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북쪽
최태식
죽은 자전거포를 지나면
소란이 멈춰버린 거리가 나오고
거기, 노을을 담은 신태인역이 있었다
긴 머리를 잘라 식모살이 가던 만순이도
인정 많은 아저씨*를 잘도 부르던 철룡이도
방향은 오직 서울이었다
가끔 철로변엔 무임승차가 뛰어내렸고,
그것은 가마니에 덮인 맨발로 들춰지곤 했다
어둠이 흘러가는 산맥 너머를 바라보면
우리들의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모두 햇빛의 반대편에 매달렸다
일년에 한두 번씩
역 광장에서 긴 줄을 서다 보면
플랭카드가 박수처럼 나부끼고
우리들의 꿈은 늘 북진했기에
남쪽에서 객지로 떠났던 쓸쓸한 날개들이
연어 떼처럼 귀향을 서두르곤 했다
오동나무가 둘러싼 마을 공터에서는
손잡이가 찢긴 몇 개의 쇼핑백과
잿빛 소문에 젖은 달이 새벽까지 눈물을 글썽였다
여름 한낮
역사 앞 낡은 가게 시든 벽 사이로
누군가를 기다리던 잡초들,
북쪽으로 떠난 열차가 소식을 싣고 돌아오길 기다리며
팔순의 여주인은 꾸벅꾸벅 늙어갔다
고향마을에서 보면
반쯤의 입학과 뒤틀린 졸업 아니면
공장 재단사, 군복공장 시다, 누군가의 야간학교까지
생의 모든 희망은 늘 북쪽에서 자라는 목록들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오전보다 한뼘 더 늙어버린 그 가게에는
빈 탁자에 앉은 파리 한 마리 조금 위
철사로 얽어맨 선풍기가
부서진 프로펠러처럼 깨진 관절을 꺼내
삐그덕 삐그덕
북쪽에서 떠내려오는 소문 몇
되감고 있었다
* 인정 많은 아저씨 : 가수 송대관의 데뷔곡
ㅡ 웹진 《시인뉴스 포엠》 2026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