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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08
1. 씬. 마당 (밤)
-7회 연결 상황에서.
강하 : 당장 나가라구. 지금 당장.
빨강 : (일어서서 강하의 뺨을 갈기는)
강하 : (멍하니 보는)
빨강 : 애 덴 건 안보이지?
강하 : 내가 안 들어왔으면 집 다 태워먹었을지도 몰라.
빨강 : 내 동생들도 죽을 뻔 한 거야. 이 독종 새끼야.
강하 : (기가 막혀서 보는데)
파랑 : (빨강에게 매달리며 더 크게 울면서) 누나, 그러지마. 우리 쫓겨나면 어떡해? (강하의 바지에 매달리면서) 아저씨?
용서해주세요. 우리 누나가 미쳤나 봐요. 아저씨 때린 거 용서해주세요. 우리 쫓아내지 마세요. 네? 아저씨?
강하 : (답답한 느낌으로 보다가, 아직도 파르르 떨며 분에 못 이겨 서있는 빨강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파랑 : (쫓아가려고 하면서) 아저씨? 저 몽유병이라서 그래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빨강 : (파랑을 끌어안으며) 그만해. 그만해, 파랑아.
파랑 : 우리 쫓겨나면 어떡해? 누나? 나 때문에 쫓겨나면 어떡해? 누나. (큰 소리로 울고)
빨강 : (그런 파랑을 꼭 끌어안는)
2. 씬. 지하방 (밤)
-빨강, 파랑의 손과 발에 약 발라주고. 그 옆에 앉아있는 노랑, 초록. 남이는 잠들어 있고.
빨강 : (약 발라주면서) 주황이는?
노랑 : 도서관에...
빨강 : (홱하고 고개 돌려보면)
노랑 : 말이 안 되지?
초록 : 친구네 집에 방학 숙제 하러 갔다고 하랬잖아. 작은 언니 정말 왜 그래? 도서관 얘길 거기서 왜 하는데?
노랑 : 파랑이 다치고 너무 놀라서 말이 헛 나왔어. 언니?
빨강 : (파랑의 손 호호 불어주면서) 왜?
노랑 : 이제부턴 파랑이 발이랑 내 발에 끈 꼭 묶어놓고 잘게.
초록 : 내 발이랑도 묶을게. 그럼 파랑이 꼼짝도 못해.
빨강 : 주황이 이 자식 들어오기만 해봐.
3.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옷은 갈아입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그 위로 떠오르는 빨강의 모습.
빨강 : 내 동생들도 죽을 뻔 한 거야. 이 독종 새끼야.
강하 :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데)
-노크 소리.
강하 : 네.
-조심스럽게 문 열고 들어서는 빨강.
빨강 : ......
강하 : (일어서는) 뭡니까?
빨강 : 미안해요. 아깐.....너무 놀라서.....그랬어요.
강하 : 애 덴 데는 괜찮습니까?
빨강 : 네. 아까 제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뺨 괜찮으세요?
강하 : 독종 새끼는 좀 자야겠는데, 내려가 주시죠.
빨강 : 내일 아침엔 꼬두밥 해드릴게요. 후 불면 날아갈 정도로. (꾸벅 절하고) 안녕히 주무세요. (돌아서는데)
강하 : 후라이 노른자도 제발 터트리지 말아요.
빨강 : (순간 멍한 눈으로 보는,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인간이었어) 그건 좀....
강하 : 못해주겠다는 겁니까?
빨강 :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연마할게요. 그럼, 진짜로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 하고 나가는)
강하 : (침대에 앉으며) 무슨 무술 연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아, 내가 왜 이러지) 이젠 혼자서도 대꾸를 하는구나.
(얼른 일어서서 책상 앞으로 가서 캘린더에 가위표를 그리는)
4. 씬. PC 방 (밤)
-주인, 주황에게 2만원을 주는.
주인 : 원래는 만 5천원이지만 오늘은 늦게까지 했으니까 택시 타고 가라고 2만원 주는 거야.
주황 : (두 손으로 돈 받고 고개 90도로 숙여서 인사하며) 고맙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5. 씬. PC 방 앞 길 (밤)
-주황, 건물에서 나와 2만원 만져보며 신이 나있다. 막 뛰어가려고 하는데.
소년1 : 야, 꼬맹이?
주황 : (돌아보면)
-불량소년 1,2,3 이 주황 앞으로 나서는.
소년2 : 쪼만한 놈이 큰 돈 가지고 다니면 위험해서 안 되거든. 형들이 맡아 놔줄 테니까 이리 줘봐.
소년1 : 다 너를 위해서 이 형들이 귀찮지만 맡아준다는 거니까 고마운 줄 알고.
주황 : (얼른 2만원 뒤로 감추면서) 안돼요.
소년2 : 아, 얘가 조용히 처리할 일 또 귀찮게 만드네.
주황 : (도망치려고 하면, 소년들에게 뒷덜미 잡히고)
소년1 : 귀찮게 하지 말라니까 애 말귀 못 알아듣네.
-주황, 도망치려고 하고. 그러다 잡히고, 결국은 소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6. 씬. 강하의 집 앞 (밤)
-힘없이 걸어오는 주황. 눈 주위는 멍이 들고 입가는 찢어지고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다.
주황 : (울분에 못 이겨 주먹으로 눈가를 닦아내지만, 속이 상하고, 발에 부딪히는 돌멩이를 걷어차고)
7. 씬. 세탁실 (밤)
-빨강, 세탁물 집어넣고 돌리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 들리고.
8. 씬. 거실 (밤)
-주황, 조심스럽게 까치발 들고 지하방 쪽으로 움직이려고 하는데.
빨강 : (뒤에서 나타나 주황의 뒷목을 잡는) 너 뭐하는 놈이야?
주황 : 어. 누나? (얼굴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 푹 숙이고) 친구 집에서 숙제하다가....
빨강 : 애들만 두고 이 시간까지..... (하다가 주황의 얼굴을 보게 되고) 너 왜 이래? 얼굴이 왜 이 모양이야?
주황 : (얼굴을 가리면서)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다가 넘어져서.
빨강 : (주황, 어깨 확 밀면서) 너 제정신이야? 애들만 집에 두고 나가서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고? 너 제정신인 놈이냐구?
네 동생들 다 타죽을 뻔 했단 말이야, 이 나쁜 놈아.
주황 : (가뜩이나 속상한데, 욱하는 심정으로) 우리 없어지면 누나 편하고 좋을 텐데, 왜 그래? (뛰쳐나가는)
빨강 : 너 이리 못 와?
-계단에서 보고 있는 강하.
9. 씬. 지하방 (밤)
-잠이든 노랑, 초록, 파랑, 발 서로에게 묶고. 남이 기저귀 갈아주면서 빨강, 속이 상해 있는.
10. 씬. 정회장 집 앞 (밤)
-준하, 재영의 차 운전해서 집 앞에 멈추는.
준하, 얼른 내려서 보조석 쪽 문 열어주고, 술기운이 심한 재영, 약간 비틀거리는 정도. 부축해서 내려주는.
준하 : 술 센 놈이 웬일이냐? 이렇게 흐물거리고.
재영 : 기분 꿀꿀한 날은 술도 더럽게 취하는 거 몰라?
준하 : 우리 형한테 한두 번 당하냐?
재영 : (피식 웃고. 비틀하면서 준하의 가슴에 몸이 기울면서) 그지?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꿀꿀한 것도 웃기지? 근데. 근데 말이야. 이젠 면역력이 생길만도 한데, 그래지지가 않는다.
