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신문조서 대신 법정녹음으로 증언을 기록하기 시작한 지 벌써 약 3년이다. 법정녹음이 실시되기 전에는 증언 그 자체보다도, 증언이 조서에 어떻게 기재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재판이 길어지면 증인신문의 내용이 좀처럼 기억나지 않아 조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조서는 증언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그 요지만 기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증인이 변호사의 질문에 장황히 답변을 하더라도 재판장이 “그래서 맞다는 것이지요?”라고 되물어서 증인이 “네”라고 답하면 조서에는 “맞습니다”라고만 기재되는 식이었다. 이렇다보니 변호사들은 조서가 유리하게 작성되도록 노림수를 부렸다. 증언이 불리하다 싶으면 “말씀이 너무 길어서 제가 정리해 볼게요”라면서 증언을 조금씩 왜곡하는 식이었다. 이를 두고 상대방 변호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조서에 정확히 기재해 달라고 이의를 제기하여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잦았다. 결국 재판장이 “조서에는 이렇게 기재하도록 하지요”라고 정리해주어야 했다.
법정녹음이 조서를 대체하자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조서 대신 기록에 첨부되기 시작한 녹취서에는 모든 발언이 가감 없이 기재되었기 때문이다. 증언을 두고 ‘이렇게 기재하자, 저렇게 기재하자’ 토를 다는 일이 없어지니 증인신문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녹취서의 제목이 ‘녹취서(요지)’로 바뀌었다. 녹취서에 모든 발언을 담다보니 너무 분량이 많아지고 산만해져서 요지만 기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은 과거의 증인신문조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차례의 문답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재판장의 의사진행 발언이 생략되기도 한다.
녹취의 요지만 정리하여 기록에 편철하는 것은 조서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법정녹음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법원에 녹음파일이 보관되어 있어 언제든 청취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은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상급심에서 새로운 재판부와 변호사가 녹음파일을 하나씩 열람하여 청취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법정녹음 제도의 취지를 실현하는 것은 모든 발언이 빠짐없이 기록된 녹취서일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녹취서(요지)’가 다시 녹취서로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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