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게르만족님 말씀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신라가 백제, 고구려 유민들을 차별한 것은 기록상에 자세히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백제 유민, 고구려 유민들이 신라 안에서 여전히 부흥전쟁을 펴면서 신라를 괴롭히는 일이 기록에 엄연히 등장합니다. 백제의 경우 해적 집단 비슷한 무리들이 신라 말기에 신라를 괴롭혔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의 경우 안승의 일가였던 대문이 익산에서 부흥전쟁을 일으키려다 실패합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곧 그들 유민들은 신라가 자신들을 통치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후삼국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 저는 지역민들의 신라에 대한 반감이 없었고 그리고 그들이 그 국가들의 계승의식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들은 부흥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이 일
반적인 사건이 꼭 그 지역 전체가 그런 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부흥의식보다 신라에 대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 세력으로 그런 불만에 의해 반
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명분을 부흥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문은 부흥운동이 아니라 그런 처우불만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신라인이라고 그들이 가졌다는 증거는 신라방과 장보고입니다 알다싶이 신라방 주로 서해안에 거주한던 신라인들이 중국에 이주하여 세운 공동체입니
다 서해안 지역의 주민이 대체적으로 구백제인 구고구려인임을 볼때 이들이 그들의 원조국을 내세우지 않고 신라라는 명칭을 쓴 것은 우리가 기존에 아는 것처럼 신라
가 완전히 통합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장보고가 당의 무령군 소장이라는 높은 신분을 버리고 국내에서 봉사하겠다는 이유가 "우리 신라인
들이 노예로 파려나가는 것 때문이라고 홍덕왕에게 말합니다 장보고는 완도출신입거
나 그 금방 출신입니다 그 지역은 구백제의 지역입니다 장보고가 백제인이라는 것보다 자신을 신라인으로 여겼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라의 골품제는 고려, 조선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엄격합니다. 하다못해 신라의 평민들이나 6두품도 정치를 못하는데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낄 자리나 있었겠습니까?
->엄격하기는 고려 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은 아주 폐쇄적인 집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양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함경도의 사족은 양반대열에 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6두품은 신라중기 시대에는 신라의 왕권이 강할 시기에는 어느정도 등용이 됩니다 그리고 신라가 고구려 백제유민을 관리에 끼지 못했다
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라는 삼한통합을 내세웠고 신라가 그전에 가야유민들을 대거 등용한 사례(김유신 강수 우륵)로 보아 능력있고 신분이 높은자는
경주로 불러 김씨나 박씨같은 성을 주고 등용했을겁니다 예를들어 고구려 왕손인 고안승은 김씨성과 신라왕녀를 받고 진골귀족에 편입되었고(김유신의 일가와 비슷한
과정) 유력한 고구려 백제귀족도 그런 과정을 거쳐 신라에 편입되었을 겁니다 특히 경주로 불러 신라 귀족으로 만들었을겁니다 그외의 중급관리나 호족들 일개 지방성
주들은 6두품아래의 게층에 편입했겠죠 그래도 이들은 하급관리로도 진출을 했습니다 꼭 신라가 차별을 했다고 볼수는 없다고 보고 폐쇄적이라고 단정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고려시대의 차별 관련 문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님께서 생각하시는 바와 다릅니다. 고려 현종때 거란의 습격을 받아 남쪽으로 피신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 신하가 나서서 말하기를 "전주는 옛 백제로서 성조(聖祖)께서도 미워하셨으니 가지 마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종은 전주에 가지 않고 그 근처에 머무는 정도로 그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유독 고려 왕조가 백제 지역을 차별하였다는 방증입니다. 실제 고려사를 보면, 특이하게도 유독 옛 백제 지역에만 천민 거주집단이 있습니다. 굳이 나열하자면, 공주의 명학소가 있고 양수척이 있습니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요? 특히 양수척은 후백제가 멸망할때 아주 끝까지 고려를 괴롭혔던 사람들의 후예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백제지역을 차별한 것은 상상을 넘습니다. 조선시대는 자세히 공부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유독 황해도 지역만은 반골의 형상이 있다고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의 백제지역 차별 정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저는 무신정변을 일으킨 주역 가운데 하나인 이의방 또한 이러한 뒷 배경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려가 구백제지역을 차별했다고 보는 것은 오류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혜종의 어머니는 나주 오씨출신입니다 개국공신인 신숭겸은 전라도 곡성출신입니다 몇몇 신하