준하 : (자신도 모르게 재영의 등에 손을 올리려다가 멈칫하고)
재영 : (조금 떨어져 서면서) 당할 때마다 속이 패이는 거 같아. 진짜, 웃기지? 정재영이가 원강하 구박에 매번 속이 패인다는 게.
준하 : (재영의 손에 차키 쥐어주면서) 들어가서 뜨거운 차 한 잔 마시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
재영 : 너 다시 차 가지러 가려면 귀찮잖아? 내 차 가져가.
준하 : 넌 내일 아침에 출근 어떻게 하려구? 어차피 내 차 찾으러 가야하는 건 마찬가지야. 어서 들어가. 간다.
(돌아서서 발 옮기는데)
재영 : 너였으면 좋았을 텐데.
준하 : (쿵하는 느낌으로 발걸음 멈춰지고)
재영 : 착하디 착하고 눈물나게 친절한 너였으면 좋았을 텐데.
준하 : ......
재영 : 근데 왜 네가 아니었을까?
준하 : (뒤 돌아보지 않은 채로) 너 정말 술 더럽게 취했다. 헛소리 심한 거 보니까. (걸어가는)
11. 씬. 정회장 집 거실 (밤)
-재영, 아줌마와 마주 서있는.
아줌마 : 회장님 또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가셨어요.
재영 : (놀라고)
12. 씬. 병실 (밤)
-정회장, 누워있고.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는.
인구, 걱정스럽게 그 옆에 서있는, 민경, 핸드폰 중.
민경 : 오늘 밤에 나올 거 없을 거 같다. 할아버님 이젠 많이 안정 되셨어. 그래, 오늘은 늦었으니까 쉬고 내일 오도록 해.
(전화 끊고)
인구 : 아버지? 아버지?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정회장 : (힘들게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하는 표정)
민경 : (그런 정회장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13. 씬. 병원 복도 (밤)
-민경, 자판기에서 커피 꺼내는데, 뒤에서 다가오는 인구.
인구 : 나도 한잔 줘.
민경 : (커피 주면서) 집에 들어가서 자라니까.
인구 : 그래도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실려 오셨는데, 바로 어떻게 돌아가냐?
민경 : (커피 한잔을 다시 누르는데)
인구 : 근데 주무시지도 않고, 왜 저렇게 눈만 꿈뻑이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민경 : .....
인구 : 형 데려오라는 소리도 안하시고. 진짜 우리 아버지 문제 생기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민경 : 아버님, 기억 찾으신 거야.
인구 : 뭐?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쓰러지셨다 깨셔선 한 말씀도 안하시는데.
민경 : 그대로셨으면 당신 형부터 찾으셨겠지. 하지만 계속 뭔가를 생각해내려 하고 계시잖아.
인구 : 그럼 왜 한 말씀도 안하시는 건데?
민경 : 정리를 하시고 계신 거겠지. 내가 쓰러져 있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14. 씬. 병원 복도 일각 (밤)
-민경, 핸드폰 중.
민경 : 병실에 기계 하나 달아줘야겠어.
15. 씬. 강하의 집 앞 (밤)
-주황, 집 앞 벽에 기대 서있는. 들어갈 수도 없고. 갈 데도 없고. 문 열리는 소리.
주황 : (몸 숨기면서)
강하 : 그만하고 들어와라.
주황 : (문 열고 서있는 강하 멍하니 보는)
16. 씬. 강하의 집 마당 (밤)
-주황, 주춤거리며 들어오는. 강하, 서있고.
강하 : 돈 없으면 가출은 꿈도 꾸지 마라. 금방 기어들어오면 포스에 금간다.
주황 : 저 원래 포스 같은 거 없는 놈인데요, 뭐. 우리 학교에서 제가 두 번째로 작아요.
강하 : 포스는 키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주황 : 작으니까 새끼들이 만만하게 보고 돈이나 뺏고.
강하 : 뺏길 돈도 있냐?
주황 : PC 방에서 알바했어요. 택시 타고 가라고 5천원이나 더 주셔서 2만원 있었는데....
강하 : 얼굴 그 모양 되고, 돈도 뺏기구?
주황 : (어깨 축 늘어지고) 네.
강하 : 누나한테 왜 얘기 안했냐?
주황 : 알아서 뭐해요. 괜히 속만 끓지.
강하 : 너 포스 없는 놈 아니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준하.
강하 : 들어가서 자라.
주황 : 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고 현관 안으로 움직이는)
준하 : (다가오는) 재영이 물 먹여 놓고 겨우 집에서 꼬맹이 붙잡고 환담이나 나누신 거야?
강하 : (들어가려는데)
준하 : 이젠 꼬마하고도 수다를 떨고, 많이 변한다, 형.
강하 : 저 식구들이 자꾸 말을 시키잖아.
준하 : (강하 앞으로 스치면서) 형답지 않게 변명까지. (강하를 향해 묘하게 미소 짓고 앞을 스쳐지나가는)
강하 : .....
17.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들어오는.
강하 : 포스를 찾자, 원강하. 아, 왜 자꾸 혼잣말을 하는데?
18. 씬. 지하방 (밤)
-빨강, 팜플렛 보고 공부하고 있으면, 주황, 옷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빨강 : 너 또 한번 뛰쳐나가면 누나한테 죽어.
주황 : .....
빨강 : 알아들었어?
주황 : 알아들었어. (이불 뒤집어쓰는)
19. 씬. 호텔방. 욕실 (밤)
-태규, 변기 밑에 엎뎌서 잠이 들어있는.
태규 : (뺨이 얼얼해서 입을 오물거리다가 눈을 뜨는. 여기가 어디지. 눈동자 급하게 돌리고.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면서 튀어 일어나는. 거울에 비친 몰골. 러닝셔츠에 팬티 차림이고. 이게 뭐야. 고개를 홱 돌리는)
20. 씬. 호텔방 (밤)
-태규, 욕실에서 나오면, 벗은 옷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고. 여자, 침대에 부추 신은 채로 엎뎌서 잠이 들어있는.
태규 :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지르는)
여자 : (부시시 눈 뜨고) 다 씻었어? 때 밀었어?
태규 : 내가 내가 왜 여기? 그리고 당신은 왜 여기?
여자 :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태규 : (괴성을 지르며 미쳐 날뛰는)
21. 씬. 거실 (밤)
-어둠.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태규.
태규 : (지하방 쪽을 보며) 자기, 난 미친놈이야. 인간되긴 그른 놈이야.
22. 씬. 태규의 방 (밤)
-들어와 주저앉으며, 울상이 되는 태규.
태규 : (머리 쥐어뜯으며) 어떡할 건데? 어떡할 거냐구? 빨강이가 너 같은 놈을 뭘 믿고.....넌 죽어야 돼, 넌 살 가치가 없어.
(옷이나 혁대 뭐 그런 종류로 자기 목을 조르고. 캑캑거리고. 온갖 쇼를 다하며 괴로워하는)
23.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24. 씬. 강하의 방 (아침)
-강하, 눈을 뜨고 발아래를 더듬거리는데, 아무 것도 걸리지 않는다. 일어나는.
이불을 걷어보면, 아무도 없고, 왠지 실망스럽기도 하고.
25. 씬. 거실 + 식당 (아침)
-노랑, 초록, 파랑, 구두를 닦고 있고. 주황, 남이 업고 청소 하고 있고.
준하, 욕실에서 세수하고 나오면서.
준하 : 주황이 너 얼굴 왜 그러니?
주황 : 못 본 척해주세요. 자존심 상해서 말하기 싫거든요.
준하 : 그래, 그러지 뭐. (식당으로 들어가는)
빨강 : (밥하고, 국 끓이고, 후라이 하고 바쁜)
준하 : 아침엔 빵 먹자면서요?
