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부산의 영도는 말[馬]을 훈련시키는 섬으로 된 목장이였는데 그림자도 떼어 놓고[絶影]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명마(名馬)를 기르던 곳이였다. 그 후 절영도(絶影島)는 영도(影島)로 불려졌다. 《임하필기》13권(고전번역원 역문)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정호(鄭澔)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수영(水營)과 부산(釜山.부산진)의 두 진(鎭) 앞에 절영도(지금의 영도)가 있는데 태복시(太僕寺. 궁중의 승여,마필,목장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서 말을 놓아 먹이고 있는바, 이곳은 수영과의 거리가 3, 4리 정도 되는 곳으로서 외면(外面)은 지극히 험하지만 그 안은 실로 토지가 비옥합니다. 그런데 왜선(倭船)이 부산을 향할 때에는 반드시 이 섬의 오른쪽을 경유하고 수영을 향할 때에는 반드시 이 섬의 왼쪽을 경유하게 되어 있으니 이곳은 실로 도적들이 들어오는 길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응당 목장을 철거하고 대신 진(鎭) 한 곳을 설치하여 군사를 기르고 병선(兵船)을 비축하여야 할 것입니다. 백성들을 다독여 여기에서 농사를 짓게 하면서 뒷날의 위급한 일에 대비하게 한다면, 비록 적의 배 천 척이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그 형세가 이 섬을 버리고 다른 길을 경유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반드시 먼저 이 섬을 침입하여 점령해서 후환을 없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전진해서 수영이나 부산(부산진)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섬에서 이들을 막아 서로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 수영과 부산의 여러 진(鎭)의 전선(戰船)들이 군병들을 불러 모으고 기계(器械)들을 정리하여 안팎이 서로 호응하는 형세를 이룬다면 반드시 적선(賊船)들이 종전과 같이 거칠것 없이 휩쓸고 들어오는 변란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섬에 사는 백성들이 4, 5백 호 가량 되므로 이는 곧 1천 명에 가까운 정병(精兵)들이 항상 섬 안에 주둔하고 있는 셈이고 그런 데다 사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자연 이들이 도망하여 흩어질 염려도 없고, 부모와 처자들이 모두 섬 안에 살고 있으므로 이들이 마음을 굳게 먹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절영도(絶影島)의 총마(驄馬) 한 필을 고려 왕에게 바쳤다가, 나중에 참서(讖書)에 “절영도의 명마가 이르면 백제가 망한다(絶影名馬至百濟亡)” 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후회하였다. 사람을 보내 그 말을 돌려줄 것을 청하니 왕이 웃으면서 허락하였다고 한다. 성호 이익의 문집인 《성호전집》7권에 「절영마가(絶影馬歌)」가 있다.
바다 안에 산이 있어 그 이름이 절영이라 / 洋中有山名絶影
운무가 자욱하니 용성이 정기를 내렸다네 / 雲霧晦冥龍降精
이때는 바야흐로 병록(고려)의 운수를 만난 때라 / 是時方値丙鹿運
녹도와 적부가 다투어 바쳐졌네 / 錄圖赤符爭來呈
견훤 같은 어린애가 군병을 훔쳐 놀았지만 / 甄萱小兒盜弄兵
흥망의 형세 판가름 나 하늘 뜻이 분명했네 / 興亡勢判天心明
완산(전주)의 사신이 준마를 이끌고서 / 完山使者牽駿骨
남쪽 보물과 함께 상경에 들어왔네 / 卷與南琛入上京
군왕이 몸소 나와 예물을 받았는데 / 君王臨軒受庭實
최고의 상서 물품이 참위설과 나란했네 / 上瑞會與讖緯幷
하늘이 보낸 신물이 백신의 호위를 받고 / 天敎神物百神衛
창합문(사신을 맞이하는 곳) 앞에 우뚝 서니 위풍을 자아냈네 / 卓立閶闔雄風生
광대한 강토에서 바깥 마구간으로 여겼으니 / 恢恢疆域視外廐
말을 우성에 돌려주어도 해로울 것 없었다네 / 屈産未害歸虞城
지리산 앞 대방(남원)의 북쪽에 / 智異山前帶方北
마을에는 아직도 만마의 이름이 전해지네 / 洞府猶傳萬馬名 (남원과 전주 사이의 萬馬關)
산하가 풍성하다고 해서 어찌 믿을 수 있으랴 / 山河富盛安足恃
동물도 또한 인자가 정벌하기를 기다렸네 / 畜物亦待仁人征
기세등등 장대하게 구름처럼 모였지만 / 騰驤磊落空雲屯
필경에는 모두 항복의 길을 쫓아갔네 / 畢竟盡逐牽羊行
남쪽 백성들아, 말이 오면 백제 망한다는 노래 부르지 마소 / 南氓莫唱馬至濟亡謠
백제는 자멸한 것이지 용마 때문이 아니라오 / 濟亡自亡不緣龍馬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