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과의 협상 시한을 하루 연장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 이상의
의미를 던진다. 당초 6일로 못 박았던 시한을 7일로 미루며 그는 다시 한 번 특유의 협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그의 전형적인 압박과 후퇴의 반복, 이른바 ‘TACO 전략’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동시에
실제 군사 행동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세계는 긴장 속에 하루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문제는 만약 군사적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그 방식과 대상이다. 발전소나 교량 같은 기반시설은 민간인의 생존
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제법상 공격이 제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란의 핵 개발과 드론, 미사일 위협
을 저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안보와 인도주의 사이에서 늘 반복
되어 온 오래된 딜레마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전해진 한 사건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최근 이란 공습 과정에서 미군 전투기 한 대가 격추
되었고, 두 명의 조종사가 비상 탈출했다. 한 명은 신속히 구조되었지만, 다른 한 명은 적진 깊숙한 곳에서 고립
되었다. 그의 위치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구조 작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권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구조대를 기다리며 버텼고, 결국 미군은 끝내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첫 번째 조종사의 구조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두 번째 조종사의
안전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단순히 군사적 성공을 과시하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한 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보를 통제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이 자국민, 특히 군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반복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단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여러 명이
목숨을 건다는 설정을 통해, “누구도 버려두지 않는다”는 신념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영화는 허구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군인의
사기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느덧 7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참전
했던 이들은 이제 대부분 90세를 넘긴 고령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전쟁 당시 북한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의 정확한 숫자조차 우리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국가적 노력은 충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은 자국 군인의 유해를 되찾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반면, 우리는
아직 생존 여부조차 불분명한 자국민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차이
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국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영토와 주권만으로 국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가의 정당성은 확보된다. 만약 위기의 순간에 국가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자리 잡는다면, 그 국가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정치적 계산과 군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최소한
“자국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국민에게 그런 신뢰를 주고 있는가.
결국 국가의 존재 가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한 사람을 끝까지 구하려는 노력, 그 작은
행동이 모여 국민의 신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신뢰야말로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