들도 공주 이남 출신입니다( 그외 아주 유명한 인물들이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기억이 나면 글을 오려 보겠습니다) 훈요십조는 조작되었을 설이 있습니다
현종이 전주로 간 것을 우려한 것은 당연히 고려와 심하게 경쟁한 후백제의 본거지이기 때문이지 그걸 지역차별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향 부곡같은 천민거주지는 구백제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 아주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고 천민이 그 대우에 반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은 경상도에서도 일어났습니
다 백제차별을 심하게 했다는 것을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무신정변은 무신에 대한 처우문제로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지 지역문제는 아닙니다 더구나 이의방 같
은 이가 중앙에 와서 무관으로 등용이라도 된 것을 보면 구백제출신에 대한 차별은 과장된 것입니다 다만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 처럼 그 지역을 차별하는 뻔한 문제이지요
게다가 고려(건국자가 궁예인), 백제(건국자가 견훤인)의 건국 주체는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분명합니다. 어디까지나 명분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들의 건국도 결국에는 고구려, 백제부흥전쟁의 결과의 산물입니다.
->꼭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한강유역은 본래 백제의 영토였고 그리고 궁예가 구백제의 영토인 태안반도까지 영유한 점을 볼때 물론 그 지역의 구국가에 대한 그런 계승
의식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 신라에 대한 불만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신을 통치하는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존재
로 그 지도자를 따랐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주지역의 고려와의 투항을 볼때 강렬한 계승의식보다 현실적인 정치가 우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구려, 백제 유민들이 신라인으로서 살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후삼국 즉 고려와 백제가 재건된 것은, 고구려와 백제 지역의 정서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왜 많은 분들이 정서를 무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서란 매우 중요합니다.
-> 그건 신라시대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 부흥운동이 일어났습
니다 네 지역정서가 남아있죠 하지만 신라나 고려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을때는 이 지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혼란하고 중앙으로부터 압박이 일어났을
때 야심가들이 내세우는 명분에 힘쓸렸다는 것이 더 튼 이유라고 봅니다
그럼 제가 한가지 묻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면, 옛 고구려지역에서 고구려의 정서가 같이 없어집니까? 절대 아닙니다. 고구려는 700년이나 있었던 대국입니다. 그런 나라는 멸망하더라도 정서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부흥전쟁이 끈질기게 일어났으며, 발해의 건국*발해부흥전쟁*궁예에 의한 고려 건국*고려시대 고구려부흥전쟁*요, 금의 고구려 계승의식 등은 분명히 고구려 부흥전쟁의 산물들입니다. 왜 모두들 이걸 애써 무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제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신라시대 해상 백제 세력, 견훤의 백제 건국, 고려시대 이연년의 백제부흥전쟁 또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고구려, 백제 부흥전쟁이 고덕무, 안승, 흑치상지, 부여풍 등의 실패로 완전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 백제는 우선 약 700년정도의 장구한 나라입니다 물론 그 정서는 없었지지는 않지요 하지만 부흥운동이 끊질게 이어진 이유는 부흥의식보다는 그 정복왕
조의 처우와 또한 그 왕조의 정치 경제적 안정성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지역의 정서만이 고구려 백제의 계승이 될 수는 없
습니다 알다싶이 인구이동이 있었고 신라가 고구려유민을 남쪽에 대량 이주시킨 점(대표적인 예 남원) 갸야유민을 충주에 이주시킨 점 그리고 장보고의 난 진압 후
그 주민을 거제도로 이주시킨 점등은 또 후대 시대 고려나 조선도 마찬가지 그 지역이 꼭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계승이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서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