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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른신학 바른신앙 원문보기 글쓴이: 이성민
유진 피터슨 목사는 정말 존경받을 목회자일까?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 목사가 지난 10월 22일 향년 85세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각종 매체마다 소개하며, 모든 찬사를 동원하며 기리고 있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추천사가 그 증거의 하나입니다.
나는 저자에게 직접 그의 저작인 이 「메시지」의 저술 동기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유진은 순전히 ‘목회적 동기’였다고 대답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 읽기를 너무 어려워하고, 말은 안 하지만 성경 읽기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고 있는 죄책감에서 교인들을 해방시키고 즐겁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울 길은 없을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가 이 책 「메시지」입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영어 성경을 이 「메시지」로 읽어 왔습니다. 얼마나 쉽고 흥미까지 있는지요! 그러면서도 이 책은 성경 원문의 표현을 벗어나지 않는 학문적 엄밀성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에 흥미를 느끼며 성경을 독파할 다시없는 우리 시대의 대안으로, 단연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_ 이동원 목사 | 지구촌교회
유명한 악성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연주자가 악보만을 익혀 기계적으로 연주할 수도 있고, 그 곡에 숨겨져 있는 악성의 혼을 연주할 수도 있다. 둘 다 연주이기는 해도 확연하게 다르다. 악보만을 익힌 연주는 청중에게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연주는 살아 있는 연주라 할 수 없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성경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은 어느 시대 어떤 번역자에 의해서도 완전하게 드러낼 수 없다. 시대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번역일 뿐이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뜻을 가장 적절하게 잘 드러낸 최선의 번역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독자들에게 살아 있는 메시지로 들려질 수 있는 번역이다.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이때에, 이 「메시지」가 많은 독자들에게 영의 양식이 될 줄 확신하는 바이다._ 임영수 목사 | 모새골 공동체
성경은 자구(字句)를 따져 가며 세심히 읽어야 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 존재로 대하시며 건네시는 생생한 일상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살아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신앙의 내용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데 이 책 「메시지」는 크나큰 유익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_ 박영선 목사 | 남포교회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묵상 성경이다. 유진 피터슨은 문학적 상상력과 신학적 치밀성이 함께 통합된 아주 놀라운 성경 해석가요 설교자다. 그의 풍요로운 문학적 상상력이 신학적 경직을 훌쩍 건너뛰어, 그의 모든 글들을 늘 풍요롭고 자유롭고 아름답게 해준다. 딱딱한 성경의 이야기(narrative)를 흥미롭고 풍요로운 시적 언어로 다시 풀어내어 신선한 통찰력이 넘치는 새로운 이야기로 전하는 ‘스토리텔링 바이블’(Story Telling Bible)이 바로 「메시지」이다._ 이문식 목사 | 산울교회
저는 「메시지」의 출판을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1996년도 안식년에 저는 리젠트 칼리지에 머물면서 저자도 만나고 그의 저서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메시지」를 소개받고 읽으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한국어판의 간행을 기다려 왔습니다. 벌써 15년이나 되었네요. 이 책의 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추천합니다. 여러분 모두 성경처럼 옆에 두고 읽어 보십시오. 은혜가 되고 영감이 떠오를 것입니다._ 정주채 목사 | 향상교회
성에 낀 창가, 흐린 불빛 아래 앉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지바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의 지층을 탐사하면서, 곱씹은 말씀 한 자 한 자를 명징한 언어로 옮기느라 골똘했을 한 사람을 생각한다. 「메시지」의 행간에는 각고의 세월 동안 그가 흘렸을 눈물과 탄식, 기쁨과 감동이 배어 있다. 그 행간까지도 읽으려 한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의 노고도 눈물겹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현대인을 가리켜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라 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본래적 삶을 되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의 세계와 깊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얻은 기분이다._ 김기석 목사 | 청파교회
우리 교회는 성경을 읽을 때 두 가지 번역본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개역개정 성경이고, 하나는 「메시지」라는 의역 성경입니다. 특히, 「메시지」란 성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성경을 여러 번 읽으셨던 분들은 새로운 번역본으로 읽으면서 성경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성경을 읽는 분들은 현대어로 번역된 이 성경을 통해 성경의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심령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사모합니다._ 정현구 목사 | 서울영동교회
「메시지」는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지금 이 시대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에 담아 생동감 있게 전해 줍니다. 성경의 원문에 충실한 바른 번역이 살아 있는 언어로 더욱 빛을 발하는 「메시지」는,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든 오랫동안 상고해 온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깊이 파고드는 생명력 있는 진리의 귀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와 미래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에게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크게 쓰일 것입니다._ 오정현 목사 | 사랑의교회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살아 있는 정보를 가득 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지만, 성경 원어가 모국어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늘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유진 피터슨은 문화와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그 소중한 의미를 밝혀 주는 번역과 의역 작업을 통해 우리를 성경 말씀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든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판 「메시지」가 나올 때까지,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보고가 될 것이다._ 김형국 목사 | 나들목교회
