럼 반가운 얼굴 아무도 없구나
送春吟(송춘음)-봄을 보내며-李奎報(이규보)
杳杳悠悠適何處(묘묘유유적하처) : 아득하고도 머나먼 곳 어디로 가나
不唯收拾花紅歸(불유수십화홍귀) : 한갓 붉은 꽃을 거둬갈 뿐 아니라
兼取人顔渥丹去(겸취인안악단거) : 사람의 붉은 얼굴빛까지 가져가 버리네
明年春廻花復紅(명년춘회화복홍) : 명년 봄이 돌아오면 꽃은 다시 붉겠지만
丹面一緇誰借與(단면일치수차여) : 붉은 얼굴 한번 검어지면 그 누가 다시 빌려줄까.
送春去春去忙(송춘거춘거망) : 봄을 보내려니 가는 봄은 너무 바삐 떠나거늘
空對殘花頻洒涕(공대잔화빈쇄체) : 부질없이 남은 꽃 바라보고 자주 눈물 뿌리네.
問春何去春不言(문춘하거춘불언) : 봄아 어딜 가나 물어도 봄은 대답이 없고
黃鸎似代春傳語(황앵사대춘전어) : 누른 꾀꼬리 봄 대신 말을 전하는 듯하지만
鶯聲可聞不可會(앵성가문불가회) : 꾀꼬리 소리 듣기는 해도 이해할 수 없으니
不若忘情倒芳醑(불약망정도방서) : 정 잊고 좋은 술에 취하는 것이 제일 좋아라.
好去春風莫回首(호거춘풍막회수) : 봄바람을 잘 보내고 미련을 갖지 말자
與人薄情誰似汝(여인박정수사여) : 사람에게 박정함이 그 누가 너와 같으랴.
和宿天壽寺(화숙천수사)-천수사에 묵으며 화답하다-李奎報(이규보)
百花相倚鬪輕盈(백화상의투경영) : 온갖 꽃 서로 다투어 피면
準擬同君醉太平(준의동군취태평) : 그대와 함께 취하려 했었네.
嘉節無端揮淚別(가절무단휘루별) : 좋은 시절 까닭 없이 눈물로 이별하고
亂山何處皺眉行(난산하처추미행) : 여기저기 어지러운 산들은 어디로 가는가.
玉川文字五十卷(옥천문자오십권) : 옥천 노동(盧仝)은 오천 권의 글을 남기고
魯望生涯三十楹(노망생애삼십영) : 노망 육귀몽(陸龜蒙)은 삼십 간의 집뿐이었다네.
曾是少年爲客處(증시소년위객처) : 일찍이 소년 시절에 노닐던 곳이니
逢人問我舊姓名(봉인문아구성명) : 사람 만나거든 나의 옛 이름 물어보게나.
春曉醉眠尹學錄韻(춘효취면윤학록운)-봄날 새벽 취하여 자다가 윤학록의 운으로-李奎報(이규보)
睡鄕偏與醉鄕隣(수향편여취향린) : 꿈속과 취중은 이웃이니
兩地歸來只一身(양지귀래지일신) : 두 곳에서 깨어 돌아오니 내 한 몸일 뿐
九十日春都是夢(구십일춘도시몽) : 구십 일 봄날도 모두 꿈일 뿐
夢中還作夢中人(몽중환작몽중인) : 꿈속이 도리어 취한 인생이네
한국 술 속담
1. 모주장사 열바가지 두르듯: 얼마 되지 않으나, 하나하나 겉으로만 많은체 하는 것
2. 술과 안주를 보면 맹세를 잊는다:
술 즐기는 사람은 늘 술이 몸에 해롭다 하여 끊으려고 하나 보기만 하면 안 먹고 못 견딘다는 뜻
3. 술덤벙 물덤벙:모든 일을 무턱대고 경거망동함을 이름
4. 술 냄새나는 주전자: 상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허망한 일을 바랄 때 이르는 말
5. 술은 괼 때 걸러야 한다: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최적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때 해야한다는 뜻
6. 술은 초물에 취하고 사람은 후물에 취한다:
술은 처음 마실 때부터 취하나, 사람은 한참 사귀고 나서야 그 사람의 장점도 발견할 수 있다는 뜻
7. 술익자 체장수 온다: 우연히 잘 맞아 감을 말한다.
