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종종 어린 시절 지붕 아래 매달린 고드름을 먹으며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성인이 된 내가 지금 그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환경오염은 빠르게 악화되었고 지금 지붕 아래 매달린 고드름을 먹는 일은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낯설게 바라본다.
환경오염은 그 모든 것들을 뉴스에 담기 힘들 정도다. 바다 어느 곳을 보아도 오염이 안 된 곳이 없고 쓰레기가 모여 쓰레기 섬까지 만들어 냈다. 자본주의 소비산업은 ‘쓰고 버리는 사회’를 탄생 시켰으며 방대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우리의 식탁까지 침범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과학자와 사회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존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변화했다. 나카자와 신이치라는 종교학자는 자연이 대가 없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순수증여라고 부른다. 자연은 햇빛, 바람으로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을 한다고 해서 요금 청구를 하지 않는다. 인류는 자연에 기대어 진화해 왔고 지구의 생태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즉, 자연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증여인 것이다. 환경문제와 그로인해 인간이 겪는 피해들을 보면 공짜라고 생각했던 자연의 순수증여가 이제는 우리에게 대가를 바라고 있다. 더 이상 자연의 순수증여를 익숙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가지고 다닌다. 장을 보러 갈 때 비닐봉지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장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기업 역시 환경 윤리 의식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진다. 스타벅스는 2018년 매장에 종이빨대를 도입했고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2021년 하반기부터 다회용 컵 이용을 시범 도입한 뒤, 2025년까지 전국적으로 일회용 컵을 ‘제로화’하겠다”고 밝혔다.또한 매일유업은 고객이 플라스틱 빨대 사용에 문제 제기를 하자 적극 반영하여 상하목장 멸균우유 190ml에 빨대를 없애기도 했다.기업의 환경 친화적인 정책과 일상생활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의 행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정부는 환경을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정부는 주로 생태적 근대화를 주장한다. 즉, 생태를 고려한 근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은 지구온난화로 드러난 환경위기를 녹색기술을 통해 극복한다는 것이다. 녹색 기술에 기초한 녹색 산업은 경제성장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파의 주류적 녹색담론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에 기초한 적절한 정책 개입으로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생태적 근대화 중심 해결책은 어떤 효과를 보일까?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체제로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배출 할당량을 정하여 여분이나 부족분의 사업장 간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실행에도 EU, 미국, 한국의 온실 가스 배출 변화 그래프를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은 미국, EU에 비해 눈에 띄는 온실가스 감축을 이뤄내지 못했다.정부는 2020년 12월에 탄소 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탄소 중립 즉, 탄소 제로는 온실가스 순배출 0을 말한다. 탄소중립 추진 전략 시행의 결과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보면 시장원리와 기술 발전을 통한 과학적 대안이 환경문제 해결에 눈에 띄는 효과를 불러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개인적 노력,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국가의 녹색성장은 환경문제 해결책으로 역부족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해 줄 기술의 혁명을 낙관적으로 기다리기에는 환경 문제는 언제 티핑 포인트를 맞을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다.
환경 문제 해결 주체로서 국가가 갖는 책임과 역할은 매우 주요하다.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 사회 시스템을 빠르게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권한과 책임을 전부 위임하는 방식은 정치적 상황과 정책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 발생 책임자이자 해결 주체이기도 한 국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 문제의 돌파구로 낯선 세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즉, 사회 시스템을 바꿈으로써 환경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환경 문제에 직접 의견을 내며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생태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실천으로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해나가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약자와 미래세대는 물론 비인간존재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들이나 이들의 대리인 혹은 후견인들이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실현하기 소통하고 숙의하고 행동하는 정치’를 생태민주주의라고 정의한다. 생태민주주의는 인간 이외에도 동물, 식물, 무생물까지도 그 자체로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며 미래세대의 권리와 복지에 대해 현세대의 책임을 강조한다.
생태 민주주의는 다양한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시스템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산업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 생태계를 고려한 소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국적으로 운영하는 한살림 매장은 생태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한살림의 생필품은 자연친화적이며 농민에게 친화적인 생명농업을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직거래운동을 펼친다.한살림 조합원에 가입을 한다는 것은 곧 생태민주주의에 참여한다는 것과 같다.
생태계를 고려한 움직임은 국가 정책에서도 발견이 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은 채식 선택제 급식 시스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현대의 육식 문화는 가축을 대량으로 사육한다. 가축의 가스로 메탄이 배출되고 또한 가축을 키우기 위한 열대우림 파괴도 이루어진다. 육식 소비문화는 동물권의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장형으로 닭을 사육하는 환경은 밀도가 굉장히 높다. 즉, 병 발생률이 높아지게 되어 항생제를 대량 투여하고, 높은 밀도에 스트레스 받는 닭들의 부리를 자르는 등 동물권은 존중되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의 ‘2021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 계획’은 탄소 배출 감소와 동물권 고려 외에도 먹거리 생태전환 시도라는 의의를 가진다. 채식 식단의 접근성을 높이고 인간 중심적인 식단에서 벗어나 생태를 고려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즉, 생태민주주의적인 면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편리한 생활을 해왔다. 그 결과로 생태계는 악화되고 그 피해는 빈부 격차에 따라 불평등화 되었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가 터무니없고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한살림을 포함한 다양한 협동조합은 생태민주주의 시스템이 현실적이고 체계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국가에서도 생태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세상을 낯설고 불편하게 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생태를 고려한 생활을 하며 국가에 소비사회와 노동과 자연의 상품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생태 민주주의에 직접 참여하고 생태민주주의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하는 것은 생태계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 문제 해결의 현실적인 뒷받침이 될 수 있다.
첫댓글 예전에는 고드름을 먹었던 일이 지금은 말도 안될만큼 환경오염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환경, 생태주의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진보되어야 하고, 인간의 삶은 그렇게 해서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환경파괴는 필수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상식에 도전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좋은 고민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인문학을 하는 쪽에서는 늘 "당연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를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해보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과학기술이 진보되면 인간의 삶이 개선될 수 있는가? 인간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면 과학기술을 무한정으로 진보(개발)시켜도 되는가? 과학기술을 진보시키는 과정에서 환경파괴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가? 이렇게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면 훨씬 더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