나는 「메시지」 출간으로, 한반도에 사는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성경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유진 피터슨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지만 학문적인 엄밀성도 갖춰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 성경을 공부해 온 사람이나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 했다. 「메시지」는 아이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고, 학자들도 물론 읽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사용하셔서, 이 땅 한반도가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한다._ 오대원 목사 | 예수전도단 설립자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가 유념해야 하는 사실은 매체가 메시지가 된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간직해 온 가장 소중하고 핵심적인 매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인데, 그간 다양한 번역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개역이나 개역개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매체는 여전히 어렵고 접근하기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이라는 매체가 ‘교회는 어려운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이미 영어권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메시지」가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언어와 문화의 간격을 넘어야 하는 번역이라는 과제가 있었지만, 한국어판 번역본을 확인해 보니 저자의 표현을 심사숙고하여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우리의 정서와 상황에 와 닿도록 안내해 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바라기는 「메시지」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대면하는 새로운 매체가 되어, 교회의 문호가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되기를 기대합니다._ 김중안 | 한국기독학생회 IVF 대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이 된 말씀은 역사의 분기점마다 새 세상을 창조하는 영감과 통찰, 그리고 힘의 원천이었다. 위대한 개혁의 시대에는 일상의 언어, 보통 사람의 말로 생생하게 살아 펄떡이는 말씀이 있었다. 위클리프의 성경이, 루터의 성경이,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는 개역성경이,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메시지」가 주어졌다. 주님께서는 우리 시대 또 어떤 역사를 시작하실 것인가?_ 이윤복 | 죠이선교회 대표
「메시지」 성경의 출간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오늘날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진수를 오늘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정서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손에 잡히는 언어로 이해하고 묵상하기에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_ 한철호 | 선교한국 파트너스 상임위원장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속내를 드러내신 계시의 종교이다. 성경은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를 제한된 사람의 언어로 담아낸 책으로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역사상 수많은 번역이 난삽하거나 고전적 표현을 고집함으로써 성경의 메시지로부터 일반인을 격리시키는 오류를 범하곤 했다. 개역성경도 긴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인이 쉽게 읽기 어려운 책이 되고 말았다. 현대어 번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개혁파와 기존 번역을 유지해야 한다는 수구파의 해묵은 갈등으로 현대인과 성경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던 차에,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보니 오랜 가뭄에 단비같이 반가운 소식이다. 이 탁월한 ‘성경 옆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독자의 삶에 친숙하고 풍성하게 되살아나는 축복이 있기 바란다._ 정민영 | 국제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부대표
원어의 운율과 숙어적인 의미를 살리면서도 편안하게 빠져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를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됨을 환영한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운율과 어감이 다소 달라졌지만, 성경을 살아 있는 메시지로 듣고자 하는 이들의 보조성경으로 흔쾌히 권하련다.
_ 권영석 |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개역성경, 솔직히 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다들 쓰니까 어쩔 수 없이 들고 다녀야 했다. 다른 현대어 성경, 솔직히 좀 밋밋하고 아쉬운 구석이 많아 영어 성경 보듯 가끔 참고만 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솔직히 오랜만에 앉은자리에서 책 읽듯이 쭉 읽고 묵상하고 싶게 만드는 성경이다.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로마서 12장 1-2절을 찾아 읽어 보라!_서재석| Young2080 대표
성경 읽기의 궁극적 목표는 순종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깨달음을 위해 성경을 읽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내게 칼날을 겨누는 깨달음보다는 그런 불편함이 없는 읽기 자체에만 몰두하려 한다. 그런 우리에게는 우리의 무릎을 꿇게 하는 성령의 감화가 필요하겠지만, 깨달음의 장애를 제거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깨달음을 위한 읽기를 돕는 참 좋은 도구다. 물론 한 사람의 경험으로 비춘 사적인 읽기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더 살갑다. 「메시지」를 읽으며 우리는 '나도 이처럼 실감나게 말씀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된다. 세상의 온갖 잡음으로 난청의 지병에 시달리는 우리를 돕는 좋은 보청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_ 권연경 교수 | 숭실대학교 신약학
금번 현대 영성신학의 대가인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의 한국어판 번역을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성경 번역이 앞으로 한국에서 고대 시대에 기록된 성경을 보다 더 현대인의 어감과 경험에 맞게 번역하는 노력의 큰 발걸음이 될 것을 믿는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메시지」 성경을 읽음으로 쉽게 복음에 접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_ 김철홍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성경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인류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이 「메시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영혼을 살려 내는 싱싱함을 듬뿍 안겨 준다. 알찬 짜임새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메시지」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적인 번역은 몰론, 감칠맛 나는 수사학적 뉘앙스가 어우러져 수천 년 전 바로 그 선포의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동시에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내려는 노력은 이 「메시지」 성경을 현대인의 영적 해갈을 위한 명작으로 손꼽히게 만든다. 그래서 성경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평은 본 「메시지」 성경을 손에 든 순간부터 더 이상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현란한 언어가 난무하고 진리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와 사회적 병폐를 치유해 줄 본 「메시지」 성경의 출간을 축하하며, 그리스도인들과 진리에 목마른 모든 현대인들에게 「메시지」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_ 윤철원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그때 거기에서의' 옛 메시지의 보화를 캐내어 '이제 여기에서의' 신선하고 살아 있는 복음 메시지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우리말 「메시지」 성경 출간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옛날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다가와야 함은, 사람들의 기대이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 확신합니다. 서구에서 그러했듯이, 「메시지」 성경은 한국의 오늘과 내일의 성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이에 설렘과 감사 가운데 「메시지」 성경을 환영하며 추천합니다.
