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고전주의 문학
메이지 유신 이후 약 20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일본사회는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서구화의 상징인 로쿠메이칸을 정점으로 그동안의 맹목적인 서구화에 대한 반성으로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생겨나면서, 문학계에서는 서양의 사실주의 문학이론에 근거하여 일본의 고전을 재평가하는 의고전주의(擬古典主義)가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복고적인 시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1885년에 <겐유샤>라는 문학결사가 최초로 성립됩니다. 도쿄대학 예비문 학생인 오자키 고요와 야마다 비묘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로 동인지 <잡동사니 문고>를 통해 쇼요의 사실주의에 근거하면서 근세문학 특히 이하라 사이카쿠를 재평가하면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즉 그들은 문명개화기의 풍속을 다룬다는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게사쿠 전통의 인정세태를 중심으로 하는 소설을 발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겐유샤>를 주도한 것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였는데, 그는 <두 비구니의 참회>, <향 베개> 등을 발표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판인 <금력의 야차>는 그 당시 최고의 화제작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오자키는 <데카메론> 등의 작품을 번안하는 등 서양문학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세 문학을 중심으로 한 고전문학의 전통에 근거하였기에 '양장한 겐로쿠문학'이라 평해지고 있듯이, 전근대적인 작품 특성으로 근대문학의 발전을 퇴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고요와 더불어 1890년 당시의 문단에서 쌍벽을 이룬 작가는 고다 로한(幸田露伴)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를 흔히들 <고로 시대(紅露時代)>라고 부르고 있듯이 그 들이 문단의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습니다. 다만 로한은 게사쿠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겐유샤>중심의 고요와 마찬가지입니다만, 고요가 여성의 정서를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뛰어나다고 하면, 로한은 강건한 남성 묘사가 뛰어납니다. 게다가 고요가 사실파라면, 고다는 낭만파이면서 이상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로한의 작품으로는 첫 작품 <이슬방울>을 시작으로 <풍류불> 그리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중탑>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