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이 마지막 빅리그 유니폼을 입었던 것은 2008년 봄 피츠버그 캠프였습니다. 2년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재기를 노립니다.ⓒ민기자닷컴
2년간 은둔했던 김병현(31ㆍ애칭 BK)이 드디어 빅리그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접했습니다.
그
의 유니폼 입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8년 2월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에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스프링
캠프장이었습니다. 취재를 갔을 당시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코칭스태프와 약간 어긋나는 일이 있더니 얼마 후에 방출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아쉽게도 그 후론 BK의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팀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고, 만 29세의 한창나이에 BK는 본의 아니게 은퇴 아닌 은퇴로 야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후로도 WBC 출전 불발의 해프닝이 있었고, 국내 프로야구나 일본 프로야구 진출 등은 자신이 고사해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BK에 대한 추억은 많습니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의 빅리그 데뷔전입니다. 1999년 5월30일(이하
한국시간) 당시 스포츠조선 특파원이던 기자는 애틀랜타로 박찬호 취재를 갔다가 김병현의 빅리그 승격 소식에 갑자기 일정을 바꿔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메츠의 홈구장 셰이스타디움에서 만난 김병현은 갓스물의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불과 2개월 만에
마이너리그를 평정한 그를 벅 쇼월터 감독은 빅리그로 호출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전격적인 데뷔전마저 치르게 하는 파격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6시 22분, 김병현의 오른팔이 번쩍 올라가는 순간에 한국 야구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아로새겨졌습니다.
그날 경기는 난타전이었습니다.
9회 초까지 8-7의 박빙의 리드를 지킨 애리조나의 쇼월터 감독은 9회 말 전격적으로
BK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 누구도, BK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습니다. 애초 8회에 BK를 올리려던 쇼월터는
마음을 바꿨고, 결정적인 순간에 스무 살 루키의 빅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했습니다. 메츠 더그아웃이 술렁이는 기색이 기자실에서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반응은 ‘도대체 저 꼬마는 누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타순은 이날 3안타를 몰아치며 절정의 타격 감각을 과시한 2번 에드가도 알폰소와 정교한 타격의 3번 존 올루드, 그리고 힘과 기술을 겸비한 4번 마이크 피아자였습니다.
사
상 처음 빅리그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다소 긴장한 듯 알폰소에게 1-3까지 몰렸습니다. 그러나 5구째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았고, 연속 파울볼이 두 개 나온 후에 8구째 126km 슬라이더를 던져 중견수 플라이 아웃을 잡았습니다.
이어 나온 올루드는 그날 5회에 2점포를 터뜨렸지만 4구 만에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습니다. 131km 커브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피아자와의 대결이었습니다.
1회에 2루타를 치는 등 2타점을 올린 피아자를 맞은 김병현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과감한 승부를 펼쳤습니다. 초구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후 2구째 슬라이더는 파울. 2-0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김병현은 곧바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날 가장 빠른 150km의 강속구에 피아자의 배트가 밀리며 파울. 4구째
슬라이더가 다시 파울이 되자 김병현은 회심의 솟아오르는 커브를 던졌습니다. 힘차게 돌아간 피아자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습니다.
방망이와 공이 30cm쯤은 차이가 날 정도로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삼진을 당했습니다.
빅리그 데뷔전을 세이브로 장식한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BK는 당시 빅리그 로스터에 포함된 750명 중에 최연소였습니다.
그날 김병현의 인터뷰를 그대로 소개합니다.
[김병현인터뷰] "전혀 떨리거나 두렵지 않았다"
-우선 소감은.
▲꿈에 그리던 피아자를 직접 상대한 것은 기념할만한 일이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떨리거나 두려움은 없었나.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 -불펜에서 운동장으로 나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던데.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고 흥분도 됐다.
-알폰소에게 공 하나를 던지고 난후 포수 밀러가 마운드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
▲사인이 좀 틀린다며 다시 정리해 주었다.
-마운드에서 몸을 풀 때 메츠 발렌타인 감독이 나와 글러브가 위반인지를 따지며 신경전을 폈을 때 신경이 쓰였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주황색 글러브의 색깔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고 들었다.
-타선이 메츠의 최고타자들이었다는 것은 알았나.
▲피아자와 올루드가 어떤 타자들인지는 알고 있다.
-알폰조에게 볼카운트 1-3로 몰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마운드에 올라가면 정면승부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되새겼다.
-무슨 공을 주로 던졌고 피아자를 삼진으로 잡은 구질은.
▲직구를 많이 던졌고, 피아자에게는 마지막에 떠오르는 커브를 던졌다.
-한국선수로는 첫 메이저리그 세이브인데.
▲그때는 몰랐지만 너무 기분이 좋다.
-첫 타자 알폰조가 계속 공을 커트할 때 떨리지는 않았나.
▲타자들은 공을 치러 타석에 들어오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던졌다.
-언제 등판통보를 받았으며 오늘 출전할 예상은 했는가.
▲7회 말에 몸을 풀라고 하고 8회 말에 등판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왜 던지게 하지 않나하고 생각했었다. 투구수 30개 정도로 몸을 풀었다.
-이 소식을 누구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가.