_ 허주 교수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메시지」는 내가 아는 성경의 최근 번역본 중에 가장 역동적인 성경이다. 「메시지」는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다. 성경을 많이 읽어 온 사람은 이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_ 빌리 그레이엄
「메시지」는 성경 본래의 목소리를 생생한 언어로 전해 주는 성경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_ 리처드 포스터 | 「영적 훈련과 성장」 저자
학자적 엄밀성과 생생한 표현이 잘 어우러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는, 다양한 성경 번역본 가운데 단연 돋보이고 뛰어난 성경이다. 성경 원문의 논리적 흐름과 활력적인 정서, 함축된 의미들이 탁월하게 되살아난다.
_ 제임스 I. 패커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저자
「메시지」는 하나님 말씀을 교인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피터슨의 목회 경험에서 나온 책이다. 「메시지」를 통해 가장 큰 유익을 얻을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성경을 덮어 버린 사람이다. 또한 깊이 생각하며 진리를 추구하지만 아직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놀랍게도 「메시지」는, 일상적인 언어로 저들에게 강렬하게 다가가서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_ 달라스 윌라드 | 「하나님의 모략」 저자
「메시지」는 오늘날 살아 있는 일상의 언어로 말하는 성경이다. 유진 피터슨의 탁월한 언어 감각은 「메시지」만의 고유한 특징이다._ 고든 피 | 리젠트 칼리지 신약학 교수
「메시지」는 믿는 자나 믿음을 찾고 있는 자 모두에게 무척 유용한 책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장을 사용해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영적 여정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적극 추천한다._ 빌 하이벨스 | 윌로우크릭커뮤니티교회 담임목사
「메시지」는 나를 사로잡아 놀랍도록 살아 있게 한다. 「메시지」는 경이와 흥분, 인간의 진정한 언어와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_ 프레드릭 뷰크너 | 「하나님을 향한 여정」 저자
피터슨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U2 그룹의 싱어인 보노입니다. 성경 본문을 이렇게 멋지게 번역하신 그 수고에 대해서 저와 저희 밴드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훌륭합니다. 그동안 많은 훌륭한 번역들이 있었지만 제 자신의 언어 그대로 이야기해 주는 이런 성경은 처음이었어요. 10년이라는 시간, 참 긴 시간이죠. 이젠 좀 쉬셔야죠? 안녕히.
_ 보노 | 록그룹 U2 리드싱어
성경의 이야기를 새롭고 신선하게 보는 눈을 열어 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이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다. 이제 「메시지」를 읽고 싶어 하는 저 수많은 사람들의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 있다. 「메시지」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친구이다.
_ 맥스 루케이도 | 「예수님처럼」 저자
나는 「메시지」의 한 구절을 읽고, 다시 읽고 생각한다. '아, 이것이 그런 뜻이었구나!' 피터슨은 우리에게 평생의 선물을 주었다.
_ 레베카 피펏 | 「빛으로 소금으로」 저자
놀랍다! 나는 항상 「메시지」를 가지고 다닌다. 「메시지」는 어디를 가든 꺼내 보고 싶은 보화다.
_ 조니 에릭슨 타다 | 「하나님의 눈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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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타칭 내노라 하는 신학자, 목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 대하여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교수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하였습니다.
누구의 판단이 옳을까요?
아직도 우리 말 성경은 구하지 못했지만 여기에서는 영문판을 놓고 평 하고저 한다. 한국어판 The Message 를 아직 입수하지 못하여 한국어판에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수록하는 내용은 영문판을 근거로 비평하고저 한다. 한국어 판을 가지고 있으면 직접 대조해 볼 것을 권한다.
Eugene Peterson 는 나이가 올해 (2009년) 로 79 세 되는 고령의 학자이다. 그는 PCUSA 소속 목사로서 Maryland 주 Bel Air 라는 도시에서 “Christ the King Presbyterian Church” 라는 교회를 세우고 26년간 계속 목회하다가 1961년 은퇴한 후 카나다 Vancouver 에 있는 Regent College에서 J.I.Packer 와 같이 교편을 잡았다. 거기서 그는 “Spiritual Theology” (영성신학) 을 가르치다가 2006년 은퇴하여 지금은 미국 Montana 주에서 살고 있다. 학자로서 자주 메디아에 오르는 분이다.
그의 신학은 Rick Warren 이나 Leonard Sweet, Brian McLaren, Tony Jones 등과 맥을 같이 하는 신비주의자로서 동양의 신비종교를 기독교와 접목하여 보다 승화된(?) 기독인의 영성 훈련을 도모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는 <The Message: The New Testament in the Contemporary Language> 라는 신약 성경을 번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소 (Tarsus) 의 바울이 성경을 기록할 때는 당시 모든 사람이 알아 둘을 수 있는 말로 기록했습니다. 이사야가 성경을 기록할 때는 도서관에 가서 그 의미를 알아볼 필요 없이 모두 그 말의 뜻을 알아 들었습니다. 오늘도 성경은 만민이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희미한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말씀은 바로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강조한 부분은 필자의 것임)” 라고 했다.
