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 년 당시 나는 군인이었다.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나는 색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난 우리 하숙집 아줌마가 화장실 옆 잿간에서 뭔가 끈적이는
액체로 덮인 물체를 끌고 나오더니 수돗가에서 짚으로 벅벅 닦기 시작했다.
충청도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내 눈엔 평범한 해산물도 보기 힘든 것이었는데 대체
저 물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홍어였다.
아줌마는 그 괴물체를 다시 막걸리에 넣어 빨래하듯 씻어내고 문질렀다. 정말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음식이었다. 그리고는 그걸 썰어서 나에게 한 입 먹어보지
않겠냐고 하며 "식성을 보니 아마 이걸 잘 드실 것이요" 라고 한 마디를 얹었다.
그 말은 적중해서 나는 처음부터 그 걸작 음식을 잘 먹었다.
첫날 홍어 애탕(내장탕)을 먹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완전히 삭힌 것임에도 홍어는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애탕을 먹는 건 나중에 성공했다.
누구든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광주 지방은 달랐다.
막걸리를 시키면 지금은 귀한 몸이 된 병어회가 기본으로 딸려나오기도 하였으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음식에 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지방이라서
그곳 음식에 맛들여진 나는 지금도 가끔 그곳에 음식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호사스런 여행이 아니라, 마침 절친이 광주에 살고 있어서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
5월 18일이다.
산에 든 자는 산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듯이 그 엄청난 역사적 소용돌이의 가운데
있던 나는 사실 그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고 사건인지 알지 못 했다.
단지 불타던 MBC 건물과 광주에서 송정리로 오는 버스가 끊겨 걸어 오며 시민군과
진압부대 양측에서 검문을 받던 기억만 남아 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거의 끝났기에 나는 단 한 마디도 보탤 생각이 없다.
다만 광주라 하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하숙집의 평화로운 풍경과 주인 아줌마의
음식솜씨가 생각난다. 자전거를 타고 광주시내는 물론 동복 수원지 남평 드들강까지
헤집고 다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알싸한 홍어맛과 함께 깊이 남아 있다.
어느 곳에서든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고 모두 평온하게 살기를.
2024.05.18
앵커리지
첫댓글 광주 송정리의 홍어와 광주 사태를 이야기 해 주셨군요
나도 광주 송정리 공군부대 내에서도 근무를 한적이 있구
광주 송정리 신시가지 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당시 나도 홍어회를 먹은 적이 잇는데?
칠레산 홍어 이었지만 서울의 홍어보다 맛도 좋고 값도 쌌던 기억이 있습니당
홍어애는 홍어회보다 훨씬 더 맛이 좋읍디다
충성 우하하하하하하
송정리에 근무한 적이 있으시군요.
홍어는 흑산도 오리지널과 다른 곳에서 수입된
것의 맛 차이가 확연합니다.
전라도 음식이 맛이 있다고 하더군요.
남도의 어느 지방이나 섬으로 여행을 가면,
반찬 가지수가 넘 많아서 놀랍니다.
푸짐한 반찬이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풍성한 인심으로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오늘이 5.18 이군요. 벌써 44주년이라 하니
역사의 한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충청도 사람이라 편견없이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는데 음식은 단연코 남도입니다.
풍성함도 그렇지만 맛의 기본이 전혀 다릅니다.
오늘이 광주 민주화 항쟁 44 주년이었네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흑산홍어는 씹으면 찰지고
달작지근하고
홍어애국은 풋보리를 뿌득뿌득
문질러서 집된장 넣고 끓이면 굿!
목포에
김대중선생 아호를 딴
인동초로 담근 인동주에
홍탁삼합으로 유명한
인동주마을ㅡ이라는 음식점이
있지요
언제고
월출산 오시는 날
그리로 안내하겠습니다 ㅋ
5ㆍ18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자존감 상한 아픈 역사지요
앗 빨리 월출산에 가야겠어요 ^^
음식에 대해서 저는 문외한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맛은 잘 압니다.
양념을 아끼지 않고 중시하는 음식문화가
그런 맛을 만들었지요.
그곳에 머물던 20대가 엊그제 같다오.
광주는 스쳐지난 도시라
거죽만 봤습니다.
송광사.땅끝마을.이 쪽으로
세 번.선운사 세 번.
구인사,등 여행시 음식은 기억에
없고 길을 잘 가르쳐 줘
사람들이 순박해 보였습니다.
네비 없을 적 이야기.
오늘이 5.18
젊잖게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예,잘 알겠습니다.
명산 대찰이 많은 곳이라는 것 외에도 음식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광주에 가 볼 일입니다.
