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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목 영덕군수 합동위령제에 잔을 올리다. ⓒ 데일리안 영덕봉화 |
육이오 전쟁당시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동시에 양동작전을 펼친 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 합동 위령제가 오늘 남정면 장사리 해안부대내 초소에서 열렸다.
올해로 26회를 맞이한다. 한마디로 이분들은 ‘군번없는 군인’이었다.
육이오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군사훈련을 일주일도 받지못한체,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하게 되었으며, 육군본부에서 급조한 독립 유격대대에 배속되어 UN군 인천상륙작전 및 아군의 총반격 작전의 조공 임무의 명을 받아 이작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에 위치한 육군본부를 경유하여 9월13일 부산 제4부두에 도착 해군 L.S.T 문산호[길이100m 넓이 35m 2,700톤]에 4개중대 800여명의 병력을 싣고 부산항을 출발하여 9월14일 새벽5시40분경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 해안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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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 전우에게 국화 한송이 헌화 ⓒ 데일리안 영덕봉화 |
이날 장사리 해안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있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도착부터 심한 바람으로 파도마저 높게일어 상륙작전은 자칫 수포로 돌아갈 형편이었다.
미 구축함의 지시에 따라 병력이 상륙을 감행하려하자 부흥리 고지와 지경리 고지에 매복해있던 1개대대 규모의 적은 문산호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었으며, 일대 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아군은 해안가에 로프를 결박하여 상륙을 시도하였다.
전투및수영 경험이 없는 학도병들은 번번이 상륙에 실패했고 결국 선원들이 헤엄쳐 로프를 묶는데, 성공했다. 약30m 거리를 헤엄쳐가는 동안 아군 수십명이 사망하였다.
14일 상륙에 성공한 아군은 21일까지 탄약과 의약품을 제데로 지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군 5사단과 고지점령을 위해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약300명이 전사하고 100여명은 퇴각 도중 익사하거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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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들의 헌화 ⓒ 데일리안 영덕봉화 |
그당시 전투를 목격한 지역 주민들에 말에 따르면 장사 앞바다가 붉은피로 붉게 물들었으며, 장사백사장에는 경북고 공주사대 대구능인고 대구농고등등 수많은 교모와 바클들이 나딍굴었다고 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하였는가?
대구능인고 출신 생존대원은 부상중 적에게 포로로 끌려가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또한 중학생 소년병들도 전쟁에 참가하여, 꽃다운 나이에 피지도 못한체, 전쟁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55년전의 기억이 이곳에만 오면 그당시 전쟁의 참상속에 머물러 가슴을 시리게 한다는 것이다.
생존 대원들은 가능하면 부인과 함께 위령제에 참가한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참석한 생존대원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꽃다운 나이에 자식도없이 구천을 떠돌고있을 원혼을 생각하면 애닯픈 마음이 한구석에 늘 자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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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와 함께 유격대의 깃발 ⓒ 데일리안 영덕봉화 |
자신들은 그래도 살아서 후손을 보고 살아있지만 함께 참전했던 학도병들의 원혼은 누가 달래줄것인가? 그래서 해마다 노구를 이끌고 꼭 참석한다고 한다.
강정관 장사상륙작전참전유격동지회장은 추념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푸른 망망대해를 헤집고 이곳 장사리 앞 바다에서 하늘을 찌르는 함성의 메아리가 어언 55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북한인민군의 6.25 기습남침으로 조국의 강토가 피로 물들이고 이곳 장사리에는 이미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고 조국의 운명은 풍전등과같은 위기에 처했을때 님들과 우리는 대부분 학도병으로 편성된 육군본부 직할독립 제1대대의 지원병으로 입대하고 장사상륙작전에 출전하여 적 후방 유격전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님들과 우리는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오늘 우리는 장열기 산화하신 님들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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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들 전우에게 경례 ⓒ 데일리안 영덕봉화 |
님들이시여 잠시 55년전을 회상해 봅니다.
국방부에서는 ‘장사상륙작전’을 전산 코드 no,095 인천상륙작전을 전산코드 NO094로 기록하여 상륙작전의 역사에 길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님 들의 넋을 기리고자 뒤늦게나마 뜻있는 동지들이 규합하여 1980년 7월14일 대구에서 장사상륙작전 유격동지회를 조직하여 그해 10월14일 아무것도 없는 이모래 사장에서 제1회 위령제를 거행하기 시작 각지역 서울 대구 부산 대전 제주도까지 뜻있는 참전동지들이 참가하여
매년 9월14일 이곳 백사장에서 영덕군수님의 지원으로 님들과 무언의 대화를 10여년유지하다가 최재명동지를 선두로 한 회원들의 활동이 빛을 보아 종교계의 도움으로 1991년9월14일 이위령탑이 건립준공되어 그해 위령제를 비로서 제단에 보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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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목 영덕군수 추념사 ⓒ 데일리안 영덕봉화 |
님들이시여
님들은 그거룩한 조국 수호의 첨병으로서 살신 방패가되어 이땅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살아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작전에 대한 숭고한 호국정신을 계승 발전하고자 오늘 이와같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어 님들의 넋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일은 너무 많고 힘과 남은 여생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기력이 쇄진하고 병약한 몸이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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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년의 한을 품고 살아온 미망인 ⓒ 데일리안 영덕봉화 |
앞으로 몇 번 님들이 있는 이 자리에 서게 되겠습니까?
원컨대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김병목 군수님을 비롯한 이지역 기관단체장님 그리고 경주보훈지청장님 부디 이 한많은 원혼을 달래줄수 있는 행사를 끊임없이 계승발전 시켜 구천에 맴도는 이넋이 안심하고 영면할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시고 지원해 주시옵고, 이지역이 영원한 전적지로 후세에 구국호국의 터전임을 일깨워 주시고 산교훈의 장이 되게하여 주시기를 간망합니다.
라는 애끓는 추모사를 듣는 지역 주민들도 눈시울을 붉혔으며, 김병목 영덕군수는 축사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 교훈삼아 오늘의 이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 한층 더 도약하는 영덕군이 될 수있도록 중지를 모으자.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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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영주회원 참석 ⓒ 데일리안 영덕봉화 |
특히 이날 영덕 영주회 청년회원들은 참석한 내빈들에게 ‘6.25 동해장사 상륙작전 재조명’이라는 인쇄물을 배포하여 주민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으며, 유격동지회에서 남정중학교와 남정초등학교 학생 각1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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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러할 찐데 어찌하여 점점더~~~~ 빨갱이가 판을 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