물론 바울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당시 유행하던 “코이네 헬라어 (Koine Greek)” 로 기록되어 모두 이해할 수 있었고 이사야가 이사야서를 기록할 때도 그가 Latin 어로 기록하거나 한국말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자기 나라말인 히브리어로 기록했으니 유대백성이 모두 알아 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를 “의미가 모호한 언어” 라고 하는 말에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헬라어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완성하는 신약성경을 기록하는데 가장 정확하고 적당한 언어로 생각한 연고로 기원전 4세기에 Alexander 대왕을 동원하여 전 세계를 헬라어로 통일하였고 그 언어로 기원전 2세기에 Alexandria 항구에 살고 있던 100만 명 유대인들을 위해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 주었고 이것을 LXX 즉 “칠십인역” 이라고 한다.
헬라어만큼 의미가 정확한 언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그리고 성경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전달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 번역 철학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의역법 (Dynamic Equivalency) 와 직역 (Formal Equivalency)이다. 어느 편인가 하며 직역이 읽기는 힘들어도 의역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Peterson 목사는 알아야한다. 사실 KJV 나 ASV 로 족하다. 다시 성경을 여러 가지로 번역할 필요가 없다. 만일 꼭 번역해야할 필요성이 있으면 절대로 성경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Peterson 처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적확하게 전달하는 한도 내에서 번역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Eugene Peterson 이 성경이라고 부르는 <The Message>에 나타난 오류들을 지적해 보자.
첫째, 눈에 띄는 것은 “Lord Jesus" 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고 모두 Peterson 이 고의적으로 빼먹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신약성경에는 ”Lord Jesus" (원문에서는 ho kurios Iesous) 라는 말이 모두 115번 나오는데 Peterson 의 The Message 라는 신약성경에는 한 번도 안 나오고 대신 77변 “Master Jesus" 라는 말로 대체했다. <ho Kurios> 라는 헬라어는 Master 라는 단어와 개념이 전혀 다른 말이다. Master 는 ”주인“ 혹은 ”선생“ 이라는 뜻이고 <ho Kurios> 는 ”천상천하의 대 주제가 되는 절대자 주님“ 을 가리킨다.
<Master> 라는 말은 요즘 New Age 운동가 (귀신과 접촉하는 사람들) 이 즐겨 쓰는 전문 용어이다. King James Version 에는 “Lord Jesus“ 라고 바로 번역되어있고 115번 모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ASV) 에는 100 번 그렇게 번역되었다. 그러나 Eugene Peterson 의 The Message 에는 한 번도 옳게 번역된 적이 없고 77번 모두 <Master Jesus> 라고 번역했으니 여기서부터 벌써 그의 “작품” 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가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고 말말 수 있다.
둘째, 가장 가관인 것은 주기도문 (마태 6장) 의 “엉터리” 번역이다.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을 그는 Our Father in Heaven, Reveal who you are (밑줄은 필자의 것) 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전혀 엉뚱한 번역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받으시기를 기도하는데 “당신이 누구인지 나타내 주소서” 란 말은 합당한 번역이 아니다. 하나닝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를 원하는 기도가 엉뚱한 방향으로 버역되었다. 본문과는 관계없는 말이다. 계속해서 주기도문을 보자.
NIV: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Message: Set the world right. Do what's best. As above so below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것은 전혀 주님이 말씀하신 바가 아니며, 원문 헬라어와 의미와 반대가 되는 말이다. <세상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 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란 대목을 “As above so below 즉 위에 처럼 아래에서도” 란 말로 밑도 끝도 없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훼파한 대목인데 <As above so below> 라는 표현은 뉴에이지 운동가 들이 즐겨 쓰는 전문 용어인데 왜 Peterson 이 원문을 무시하고 이런 표현을 썼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좀더 적학히 말하면 <As above,so below> 라는 표현은 기원 2-4세기의 애급의 영지주의 철학을 담은 신비주의자 Hermes Trismegistus 가 쓴 "Emerald Tablet" 라는 신비주의 문허에 나오는 말이다. 내용은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차이도없고,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Monistm 의 사상이다.
Peterson 이런 성경 번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요즘 뉴에이지 운동가들의 목표는 교회를 파괴하는 것인데 그 방법은 성경부터 파괴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Peterson은 믿을 수없는 <뉴 에지지 운동가> 임이 아주 분명하다. 더 이상 검토하지 않아도 이 "책" 은 성경도 아니며 따라서 읽을 가치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계속해서 보도록 하자.
NIV: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Message: Keep us alive with three square meals. Keep us forgiven with you and
forgiving others.