<전(全) , 박(朴) 두 유생의 화담을 받고 다시 차운하다>
구구한 이 한 항아리 술로
마치 칠년 대한을 해소하려는 격이라
그 누가 큰 바닷물을 끌어와서
나의 마른 입술을 축여 줄까
<눈 속을 찾아온 벗에게>
구슬과 돈더미는 전당에 쏟아졌고
황금은 미오에 쌓이 걸 보았었지.
부귀는 마치 뜬구를 같아
한번 흩어지면 쓸어 버린 듯 없어지지만
취중의 마음만은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다네.
내 집에 있는 술 강물과 같아
배 띄울 만하니
촛불 잡고 밤새 놀기도 사양치 말고
천 섬의 술 실컷 마셔나 보세.
<귀했거나 천했거나 모두가 똑같아라>
글 짓는 사람이란 본래 느낌이 많아
나뭇잎 하나 보고도 가을이 온 거러 놀라네.
아직 더위가 남아 있다곤 하지만
새벽이 들면 두터운 갖옷 생각난다네.
어제만 해도 남녘 시냇물에서 미역 감으며
물에 뜬 갈매기처럼 헤엄도 쳤는데.
오늘 아침에 그 푸른 시냇물 보니
찬물에 가까이 가기가 벌써 꺼림칙해라.
시절이 날마다 달라지고
흐르는 세월은 멈추지 않아.
검은 머리까지 흰 머리로 바뀐다네.
우리 인생이라는 게 잠시 붙어 지내는 것
백년을 가다 보면 벌써 끝나려 하거늘.
무엇하러 머리 내민 쥐가 되어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망설이기만 하는가.
한 치 조그만 가슴속에만
끝없는 시름을 답답하게 품고 있는가.
애초의 뜻대로 힘을 기울여서
세상의 자리라도 용감히 따내게나.
아니면 인간의 본연으로 돌아가
논밭에 앉아서 농사일에나 힘쓰게나.
해마다 백 섬의 술을 담근다면
일생 동안 술 언덕에서 늙어갈 수 있겠지.
죽어서 소나무 밑 한 줌 흙이 되기엔
귀했거나 천했거나 모두가 똑같아라.
<절화음(折花吟)>
꽃가지 꺽어 술잔을 헤었더니
꽃가진 남았는데 사람 먼저 취해 버렸네
청하노니 꽃송이 많은 가지 남겨두면 어떠리
주객들이 내일 또 오는 것을 어찌 방해하랴
<무주(無酒)>
내 본래 술 즐기는 사람이라
입에 잔 뗀 적 없었네
비록 함께 마실 손 없으나
독작도 사양치 않는다오
항아리에 익은 술 없으니
마른 입을 무엇으로 적시리
지난 서울 시절 생각하니
월급은 쓰고도 남았네
이만한 독에 술 빚어 놓고
잔 들기 그칠 때 없었지
집 술이 더러 이어대지 못하면
사온 술로 기쁨을 만족시켰네
슬프다 계양을 지키는 사람
월급이 적어 술 빚기 어렵네
몇 집 안되는 쓸쓸한 시골에
어느 곳에 청기가 있을는지
또한 일 좋아하는 사람 없어
술 싣고 좇아오지 않네
단정히 당 위에 앉아
온종일 홀로 턱만 괴고 있네
이미 쫓겨난 신하 되었으니
기갈됨이 진실로 마땅하구나
어찌하여 부질없이 한하면서
이 짧은 눈썹을 징그리는가
입 벌려 억지로 큰 웃음치니
웃음이 식어서 도리어 슬프네
이 말을 경솔히 누설치 말라
들은 사람 마땅히 비웃으리라
<술이 없어서>
목마른 생각이 왜 갑자기 일어나노
술 떨어진 빈 항아리 집구석에 누�구나
매실을 생각만해도 목마름이 그쳤다던데
어째서 물 마셔도 시름 없어지지 않나
<우중에 초청되어 술을 마시며 또 앞의 운으로 시를 지어 줌>
바둑은 강적을 만나야 기쁘나니
조기를 빼앗고 붉은 기 세우려 하네
그대 위축되어 오래 오지 않아서
죽창 아래 외로이 등잔불만 속였네
손이 오지 않아 술잔에 먼지만 끼고
문에는 거미줄만 어지러이 얽히었네
피지 않은 홍도는 더 입술을 다물고
피려는 붉은 살구도 다시 빛을 잃었네
은빛 소나기 하늘을 꽉 메위 내리니
읊조리는 소리만 은연히 떨리도다
청춘의 하루를 차마 헛되이 보내랴
이 태백(李太白)은 삼백 잔도 기울였다네
이런 때 찾아오지 않음은 진정 어질지 못한 일
독안엔 한갓 술방울만 떠돌리라
그대 몸 아껴 마시지 않으려지만
