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편지1367
부모은중경035
동봉
[불설대보부모은중경]
佛說大報父母恩重經
제3절 이분문답2
부처님이 이르시되 그가만일 남자라면
이세상에 있을적에 설법듣고 경전외고
부처님전 예배하고 염불공덕 닦았기에
남자뼈는 그와같이 희고또한 무거우며
그가만일 여자라면 사람으로 있을적에
혼인하여 가정이뤄 자녀낳아 양육하되
여자로서 임신하여 아이한번 낳을때에
서말서되 진한피를 흘리기도 했느니라
아들딸을 젖을먹여 키워가는 과정에서
자그마치 여덟섬에 다시또한 너말되는
사랑담긴 어미젖을 자식에게 먹였나니
그러기에 여자뼈는 검고또한 가볍니라
아난다가 말씀듣고 어머니를 생각하매
비수로써 저미는듯 그마음이 아린지라
눈물흘려 울먹이며 부처님께 여쭙기를
어머니의 크신은덕 어찌갚사 오리이까
第三節 二分問答2
佛告阿難若是男人在世之時入於伽藍
聽講誦經禮拜三寶念佛名字所以骨頭
白了又重女人在世恣情婬欲生男養女
一廻生箇孩兒流出三㪷三勝凝血飮孃
八斛四斗白乳所以骨頭黑了又輕阿難
聞語痛割於心垂漏悲泣白佛言世尊母
恩德者云何報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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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세在世는 어떻게 풀이할까
어제 '기포의 새벽 편지'에서 나는
'저세상에 있을때에'라고 풀이했는데
아무도 지적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룹과 개인 카카오톡에서도 없었지만
몇 개 밴드band에서도 없었고
페이스북Face book에서도 없었다
어찌하여 아무 말도 없었을까
내가 워낙 받아치기를 잘 하니까
'그냥 넘어가 보자. 뭐 답이 있겠지' 했을까
재세在世나
재세시在世時나
재세지시在世之時나
글자가 한 자씩 늘어갈 뿐
뜻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는 그냥 '세상에 있을 때'로 새긴다
그래야 하는데 얼토당토 않게
'저세상에 있을 때'라니 이는 말도 안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표현하는
이세상과 저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아무래도 이세상은
공간과 사물의 지시 대명사
'이'가 앞에 놓였으니 이곳일 테고
저세상은 '저'가 앞에 놓였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과 전혀 다른
이곳으로부터 다소 좀 떨어진 곳일 게다
아니면 세상은 분명 이세상인데
우리가 그냥 다른 곳이라 여기는 것일까
아무튼 이세상과 저세상은
공간 차이이거나 시간 차이일 것이다
재세의 '재'는 있을 재在 자로서
있을 존存 자와 쌍둥이로 따라다니는데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왜 그리 당연하냐고 물으면
존存이나 재在, 한 글자로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듯하여
같은 뜻을 지닌 두 글자를
나란히 놓은 게 아니냐고 하곤 한다
전혀 틀린 답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여기에는 매우 물리학적 명제가 들어있다
존재存在라는 단어에 종교학이거나
철학, 생물학이라면 모르겠으나
뜬금없이 웬 물리학이냐고 할 것이다
사람人은 반드시 하늘一을 머리에 이고
자식子으로 이어가기에 존存이고
역시 인간人은 하늘一을 머리에 이고
땅土 위에 존재하기에 재在다
여기서 자식이란 대를 잇기에 시간이고
땅이란 글자 그대로 넓이이기에 공간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으로서의 존存과
공간으로서의 재在가 함께 표현된다
아무튼《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서는
재세在世, 또는 재세지시在世之時라 하여
인간 세世 자를 놓고 있는데
세상世上은 곧 인간世의 터전上이다
태어나 늙어가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이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담겨 있다
태어나는 과정을 생략하고
늙고 병들고 죽음만이 있겠는가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늙음과 질병을 생략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재세란 인간으로서 삶이요
재세지시란 곧 인간 세상에서 살 때다
이를테면 마른 뼈를 놓고 볼 때
그 마른 뼈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마른 뼈에는 이미 죽음이 담겨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들 하지만
으레 말만 없는 게 아니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먹지 못한다
느끼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고
마침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죽은 자다
이를테면 전원이 나간 컴퓨터요
방전된 스마트폰이다
연료가 완전히 바닥난 탈것이고 기계다
거대한 물체를 들 수 있는 크레인도