빨강 : 오늘 아침엔 변호사님 비위 맞춰야 할 일이 좀 있거든요.
준하 : 왜요? 계약서도 있는데.
빨강 : 제가 뺨을....
준하 : 네?
빨강 : 아, 아니에요.
준하 : 주황이 얼굴도 심상치 않던데, 빨강씨가 저런 거예요?
빨강 : 주황이 자식은 아니에요.
준하 : 그럼 누군 쳤나 봐요?
-태규, 술에 덜 깬 얼굴로 들어서는.
태규 : 나....물 좀....
준하 : 야, 참, 너, 날 잡으려면 미국에 고모님한테 연락 드려야지.
태규 : 날? 무슨 날?
준하 : 너 결혼한다면서?
빨강 : 아, 그거요. 태규 쟤가....
준하 : 어제 그 아가씬 오케이 하는 거 같던데.
빨강 : (태규를 보면)
태규 : 삼촌, 그런 말을 왜?
준하 : 그 아가씨 너 되게 마음에 드나보더라, 나한테 다음 달에라도 결혼할 수 있다고....
태규 : (준하 입 막으면서) 왜 그래? 삼촌?
빨강 : (어이가 없어서) 너 결혼하니?
태규 : 아니, 그게 아니구.
빨강 : 축하한다, 얘.
초록 : (식당 앞에 서서, 화가 치솟는 표정으로) 오빠가 그런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 배신자.
(흑하고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서 뛰는)
26. 씬. 마당 (아침)
-빨강, 남이 업고 출근하는데, 태규, 앞을 막아서는.
빨강 : 뭐하니? 너?
태규 : 미안해.
빨강 : 뭐가?
태규 : 마음 아프게 해서.
빨강 : 나 마음 안 아픈데?
태규 : 그러지 않아도 돼. 나 때문에 마음 아픈 거 다 알아.
빨강 : 아는 거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태규 : 그게 무슨 말이야?
빨강 : 그런 말 있으니까 네가 알아보고, 비켜라. 누나 늦었다.
태규 : 왜 또 누나라고 그래? 정말 마음 많이 아프구나, 자기.
빨강 : 아, 그 아이 참.
태규 : (무릎 푹 꿇으면서) 그래, 나 이상한 놈이야. 술만 먹으면 아무 여자한테나 결혼하자고나 하고.
빨강 : 무릎 시리다. 일어서라.
태규 : 그래서 맹세할게, 다시는... 다시는 술 안 처먹을게.
빨강 : 그건 알아서 하시구요.
태규 : 그 여자 정리할게. 제발 기다려줘.
빨강 : 제발 그 여자 정리하지 마라. (돌아서서 걸어가는)
태규 : (절규하듯) 두고 봐. 내 정성에 감동하게 만들 테니까.
27.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일하고 있고, 재영, 그 앞에 서서.
재영 : 할아버지, 어젯밤에 쓰러지셔서 다시 입원 하셨어.
강하 : (보면)
재영 : 출근 전에 뵙고 오는 길인데, 한 말씀도 안하시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신 거 같아.
강하 : .....
재영 : 시간 되면 좀 들러봐 줘. (돌아서다가. 다시 보고) 선물은 마음에 들어?
강하 : ......
재영 : 설마.....풀어보지도 않은 거야?
강하 : 어제 일이 좀 많아서.
재영 : 원강하, 참 탁월해. 사람 자극하는 방법 아주 제대로라구. 이렇게까지 무시당했는데, 억울해서도
이젠 정말 포기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거든. 우리 꽤 괜찮은 호적순 거 같지 않아?
강하 : 호적수는 상대도 칼을 뺄 의사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근데 어쩌냐? 난 널 상대로 아무 것도 하기 싫으니.
재영 : 정말 탁월해. 그래도 내가 원하는 상대니 어쩌겠어. 칼을 빼게 만들어야지. 노력해볼게. (나가는)
강하 : .....
28. 씬. 병원 복도 (낮)
-민경, 걸어오는. 병실에서 나오는 도식(트럭 운전을 했던) 수리공 복장으로 스쳐지나가는.
민경 : (보면)
도식 : (고개를 끄덕이고 스쳐지나가는)
29. 씬. 병실 (낮)
-정회장, 창 앞에 서있는. 들어오는 민경.
민경 : 아버님?
정회장 : .....
민경 : 피곤하실 텐데, 왜 서계세요?
-들어오는 비서. 가방 들고.
비서 : 회장님. 가져오라고 하신 거 가져왔습니다.
정회장 : ......
30. 씬. 병원 복도 (낮)
-민경, 비서 서있는.
비서 : 서류 몇 가지하고, 핸드폰 등을 챙겨오라고 하셔서요.
민경 : 말씀을 하셨군요.
31. 씬. 병실 (낮)
정회장 : (핸드폰 단축 버튼 누르는, 진원장, 전화 번호 뜨고. 버튼을 꾹 누르면)
-없는 번호이오니 하는 메시지 나오는.
정회장 : (답답한 심정으로 메시지 버튼 누르면)
진원장E : 어르신....고향에서....고향에서.....어르신의 핏줄을....아드님께....핏줄이... 우리....우리......
정회장 : ......
32. 씬. 화장실 (낮)
-은말, 진주, 빨강(남이 업고) 서있는.
빨강 : 잘됐다, 정말.
은말 : 지금 너 있는데서 한 정거정이나 될까. 바로 큰 길 하나만 건너면 나 사는 데야.
진주 : 옥탑방이긴 해도 방도 넓고 괜찮아.
빨강 : 언제 이사하는데?
은말 : 내일 모레.
빨강 : 진짜 잘 됐다. 이제 은말씨 노인정에서 새우잠 자지 않아도 되고.
은말 : 그래도 내가 이젠 방이라도 한 칸 차지하고 있으니까 여차하면 너 애들 데리고 올 수도 있고.
진주 : 여차 하면 안 되지. 애들 끌고 은말씨 옥탑방으로 가게 되는 건 얘가 원변호사 집에서 쫓겨났다는 건데,
그런 일 생기면 얘 인생 막장 되는 거야.
은말 : 야, 우리 또 이렇게 몰려 있다가 정실장한테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진주 : 화장실까지 찾아다니겠어?
-하는데, 들어오는 재영.
은말, 얼른 청소하고, 진주, 화장실 안으로 튀어 들어가고.
빨강 : (쏜살같이 재영 앞을 스치면서) 안녕하세요, 실장님. (나가려다가 벽에 부딪히고)
은말 : (아유, 쟤는 진짜)
빨강 : (어색하게 웃으며 튀어나가는)
재영 : (정말 싫다하는 느낌으로)
33. 씬. 거실 (낮)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둘러앉아있고. 태규, 피자며 치킨이며, 풀어놓으면서.
태규 : 먹어, 먹어.
주황 : 그냥 밥 먹어도 되는데.
초록 : (삐쳐서 태규 얼굴도 보려고 하지 않는)
태규 : 내 성의니까 먹어. 어서들.
주황 : 먹자, 그럼.
초록 : (벌떡 일어나며) 난 배신자가 사주는 건 안 먹어. (지하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파랑 : 배신자가 누구야?
주황 : 옆 동네 사는 아줌마 있어.
34. 씬. 지하방 (낮)
-초록, 팔짱을 끼고 서있는. 태규. 주눅이 들어 들어오는.
태규 :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초록 : .....
태규 : 미안해. 그래도 초록이 넌 내 편이었는데.
초록 : 이젠 오빠하고 말도 하기 싫어요. 우리 언니한테 프로포즈 하고, 금방 다른 여자한테 가서 그러고.
진짜 너무 한심하고 실망스럽고.
