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 속에서 검증되어 온 지혜다. 아무리 버겁고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희미해지고, 때로는 스스로 해결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속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도 시간의 중요성은 강조된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공기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시간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이 사실을 몸소 느껴왔다. 아무런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다.
반면, 작은 계획이라도 세워두고 그에 맞춰 움직이면 하루가 훨씬 단단해진다. 흔히 ‘Time Matrix’라고 부르는 시간 관리
방식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하루를 채워가는 것. 이것이 쌓여
인생이 된다.
그래서 나는 평생 다이어리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팔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10월이 되면 다음 해의 탁상일지와
다이어리를 미리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해의 계획을 정초에 세운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것조차 늦은 일처럼 느껴
진다. 한 해를 맞이하기 전, 마지막 달이 지나기 전에 이미 다음 시간을 준비해야 마음이 놓인다.
물론 계획이란 것이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도 많고, 인간의 의지 역시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큰 방향과 원칙만큼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계획이 주는 힘이다.
이제 내년이면 나는 팔순을 맞는다. 흔히들 성대한 잔치를 떠올리겠지만, 내 마음은 조금 다르다. 화려한 자리 대신, 젊은
시절 나에게 용기와 꿈을 주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 대학 실습 시절 일본 시즈오카에서 만났던 하루꼬와 마사요,
그리고 벨기에 안트워프에서 인연을 맺었던 크리스. 그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었을 것이다. 그들의 머리에도 어느새 흰빛이 내려앉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억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상처를 무디게 하는 동시에 추억을 더욱 깊고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남은 시간을 서두르기보다, 더 소중하게 쓰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들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조용히 꺼내어 나누고 싶다. 그것이 내가 팔순을 맞이하는 가장 의미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