배터리가 방전되고 연료가 떨어지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들지 못한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이처럼 격이 크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내에서
마른 뼈를 바라보며 절을 올리는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살아있는 이다
그러므로 이 뼈의 전생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추측할 수가 있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하면서
마른 뼈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떤 거룩한 성자가
오체투지로 큰절을 하고
전생을 추측하는 그와 그의 제자들이
누구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전원이 끊기고 연료가 고갈되고
배터리가 방전된 도구처럼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른뼈에 DNA조차 지워졌을까
결코 그렇게 쉬 단정지을 수 없다
컴퓨터에 전원이 연결되지 않았을 뿐
프로그램까지 망가진 건 아니다
스마트폰이 방전되어 그럴 뿐이지
충전이 시작되면 스마트폰은 작동한다
어플까지 사라진 건 아닌 까닭이다
전원이 들어오고 연료가 충분하다면
수천 톤짜리 점보 여객기가
제 몸무게 만큼의 짐을 실은 채
음쇠音速Mach1으로 하늘을 난다
마찬가지로 마른 뼈에는
그의 모든 DNA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마른 뼈를 보고
빛깔과 무게로서 남녀를 추측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과학의 힘을 빌린다
그리하여 그가, 또는 그녀가
전생에 인간으로 있을 때
어떤 신분이었고 누구의 집안이며
어떤 일에 종사하다 몇 살에 죽었는지
낱낱이 추측하고 짚어낼 수가 있다
다시 본 주제로 되돌아가자
이세상과 저세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세상은 산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저세상은 죽은 자만이 사는 세상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세상과 저세상은
시간적으로 다른 세상일까
아니면 공간적으로 다른 세상일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생각할 것이다
왜 '이세상'과 '저세상'을 붙여 쓰느냐고
'이 세상' '저 세상'처럼 띄어쓰기가 없다고
이는 이승과 저승처럼 고유명사다
띄어쓰기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에서의 '승'은 '세상'의 뜻이다
이는 이제, 저제를 비롯하여
어제, 그제, 엊그제 등에서 시간을 보듯
이승 저승의 '승'에는 공간성이 들어있다
결국 존재存在라는 단어 하나에도
시간存성과 공간在성이 담기듯
삶과 죽음에도 시공간은 늘 함께하고 있다
어제 '기포의 새벽 편지'에 나간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사언절 옮김에서
'저세상에 있을적에'는 오역誤譯이다
원문이 '재세지시在世之時'였으니
'이세상에 있을적에'정도로 풀었더라면
아주 좋았을 것인데 말이다
이야기話하는 이者가 부처님이셨고
그는 이야기 당시 이세상에 살아계셨다
그렇다면 마른 뼈가 있는 세상은
부처님이 머무는 세상이었으니
바로 '이세상에 있을적에'가 맞는 말이다
나는 내게 묻는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이승, 이세상일까
숨 쉬고, 듣고, 이야기하고
냄새 맡고, 맛을 즐기고
닿음을 느끼고
나와 남을 가리고
남녀노소男女老少를 가리고
파계破戒 지계持戒를 가리고
부처佛와 중생生을 가리고
진실眞과 거짓妄을 가리고
하이클래스高와 서민底을 가리고
불교와 불교 밖 종교를 가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리는 게 이세상일까
내게 던지는 착어着語다
"할, 할!喝又喝!"
"못난 녀석咄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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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대종사 열반 30주기 추모세미나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다
시간은 오늘 오후1시부터다
높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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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로 읽는 천자문千字文 강좌'가
내일 오후 6시부터 대각사에서 열린다
관심이 깊은 만큼 얻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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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018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