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대웅보전>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가 안치된 호성전>
<국보 120호 용주사 범종>
<부모은중경 탑비>
<융릉, 건릉 입구에 있는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비>
<융릉과 건릉으로 가는 숲길>
<융릉 - 사도세자였던 장조와 혜경궁홍씨의 릉>
일상탈출 짧은 여행 88 (화산 용주사 - 융릉 - 건릉)
목필균
오랜만에 향토문화탐방반은 화산 용주사와 융릉과 건릉을 답사하기로 했다.
지하철 1호선 -서동탄행을 타고 병점역에서 13시에 만났다.
병점역 근처에 여러 대학교들이 있어서인지 지하철 역도 크고, 주변도 생각보다 번화했다.
병점역 후문에서 35-1 번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용주사가 보였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릉을 이장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갈양사 옛절터에 용주사를 원찰을 창건하기로 했다고 한다.
재임 기간에 한양 궁궐에서 화성 융릉까지 능행길을 수차례 다니면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드렸다. 왕의 효심을 백셩들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능행길은 주로 겨울에 다녔으며, 되도록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한다.
용주사는 입구에 대개 능 앞에 설치하는 홍살문이 있고, 궁궐처럼 대문이 있는 특징이 있다.
대웅보전에는 정조대왕이 당대 최고의 화공인 김홍도를 중국으로 보내서 새로운 화법을 배우고 오게해서, 원근법이 가미된 대웅보전 후불탱화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
또 2002년 월드컵 때 새롭게 그려진 탱화에는 축구공이 그려져 있어서 더욱 화제이다. 그래서인 대웅보전이 보물 1942호로 2017년에 지정되기도 했다.
정조의 효심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정조와 효의왕후의 위패가 안치된 효성전 앞에 부모은중경을 탑비로 세우게 하여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정조대왕은 사후에도 부모님이신 사도세자(장조) 옆에 묻히기를 원해서 융릉있는 화성에 건릉이 형성되었다.
융릉과 건릉은 용주사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이라는 표석이 입구에 있었다.
510만평이란 광활한 대지에 사도세자 장조의 능인 융릉과 정조의 릉인 건릉이 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잘 가꾸어진 능이었다. 능 주변은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서 관광객들이나 주민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적송나무 숲길이 아름답게 펼져져 있고, 산책길이 완만하고 넓어서 마치 삼림욕을 위한 공원으로 느껴졌다.
양쪽 능을 돌아보는 동안 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숲이 참 잘 보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새 여름날씨가 되어서인지 답사가 끝날 때 쯤되니 돌아오는 길이 몹시 피곤했지만 전반기 문화탐방 마지막 날이라 아쉬웠다.
이제 9월이나 되어야 다시 시작할 향토탐방길을 기대하며 돌아왔다.
첫댓글 융건릉은 저두 가끔 들르죠 ~ 능을 중심으로 비잉돌아 나오면 그 규모를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앞으로는 윤주님처럼 뽀스타구 함 가봐야겠습니다. 얼마전엔 사당 - 수원행 뽀스타구 핸드폰을 두고내리는 바람에 거기꺼정 가 찾아왔지요 ~그 바람에 융건릉 한 바쿠 돌았습니다. 청계광장 능행차도와 함께 느껴보는 정조의 효심은 길이 우리들의 맘 속에 남을겁니다. 사뭇 달라진 정문 모습이 새로웠습니다......*
전 처음 가본 용주사와 융건릉 모두 참 좋았습니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왕이 되어도, 부모와 육친의 정을 그리워한다는 것..... 권력 앞에 무너진 사람들, 돈 앞에 무너진 가족이 허다한 세상에 경종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배님!
용주사와 융,건릉은 수원에서 화성으로 가는 길목인데 차를타고 앞을 지나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목후배님의 향토문화탐방기로 인해 이런저런 속사정을 알게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그곳을 지나치게 되면 정조대왕의 효심이 머물러있는 유적에 애정을 가지고 둘러봐야할 이유가 생겼어요..^^
그리고 벌써 향토문화 탐방길 전반기가 끝났다니 왠지 내가 더 아쉽네요..ㅎㅎ
향토탐방하고 온 날은 몹시 피곤하지만, 새로운 유적지를 살펴보며 얻는 정보가 너무 좋습니다.
정조대왕 능행길은 매년 이어온다고 합니다.
몸으로 실천한 효심이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