본문의<일용할 양식> 이라는 단어는 음식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원 1세기 코이네 헬라어의 용법에서는 “epiousios" 가 “생활필수품” 전부를 말하는 말인데 하 루 <세끼 식사> 만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번역했다. 주님이 하시지 않은 말을 Peterson 이 대치했다. 그리고 <하나님> 이란 단어를 모두 빼먹었다. 왜 “하나님” 이란 말을 빼 먹었을까? 생각해 보라.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의 “신학” 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J.P.Moreland 의 말을 들어보라. “요즘 성도들은 마치 성경이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인 것 처럼 성경만 읽으며 “우 상화” 한다“ 라고 말한다 (Moreland가 Evangelical Theology Society에서
"How Evangelicals Became Over-Committed to the Bible and What Can Be Done About It." 이라는 주제로 한 말이다 그가 한 말을 인용하면;
"In the actual practices of the Evangelical community in North America, there is an over-commitment to Scripture in a way that is false, irrational, and harmful to the cause of Christ," he [Moreland] said. "And it has produced a mean-spiritedness among the over-committed that is a grotesque and often ignorant distortion of discipleship unto the Lord Jesus." The problem, he said, is "the idea that the Bible is the sole source of knowledge of God, morality, and a host of related important items. Accordingly, the Bible is taken to be the sole authority for faith and practice." (북미주 의 복음주의 진영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실천생활을 보면, 주님을 아는데 그릇되고 비이성적이며 해로운 방법으로 성경을 너무 존중하고 있다. Moreland 는 또한 말하기를,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나치게 성경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저속한 영성을 심어주는데 이는 주 예수님을 향한 제자화 훈련에 황당하고 또 무지한 왜곡을 야기한다. 그는 말하기를 ‘문제는 성경만이 하나님을 알거나 도덕 그 외에 연관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따라서,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권위로 알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Moreland (미국 남가주 Talbot 신학교 교수) 의 이 같은 생각은 그가 창안한 것이 아니고 신비주의 영성운동가인 Brennan Manning (Manning 은 그가 신봉하는 신비주의자인 Thomas Merton 이나 William Shannon 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에게서 온 것이다.
2006년에 J.P.Moreland 가 쓴 "The Lost Virtue of Happiness" 라는 책에 보면 오늘 사람들이 <참다운 영성훈련> 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영성훈련을 회복할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경험으로 보아서, 천주교의 수양관들이 수양하기 가장 적당하다. 여러분들은 본인 사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가지고 오든지 예수님의 사진을 가지고 오라, 아니면 와서 예수님의 동상을 물그럼히 바라본다든지, 아니면 어떤 기분 좋은 생각이나 추억을 여러분의 머리에 자꾸 자꾸 여러 번 계속해서 떠 올리라 (pp.54-55).
Moreland 는 또한 <기도하는 법> 을 가르쳐 주는데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예수기도” 를 매일 300번 씩 반복하라 (p.90). [“예수기도” 란 “오 예수여” 를 반복 하는 행위를 말함]
2. 아침에 눈을 뜨면, “예수기도”를 20번 내지 30번 반복하라, 그리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하나님이 점점 당신에게 가까이 온다 (p.92).
3. "예수기도“를 여러 번 반복하면 하나님이 당신곁에 더 가까이 오시고 하루 종일 하나님과 다정하게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습관을 얻게 된다. (p.93)
이것이 J.P.Moreland 교수이 주장하는 그의 소위 <영성훈현 지침>이다.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오 예수여, 오 예수여, O Jesus, O Jesus, O Jesus" 라는 말을 300 번 반복한다고 예수님이 가까이 하시는가? 생각해 보라, 주님을 사랑하는 자, 주님의 사랑을 받는자 는 요한복음 14장 말씀대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성경 어디에도 “예수 기도”를 여러번 반복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한다는 말이 없다.
계속해서 알아보자:
NIV: And do not lead us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For Yours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ver.
Message: Keep us safe from ourselves and the Devil. You are in charge.
이 두 문장을 비교해 보라. 원문 성경과는 전혀 다른 단어를 써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훼손하였다. Kingdom, 이나 Power 나 Glory 의 의미를 모두 죽여 버렸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Peterson 이 번역한 “성경” 대로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훼방이요 모독이 되는 것이다.
셋째, Peterson 목사는 성부와 성자를 혼돈하고 있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는 <아버지> 와 <아들>의 관계를 혼동하고 있다.
NIV: 요 10:30 I and the Father are one
Message: I and the Father are one heart and mind
여기서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혼돈 하고있다. 성경은 heart mind 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재(preeminence)를 말하는데도 Peterson 은 그의 그릇된 신학으로 인하여 이를 무시하고 임의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역했다.
NIV. 요 14:28. The Father is greater than I
Message: The Father is the goal purpose of my life
원문과 전혀 다른 “아버지는 내 생애의 목표이다” 란 말로 번역했다. 원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성경 말씀에 누가 가감 할 자유와 권리를 주었는가? 하나님은 어떤 인간에게도 그의 말씀을 자유로 가감하고 변경할 권리와 자유를 주신 적이 없다. 죄를 짓기에 담대한 인간이 제 멋대로 말씀을 변개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신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인간 그 누구에게도 “사람의 멋대로” 예배를 수정해서 드리라는 자유와 권리를 주신 일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예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며 (레위기 10:1-2), 하나님에게 죄가 된다.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드려야 한다. 예배를 드리는 법은 요 4:24에 나타나 있다.
