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를 찾아서]에 이어서 [반두비] 역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인 소수자들-부녀자, 노인, 어린이 등 전통적인 약자는 물론이고, 성적,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소수자들 즉 동성애자나 무정부주의자, 이슬람교도,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 등과 외국인 노동자까지 포함해서-그들이 받는 핍박은 한국 사회가 아직 진정으로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니를 찾아서]가 문제적 주제를 소탈한 인간애와 유머로 감싸며 애둘러 말한 데 비해서 [반두비]는 더욱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주제를 표출한다.
[반두비]는 분명히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이 젊은 남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반두비]는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카림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다. 똑같은 영어 학원의 강사인데도 백인 선생과 흑인 선생의 월급이 다른 곳이 한국이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지만, 이런 인종적 차별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려 한다. [반두비]는 우리가 알면서도 모르고 싶어하는 진실을 펼쳐보인다. 그래서 불편하다. 더구나 피부빛 검은 저개발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의 꽃다운 여고생과 사랑을 키워가는 것을 지켜볼 때, 당신이 민서 또래의 젊은 학생이라면 혹은 민서 엄마 또래의 성인 여성이라면, 무엇인가 내 것을 빼앗기는 감정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민서가 좋다. 민서의 결정을 지지한다. [여자 친구]라는 뜻의 방글라데시어를 제목으로 한 [반두비]는 외국인 노동자 카림(마붑 알엄)과 여고생 민서(백진희)의 관계에 집중한다. 여자 친구라기 보다는 한 인간과 인간이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으며 친구가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민서는 17살, [세상은 껌이다]라고 생각하는 당돌한 캐릭터이다. 몸은 갸냘프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자립심이 넘치며 타인의 시선같은 것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검은 피부의 카림에게 [때는 무슨 색깔이야?]라고 물을만큼 솔직하고, 카림은 민서의 질문에 웃으며 [너와 똑같애]라고 화답하는 따뜻한 인간이다.
민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강하게 저항한다. 민서가 카림과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받고 있는 설움과 핍박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살고 있는 민서는, 카림을 만나면서 학교와 집으로 둘러쌓인 지금까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과 만난다. 그 세상의 모습은 추악하다. 물론 민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학생은 아니다. 민서와 카림의 첫 만남도 평범하지는 않다. 길에서 주은 카림의 지갑을 가방 속에 넣고 가다 뒤따라온 카림이 경찰서에 가자고 하자, 카림의 소원 하나 들어주는 것으로 퉁치자고 말할 정도로 민서는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마사지 업소에서 남자들의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알바를 하는 것도, 그곳에서 학교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민서를 둘러싼 더 큰 세계와의 만나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마사지 업소에서 마주친 선생과 제자. 그들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의 하나다. 민서는 자신을 둘러싼 기성사회에 저항한다. 입시 경쟁 사회에서 그녀는 학교를 뛰쳐나온다. 연하의 남자와 집에서 섹스를 즐기는 어머니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그러나 카림은 한 인간으로서 민서를 이해하려고 한다. 민서와 카림은 주류 지배계층에서 소외되어 잇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류의식을 느낀다. 카림에 대한 민서의 감정은 낯설음에서 연민과 이해, 동류의식 그리고 사랑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밟는다. [마음을 열어]라는 영화 속의 대사는 민서의 외침이자, 카림의 외침이고 [방문자][나의 친구, 그의 아내] 등을 만들었던 [반두비]의 감독 신동일을 비롯한 제작진의 외침이다. 나도 이 외침에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