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문명이란 것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지조차 모른 채 자랐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각각 일흔 넷과 예순 두 해를 사시는 동안,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문명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신 채
생을 마치셨다. 두 분은 태어나신 진성면 두소와 훗날 옮겨 사신 까막골을 벗어나지 않으셨고, 버스나 기차 같은
교통수단도 한 번 타보지 못하셨다고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머리를 곱게 빗어 땋아 올려 묶으셨고, 할아버지는
늘 짚신을 신고 다니셨다. 그 모습은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너무 어린 시절의 일이기에 또렷하지는
않다.
내가 세 살 되던 해, 두 분은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살던 까막골은 세상과 단절
된 듯한 산골이었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도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마을 앞 비포장 국도에
는 하루에 화물차 한 대가 지날까 말까 했다. 버스는 다니지 않았고, 가끔씩 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미제 승용차를 보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들뜨곤 했다.
문명의 변화는 내 삶 속에서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흑백 텔레비전을 처음 본 것은 마산으로 이사한 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고, 가스레인지와 세탁기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말, 배를 타고 다니던 때였다. 그 이전에는
빨래를 손으로 해야 했고, 물기를 빼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때 ‘짤순이’라 불리던 탈수기가 유행했는데, 그것은 빨래
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물기를 빼주는 기계였다. 사람이 아무리 힘껏 비틀어 짜도 남아 있던 물기가 순식간에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것을 신기한 문명의 산물로 여겼다.
세월이 흐르며 세탁기는 더욱 발전했다. 영국에 잠시 머물던 시절, 대영박물관과 근처 작은 마을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손빨래에서 시작해 빨래판을 거쳐 현대의 드럼식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세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옷감의 종류와 오염 정도에 따라 알아서 세탁을 해주고, 건조까지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변화는 물건에만 머물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나는 글을 쓰는 데에도 ‘세탁기’를 들여놓았다. 바로 인공지능,
챗GPT이다. 내가 쓴 글을 다듬고 고쳐주는 이 도구는 때로는 지나치게 손을 대어 내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내놓기도
하지만, 대체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넓고 깊게 글을 다듬어 준다. 충실한 하인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주인 행세
를 하는 묘한 존재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글쓰기 세탁기’ 덕분에 글을 쓰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사실이다. 손으로 빨래를 하던
시절에서 자동 세탁기로 넘어온 것처럼, 글쓰기 또한 새로운 도구를 통해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 조부모님이 살았던 세상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같은 시간 위에 놓여 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르다. 짚신과 올림머리, 비포장 도로와 화물차 한 대의 시절에서, 인공지능이 글을 다듬어 주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긴 변화의 흐름 속에 내가 서 있다.
문명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우리의 기억은 빠르게 멀어져 간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멈춰
서서, 까막골의 먼지 날리던 길과 짤순이의 윙윙거리던 소리를 떠올린다. 그것이 내가 지나온 시간이고, 지금을 살아가
는 나를 만들어준 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