저는 그곳에 10 년 정도 머문 탓으로 가끔씩
그리워서 방문을 하곤 합니다.
오늘이 5.18이군요.
세월이 가는지오는지~ㅠ
참으로 아픈 역사지요.
송정리.
시고모님이 사셨던 곳이었답니다.
앵커리지 님 글 읽으니까
입덧하는 새댁처럼 갑자기
홍어회가 먹고 싶어지네요.
한국기행 다시보기 하고 있는데
때마침 목포 섬마을의 홍어회가
나오네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봅니다.
저도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조심을 하고
지내다가 오늘 문득 입맛이 당겼습니다.
이런 날엔 홍어회나 제대로 만든 떡갈비를 좀
먹어줘야 하는데... ^^
모두가 잘 살 수는 없다 해도 욕심으로 인한 큰
재앙만은 없어야 하겠지요.
작은 아버지가 송정리에서 군인으로 계셨어요.
그래서 초, 중 학교때 저도 몇번 가보았지만
음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
삭힌 홍어는 아직도 그맛을 모르고 또 피하고
싶습니다 .
5월 18일 ...
'서울의 봄 '영화를 보았지요 .
요즘은 반 삭힌 홍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걸 먹어보면 맛을 알 수 있을 겁니다만 마음이
내킬 때 해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곳 태생이 아닌데도 음식만은 남도 것이
늘 입에 맞고 그립답니다.
@앵커리지 저도 반 삭힌 홍어는 먹을만 합디다
예전에 나주에 가서 푹 삭힌 홍어를
먹어 봤는데
시고 떫고 짠듯한 그 오묘한 맛에 눈물
콧물이 다 나왔어요ㅎ
지금 먹으면 그 맛을 알런지요.
5.18당시 전방에서 훈련중이었지요
전우신문을 보며 큰일이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후 전라도 신병들이 입대했는데
니놈들 땜에 우리가 ㅈ뺑이쳤다고
많이들 괴롭혔지요
진압이 완료되고 국난극복기장을 받았는데
나중에 전라도 출신 친구가 버리라 해서 버렸지요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후 5.18 묘지를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참배했습니다
'국난극복기장'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것도 갖고 있었다면 역사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도 버렸습니다.
온갖 유언비어와 언론통제, 중상모략이
난무하던 혼돈의 시간이었지요.
나는 그날 조카 호른 구입한다고 같이 대구 악기상에 갔다가 ᆢ그곳에서 518소식 들었는데 ᆢ혹시 전쟁이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역사는 조금씩 발전한다고 하였으니. 그런 비극은 다시는 없겠지요?
당시 우리 고향 공주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이
걱정돼서 광주에 오시려고 했는데 택시조차
가지 않았답니다.
이젠 모두 평온한 날들만 이어지길 빕니다.
불타는 광주 mbc를 자취방 옥상에서 불구경 하듯이 봤습니다
새벽이면 들려오는 총소리에 시골에서 가져온 솜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해 질때까지 기다리고
철없는 동생은 총탄 줏으러 집 밖을 나가 속이 까맣게 탔었지요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봐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전라도 하면 광주 무등산 수박과
바로 코를 톡 쏘는 홍어가 유명하지요
그리고 푸짐한 인정과 좀 무식해 보이는 사투리 ㅎㅎ
44년 전 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보셨군요. 저야말로 부대 안과 밖에서 본
것들을 어찌 다 표현할까요.
그저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
무등산 수박은 비싸고, 홍어는 요즘 대세가
되었지요. 음식의 정석은 호남입니다 ^^
쫌 무식해 보이는 사투리? 맞습니다 ㅋㅋ
우리 충청도 말은 엄청 촌스럽거든요 ^^
홍어를 처음 먹었던 날이
언제인지 어디인지의 기억은
안 나지만 코 끝을 찡 울리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지요.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ㅎㅎ
훗날 삼합도 즐기고 했지만
첫맛에 대한 기억은 잊을 수가 없네요.
맛도 유별나지만, 그 홍어를 옛날식으로
손질하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
남도 음식은 영남과 달리 양념과 젓갈을
많이 넣어서 익숙해져야 맛을 압니다.
음식하면 남도 이지요.
가짓수 많은 반찬들
양념 잘 배인 음식들이 많아 먹거리
기행으론 남도 유람이 제격.
맛갈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맞습니다.
양념을 아끼지 않는 그곳의 음식은 깊은 맛을
내기에 사람들을 중독시키지요.
그 맛과 명산대찰이 좋아서 저는 2012년에
혼자 차를 끌고 열흘간 남도를 돌며 추억을
더듬기도 했습니다.
