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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던지 할매는 고개를 숙였다. 불쑥 나온 말씀이지만, 언제 알아도 알 일을 일찍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아비 없는 자식이 됐나!’ 하고 그때부터 풀이 좀 죽었다. 기쁜 날 듣기 좋은 말씀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오히려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쉬면서, “너한테 얼굴도 안 보여주고 먼 곳으로 떠났구나!” 했다. 아마도 새로 생긴 나를 보니까 절로 아비 된 자가 떠오른 모양이다. 그때 문득, 난 철없이 ‘내 얼굴이 보고 싶지도 않으셨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나를 의식했는지, 할매는, 내 눈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야야, 널 보고 가려고 몹시도 애썼단다!” 했다. 그 소리엔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 난 그것만으로 마음이 풀렸다. 말씀하실 때,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자식이란 뭘까, 핏줄이란 인연으로 이어진 분신 그 이상인 모양이다. 자식을 일찍 보낸 어미의 한은 무엇으로 풀 길이 없다. 영원히 가슴에 남지 싶다. 운명이란 삼신 할매가 좌지우지하는지, 아무튼 인력으로는 되지 않는 것 같다.
할매는 날 볼 때마다, 니 아부지 얼굴과 찍은 듯이 닮았다고 했다. 내 얼굴에 아들이 겹치는 모양이다. 엄마는 무슨 말씀이 오가든 입을 꼭 다물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숨길 수 없는 아픔이 있어 보였다. 엄마는 벙어리 일까, 그래서 냉가슴만 앓고 있는 걸까, 할매는 엄마의 대변인이었다. 아부지 얼굴은 거울 속에 있고, 거울을 통해 부자간에 감응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아비를 두고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나, 없어 부르지 못하는 나나, 부르지 못하는 건 비슷하지만, 어쩌면 내가 더 처량한 것 같기도 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간다기에 하늘에 대고 중얼거렸다. 하긴, 말 못 하는 하늘에 대고 무슨 말을 하겠나. 부자지간에 얼굴을 못 본다는 게 억울한 거지. 다른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느 날, 내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소리 없이 구석진 곳에 앉아 있을 때였다. 햇볕이 내리쬐고, 고독을 삭일 수 있는 곳이어서 잘 들린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다. 그럴 때면, 유일한 친구는 책이다. 잡히는 아무 책이나 태양을 등지고 보곤 했다. 어쨌든 혼자가 편했다. 할매는 날 용케도 찾아냈다. 내 모습이 안 됐는지, 기분을 알아채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곤 했다. “넌 니 에비 그대로 뺐다!” 자꾸 그 말씀만 하신다. 싫증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니 아버지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의협심이 있어 남을 잘 돕고, 부지런하며 효성스럽다.”고 했다. 영웅담이다. 할매 눈에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젤 예쁘다고 하듯, 할매의 기억이자 자랑이다. 과유불급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정말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다음번스토리가기다려지네요~ㅎ잘읽었습니다~^^~
팬이되어가네요~ㅎㅎ
화이팅입니다.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