넷째, 뿐만 아니라 요즘 기독교에서 가장 큰 문제인 “밀교” 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다른 말로 대치한데서 Peterson 의 신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을 보라:
NIV; 딤전 4:1 in later times some will abandon the faith and follow deluding spirits and doctrines of demons
Message: .. as time goes on, some are going to give up on the faith and chase after demonic illusions put forth by professing liars.(밑줄은 필자의 것)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illusion” (환상) 이나 “professing liars” (입으로 말하는 거짓말쟁이) 가 위험하다는 말이 아니라 “속이는 영” 과 “귀신의 교리” 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Peterson 은 이런 내용을 감추고 성경말씀을 훼손할 목적으로 이런 ‘밀교“ 의 위험성을 회석시켜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성경의 참 뜻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저들의 숨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Peterson 은 “간음” 이나 “동성애의 죄” 등 단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듣기 좋은 다른 말로 번역하여 마치 그런 죄가 이무 것도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NIV: 고전 6:9-11 의 말씀:
Do you not know that the wicked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Do not be deceived. Neither the sexually immoral nor idolaters nor adulterers nor male prostitutes nor homosexual offenders nor thieves or the greedy or drunkards or slanderers nor swindlers will inherit the kingdom of God. And that is what some of you were. But you were washed, you were sanctified, you were justified
The Message 의 번역:
Unjust people who don't care about God will not be joining in his kingdom. Those who use and abuse each other use and abuse sex, use and abuse the earth and everything in it don't qualify as citizens in God's kingdom. A number of you know from experience what I'm talking about, for not so long ago you were on that list. Since then, you've been cleaned up and given a fresh start.
여기서 보듯, “동성애” 라는 말은 빼고 듣기 좋은 “abuse of sex" (성의 남용) 이란 말로
대체했다. 전반적으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강하게 경고하며 말씀하시는 대목은 모두 <사람들이 듣기 좋은 유순한 말, euphemism 완곡법 (婉曲法> 로 대체해 버려서 독자로 하여금 죄에 대한 무서움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성경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는가? 그러나 Peterson 의 글을 보면 “죄란 별것 아니라” 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섯째, Peterson 은 사탄의 세력과 인간의 죄성을 삭제하였다
NIV 엡 2:1-3. "As for you,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All of us also lived among them at one time, gratifying the cravings of our sinful nature and following its desires and thoughts."
Message: "It wasn't so long ago that you were mired in that old stagnant life of sin. You let the world which doesn't know the first thing about living, tell you how to live You filled your lungs with polluted unbelief and then exhaled disobedience. We all did it, all of us doing what we felt like doing, when we felt like doing it, all of us in the same boat."
여기에서 KJV 에 기록된 말씀과 비교해 보라, Peterson 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왜곡되게 전하는가를. 본문에서 강조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thr ruler of the kingdom of air" 라는 말을 아주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transgression) 을 가볍게 처리했으니 죄의 성질을 대수럽지 않게 보는 경향이다.
뿐만 아니라 원문에 없는 말 (줄친부분 참고) 을 완곡법으로 동원해서 추가했고 맨 끝부분의 “in the same boat" 라는 말 (‘같은 형편에 처해 있다‘ 란 뜻) 은 미국에서 쓰는 slang 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찌 알아 들을 것인가? 성경 원어대로 번역하면 될 것을 왜 이런 조작으로 이해를 오히려 어렵게 하는가? ”We were all in the same boat" 라는 속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인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마치 로마인서 12:20 절의 속담을 바로 이해할 사람이 적은 것처럼 말이다.
일곱째, Peterson 은 “순종” 이나 “우리 주의 은혜” 같은 중요한 말씀을 삭제해 버렸다.
KJV: 롬 16:19-21. Everyone has heard about your obedience, [헬라어 원문은 항상
순종이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다] so I am full of joy over you, but I want you to be wise about what is good, and innocent about what is evil. The God of peace will soon crush Satan under your feet. The grace of our Lord Jesus be with you."
Message: "So, while there has never been any question about your honesty in this
matter, I couldn't be more proud of you I want you also to be smart, making sure
every "good" thing is the real thing. Don't be gullible in regard to smooth-talking
evil. Stay alert like this, and before you know it the God of peace will come down on Satan with both feet, stomping him into the dirt. Enjoy the best of Jesus."
"순종“ 이라는 말은 아주 생략해 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줄친 부분끼리 비교해 보라
이 글의 초두에서 말했듯, “주 예수” 라는 말 ”O kurios Iesous" 는 완전히 삭제되어 버리고 대신에 전혀 다른 말인 Enjoy the best of Jesus 라는 말로 대체해 버린 졸역 (拙譯) 이다.
여덟 번 째, 부부간에도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비성경화 했다.
NIV I Peter 3:1, 7: "Wives in the same way be submissive to your husbands,
Husbands, in the same way be considerate as you live with your wives, and treat them with respect as the weaker partner and as heirs with you of the gracious gift of life..."
