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인
동네 뒷산에서 산친구와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약간의 찬바람, 아직은 '춘래불사춘'이라며 내가 속을 좁혔더니, 점심시간 무렵이 되자 따뜻한 햇살이 우리들을 위로했다.
우리들의 작은 배낭에서 나온건 김밥과 고구마, 생탁, 그리고 새우깡이다.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햇살받아 등 따스하고, 먹을 것 많아 배부르니...
내려다보이는 들판엔 군데군데 햇살 받아 빛나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미세먼지 흐릿한 시야 끝자락은 푸른 들판을 잠식한 아파트군이 자리를 잡았다.
이따끔씩 100세 인생에 도전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표정없이 산마루를 오간다. 산다는건 모두가 움직여야 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니 구강과 식도가 움직여야 하고, 원동기 피스톤처럼 동력전달을 위한 심장이 뛰어야 하며, 오장육부가 기계 움직이듯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기계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뇌하고, 활동하며 내구연한을 염려하여 기름을 치고 보험도 든다.
대화를 주고 받다가 문득 바라다 보이는 저땅들은 누구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중엔 부모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 잘사는 편인데도 가진자들을 미워하는 것을 보았다. 따지고 들면 무지한 나의 부모보다 영리한 그들의 부모는 일제때도 그랬고, 6.25 침략기에도 강한세력에 협조한 사람들이란 생각에 피식 웃었다.
결국엔 그들도 남들이 더 가지는 것을 못마땅해 여기는 '사촌 논사면 배아픈 심리'인 탐욕에 기인한 것이란 마음이 들어 씁쓸했다.
옛날 신께 예배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로 한 두 노인이 있었다. '에핌'은 부유하지만 의심이 많고, 율법에 얽매여 부자유한 목적지향적 농부였고, 다른 노인은 '엘리사'로 평범하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하고, 자유롭고 명랑하게 꿀벌을 치는 농부였다.
둘은 오래 전 성지순례를 맹세했지만, 상당한 경비가 필요했고, 끝없는 집안 일과 불성실한 큰아들을 걱정하며 에핌이 여행을 자꾸 미루자 엘리사가 설득했다.
"우리가 죽으면 자식들은 우리가 없이 살아야 하네.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모든 일은 결코 다 끝낼 수 없어. 이제는 우리의 영혼을 돌봐야 할때야."
그말을 듣고 에핌은 떠날 준비를 하며 큰아들에게 모든 일에 대해 명확한 지시를 내렸다.
엘리사는 마을을 벗어나자 모든 집안일을 잊고 어떻게 평화와 사랑 속에서 목적지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에핌은 아들을 믿지 못해 온통 집안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느 날 두 노인은 작년에 완전히 흉작이 든 어떤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목이 무척 말랐던 엘리사는 한 오두막집에 들러 물을 마신 뒤 에핌을 뒤따라가기로 했다.
엘리사가 들어선 오두막집,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한가족이 신음하고 있었다. 엘리사는 배가고파 우는 아이와 노파, 가족에게 배낭의 빵을 내어주고, 불을 지펴 수프를 끓여 식사를 제공했다. 사흘째 되는 떠나기로한날, 그들이 저당잡힌 땅마져 찾아주고 나니 돈이 떨어져 더이상의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편 에핌은 엘리사를 기다리며 혼자 여행길, 어느날 그리스도의 성묘가 안치된 예배당에서 가장 신성한 불이 타고있는 등불아래 엘리사가 우뚝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에핌은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그곳을 가서 엘리사를 만나려 애썼지만, 만날 수 없었다. 환상을 본 것이다. 그는 6주 동안의 의식만 치루었다.
집떠난 1년만의 어느 저녁, 에핌이 엘리사와 헤어졌던 바로 그 장소에 도착했을때 만난 어린 소녀가 오두막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순례자 한 분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이야기했다.
"우린 그분이 사람인지, 신이 보낸 천사인지 알 수 없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사랑했고, 우리 모두를 가련히 여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떠났어요. 그래서 우린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지요. 저희는 신과 사람들을 원망하며 절망한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저희를 다시 살리셨고, 그분을 통해 저희는 신을 알게 되었고, 인간에게 선(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핌은 그곳을 떠나 돌오는 길에 엘리사의 집을 지났다. 엘리사가 반갑게 맞이하며 잘 다녀왔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에핌이 "내 발이 그곳에 닿기는 했네만, 내 영혼이 보다 진실하게 닿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오두막집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엘리사는 화제를 바꾸며 '그건 신의 일'이라며 에핌에게 꿀을 대접했다.
에핌은 '신에 대한 맹세를 지키고 신의 뜻을 이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각자 살아가는 동안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것'임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위의 내용에서 에핌은 예정한대로 성지순례를 통하여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계산적인 돈을 썼지만, 엘리사는 성지순례를 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행경비를 모두 썼다는 것이다. 요즘은 그런걸 두고 누가 현명하다고 말꺼내기도 불편한 세상이다. 다만 톨스토이가 보는 견해에선 엘리사의 결정이 신에게 더 다가가는 마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두 노인', 이 소설을 쓴 러시아의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는 기적과 교회를 부정하여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그의 종교관은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산상수훈 : 마5-7)을 핵심으로 삼은 합리적인 기독교 아카니즘(Anarchism, 무정부주의자?)으로 정의된다. 톨스토이의 삶은 사유재산 부정, 청빈, 채식, 노동의 실천으로 알려졌다.
톨스토이 생각은 성경에서의 비유, 강도당해 피흘리는 사람을 두고 피해간 민족 중심세력인 제사장과 레위인보다, 그걸 보고 지나치지 못하고, 치료하고 보호해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에게 한결 더 치우쳐 있는 것 같다.
프랑스 빈민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는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라고 말했다.
어젯밤부터 터져 나오는 긴급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이란 폭격, 드디어 독재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는 뉴스다.
이러한 전쟁에 굳이 근원을 따지자면 종교전쟁이라 이름 붙여도 부인할 수 없겠으나, 결국은 그 나라 국민들이 그때마다 어리섞게 혹세무민 당하는 불행한 선택의 결과이다.
남의 나라를 침공하는건 그렇지만 독재자로부터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을 구하는 것은 다수가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 곳이든 그럴듯한 명분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는건 탐욕의 영역이다.
어쩌면 인간이란 신의 소모품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 그 용도가 끝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물들어 자신을 방치함은 세상에 뒤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