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
시 편 42 : 1 – 11
시편 42편은 ‘고라의 자손 마스길’이라 주제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마스길’은 히브리어로 ‘교훈’’이란 뜻입니다.
42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고라’는 레위의 증손이며 이스할의 아들이며 모세와 아론은 사촌입니다. 그런데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모세에게 ‘당신들은 분에 넘치는 일을 하도다. 온 회중이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이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고 하며 반론을 일으켰습니다.(민16:3)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인도자와 대제사장 직을 맡겨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반역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고라가 반역하는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반역하는 사람들을 나오게 하여 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땅바닥이 갈라지고 반역하는 그들과 그들의 집과 그들의 제물을 삼키고 땅이 그 위에 덮었습니다.
다시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250명을 불살랐습니다.(민16:31-35) 이튿날 회중이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하며 모세와 아론을 칠 때,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염병으로 14,700명을 죽였습니다.(민16:49)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반역하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죽인 무서운 사건을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고라와 고라와 함께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는 사람들을 멸망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세운 자들을 원망하고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고 스올(지옥)에 던져 멸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부모의 죄로 자녀를 저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고라와 함께 한 반역자들은 다 죽었는데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습니다.(26:11) 고라의 아들들이 죽지 않은 것은 아버지 고라와 같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에스겔 선저자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음으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됨이냐’(겔18:2)는 이스라엘의 속담을 말한 것처럼 고라가 모세와 아론을 반역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고라의 아들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고라의 아들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땅속에 묻히고 여호와의 불이 나타 죽이는 것을 보고 아주 멀리 두려워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자녀들을 고라의 자손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라와 그의 자손들은 찬양대장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낼 때 찬양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하며 섬겼습니다. 시편에 다윗의 시가 많고 다음으로 고라의 자손의 시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죄로 인하여 자녀들을 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받는 것처럼, 자신의 죄로 자신이 저주도 받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핍박과 박해를 받는 고라의 자손들과 함께 하시고 도와 주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핍박과 박해로 많은 고난을 당해도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더 잘 섬겼습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삶을 ‘목마른 사슴’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1)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여’라고 부른 것은 애끓는 탄식으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요단 땅과 헤르몬과 마살 산에 거주하였습니다.(6) 만년설로 덮힌 2,850m의 높은 헤르몬산의 마살(작다) 산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작은 산입니다.
만년설로 덮힌 헤르몬산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단’에 있습니다. ‘요르’는 흐르다는 뜻으로 ‘단’에서 갈릴리로 흘러는 물을 ‘요단강’이라고 합니다.
물 한 방울도 없는 유대 광야에서 목마른 사슴들이 물을 찾아서 헤르몬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찾아와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고라의 자손들은 마치 자신들의 영혼의 갈급함을 비유로 말했습니다.
헤르몬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기 때문에 요단강을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14)
우리도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는 것처럼,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수를 마시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넷째, 고라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성전을 사모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2)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라는 말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섬기겠다는 의미입니다. 시온의 성전(막)에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예배드리기를 갈망했습니다.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들은 눈물이 음식이 되는 것처럼 종일 슬퍼하며 여호와의 얼굴을 뵙고 섬기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라고 찬송했습니다.(시84:1, 10)
지난 날 성일을 지키며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에서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불렀던 것을 기억하며 그들은 마음이 상했습니다.(4) ‘마음이 상함’은 마음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히브리어로 ‘거친 것이 부서진 것’, ‘곱다’는 뜻으로 ‘가루’를 의미합니다.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고 말했습니다.
‘상한 심령’은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마치 밀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 것같이 마음이 낮아지고 깨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상한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기뻐하십니다.
5절은 후렴으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주를 기억하나이다”라고 찬송했습니다.
‘어찌하여’란 말은 ‘추스리다’는 뜻입니다. 적에게 쫓긴 군인들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사모하며 눈물을 흘리며 낙심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군화 끈을 다시 졸려 매고 일어나 적을 향해 싸우려고 달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느가’라고 한 것은 자신이 낙심한 자신을 책망하고 낙심한 자신의 영혼을 추슬러 일깨우는 것입니다.
우리도 낙심하고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하며 자신의 영혼을 추스르고 일깨워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조롱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피한 고라의 자손들에게 선지자가 찾아와서 권면하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낙심된 마음을 추스르고 일깨워서 믿음을 회복시켰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는 말은 자신이 자신보고 책망하고 스스로 일깨워 일어날 때 성령께서 도와주셨습니다.
두 번째 소절의 찬송을 봅시다.(6-10)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을 찾는 애끓는 탄식으로 ‘하나님이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1) “내 하나님이여”라고 불렀습니다.(6) ‘나의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이여’라고 부르지 않고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른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5절에 ‘그가 나타나 도우심’과 11절에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이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소절은 자신의 어려움에서 도와 달라는 호소이지만 두 번째 소절은 자신을 도우심을 감사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찬송의 내용을 보면 그동안 그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 뼈를 찌르는 칼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기 때문에 원수의 압제로 슬프게 다닌다’(9,10)는 말씀을 보면 전보다 더 많은 괴로움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혼이 깨어남으로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낙심하고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7) 자신들의 낙심과 불안을 다 쓸어갔다고 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8).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더욱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낙심하고 불안해 하던 자신들을 일깨워 준 주님을 기억하였습니다.(6) 그리고 후렴으로 다시 자신들의 믿음을 추슬러 일깨우는 찬송을 불렀습니다.(11)
원수 마귀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낙심되었던 믿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깨워도 원수는 떠나지 않고 성도들을 더욱 괴롭힌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 원수 마귀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더 악하게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를 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 죄악에서 구원해 주시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부른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조롱하고 핍박하는 사람들로 인해 낙심하고 불안해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셔서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주께서 나타나 도우심으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합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은 마음속에 평안과 안식을 준답니다.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수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어 진실한 목소리로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사랑과 행복으로 편안한 삶에 만사형통 하시고 즐겁게 아름다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말씀 매우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