태규 : 나도 내가 그래. 나도 내가 미치도록 싫어. 그치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되는 거잖아?
초록 : .....
태규 : 초록아, 너마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난 정말......너무 외로워.
초록 : (보면)
태규 : (울면서) 도와주라. 초록아. 너만이 나의 유리한 희망이야.
초록 : 유일한 이겠죠.
태규 : 응. 유일한.
초록 : 또 실망 시키면 다시는 오빠라고도 안할 거예요.
태규 : 믿어줘. 초록아. 난 정말 너 밖에 없어.
35. 씬. 장례식장 앞 (낮)
-빨강(남이 업고), 상주 서있고.
빨강 : 저도 장지까지 가야하는데.
상주 : 여준데 어떻게 거기까지 따라가? 그동안 도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요.
빨강 : 별 말씀을 다하세요.
상주 : 우린 지금 떠나야 하고, 참. 여기 원무과에 우리 6촌 동생이 근무하거든 내가 빨강씨 얘기 잘 해놨으니까
온 김에 한번 들러 봐요.
빨강 :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할머님은?
상주 : 못 일어나시네. 아직 여기 입원 중이셔.
빨강 : 네.
36. 씬. 원무과 (낮)
-빨강(남이 업고) 팜플렛 직원에게 주면서 인사하고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주고,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는.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는 장수.
37. 씬. 회사 복도 (낮)
-청소하는 은말, 그 옆에 서서 얘기하는 장수. 쓰레기통도 같이 들어주고 하면서.
장수 : 좀 달라진 거 같긴 하드라구요. 얘기도 좀 조리 있어진 거 같기도 하고.
은말 : 지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긴데 정신이 좀 든 거겠지.
장수 : 어쩌면 희망이 좀 보이는 거 같기도 하구요.
은말 : 보험 여왕까지 한 지 팀장이 작정하고 뭔가 가르쳐 보려고 하는데 희망이 보여야지 그럼.
-급하게 걸어가는 진주.
장수 : 아직 퇴근 시간 안됐는데, 어디 가세요? 진주씨?
진주 : 저, 지금 바빠요.
장수 : 조퇴 하신 거예요? 어디 몸 안 좋으세요?
진주 : 은말씨, 행운을 빌어줘. (하면서 급하게 걸어가는)
은말 : 그려, 내가 찬물이라도 떠놓고 빌어줄 테니까 제발 서른아홉은 넘기지 말자.
장수 : (엘리베이터 타고 사라지는 진주를 보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은말 : 오늘 선 보러 가잖아. 학교 생물 선생이라나 신물 선생이라나 한테서 선이 들어왔대. 제발 이번엔 좀 가야할 텐데.
장수 : (버럭) 아니, 요즘 촌스럽게 누가 선 같은 걸 보러 다닌다구.
은말 : (버럭) 촌스러우면 어뗘? 가기만 하면 되지?
38. 씬. 길 (밤)
-준하, 운전하고 있는데. 울리는 핸드폰.
준하 : 여보세요? 누구? 어....어...
39. 씬. 커피숍 정도의 장소 (밤)
-준하, 들어오면. 소영 미소 짓는.
준하 : 야, 이게 얼마 만이냐?
소영 : (웃으며 손 내밀면)
준하 : (악수하고 맞은편에 앉는)
소영 : 3년 조금 더 됐어.
준하 : 야, 벌써 그렇게 됐구나.
소영 : 여전하다, 원준하. 부르면 꼭 와주는 건.
준하 : 웬일이야? 애기는?
소영 : 아직.
준하 : 결혼 한지 3년 넘었으면 이제 애기도 낳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소영 : 나 이혼 할 거 같아.
준하 : ......
40. 씬. 병실 (밤)
-정회장, 소파에 앉아있고, 서있는 비서.
비서 : 교통사고로 진세윤씨와 부인은 사망했습니다.
정회장 : (충격으로 멍해지는)
비서 : 벌써 장례도 다 치루고.....
정회장 : (일어서서 문 쪽으로 움직이려고 애를 쓰고)
비서 : (부축하려고 하는데)
정회장 : 세윤이가....세윤이가.....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비서 : 회장님, 회장님.
41. 씬. 응급실 앞 (밤)
-민경, 비서 서있는.
민경 : 정신 드시고 나시면 진세윤씨 가족을 찾아보라고 하실 거예요.
비서 : .....
민경 : 그땐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고 말씀드리세요.
-인구, 강하, 재영 걸어오는.
인구 :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 또 쓰러지셨다면서?
민경 : 큰 문제없을 거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인구 : 아니, 노인네가 저렇게 계속 정신을 잃으시면 어떡하냐? 이러다 진짜 큰 일 치루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민경 : (강하를 보면)
강하 : (인사하고)
재영 : 할아버지, 다시 입원하셨다고 내가 와봐 달라고 했어.
민경 : 바쁜 사람 괜히 귀찮게 하지 마라.
인구 : 강하가 남인가.
민경 : (인구를 보면)
인구 : (얼른 화제 돌리는) 우리 아버지 평생 깡 하나로 살아오신 분인데 요즘 정말 왜 저러신다냐.
42. 씬. 병실 (밤)
-6인용 병실. 할머니 입원해 있는.
빨강, 남이 업고 살며시 다가오는.
할머니 : (고개 돌리다 빨강을 보고) 왔어?
빨강 : 가족분들은 장지에서 아직 안 오셨나 봐요?
할머니 : 밤 늦게나들 오겠지.
빨강 : 같이 가셔야 하는데, 서운 하시죠?
할머니 : 그 웬수같은 영감탱이 찬 땅 속으로 들어가는 거 안보니 속이 편하지 뭐. (일어나 앉으며) 아이구, 답답해라.
43. 씬. 병원 일각 (밤)
-빨강, 남이 업고, 할머니 휠체어 밀고 걸어오는.
할머니 : 됐어. 세워봐.
빨강 : (세우고)
할머니 : (심호흡 하고) 그 놈의 영감탱이 이제 나도 없는 세상에서 아주 신이 나 있겠구만. (그러다 목이 메이고. 울먹해지는)
아이고, 옘병할, 이게 무슨 청승이래.
빨강 : 할머니?
할머니 : (보면)
빨강 : 저 그 노래 연습 했는데.
-빨강,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흐날리드라.....구성지게 부르는.
-멀리서 걸어오다가 그런 빨강을 보게 되는 강하. 걸음을 멈추는 강하.
할머니 :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리는)
빨강 : (손뼉 짝 치면서) 아, 이 노래 너무 쳐진다. 할머니, 새로운 레파토리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할머니 : 새로운 레파토리?
빨강 : (신나는 트로트) 짠짠짠~ 하게 하지 말아요. 말없이 그냥 가세요~
-앞에 남이 돌려 안고, 마치 부르스를 추는 것처럼 남이의 양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 (어느새 웃으면서 손뼉으로 장단을 맞춰주는)
빨강 : (신이 나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그런 빨강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강하.
44. 씬. 입원실 (밤)
-6인실. 빨강, 할머니 침대에 눕혀주는.
할머니 : 어서 가봐.
빨강 : 가족분들 오실 때까지 있을게요.
할머니 : 그럴 거 없어. 하도 웃었더니 졸려. 자는 사람 옆에 일 없이 뭐 하러 붙어 앉아있어. 애기도 고단할 테니 어서 가봐.
빨강 : (이불 여며주며) 주무세요.
할머니 : 나 내일이면 퇴원하니까 전화 하고 나 다니는 노인 대학으로 한번 와. 내가 소개해줄 테니까.
핸드폰 줘봐. 내가 번호 찍어줄게.
빨강 : 고맙습니다, 할머니.