Message: "The same goes for you wives. Be good wives to your husbands, responsive to their needs. The same goes for you husbands. Be good husbands to your wives. Honor them, delight in them. as women they lack some of your advantages. But in the new life of God's grace, you're equals. Treat your wives, then, as equals..."
밑줄 친 부분을 보라. 원문에는 없는 말을 <남녀평등 사상>을 주입한다. New Age에서 주장하는 “여권주의” feminism”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서 일부러 말씀을 임의로 조작했다.
아홉 번째로, “화목” 이라는 단어 인 “reconciliation) 을 ”친구“(friend) 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NIV: II Cor. 5:20: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 as though God were making his appeal through us. We implore you on Christ's behalf. Be reconciled to God."
Message: "We're Christ's representatives. God uses us to persuade men and women to drop their differences and enter into God's work of making things right between them. We're speaking for Christ himself now. Become friends with God, he's already a friend with you."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을 비교해 보라, “화목” 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에근거를 둔 영적인 사역인데 이런 중요한 단어를 단지 “친구” 라는 안이한 말로 번역한 것은 교리를 무시하고 기독교의 교리를 파괴하는 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다‘ 란 말과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진노하신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아 죄인이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말이다.
열 번째, 원문에 없는 말을 함부로 추가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 마음대로 변개할 수 없다. 이 원칙을 무시한 흔적이 The Message 전반에 걸쳐서 역역하다.
NIV: 롬 8:35-37 “Who sha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Shall trouble or
hardship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Message: "Do you think anyone is going to be ale to drive a wedge etween us and Christ's love for us? There is n way. Not trouble, not hard times, not hatred, not hunger not homelessness not bullying threats not backstabbing not even the worst sins listed in Scripture."
여기서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원문에 없는 말 “not even the worst sins listed in Scripture" 라는 말을 Peterson 개인이 멋대로 집어넣었다.
이상 여러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Peterson 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감을 완전히 떠나서 자기 멋대로 성경을 가감할 뿐 아니라 자기 기호에 맞게 성경을 고의적으로 “오역” 했다. 극도로 훼손된 The Message 는 “성경” 이 아니라 “사람의 작품”에 불과하며 교회에서나 성도가 읽어서는 안 될 "졸작중 졸작(拙作)" 이다.
그러면 문제의 Eugene Peterson 은 어떤 인물인가?
앞서 서두에 잠시 언급했지만 그는 J.I.Packer 와 같이 Canada Vancouver 에 있는 Regent College에서 “영성신학” (Spiritual Theology) 을 가르치다가 은퇴한 교수이다. 그의 교단 소속은 PCUSA 이다. 1993년 11월 8일 자 미국의 신복음주의적 색체를 지닌 Christianity Today 라는 잡지 기사를 보면, 그는 중세의 범신론적 신비주의자 였던 Julian of Norwich 라는 사람을 좋아했고 Augustine 과 calvin 에게서도 영향을 받았지만 Norwich 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이와 같은 왜곡된 성경관을 가히 이해할만하다.
요즘의 대개의 ”위대한(?)“ 신학자 라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Desert Fathers> (중세의 신비주의 수도사들) 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특히 천주교의 Matthew Fox 신부나 Thomas Keating, Thomas Merton, Pierre Teilhard de Chardin Henri Nouwen 같은 인물들이 모두 그러하다. 이들이 오늘 교회를 파괴하는 New Age 운동의 전위대원 들이다. 이들이 출판물을 통해서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오늘 교회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를 보면 저들의 영향력을 상상하고도 남는다. 물론 저들의 뒤에서 보이지 않은 “흑암의 세력” 이 있다.
그러면 Peterson 의 mentor 인 Julian of Norwich 라는 여성은 어떤 인물인가?
Kenneth Leech 가 쓴 Soul Friend (Harrisburg, Pa.: Morehouse Publishing, 2001,
(Eugene Peterson 의 "The Message": 무엇이 문제인가?, p.9 of ten)
212pp.) 에 보면, Leech 박사가 Julian 을 소개하기를 “그는 여성 범신론적 신비주의자 로서 여권신장을 주장한 사람인데 하나님을 ”우리 어머니 하나님“ 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것이 신비주의자 Julian of Norwich 의 철학이다. 그리고 Peterson 은 Julian 을 극찬했고 그도 그의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람에게서 좋은
개혁주의 적 성경관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산이다.
The Message 를 적극 추천한 사람은 Canada 의 Vancouver 에 있는 Regent College 의 조직 신학 교수 J.I. Packer (Oxford 대학 출신, Knowing God 이라는 책을 쓴 사람) 이 다. 공부를 많이 한 Packer 가 왜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썼을까 하고 의아해 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Regent College는 Fuller 신학교 와 함께 이번<기독교-이슬람교 대화 초청장> 에 서명한 학교이다. 이 문헌에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여의도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가 서명했다. Packer 는 The Message 를 추천하는 서문에서 말하기를: “Eugene Peterson's blend of accurate scholarship and vivid idiom make this rendering both distinctive and distinguished. The Message catches the logical flow, personal energy, and imaginative overtones of the original very well indeed (밑줄은
필자의 것)“ 라고 격찬했다. 그런데 그렇게 격찬할 성질의 책인가?