▲어머니와 아버지께 전하고 싶다. 전화를 하겠다. [뉴욕=민훈기 특파원]
2007년 9월 말 말린스에서 마지막으로 빅리그 마운드에 올랐던 김병현은 체력, 정신력, 감각 회복 등 넘어야할 벽이 많지만 재기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순(純)스포츠 |
짧은 인터뷰지만 빅리그 데뷔전을 세이브로 장식한 BK의 성격이 묻어나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무신경하면서도 공격적인, 마무리 투수로는 아주 이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
후에도 BK는 투구 중에 반창고가 떨어져 퇴장당하는 해프닝도 겪었고, 애리조나의 특급 마무리로 성장하면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2001시즌 맨타이의 부상으로 마무리를 맡은 김병현은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 통한의 홈런포를 거듭 허용하며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는 보란 듯이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72게임에 등판해 66번이나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면서 8승3패에 36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평균자책점이 2.04였습니다.
그
러나 선발 전업한 2003 시즌 중반에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됐고, 그 후 손가락 욕설 사건 등으로 이미지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 해 4월15일 선발로 나섰던 콜로라도 전에서 프레스턴 윌슨의 부러진 방망이에 맞아 오른쪽 발목을 다치면서
제대로 완치되지 않은 가운데 성급하게 복귀했다가 오래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콜로라도와 플로리다를 거치면서 그의 선발에 대한 도전은 계속됐고, 2007년에는 처음으로 10승 고지에 올라 절반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
러나 ‘선발 투수 김병현’은 기복이 심했습니다. 선발 전업을 선언한 2003년 그의 평균자책점은 3.31이었고, 많이 뛰지 못한
2004년(6.23)은 그렇다 치더라도 2005년 4.86, 2006년에는 5.57, 그리고 2007년에는 10승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 6.08까지 나빠졌습니다.
2003년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된 후 다시 마무리도 돌아 16세이브를 기록한 BK는
당시에 이미 86세이브를 기록한 최강 마무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박찬호는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 투수로 계속 뛰었다면 지금쯤
300세이브 이상 올리면서 계속 전성기를 구가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을 보냈던 BK가 이제 다지 빅리그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나이나 상황으로 볼 때 마지막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도전의 길은 대단한 험로가 예상됩니다.
우
선 2년 공백을 딛고 다시 빅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능력을 스프링 캠프에서 보여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2007년을 푹 쉰 김병현은 2008년에는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잠시 운동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몸을 비교적 잘 만들었습니다. 2003년 부상 이후 흔들렸고 기복이 심했던 밸런스를 잡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에이전트 폴 코브는 ESPN과 인터뷰에서 ‘BK는 빅리그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적으로는
준비가 됐다고 스스로 판단한다.’라고 밝혔습니다. 2년간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본다면 오히려 재충전의 기회였을 수는 있습니다.
훈련에 관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BK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체력적인 면과 감각적인 면은 차이가 있습니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마운드에서 필요한 근육을 다시 보강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프링 캠프가 절대 쉬울 리는 없습니다.
또한 경쟁은 말도 못하게 치열합니다. 자이언츠 캠프에는 30명의 투수가 뛰어듭니다. 그중에 16명이 40인 로스터에 포함돼 있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그중에 11~12명 안에 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불펜의 빈자리는 하나나 둘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한, 두 자리를 놓고 약 20명이 경쟁을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BK
가 얼마큼 빨리 실전 감각을 찾고 경쟁력을 보이느냐가 생존을 결정하게 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타자를 맡길 수 있다는 확신을
코칭스태프에 심어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범 경기의 실전 테스트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관건인데 빨리 캠프에 참가해
시뮬레이션 피칭 등 타자들을 많이 상대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체력이나 감각만큼 또 중요한 것은 정신자세입니다.
BK가 2년 전 빅리그에서 탈락한 이면에는 억울한 점이
있습니다. 불펜 피칭의 시간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두 번 연속으로 이른 아침의 피칭 세션에 참가하지 못했고, 그것이
불성실하다는 코칭스태프의 판단으로 이어지면서 방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BK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빅리그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BK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손가락 욕설 등 구설에 오른 사건 때문도 있지만 몸담았던
팀에서 일부 동료나 구단에 비친 그의 모습은 ‘불성실하지는 않지만 너무 외톨박이고 팀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주종이었습니다. 장소
시간 불문 어디선가 잠을 잔다든가 또 늘 홀로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오해를 사 존재감이 많이 퇴색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동료와, 그리고 코칭스태프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고 동료의식과 일체감을 느껴야 합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야구는 아닙니다. 나도 잘해야 하지만 팀 일원으로서도 잘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야구입니다. 2년간 인고의
세월을 견딘 BK이기에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변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 빅리그 마운드에 서는 그를 다시 보려면 체력과 감각, 그리고 정신력이 모두 하나가 돼야 합니다.
그의 목표는
개막전 로스터 진입이 돼야 하지만 우선은 캠프에서 생존하고, 만약 빅리그에 당장 복귀하지 못한다면 마이너에서라도 기회를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실전 감각을 가다듬으면서 빅리그 진입의 기회를 잡으면 됩니다.
타고난 재능이나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아직 31세의 나이 등 BK는 재기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빅리그 마운드를 다시 호령하는 ‘한국형 잠수함’ 김병현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첫댓글 아직 우린 젊기에..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mlb에서 뛰는 모습 보고싶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