45. 씬. 병원 복도 (밤)
-빨강, 신이 나서 걸어오는. 남이 앞에 안고.
빨강 : 누나가 조금씩 인간이 돼가고 있는 거 같지 않니? 아니, 뭐라구요, 남이씨? 원래 인간이셨다구요?
우리 남이씨는 어쩌면 인간성이 이렇게 좋으실까나요.
46. 씬. 병원 앞 길 (밤)
-남이, 앞으로 안고 걸어가는 빨강. 옆으로 다가와 서는 차.
빨강 : (무심히 고개를 돌려 보는데)
-강하의 차다.
강하 : (차창을 내리는)
빨강 : (멍하니 보는)
강하 : 여긴 웬일입니까?
빨강 : 그러는 변호사님은요?
강하 : 난 일이 좀 있어서요.
빨강 : 저두요.
강하 : 타요.
빨강 : 네?
강하 : 청력에 문제 있습니까?
빨강 : 네?
강하 : 타라구요. 안 들립니까?
빨강 : 저요? 저더러 타라구요?
강하 : 그럼 여기 누가 또 있습니까?
빨강 :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보는)
강하 : 안 탈겁니까? 안 탈거면 말구요. (차 조금 움직이는데)
빨강 : (차 문을 잡으며 급하게) 타요, 탄다구요.
47. 씬. 길 (밤)
-운전하는 강하, 그 옆에 앉은 빨강, 남이 앞으로 끌어안고.
빨강 : (아무래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눈만 꿈뻑이고 있는) 웬일이시래요? 차를 다 태워주시고.
강하 : .....
빨강 :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별 희한한 일을 다 겪으니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해서.... (하다가 윽하는. 몸을 비틀고)
강하 : 왜 그럽니까?
빨강 :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강하 : (의아하게 보는)
빨강 : 죄, 죄송한데요......차 차 좀....
강하 : 네?
빨강 : 제가.....제가.....워낙 급해서. (갑자기 핸들을 붙잡으며) 제발 좀.....
강하 : (놀라서 브레이크를 잡고) 뭐하는 짓입니까?
빨강 : 제가 워낙 급해서요, 죄송...죄송....
강하 : 빨리 갈 테니까 집에 가서 처리 하십쇼. (다시 출발 시키려고 하는데)
빨강 : (핸들을 잡으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해요. 집에까지 갈 수가.....갈 수가....
-멈춘 강하의 차에서 뛰어내리는 빨강, 몸을 비틀며 이상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면서 건물들을 두리번거리는.
차 안. 운전석, 남이를 안고 앉아있는 강하.
-강하의 차 안 시계. 20분 정도 흐르는.
강하. 남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남이 울면서 몸부림치는.
강하 : 아니, 이 여자...왜 이렇게 안 와. (그러다 이상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고. 남이의 엉덩이에 코를 대보다 눈을 감고)
48. 씬. 강하의 차 안 (밤)
-뒷좌석. 남이 눕혀놓고, 기저귀를 갈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강하.
강하 : (똥 싼 기저귀를 보면서 이를 악무는. 가방에서 기저귀를 꺼내는데, 이걸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똥 싼 기저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엉성하게 똥 싼 기저귀를 꺼내다가, 손에 묻는.
억, 하고 숨이 금방이라도 막힐 것 같고. 창 밖을 보면서 빨강이 오나 싶은 간절한 표정으로, 그러나 빨강은 나타나지 않고.
남이는 울고. 하는 수 없이 똥 싼 기저귀를 빼내고. 새 기저귀를 엉성하게 채우려고 하는데, 땀은 비오듯 하고.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겨우, 기저귀를 갈고 한 숨 쉬는. 자신이 벌인 사투가 대견하기도 하고.
남이를 안고 다독이며) 임마? 시원하냐?
-그때, 차 앞문이 열리면서. 올라타는 빨강.
빨강 : (운전석이 비어있자. 차 앞으로 고개를 빼는데)
강하 : (빨강 뒤에서) 뭐하느라 지금 옵니까?
빨강 : 어머나, 깜짝이야. 왜 거기 계세요?
강하 : (남이 안아 보이면서) 여기서 뭐 했을 거 같습니까? 도대체 무슨 일을 이렇게 오래 봅니까?
빨강 : 죄송해요, 변비라서.
강하 : (자신도 모르게 버럭) 왜 그 집 식구들은 다 변빈데요?
빨강 : (자신도 모르게 버럭) 여덟 식구가 화장실 하나 있는 집에서 살아보세요.
강하 : 지금 뭘 잘했다고 소리를 칩니까?
빨강 : (코를 킁킁거리며) 똥 싸셨어요?
강하 : (질린다는 표정으로) 똥 묻혔습니다, 됐습니까? (차에서 내리는)
빨강 : 어디 가세요?
49. 씬. 어느 건물 내 화장실 (밤)
-강하, 손을 닦고 있는.
빨강 : (남자 화장실이라. 남이 안고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면서) 아직 머셨어요?
강하 : (혼잣말로) 비누도 없고....
빨강 : 아직 한참 더 걸리실 거 같으세요?
강하 : 가서 비누 한 장만 사와요.
빨강 : 네?
강하 : 비누 한 장만 사오라구요. 물로만 씻으니까 냄새가 빠지지 않는 거 같고.
빨강 : 그냥 집에 가서 하시면 안 되시겠어요?
강하 : 이 냄새를 갖고 어떻게 집에까지 갑니까? 어서 좀 사와요.
빨강 : 저.....돈이 없는데. 교통 카드 밖에.....
강하 : (질린다.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주면서) 거기서 빼가지고 가서 사와요.
빨강 : (지갑을 열어보는,. 현금은 없고, 카드만 있다) 저....돈이 없는데요.
강하 : 카드 있잖아요.
빨강 : 카드 가지고 가서 비누 한 장 달랑 사기가....
강하 : (보면)
빨강 : 미안한데, 저기.....남이 우유 한통 같이 사면 안 될까요? 그냥 미안해서요. 비누 한 장 달랑 사기가...
저 나중에 제 가정부 월급에서 까시면 될 거 같은데.
강하 : (참자) 우유든 뭐든 빨리 가서 비누랑 같이 좀 사오죠.
빨강 : (화들짝) 네, 쏜살같이 가서 사오겠습니다. (사라지고)
강하 : (손을 문지르며) 자기가 가정부 노릇 한 게 뭐있다고 월급까지 달라는 거야?
-시간 경과.
빨강, 비누를 내밀고. 강하, 와이셔츠를 벗어들고.
빨강 : 아니, 왜 와이셔츠는?
강하 : 똥이 묻어서 버려야겠어요. (쓰레기통에 던지고, 비누를 받아 손을 닦으면)
빨강 : (놀라서 쓰레기통에서 와이셔츠 꺼내며) 이 아까운 걸. 제가 빨게요. 왜 그렇게 아까운 걸 모르세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버셔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사시면 안 되시거든요.
강하 : 그걸 어떻게 하려구....
빨강 : (물로 빨면서 강하가 들고 있는 비누로 마구 비벼 빠는)
-핸드 드라이어에 빨강, 와이셔츠 말리고 있고, 러닝 바람의 강하 남이를 안고 있는. 남이 울고.
빨강 : 남이 좀 어떻게 해보시죠.
강하 : 그냥 가자니까..... (그러면서 오로로 어쩌고 하면서 남이를 달래는)
-강하, 거의 마른 와이셔츠를 입는. 빨강, 남이 안고서.
강하 : 아, 척척해.
빨강 : 차타고 가다보면 금방 다 말라요.
50. 씬. 길 (밤)
-강하, 남이 안고 있는 빨강, 멍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데. 차가 없다.
빨강 : 어디 갔지?
