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각(脫殼)
오월 첫째 주 일요일은 즐겨 가던 산행은 숨고르기하고 집안일을 좀 돌보아야했다. 집안일을 시작 전 새벽녘 어디 다녀올 데가 있었다. 아침 종이신문도 오지 않는 날이라 다섯 시에 길을 나섰다. 첫차로 운행을 개시하는 시내버스를 탈 요량이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도 바깥일을 보려고 나다니는데 대중교통만으로도 불편은 느끼질 않는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서둘면 되었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동정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다니는 녹색버스를 탔다. 해가 길어진 늦은 봄날인데도 워낙 이른 시각이라 차량이나 사람들은 드물었다. 환승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댓거리를 출발해 마금산 온천으로 다니는 24번 시내버스가 왔다. 버스에 탄 손님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뿐이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옛길을 이십여 분 달려 온천장에 닿았다.
가끔 들리는 북면의 허름한 온천장을 찾았다. 들어간 온천장은 외양이나 내부가 그렇게 시선을 끌지 못했다. 내가 그런 온천장을 잘 이용함은 허허실실이다. 번듯하게 잘 꾸며 놓은 온천장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게 마련이다. 온천장은 온천수가 생명인데 사람들이 탕에 많이 들어가면 물은 쉽게 흐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적게 찾는 온천장을 찾아드는 입장이다.
집 근처 대중탕을 두고 멀리 떨어진 온천장까지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같은 목욕 비용이라면 발품을 좀 팔고라도 온천장 수질이 더 나을 듯해서다. 나한테 시간이야 만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내가 온천장을 가끔 가는 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건강이나 미용이 아닌 내 나름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잘 붙어 따뜻한 물에 푹 불리기 위함이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 분명 남들보다 많이 걷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발바닥에 굳은살이 쉬 붙는다. 고작 여름 한철만 빼곤 일 년 중 세 계절은 발바닥에 굳은살이 붙은 채 지낸다. 무좀인가 싶어 병원을 찾아가보아도 명쾌한 처방전이 나오질 않았다. 의사가 굳은살 표집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더니만 무좀균은 없다고 판정했다. 아마 발바닥도 타고난 체질이 한 몫 하는 모양이었다.
목욕탕에서 발바닥을 불려 굳은살을 깎아내지 않으면 집사람으로부터 투덜대는 소리를 자꾸 들어야했다. 굳은살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와 거실을 청소해 놓고 돌아서면 금세 또 허연 부스러기가 있다고 핀잔이다. 나는 이 소리를 안 들으려고 한 달 한두 번은 온천장을 찾아 발바닥을 불려 굳은살을 깎아내야 한다. 발바닥 굳은살 제거에 이력이 붙어 내 나름의 비결을 갖고 있다.
누가 홈쇼핑에서 굳은살을 깎아내는 도구가 있다고 추천하더니만 나는 관심 없다. 발바닥 굳은살은 목욕탕 바닥에 문지른다고 사라지진 않았다. 때수건으로 씻어내는데도 한계가 있어 깔끔하지 않았다. 내가 찾아낸 가장 좋은 방법은 굳은살을 온천수에 푹 불려 문구용 가위 양날을 펼쳐 조심스럽게 깎아내는 것이다. 특히 두텁게 붙은 발뒤꿈치 굳은살은 집중해서 깎아내야 한다.
일찍 온천장을 찾아도 나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있었던지 바구니에 수건이 더러 쌓여 있었다. 내가 탕 속에 들었을 때 목욕 손님은 몇 되지 않았다. 느긋하게 온천수에 몸을 불려 벼르고 벼른 발바닥 굳은살을 깎아냈다. 모든 일은 시간을 절약하고 능률을 높이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무리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일지라도 목욕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한 시간 이내였다.
온천장 바깥으로 나오니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가까운 마금산과 천마산은 신록이 싱그러웠다. 들판 건너편은 백월산이 솟구쳐 있고, 남쪽 멀리감치 천주산 능선은 작대산으로 이어졌다. 휴일 산행은 평지에서 눈요기로만 끝내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어느새 느티나무 가로수는 녹음이 짙어가고 있었다. 13.05.05
첫댓글 쬐끔 발에게 미안하시지요?
어쩌면 젤 호강하는 발인 듯 합니다.
주인님의 과분한 사랑.....쭈욱 파이팅 하십시오.^*^
베이킹소다 두 스푼을 발바닥이 잠길 정도의
따뜻한 물에 희석해서 20분 가량 불렸다가 이태리 타올이나 문지르는 돌로 닦아 보세요.
효과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