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들 편드는 종교 지도자를 기다리며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종교 지도층’ 단어가 들어 있는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를 읽거나 듣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종교 지도층’은 곧 종교 단체의 권력층을 가리킨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종교 지도자가 있는가’, 칼럼 제목을 불쾌하거나 의아하게 여길 분도 있겠다. 먼저 종교 지배층과 종교 지도층이 같은 뜻을 말하는지 물어야 하겠다. 그다음 질문이 이어지겠다. 지금 대한민국에 종교 지도자가 있는가. 만일 있다면 누구인가.
종교 지배층은 곧 종교 지도층인가. 종교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존경받는 사람들인가. 종교 지도층은 곧 종교 지배층인가. 존경받는 종교인들은 종교 권력을 쥐고 있는가. 종교 지배층이 곧 종교 지도층일 수 있고, 종교 지도층이 곧 종교 지배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 지배층은 종교 지도층이 아닐 수 있고, 종교 지도층은 종교 지배층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 종교 현실은 어떤가.
불교, 개신교, 가톨릭 지배층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끈질기게 요구했는가.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종교 지배층의 태도는 어떤가. 종교 지배층에 속한다고 자타가 공인할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말하는 대형교회 목사가 있던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말하는 본사 주지와 종회의원 스님이 있던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말하는 주교가 있던가. 윤석열 정권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자기 검열하며 절, 교회, 성당에 꽁꽁 숨어 있지는 않는가. 희생자들의 원한과 유가족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닿을 때, 종교 지배층은 뭘 하고 있었던가.
참사 재발 방지를 촉구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모른 체하는 종교 지배층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미래의 일을 거론하면서 현재 사건을 회피하고, 슬퍼하되 저항하지 말라고 설교한다. 참사 책임자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교활한 수법이다. 종교 지배층은 희생자를 위로하는 데 참여하지만, 억압자들과 싸우는 데 주저하고 있다. 한편으로 희생자를 위로하면서, 다른 편으로 희생자를 낳은 권력자들과 잘 지내려 하는가.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어울려서 돈을 얻어내고 종교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한가. 종교 지배층은 세상의 빛과 소금은 되지는 못하더라도, 백성을 속이는 아편과 방부제는 제발 되지 말라.
그러면, 누가 종교 지도자인가. 스님, 목사, 신부 같은 직업 종교인이고, 종교 단체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돈과 사람을 좌우하는 결재권을 쥔 사람이 곧 종교 지도자인가. 청와대나 대통령 집무실에 가끔 초대되는 종교인이 곧 종교 지도자인가. 언론에 자주 나타나는 유명한 종교인이 곧 종교 지도자인가.
브라질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를 떠올리고 싶다. “누가 지식인이냐”고 물었던 그에 따르면, 지식인 여부는 학력에 달려 있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편드느냐 여부에 있다. 가방끈이 긴 사람이 곧 지식인은 아니다. 유명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편들지 않는 사람은 곧 문맹이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편드는 사람은 당당한 지식인이다.
‘누가 지식인이냐’ 질문을 ‘누가 종교 지도자인가’ 질문과 연결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과 역사의 희생자들을 이해하고 편드는 사람이 종교 지도자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종교 권력과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라도, 가난한 사람들과 역사의 희생자들을 이해하고 편드는 사람은 곧 종교 지도자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과 역사의 희생자들을 이해하고 편들지 않는 종교인은 종교 지배층에 속할 수 있지만 종교 지도자는 아직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종교 지도자가 있는가. 종교 지배층에 속한 사람 중에 종교 지도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종교 지배층은 신도들과 시민들에게 존경받고 있는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신도들이 있는가. 스님, 목사 신부 등 직업 종교인이 시민을 지도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시민이 직업 종교인을 훈계하는 시대가 시작된 듯하다. 직업 종교인이 시민을 지도하기는커녕, 시민의 신념을 따라오지도 못하는 시절에 접어들었는가. 종교인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역사의 희생자들을 편드는 사람이 곧 종교 지도자다. 절, 교회, 성당에 다니지 않더라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종교 지도자다. 직업 종교인이 아닌 시민도, 신자도, 이름 없는 사람도 종교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종교 지도자로서 존재하고 행동하며 의로운 영향력을 풍기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이 있다.
위기의 시대에 참된 종교 지도자가 더 필요하다. 종교 지배층에 대한 비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종교 지배층이 종교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평범한 우리 자신이 종교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종교 지도자가 민들레처럼 한반도 들녘에 넘치게 생기고 퍼져나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