강하 : (참으면서) 시동 걸어놓은 채 그냥 나왔던 겁니까?
빨강 : 금방 나올 줄 알고.....
-경찰차 와서, 조사하고, 강하, 빨강을 노려보면서 설명하고.
경찰1 : 아주 누가 좀 가져가주세요 하셨네요.
빨강 : (강하에게) 도난당해도 보험 있으시잖아요? 참 다행이죠, 보험회사에서 다 해결해줄 테니.
강하 : .....
경찰1 : 부인 분이 참 성격이 낙천적이시네요.
강하 : (이 악물면서) 부인 아닙니다.
경찰2 : (강하의 기세에 경찰1에게) 부인 아니라잖아.
경찰1 : (구시렁거리는) 부인도 아니면서 왜 애까지 데리고.... 저게 부부로 안보여?
-경찰들 자기들 끼리 구시렁구시렁.
빨강 : 저기요.
강하 : (보면)
빨강 : 저....월급 안주셔도 돼요.
51. 씬. 술집 정도의 장소 (밤)
-스탠드바 정도의. 소영, 술을 마시고 있고, 준하, 그 옆에 앉아 있는.
소영 : 정말 안 마셔?
준하 : 너 데려다줘야 하잖아?
소영 : 원준하? 왜 그러고 사니?
준하 : 그러게, 난 왜 이 따위로 살까?
소영 : 너 아니?
준하 : ......
소영 : 대학 때 우리 과 여자애들 다 네가 자기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거.
준하 : (미소 짓고)
소영 : (술 쭉 마시고)
준하 : 그만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소영 : 나 이혼하면 다시 만나줄래?
준하 : (대수롭지 않게) 그러지 뭐.
소영 : (보는)
준하 : 그런다니까.
소영 : 나 애도 없는데, 만나면서 다시 정들면 결혼도 해줄 수 있어?
준하 : 아니.
소영 : 왜 결혼은 죽어도 안하겠다는 거야? 언제든 만나자고 하면 만나주면서?
준하 : 우는 여자 얘긴 들어주게끔 길들여진 놈이거든. 나.
소영 : 나 허구한 날 울어줄 수 있는데.
준하 : 근데 그런 여잔 또 사랑 할 수 없는 게 내 한계야.
52. 씬. 술집 앞 (밤)
-준하, 소영 걸어 나오는.
준하 : 차 빼올게.
소영 : (준하의 등 뒤에 얼굴을 기대는)
준하 : .....
소영 : 아니? 너 참 좋은 놈 같지만.....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놈이라는 거.
준하 : 알아. 그래서 나도 피곤해.
53. 씬. 길 (밤)
-강하, 택시를 잡아보려고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빨강 : (남이 안고 서서) 저기 그냥 전철 타죠? 저 교통 카드 있는데.....
강하 : (진짜 저 여자가 싫다)
54. 씬. 전철 내 (밤)
-늦은 밤. 승객이 별로 없는. 강하, 빨강(남이 안고) 나란히 앉아있는.
아줌마. 빨강 옆에 앉아서.
아줌마 : 어쩜, 애기가 엄마, 아빠를 반반씩 쏙 빼다 박았대? 엄마, 아빠 인물이 좋으니까 애기 인물 좋은 거 봐. 아들이죠?
빨강 : 네? 네.
아줌마 : 어머. 커서 아빠 닮으면 여자 여럿 울리겠네. 빨리 딸도 하나 낳아요.
빨강 : (어색하게) 그. 그게....
-술 취한 아저씨, 강하 옆에 앉아서 흐느적거리다가.
아저씨 : 사내자식이 인물이 너무 뺀지름 하면 못써. 사내자식은 투덕투덕하니..... (윽. 강하의 옷 위에 토하는)
강하 : (정말 미치겠다)
55. 씬. 전철역 내 화장실 (밤)
-강하, 러닝만 걸치고 있는. 빨강, 와이셔츠에, 양복 윗옷까지 빨고 있는.
강하 : 그냥 버리고 가자니까요.
빨강 : 그러고 가실 수 있겠어요? 그렇게 가시다간 얼어 죽으세요.
강하 :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구요.
빨강 : 조금만 기다리시라니까요. 금방 돼요, 금방.
-젖은 와이셔츠. 양복 윗옷 핸드 드라이어 대는데.
빨강 : 어.....고장인가.
56. 씬. 전철역 내 (밤)
-강하, 젖은 양복에, 와이셔츠에 오들 오들 떨리고.
빨강 : 그래도 안 입은 것보단 나을 거예요. 가다가 마를 거구.
강하 : 젖은 옷 입어보긴 했습니까?
빨강 : 저기.....뜨뜻한 거라도 좀 먹으면 낫지 않을까요?
57. 씬. 전철역 내 (밤)
-강하. 현금 인출기에서 돈 꺼내는.
빨강 : (뒤에서 보며) 와, 수수료 대따 비싸다. 10만원 꺼내나, 20만원 꺼내나 수수료 똑같은데, 이왕이면....
강하 : 이왕이면 뭐요?
58. 씬. 전철역 내 분식집 정도 (밤)
-강하, 빨강, 어묵 정도 먹고 있는.
빨강 : (국물 조금씩 떠서 남이 먹이고) 아이고 맛있어요? 변호사아저씨가 사주시는 거예요. 변호사 아저씨는 참 성격도 좋으시죠.
차도 잃어버리셨는데, 이렇게 어묵도 사주시고. 우리 남이도 나중에 커서 변호사 아저씨같이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해요.
강하 : 가죠.
빨강 : (급하게) 저 떡볶이 좀 먹으면 안 될까요?
강하 : (아, 정말 싫다)
59. 씬. 길 (밤)
-강하, 오들 오들 떨면서 걸어가고, 빨강, 남이 업고 걸어가는.
빨강 : (끄윽, 트림하고)
강하 : (질린다는 표정으로 보는)
빨강 : 변호사님이 떡볶이를 하나도 안 드셔서 제가 다 먹어치웠더니. 끄윽.
강하 : 떡볶이만 먹었습니까? 순대에, 오징어 튀김에, 군만두까지.
빨강 : 오징어 튀김이랑 군만두 떡볶이 국물에 묻혀 먹으면 맛이.... 끄윽.
강하 : 말 좀 하지 말고 걸어요.
빨강 : 추울 때는 이렇게 떠들면서 걸어야 덜 춥고....끄윽.
강하 : 아, 것 좀. (혼잣말로)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은 것도 아니고,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어.
빨강 : 아, 저 사준 게 그렇게 아까우시면 제 월급에서 그것도 까세요.
강하 : 아깐 월급 안줘도 된다면서요?
빨강 : (화들짝) 정, 정말 안 주시려구요? 그거 법적으로 걸리지 않나?
무임금. 노동력 착취 뭐 그런 걸로 걸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강하 : 제발 좀.... (기침 하고) 빨리 가자구요.
빨강 : (군고구마 장수가 눈에 들어오는) 야, 군고구마다.
강하 : (기가 막혀서) 또 먹으려구요?
빨강 : 우리 애들 군고구마 무진장 좋아하는데.
-군고구마 장사 앞.
장사 : 얼마치나 드릴까요?
강하 : 오천 원어치 주세요.
빨강 : 그걸 누구 코에....
강하 : (보면)
빨강 : (장사에게) 오천 원어치 얼마 안 되죠? 그냥 주세요. 오천 원어치.
장사 : 네. 오천 원어치라.
강하 : 만원 어치 주십쇼.
빨강 : 그렇게 과용 안하셔도 되는데. 아저씨, 덤 좀 주실 거죠?