Paker 의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Peterson 이 Johns Hopkins에서 Semitic Language (셈어) 를 연구한 언어학자인 것은 인정하지만 언어학자라고해서 반드시 성경을 정확히 번역한다는 보장은 없다. "accurate scholarship" 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학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전제하에서 “정확한 학자적 자질” 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훼파하며 제 멋대로 수정 첨가 삭제하는 사람을 학자로 부르지 않는다. “vivid idiom" 이란 언어의 뜻이 선명하다는 말인데 Peterson이 번역한 Message 는 colloquial dialect (구어체) 로서 일상 생활하는 서민들에게는 선명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장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구어체(口語體) 이상으로 우리 생명에 관계되는 중요한 교리적 단어가 있다는 것을 Packer 는 모르는 모양이다.
이 번역이 “distinctive" 하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다른 성경번역에서 불 수 없는 ”벌다른“ 색체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acker 가 말하는 ”distinguished " 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말씀을 마음대로 훼파 한 것은 사탄의 관점에서 볼 때는 “distinguish” 한 일이지만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 생활하는 참다운 성도의 관점에서 볼 때는 "distinguishably notorious" 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성경이 “personal energy" 를 말하는가? 성경이 ”imaginative overtone" 을 말하는가? 이 말이 무슨 의미 인가? 이방 종교는 교주의 상상이나 개인의 감정이나 경험에서 태동(胎動) 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직접 말씀으로 계시하셨다. “Personal energy” 라는 말은 New Age에서 “personal transformation" 을 말할 때 즐겨 쓰는 말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The Message 라는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저자인 Peter Eugene 은 New Age 진영에서는 환영을 받는 학자이지만 성경을 바로 믿는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 드릴 수 없는 학자 이다. Rick Warren 이나 Brian McLaren 이나 Robert Schuller 나 Bill Hybels, Henri Nouwen 같은 열렬한 New Age 운동가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The Message 를 찬성하고 권하는 목사들은 두 가지 부류중 하나이다.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무리” 이거나, 아니면 “신학이 약한” 목사들이다. Rick Warren 이나 Joel Osteen 이나 Bruce Wilkinson 을 좋아하는 목사들은 대개 The Message 를 좋아 할 것이다. Packer 가 The Message 를 추천한 이유는 아마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정실 관계 가 작용했다고 본다. 사실 J.I. Packer 도 문제가 있는 사람인데 천주교와 개신교가 합하여 선교하자는 문서에 서명한 사람이고 (소위 ECT 문헌). 지난번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에 서로 대화하자는 문헌> 에 서명한 Regent College 의 교수이다.
이 문헌에 한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유일하게 서명했고 서울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모두 통합하여 세계단일 종교를 만들자> 는 목표를 가지고 기독교를 파괴하는 WCC (세계 기독교 교회 협의회) 제10차 총회를 2013년 한국 부산에서 개최하도록 유치하는데 성공한 목사이다. 그가 WCC 의 성격을 알면서도 그런 단체를 한국에 유치했다면 그것은 한국 기독교에 대한 모독일 것이고, 몰랐다면 너무 늦기 전에 알고 시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대부분의 대형교회의 행패이다. 대형교회에서 하는 일이라고 모두 모방하면 크 일 난다. 교리적 오류는 대부분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형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형교회를 아무 비판 없이 모방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식견이 있는 개혁주의 성도가 볼 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너무도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Eugene Peterson 이 번역한 The Message: The New Testament in Contemporary Language (현대어로 된 신약성경 말씀) 에 나타난 교리적, 어학적 오류들을 살펴 보았다. 차후에 한국어판 The Message 가 입수되면 더 자세히 평가할 기회가 있으리라. 많은 성경중에서 왜 하필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와 비교했는가 라고 물을 분이 있을 것이다. NIV 는 Dynamic Equavalency 와 Formal Equivalency 번역 철학을 겸용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여, 이 마지막 때에 “미혹하는 영들“ 을 조심하자. ”미혹의 영“은 소위 ”영성 훈련“ 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교회 수양회, 혹은 교회 부흥회, 혹은 주일 강대상에서 설교를 통해서, 또는 오늘 보는 것처럼 이런 <사이비 성경 번역> 을 통해서 얼마든지 <속기 쉬운 양떼>들을 미혹한다. 지금은 ”속임수의 시대 Age of Delusion"이다. 속지 말자. 성경을 읽자. 교리 공부를 하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교리 공부" 이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교리 공부”를 못하도록 방해한다. 성경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성경보다 “주관적 경험”을 사모하게 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치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 한다” (고린도후서 5:7).
-> 김명도 교수/튤립 교육 선교회/튤립 신학 연구원/www.tulipministries.com
그리고 유지 피터슨에 대한 비판 자료의 일부만 제시하여도 다음과 같습니다.
* 관련 자료(클릭하면 자료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유진피터슨, 맥스루케이도, 필립얀시, 찰스스윈돌의 문제점/김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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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른신학 바른신앙 원문보기 글쓴이: 이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