충청도 태생인 저는 그곳에 10여 년간 머무른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어제는 40명이 동해시 두타산을 다녀왔습니다. 뒷풀이 장소로 묵호항으로 이동하여 제가 4월말에 가본 세꼬시 잘하는 가성비 좋은집을 소개해서 맛있게들 먹었습니다. 올해는 한번도 안가본 무등산이나 월출산을 가보고 싶군요.
네, 무등과 월출을 수차례 다녀온 저의 소감은
무등은 겨울이, 월출은 가을이 좋습니다.
여유를 갖고 가서 음식맛도 꼭 보세요.
홍어 맛나지요.
저는 목포에서 나고 자라서
홍어와 산낙지는 어렷을 때부터
잘 먹었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육식보다는
해산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아구탕을 끓여 먹었구요.
홍어 무침을 할 때는
홍어를 막걸리에다 박박 문질러서 하는데
이유도 모른체 무조건 그렇게 합니다.
음식은 전라도가 잘 하긴 해요.
그쵸?ㅋㅋ
앗 제라님 반가워요 ^^
제라님이 목포였군요. 목포사람 앞에서 홍어
얘기를 해서... 깨갱~~~ ^^;;;
홍어를 짚으로 박박 닦은 후 마무리는 반드시
막걸리를 사용하던데 이유는 저도 몰라요 ㅋ
남도 음식은 갓김치와 같아서 그걸 먹고 나면
다른 음식은 별로예요. 저는 식도락가는 전혀
아닌데도 그 음식이 가끔 생각난답니다
5.18 당시에 저도 현역이었지요.
그런 아픈상처가 아직도 여물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 마음 아프기도 합니다.
출장을 다닐때 광주를 지나서 식당에
들어가면 미안해서 먹지못할 정도로 푸짐한
음식상을 받아봅니다.
지금은 목포바닷가 앞에 개인 텐트를 쳐놓고서
자주 찿아갑니다.
그러시군요.
다행히 그 역사적 비극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되고 있고, 상처는 시간만이 아물게 하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남도에 가도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면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아무 식당이나 다 맛있던 시절은 갔나봅니다.
신혼여행 첫 도착지를 그 때까지 가보지 못했던 광주로 정하고 무등산 초입 눈덮힌 계곡을 걷던 기억이 납니다.
군 전역 후 민간이었던 10.26, 5.18 그 혼란했던 시절에 실상을 제대로 알기란 어려웠었던 기억도 납니다.
40대 중반에 어느 모임에서 다들 환호하던 홍어를 처음 입에 넣었다가 후다닥 바깥으로 나와 하수구에 뱉었던 기억,
요즈음은 조금은 맛나게 먹게 됐습니다. ㅎ
언젠가 제주도 가는 길에 멀리 보였던 월출산이 너무 멋져서
훗날 아내와 둘이 밤차타고 내려가 다녀왔던 좋은 추억도 생각나네요~^^
간결한듯 맛깔나는 글~자주 올려주소서~ㅎ
완전 삭힌 홍어를 처음부터 잘 먹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ㅋㅋ 그 뜨악한 냄새라니...
저와 지리산 다녀온 게 벌써 재작년이네요.
올해는 월출에 갈까요? ^^
@앵커리지 제가 훈련을 많이 해야죠~ㅎ
홍어에 미나리 넣고 빨갛게 묻힌 홍어 무침,
아무런 양념 안하고 그냥 쪄낸 홍어찜도
맛있어요.
홍어 이야기하시니까 갑자기 홍어가 먹고
싶어졌어요.
광주라고는 무등산행 할때 두 어번밖에
안 가봐서 아는게 전혀 없는데요.
분명한건 소수 군인들 정치적 야망에 왜 민간이 희생되어야했는지ㅠㅠ
역사에 대한 평가는 끝났으니 우리는 그곳을
맛과 멋의 고장으로 인식하면 됩니다 ^^
광주는, 홍어 말고도 여러가지 음식이 맛있는
음식들이 널린 곳이니 꼭 여유있게 가보세요.
떡갈비, 오리탕, 흑두부... 아주 많아요.
반갑습니다.
목포와 홍어 이야기에
잠시 멈춤입니다.
저도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5.18 은 광주에 있었구요.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20대를 보낸 탓으로 광주의
문화와 정서를 나름 잘 알고 있습니다 .
5.18 당시 저는 그곳에서 공군으로 있었고
지금도 종종 찾아가는 곳입니다.
떡길비와 검은두부와 걸쭉한 오리탕이 문득
떠오릅니다.
네~ 그러시군요.
떡갈비 , 오리탕
저는 떡갈비 자주 다닙니다~ㅎ
부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