60. 씬. 길 (밤)
-강하, 빨강, 걸어오는. 빨강, 군고구마 하나 까서 먹는.
강하 : 그걸 또 먹습니까?
빨강 : 추울 때는 이렇게 뜨끈한 걸 먹어줘야 하거든요.
강하 : 지금까지 먹은 걸로 치면 더워 죽을 지경일 것 같은데.... (기침하고)
빨강 : (강하의 입에 군고구마 쑥 집어넣으며) 드셔보세요, 진짜 죽여요.
강하 : (놀라서) 더럽게 먹던 걸.
빨강 : 아, 죄송이요. 추워하시는 거 같아서.
강하 : (군고구마 삼키면서, 맛이 괜찮은)
빨강 : 맛있죠? 속이 확 풀리는 거 같으시죠? (고구마 반 잘라 강하 입에 넣어주면서) 이건 입 안 닿은 거니까 드세요.
강하 : (하는 수 없이 군고구마 먹으면서 걸어가는)
빨강 : 고맙죠?
강하 : 뭐요?
빨강 : 길에서 군고구마 같은 거 사 드셔 보신 적 없으실 거 아니에요? 한 세상 살면서 이런 맛도 모르고 돌아가실 뻔 했는데,
제가 이런 맛도 알려드리고 고마우실 거 같아서요.
강하 : 애기 똥기저귀 갈아, 차 잃어버려, 젖은 옷 입고 걸어가, 고마워 죽겠네.
빨강 : (어깨로 강하 어깨 툭 치면서) 말은 그렇게 하셔도 진짜 고마우시죠?
강하 :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보지만, 조금은 일리가 있다 싶어 얼른 얼굴 돌리는)
빨강 : 그러니까 월급은 꼭 주세요.
61. 씬. 거실 (밤)
-강하, 빨강, 남이 안고 들어서는데, 태규 그 앞에 서서.
태규 : 큰 삼촌, 어디 물에 빠졌다 왔어?
강하 : .....
62.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캘린더에 가위표 그리면서.
강하 : 내가 저 여자를 다시 차에 태우면 사람이 아니다. (기침 하고)
63. 씬. 지하방 (밤)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모여 앉아 군고구마 먹고 있고.
빨강, 자는 남이 조심스럽게 눕히고 있는.
빨강 : 우리 남이 고생 많았네. 오늘은 푹 주무세요.
주황 : 이걸 정말 변호사 아저씨가 사줬단 말이야?
파랑 : 내가 뭐랬어? 변호사 아저씨 인간성 진짜 좋아 보인다고 했지?
노랑 : 이런 거 사줄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초록 : 그래도 낮에 태규 오빠가 사준 피자랑 치킨이 훨씬 비싼 거야.
노랑 : 그런 것만 따지면 속물이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난 이런 것보다 진짜 우리를 마음으로 위해주는
팀장 아저씨가 인간성은 진짜 좋은 거라고 생각해.
파랑 : 그래도 이 집에서 대빵은 변호사 아저씨니까 누나는 무조건 변호사 아저씨랑 결혼해야 할 거 같은데.
주황 : 니들은 진짜 왜 그러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왜 자꾸 김치 국물을 마시는데?
초록 : 태규 오빠는 떡 주겠다잖아?
빨강 : 조용히들 좀 먹어라. 난 정말 니들처럼 말 많은 애들은 본 적이 없다.
64.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침대에 누워 있는. 파랑, 들어오는.
파랑 : 아저씨? 주무세요?
강하 : .....
파랑 : (다가와서 눈치 보며) 아저씨? 주무세요?
강하 : (식은땀을 흘리며 힘없이) 왜?
파랑 : 군고구마 정말 고맙다구요. 진짜 짱 맛있어요.
강하 : (피식 웃으며) 짱 맛있었으면 됐다, 가서 자라.
파랑 : 아저씨, 아프세요?
강하 : 아니야. 가서 자.
파랑 : (걱정스럽게 보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고 나가는)
강하 : (누워서 눈을 가늘게 뜨고 회상에 잠기는)
65. 씬. 공원 (밤)
-벤치에 앉는 강하. 미주 걸어와 옆에 앉는.
강하 : (미주를 바라보는)
미주 : 왜, 여기 있어?
강하 : ......
미주 : 내가 그렇게 싫니?
강하 : .....
미주 : (일어서는) 그래도 어떡하니? 싫어도 그냥 좀 참아봐.
강하 : (서있는 미주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차마 잡지 못하고 멈추는)
미주 : 나 먼저 갈게. 금방 와야 해. (걸어가는)
강하 : (스르르 손을 내리는)
66.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회상에서 깨어나며 슬픈 표정으로 눈을 감는.
67. 씬. 세탁실 (밤)
-빨강, 다림질을 하고 있는데, 파랑 앞에 서있는.
빨강 : 뭐? 많이 아프신 거 같아?
파랑 : 응. 많이.
빨강 : (미안한 느낌으로 시선 돌리는)
68.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누워있고, 빨강, 문 빼꼼이 열고.
빨강 : 저기요?
강하 : .....
빨강 : 들어가도 될까요? 파랑이가 많이 아프시다고 하던데?
강하 : 괜찮으니까 가서 자요.
빨강 : (들어서며) 따뜻한 유자차 한잔 타왔는데, 드시고 주무시면 안 될까요? 한결 나으실 텐데.
강하 : 됐으니까....
빨강 : (다가서서) 드세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생병까지 나시고.
강하 : 알긴 압니까?
빨강 : 제가요. 뭔가 미안하고 그러면 더 설레발을 치는 버릇이 있거든요. 우리 남이 똥기저귀도 갈아주시고,
그것 때문에 차도 잃어버리게 만들고 진짜 미안한데, 쑥스러워서 미안하다는 말도 안나오고.....
강하 : (일어나며) 유자차는 제대로 탈 줄 아는 겁니까?
빨강 : 그, 그럼요. (침대에 걸터앉으며 강하의 앞에 유자차 들이미는)
강하 : (받아 마시는)
빨강 : 정말 많이 아프신가 봐요, 이 식은땀..... (하면서 손, 강하의 이마에 대고) 어머, 열이 너무 높아요.
강하 : (흠칫 뒤로 물러나는)
빨강 : 죄송해요.
강하 : 이거 마시고 잘 테니까 가서 자요.
빨강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강하 : 괜찮다니까요.
빨강 :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일어서는)
강하 : 나갈 때 불 좀 꺼줘요.
69. 씬. 거실 + 태규의 방 (밤)
-실내등 정도만 켜져 있는.
빨강, 태규 방 앞에서. 손에 얼음주머니 들고.
빨강 : 태규야? 태규야? 자니? (문 살짝 열어보면)
-태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빨강 : (문을 닫는, 2층으로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고 들어오는 준하) 지금 오세요?
준하 : 아, 네, 늦었는데 왜 여기?
빨강 : 변호사님이 감기에 걸리신 거 같아요.
준하 : 형이요? 우리 형 웬만해선 어디 아프고 그러지 않는데.
빨강 : 오늘 고생 좀 심하게 하셨거든요.
준하 : 네?
빨강 : 얘기하자면 좀 길구요. 우선 이것 좀 가져다 머리에 올려놔주실래요. 얼음주머닌데, 얼음 녹기 전에.
준하 : 이것 때문에 여기 있었던 거예요?
빨강 : 제가 2층 올라오는 거 싫어하셔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마침 팀장님이 들어오셔서 다행이에요.
70. 씬. 강하의 방 (밤)
-어둠. 준하, 문 여는. 다가와 침대 옆 스탠드 켜며.
준하 :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 만져보고, 이마에 얼음주머니 올려놓는)
강하 : (그 바람에 잠이 깨고) 뭐냐?