그대 이웃에 술 찾는 이 있다 하니
손 잡고 함께 오지 않으려는가
오기만 학수고대 기다리겠소
<병을 앓은 뒤 술을 마시다>
병후에는 술 마실 수 있어
오늘 아침 한잔을 들이켰네
사람들이 병에 대해선 묻지 않고
우선 술이 있고 없는 것부터 묻네
<갓이 되매 박생(朴生)의 동산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평주(平州) 양 공로(梁公老)를 전송하며 황(黃)자 운(韻)으로 짓다>
~전략~
술 마시는 창자가 텅 비어서
바닷물을 잔에다 붓는 듯하네
몸은 조그마한 집에 담고있지만
마음은 하늘을 나는 대붕이라네
우리집에 술 막 익을 땐
그대 맞아 몇 번이나 취했던가
그대 집에 달빛 좋을 젠
날 불러 한 침대에 잤었지
<꽃술(花酒)>
술은 시가 되어 하늘을 뛰어다니고
이곳에는 미인의 영혼인 꽃도 있구나
오늘밤 술과 꽃이 있으니
참으로 귀인과 더불어 하늘로 오르는 듯하네
<술 한 잔에 젊어지네>
아름다운 술 한 잔이 마치 선약같아서
다 시든 얼굴도 소년처럼 붉게 하네.
신풍을 향하여 늘 곤드레 취한다면
인간세계 그 어느 날이 신선 아니랴.
<두가지 경제로 시를 지어 벗에게 주다>
연 나라가 연 나라를 쳤듯이
벗에게 술과 색을 삼가라 하네
사람을 고혹하는 것은 색보다 더한 것 없으며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 술보다 더한 것이 없다오
장부는 몸 아끼기를 귀히 여기나니
자네는 주색을 끊을 수 없겠는가 하였더니
그는 답하기를 자네의 말은
하나도 내 마음에 맞지 않네
재미없이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즐겁게 살다가 죽으려네
인생은 반드시 죽고 마는 법
오직 선후의 차가 있을 뿐이네
삶함니 즐겁다고 말하지 마오
죽음 또한 그런지 누가 알겠나
참으로 고생스럽게 산다면
죽어서 편하기를 도모할 걸세
어찌 사는 것을 중히 여겨서
쓸쓸하게 몸 하나만을 지키겠는가 하네
그대의 말은 내 생각과 다르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주색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
반드시 내 말을 오활하다 하리
<식주(食酒)>
우정국(于定國)이 술을 잘 먹어서[食酒]
두어 섬에 이르러서도 취하지 아니하였다 했고,
유종원(柳宗元)의 서음(序飮)에도 역시,
"내가 비병(痺病)에 걸려서 술을 잘 먹지 못하다가[不能食酒] 이에 이르러 취했다.
" 하였는데, 사람들은 술이란 먹는다[食]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의심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음(飮)이란 글자는 육서(六書)로 보면 바로 해성(諧聲)이니,
훈은 식(食) 변을 따르고 흠(欠) 성(聲)이다.
상고에는 이 글자가 없었는데 흠(欠)자를 추가함에 이르러 물을 마시는 음(飮)이 되었으나,
흠(欠)은 기(氣)를 들이마시는 것이니 기(氣)로써 들이마셔서
먹는 것이 음(飮)이므로 역시 식(食)에서 이탈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일식(日蝕)의 식(蝕)도 충(충)자를 가(加)했지만
일식(日蝕)이라 이르는 것이니,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공자(孔子)는, "고주(沽酒)와 시포(市脯)는 먹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니
경(經)에도 이미 나타나 있는 것이다.
