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제를 알았을 땐 익숙한 낯설음이라는 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주제를 자주 생각하면서 내가 느꼈던 익숙한 낯설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익숙한 낯설음은 알고 보면 많다. 나 자신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게 멀게만 보이던 대학생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렸을 때와 달라진 얼굴. 외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와 달라졌을 사고방식처럼 내적인 부분도 많이 바뀌었다.
매년 나이가 달라지면서 변하고 싶지 않아도 바뀔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학교가 바뀌는 순간마다 낯설었고 매년 새학기 새로운 반과 바뀐 학년, 달라진 친구들과 선생님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기숙사에 살다가 집에 가면 현관문부터 익숙하지만 낯선 기분이 든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기숙사와는 달리 넓은 공간도 낯설지만 내가 원래 자던 침대, 내 방을 보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내가 없는 기분이 낯설다. 유체이탈이라도 한 기분이다. 기숙사와 집,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이 든다. 또 집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할 때에도 기숙사에 옷이 있어서 집에 내 옷이 없을 때 낯설다. 내 집인데 내 물건이 없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묘하다. 마음은 집에 있는데 몸은 기숙사에 있는 기분. 한마디로 내가 분리된 기분이 든다.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을 때의 그 적막함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설음을 느끼게 한다. 가족들이 모여서 다같이 웃고 떠들던 그 공간에 혼자 서있으면 외로움이 확 밀려오는 듯하다. 매일 학교에서 보던 친구들을 한 달에 한 번도 못 보고 친구가 그때와 달라진 모습을 보면 익숙한 친구에게서 낯설음을 느낀다. 고등학생 때 중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친구들이 있던 공간에 내 자리가 없다는 게 낯설었고 분명 커보이던 공간이 ‘이렇게 작았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달라보인다. 왠지 작아보이는 계단과 교실들.
늘 중학생일 것만 같았는데 시간에 휩쓸리듯 난 늘 시간에 끌려다니는 것 같다. 그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를.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난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익숙한 공간을, 시간을 벗어나 낯선 곳, 낯선 시간으로 가는 게 늘 싫었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나를 알게 된다. 이렇게 낯설음을 싫어했구나, 늘 머무르고 싶었구나. 사람들은 늘 나아가야 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과거의 익숙함에 머무르고만 싶다. 그렇지만 과거조차 낯설음을 가지고 있다. 그때의 내 모습, 감정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고 과거이기에 돌아갈 수 없다. 미래로 나아가기가 어렵다면 난 그저 현재를 살아가겠다. 과거를 추억하고 가까운 미래를 조금은 생각하면서.
첫댓글 "대학생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렸을 때와 달라진 얼굴. 외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와 달라졌을 사고방식처럼 내적인 부분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일상적으로 우리가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나를 나로 정의하게끔 하는 본질적인 특성, 곧 정체성이라는 게 계속 유지되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 정체성이 나를 나이게끔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변했다고 문득 문득 느끼게 되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일까요? 그것을 대하는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이 변했기 때문일까요? 이런 질문들을 해보는 것이 철학함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