준하 : 웬 감기야?
강하 : 그러게 말이다, 웬 감긴지. (얼음주머니 만져보며)
준하 : 빨강씨가 머리에 좀 올려놔달라고 해서. 형이 성가셔 하니까 올라오지도 못하고 계속 아래서 서성이고 있었나봐.
강하 : .....
준하 : 많이 안 좋으면 병원 가자.
강하 : 그 정도 아니야.
준하 : (피식 웃고)
강하 : 왜?
준하 : 감기도 걸리고 그러니까 인간미 있다, 형.
강하 : 헛소리 하지 말고 가서 자라.
71. 씬. 식당 (밤)
-빨강, 유리 주전자에 뜨거운 물 붙고, 레몬을 손으로 짜서 즙내 물에 넣는.
들어오는 준하.
준하 : 또 안자고 뭐해요?
빨강 : 이왕 심부름 해주신 거, 이것도 좀 올려다 놔주시면 안 될까요? 레몬 물인데, 땀 많이 흘리시면 목마르실 거예요.
주무시다 목마르면 드시게.
준하 : 우리 형.....포기 못했죠? 빨강씨?
빨강 : (화들짝)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오늘 제가 변호사님한테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저 그리고 정신 차렸어요.
준하 : .....
빨강 : 우리 남이 대학 졸업 할 때까진 딴 생각 안하고 살 거거든요. 이 집에 들어오면서, 찜질방 화장실에서 머리 잘라내면서
결심했어요. 이제 난 여자 아니다. 그냥 엄마일 뿐이다.
72. 씬. 강하의 방 (새벽)
-강하, 잠들어 있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물 주전자를 보고, 물을 따라 마시는데,
주전자 밑에 있는 접혀진 메모지 보이고.
강하 : (메모지 펼치는데)
빨강E : 제가 월급 받으면 진짜 좋은 비타민 사드릴게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 레몬 물로 미안함을 대신할게요.
강하 : (피식 웃으며, 물을 마시는. 순간, 병원에서 노래하고 있던 빨강의 모습이 떠오르고. 미소가 번지는데,
그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하는 표정으로)
73. 씬. 식당 (새벽)
-빨강, 죽 끓이고 있는.
빨강 : (맛을 보며) 그래, 음식을 잘 하려면 맛을 봐야하는 거야. 캬, 진빨강, 나날이 일취월장하는구나.
(그러다 계단을 내려오는 강하의 인기척을 듣고)
74. 씬. 거실 (새벽)
-강하, 양복 차림으로 신발을 신고 있는. 빨강, 식당에서 급하게 뛰어나오며.
빨강 : 어디 가세요?
강하 : (빨강 시선 피하면서) 출근합니다.
빨강 : 이 신새벽에요?
강하 : (구두를 신는데)
빨강 : 죽 끓여놨는데 좀 드시고.....
강하 : 죽을 병 아닙니다.
빨강 : 저 때문에 병 나셔서 꼴도 보기 싫으신가 봐요?
강하 : 알면 됐습니다. (나가는)
빨강 : 말 저렇게 재수 없게 하기도 쉽지 않은데.
75. 씬. 헬스장 (아침)
-강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는. 순간순간 스치는 회상들.
-빨강이 회사 앞에서 계란을 맞던 모습.
-무릎을 꿇고 사정하던 모습.
-룸싸롱에서 노래하던 모습.
-자신의 뺨을 때리며 독종 새끼야 하던 모습.
-군고구마 입에 넣어주며 웃던 모습. 등등.
회상씬이 하나씩 겹칠 때마다 강하의 달리기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고. 마지막엔 거의 사력을 다하는 모습으로 뛰는.
그러다 멈춰서 러닝머신 바를 잡고.
강하 : 뭐냐? 원강하?
76. 씬. 헬스장 출입구 (아침)
-강하, 양복 차림으로 나오는데, 핸드폰 진동 울리고.
강하 : (받고) 네. 회장님.
77. 씬. 병실 (낮)
-정회장, 소파에 앉아있는, 강하 그 앞에 서있고.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네가 사람을 하나 찾아줘야겠다.
강하 : .....
정회장 :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너 혼자만 알고 하루라도 빨리 찾아줬으면 싶은 사람이 있다.
강하 : 누굽니까?
정회장 : 내 손주다.
강하 : (굳어져서 보는)
정회장 : 죽은 큰 애 핏줄이 살아있는 거 같구나.
강하 : .....
정회장 : 그 애가 의료 봉사를 갔던 섬에 그 애의 핏줄이 있는 거 같구나.
강하 : .....
78. 씬. 멀티샵 전경 (낮)
79. 씬. 멀티샵 일각 (낮)
-직원들과 둘러보고 있는 민경.
민경 : 여성의 세심하고 감각적인 맛을 충족시켜줄 복합문화공간, 이게 우리샵의 메인 컨셉이라는 거 잊지 말고
철저하게 준비해 줘요. (하는데, 벽 쪽을 향해 서있는 도식이 눈에 들어오고. 굳어지는)
80. 씬. 멀티샵 사무실 (낮)
-민경, 도식과 들어오면서.
민경 : 뭐하는 짓이야? 왜 여기까지 찾아와?
도식 : 네가 급하게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작은 카세트 흘러나오는 정회장의 목소리.
정회장E : 죽은 큰 애 핏줄이 살아있는 거 같구나. 그 애가 의료 봉사를 갔던 섬에 그 애의 핏줄이 있는 거 같구나.
민경 : (질리는 표정으로)
81. 씬. 동네 계단 (낮)
-정회장, 허름한 잠바 차림으로 계단에 앉아있는, 만수 뛰어가다가 보고.
만수 : 어, 또 왔어?
정회장 : 만수야?
만수 : 어, 이젠 나 알아?
정회장 : 혹시 빨강이네, 어디로 간지 아냐?
만수 : 몰라, 그냥 갔어.
정회장 : 슈퍼 문 닫혀 있던데? 어머니, 아버지, 어디 가셨냐?
만수 : 큰집에 제사 갔어.
정회장 : 언제 오시냐?
만수 : 이따, 이따.
정회장 : 그럼, 어머니, 아버지 오시면 나한테 연락 꼭 좀 해달라고 해주겠냐? 내가 전화 번호 적어줄 테니까.
만수 : 그럼 얼마 줄래?
정회장 : (보면)
만수 : 500원 아니면 나 안 해.
82. 씬. 동네 슈퍼 앞 (낮)
-빨강, 남이 업고, 닫긴 슈퍼 앞에 서있는, 만수 걸어오는.
만수 : 어, 빨강이다.
빨강 : 만수야? 엄마, 아빠 어디 가셨어?
만수 : 응. 큰집에 제사 갔어.
빨강 : 그렇구나.
만수 : 왜?
빨강 : 응. 엄마가 드신 보험 때문에, 새로운 보험으로 전환 할 수 있는 게 있거든. 지금보다 보장이 많이 되고, 돈은 그대로구,
그걸로 바꾸시라구.
만수 : 나중에 말해. 지금은 없어.
빨강 : 알았어, 나중에 올게. (돌아서는데)
만수 : 넝마 할아버지가 너 찾았는데.
빨강 : (돌아보고)
83. 씬. 동네 계단 (낮)
-빨강, 남이 업고 뛰어오는, 아무도 없는.
빨강 : (실망하는)
84. 씬. 큰 길, 버스 정류장 (낮)
-걸어오는 빨강, 버스에 타려고 하는 정회장.
빨강 : (정회장을 발견하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뛰는)
정회장 : (무심히 고개 돌리다가 빨강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빨강 :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서 멈추는)
정회장 : (울먹한 심정으로) 빨강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