<오월 그믐날 술을 보내 준 이학사(李學士)에게 주필(走筆)로 써 주다>
적막하고 썰렁한 집 오는 손 없는데
술 갖고 찾아와 누가 나를 위로하랴만
그대만은 아직도 옛 친구 잊지 않고
친절하게 한 병의 맑은 술 보내었구료
거르지 않은 술이라 맑게 가라앉아
출렁이는 거품 꺼졌다 다시 차누나
꼭 마른 입술 축일 욕심에서가 아니라
아직도 늙은 문생 잊지 않은 그대가 고맙네
<장미꽃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전이지에게>
지난해 꽃을 심을 때도
그대 마침 찾아왔었지.
두 손으로 진흙당을 파주고는
술을 마주 나무며 거나하게 취했었지.
올해도 꽃이 한창 피자
그대 또 어디에선가 찾아왔구려.
꽃이 그대에게만 유독 두터이 대하니
혹시 전생에 빚진 일이라도 있었던가.
심던 그날에도 술을 들었으니
흐드러지게 핀 오늘이야 어찌 안 마시랴.
이 술을 그대 사양하지 말게
이 꽃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네.
<꽃은 예처럼 붉게 피었건만>
지난해 동산에 피었다 진 꽃떨기는
올해도 그 동산에 예처럼 붉게 피었건만,
지난해 꽃 아래서 놀던 사람이
올해는 그 꽃 아래 백발 늙은일세.
꽃가지는 해 바뀌어도 줄지 않으니
해마다 늙어 가는 사람을 비웃으리라.
봄바람도 저물고 피었던 꽃도 가버릴 텐데
꽃 바라보며 걱정하지는 마세나.
내가 노래하고 그대가 춤추면 맘껏 즐거울 텐데
인생 행락을 왜 않겠나.
우리를 미치광이라 남이야 하든 말든
어서 빨리 천 잔 술을 마시고 노세.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유랑이 술 마실 때면 꽃향기 찾던 것을.
내 알건대 그 풍정이 소년과도 맞선다오.
또 보지 못했던가 동파거사는 늙어서도
꽃 꽂고 아니 부끄러웠다는 말을.
취한 걸음 지팡이에 의지해 사람들이 웃었다오.
예부터 흥이 나려면 술잔뿐이니
달 보며 술항아리 기울이길 사양 말게나.
<속장진주가(續將進酒歌)>
쪽빛 술아 너에게 말하노니
평생토록 서로 만나기를 꺼려 마오
청춘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이 몸 위태함이 아침 이슬 같구나
하루아침에 이 몸 죽어 소나무 아래 무덤 되면
천고만고에 뉘 날 찾아주리
하염없이 나는 것은 쑥덤불이요
부르지 않아도 오는 것은 여우와 토끼리라
술은 평생 손 위의 물건이지만
그 누가 굳이 와서 한 잔 따라 주려나
달통하였도다 유 백륜이여
몸소 술 싣고 같이 취하였구나
그대여 이 말 듣고 술 사양치 말지어다
유 영의 무덤 위에 술 이르지 못하나니
<영국(詠菊), 동국이상국전집>
춘삼월 봄바람에 곱게 핀 온갖 꽃이
한 떨기 가을국화만 못하구나
향기롭고 고우면서 추위를 견뎌 사랑스러운데
더구나 술잔 속까지 말없이 들어오네
<취가행(醉歌行)>
하늘이 내게 술 못마시게 할 양이면
아예 꽃과 버들 피어나게 하질 말아야지
꽃 버들이 아리따운 이때 어이 안 마시리
봄은 나를 저버릴망정 나는 그리 못하리
잔 잡고 봄 즐기니 봄 또한 좋아라
취하여 손을 휘두르며 동풍에 춤추네
꽃 또한 웃는 얼굴로 아양 떨고
버들 또한 찌푸린 눈썹 펴는구나
꽃 버들 구경하여 큰 소리로 노래부르니
백년 덧없는 인생 내것이 아니로세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천금을 뿌리지 않고 어디에 쓰려고
남을 위해 쥐고서 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