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6일 3살박이 아들을 푸시카트 위에 태운 채 입국하는 홍명보(34, 포항 스틸러스)를 보았다. 항상 솔직 담백한 선수로서 단촐한 이미지만 생각하다 명보의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일본 J리그의 4년 6개월간의 시간은 영원한 한국 축구의 '대들보'를 비켜가지 않았다. 단순 무식하게 '명보형'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명보의 국내 귀국은 예측된 것이다. 지난 여름 강남 포스코 사옥에 50M 크기의 명보 포스터가 장식될 때, 알만한 사람은 다 예상했다. 실제 포항으로 복귀를 요청받은 자리에서 명보는 화끈하게 "예,Sir~"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구단이 제시한 조건에 일절 토를 달지 않는 '백의 종군' 형식의 마음가짐이었다.
"지난 5년간 한국이 많이 그리웠다. 열심히 J-리그에서 활약해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 복귀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시기도 되었다. 포항으로 복귀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J-리그 이적할 그 순간부터다. 다른 팀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웃을 일이지만) 다른 어느 팀도 저의 복귀를 희망한 팀이 없었다. 국내 구단은 저는 100%, 포항 맨으로 보는 것 같다."
마음을 비운 홍명보에 대해 참으로 말이 많다. 일명 '홍명보 구설수'이다.
월드컵 대표팀 출전 가능성에 대해서, 부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활약한 한국 축구에 대한 업적과 역할에 대해서 "언론의 구설수"가 심하다고 한다. 표정 관리를 누구보다 잘하며 깍듯한 홍명보이지만 마음속은 상당히 불편한 상태이다.
"지난 컨페드컵이후부터 제가 대표팀에서 빠졌다. J-리그 출전과 피로 누적 , 부상의 위험때문에 8월부터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체코 전의 문제점으로 드러난 수비라인을 재 조직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계속 실험 하였다. 점차 한동안 지적된 수비진용도 안정되어 보이고 가능성있는 후배들도 많이 발굴되었다. 이런 와중에 일각에서 저를 대표팀 베스트11에서 제외 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히딩크 감독도 사석에서 언급하듯 저는 현재 100% 컨디션이 아니고 아직 저의 검증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너무 앞서 가는 것 같다. 특히 어떤 신문은 저하고 인터뷰한 적도 없는데 그런 내용의 기사가 버젓이 나고 있다. 섭섭한 정도를 넘어 불쾌한 기분이다.
사실 솔직 담백하며 예의 바른 명보이기에 그 정도였지 다른 선수였다면,,,
명보의 "불쾌하다'는 마지막 말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기자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되물음 이었다. 명보는 지난 J-리그의 5년 동안 단순히 선수로써 생활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 구단의 선진 노하우와 일본 기자들의 선수들에 대한 자세들도 눈여겨 보았다.
"선수=구단"이라는 명제아래 선수 중심으로 운영하는 구단의 모습은 "선수<구단"이라는 인식에 젖은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선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기자는 양반이요, 직접 취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사 쓴다고 알려주는 기자는 양식있는 기자"란 한국적 환경에 익숙한 그에게 일본 기자들은 너무 달랐다. 항상 '명보상'이라 동등한 자세에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기자들에게 '문화적 아노미' 현상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미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고 온 명보에게 요즘의 일부 언론의 '명보 흔들기'는 '불쾌함'의 최대 원인으로 보여 진다.
"선수는 평생 부상과 싸운다. 지금의 부상이 행운일지 불행일지 모른다.
몸 만들기가 잘되어 컨디션이 회복되면 훨씬 더 강한 명보가 될 것이고 회복이 늦어져 월드컵 대표 팀에 합류하기 어려워지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제 나이가 30대 중반이다. 항상 겨울 1,2달은 푹 쉬어야 시즌을 소화할 수 있는 상태이다. 2000년 12월 한일전, 2001년 1월 홍콩 친선대회, 그리고 이어서 오만 전지 훈련, 두바이 대회 참석 등 컨페드컵까지 연속 출장에다 소속팀 출전 등. 내가 돌이켜 생각해도 너무 무리했다. 히딩크 감독은 철저한 훈련과 자세를 강조하는 분이다. 훈련부터 실제 경기까지 몸이 부셔져라 뛰었다. 부상은 너무 무정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오래가고 있다. 혹사한 몸이 지금에서야 80%정도 끌어올렸다. 포항의 크로아티아 전지 훈련이 마무리되면 100%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꾸준히 훈련한 덕에 진짜 많이 좋아졌다."
명보가 요즘 몸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중요한 이유는 월드컵 대표팀으로 합류 때문이다. 홍명보는 이 점과 관련해서 명쾌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월드컵 대표팀 합류 여부를 평가할 사람은 오직 히딩크 감독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은 명보가 쌓아올린 지난 10년간의 공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컨디션과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본다는 점이다. .명보는 히딩크의 철학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몸 만들기에 그렇게 열심이고 꼭 찾아 올 한번의 기회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홀로 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뛰어난 분이다. 누구보다 선수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그러기 때문에 저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결론날 지 알 수 없지만 존중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감독에 일부러 맞추기 위해 저의 축구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점이다. 내가 만약 천수냐 태욱이, 그리고 종국이 같은 입장이거나 나이라면 저는 반드시 히딩크의 지시대로 바꿨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가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르다. 앞으로 남은 5개월만에 10년간 해 오던 것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과 스타일이 대표팀에 도움이 된다면 감독이 나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저는 태극 마크에 대한 집착하지 않는다. 대표팀에서 저의 몫을 다하는 것만큼 포항 구단에서 제가 기여할 일이 많다고 본다. 어찌 됐든 저는 빨리 베스트 상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홍명보가 태극 마크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는 생각에 동조할 수 없다.명보 본인이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지 더 이상 대표팀에서 명보가 필요 없다는 뜻에서 나온 판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속내'를 내보이지 않았지만 명보 본인은 지금 히딩크 감독이 그리는 대표팀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줄 모른다.
"최근 몇 명의 후배들이 인터뷰에서 저의 합류를 원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제가 가진 월드컵 출전 경험과 통솔력 들에 대해서 후한 평가를 한 것 같다. 사실 언론도 저의 그 점은 크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저는 최대 강점은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도 강조한 경기 조율과 지배라는 개념과 같은 것이다. 11명 모두가 베스트일 수는 없다. 그 중에서 한, 두 명은 팀을 위해 헌신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좋은 팀은 신구의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 져야 한다. 한 쪽에만 치우치면 문제점이 발생한다. 나는 경기를 지배하며 조율하는 심리적 구심적이 되고 싶다."
그렇다. 홍명보가 생각하는 '심리적 구심점', 팀의 중심 축은 누구도 쉽게 하기 어렵다.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우리 사커로의 영웅이 자랑스럽게 서 있기를 바란다.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이라 불후의 신화를 그가 완성하기를 진정 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홍명보 구설수'를 들으면서 한국 축구계는 '살모사의 비애'를 양산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누군가를 밟고 눌려야 하는 슬픈 악순환이 자리잡은 곳이다.
10년 넘게 한국 축구를 지킨 선수에게 단 몇 개월의 슬럼프도 감싸 안아주지 못하는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곳이 한국 축구이다. 이제 더 이상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홍명보를 흔들고 흠집 내는 일을 하지 않기 바란다. 진정 홍명보를 사랑한다면 그가 베스트 컨디션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 보아야 한다. .
오늘 크로아티아 전지훈련을 떠나는 홍명보에게 잘 다녀 오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덤으로 "Good L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