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010~9561~7178✍️1968년 9월 현금 680,000원 가지고 광주군 중부면 대단지 현(성남시)이주하여 현 종합시장 옆 양지마을 천막 촌에서 탁주공판장 사업을 하면서 천막 안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과 생사 고락을 함께 하면서 탁주을 차에 싣고 외상으로 주면서 큰 꿈을 않고 열심히 살다가✍️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 텐트촌 사이로 부동산들이 들어오고 살기 힘든철거민들은 입주권을 1만원~1만3천원에 팔고 대단지를 떠나가기 시작했다1971년 10월 자료에따르면 대단지 주민중 5만명의 빈민 30%만 살고 50%는 입주권을 산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투기꾼세련이다,나는 막연자실 사업을 접고 다시 맨손으로1973넌부터 다시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 성호시장 [7개 상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허가 상가로 (1)성호상가(2)대원상가(3)천일상가(4)스탠드상가 (5)성오상가(6) 대화실업 (7)개인 땅과 도로부지 무허가 시장]의 이권 갈등을 조정해 어려운 사람들이 장사하며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며 본인은 그 때부터 청와대 실세인 종합시장 사장 아들과, 권력 실세 이인자 후배인 모란시장 사장이 성호시장 청과물 도매시장 상인들을 무허가 상가 상권을 페쇄 하려는 당시 시청, 경찰서, 소방서 기관들과 싸우면서 상인들을 보호하고 큰 용기를 주면서 공생하며 살았습니다, 당시 성호시장은 성남의 명동으로 각 향우회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1974년 전국 운수노조와 1977년 항운노조를 결성 하였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여 왔으나
용산에 있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1985년 용산시장에서 현 가락시장로 이전하자 그 당시 성호시장의 상권과 청과물 도매 상인들과 노조는 함께 해산 하게 되었습니다, 또 성호시장도 그때부터 침체괴기 시작 하였습니다,✍️1981년 일부 청과물 상인들이 제일시장으로 이전하여 본인과 원예협동조합 청과물 공판장을 창설하여 (당시 염보현 경기도청 허가)
일부는 하대원 시장으로로 이주하였습니다,✍️1981년 고향 친구 나필주씨가 성남동과 중동 (현 중앙동) 2개동 합동 선거인단에 출마하여 당선 후 , ✍️1986 ~7년 강원채 국회의원, 성남, 광주 국회의원 후보 출마자 당시 상담실장 역임✍️1987년 한화갑 민주당 후보가 성남에 사무실(삼성생명 전 건물)을 두고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고자 저와 함께 활동하다, 사면복권이 안되어 포기하고 4년 후 신안에서 국회의원 당선
✍️ 1988년 성남시 중원구에서 평민당 이찬구 국회의원 당선 당시 당기위원장 역임 중 1989년도 인회병원에서 입원하여 있다가 1990년 2월에 퇴원하여 전남 광양군 진상면 어치리 백운산에 가서 요양중 1991년 1월에 지방에서 요양중 성남에 와서 금광2동에서 나필주씨가 시의원 출마하여 당선 본인이 적극협조 ✍️1991년 6월 당시 성남시 호남향우회 본회 류중백 의장이 성남시 수정구 도의원 출마하여 당선 당시 선거대책 본부장 역할 후 ✍️1991년도 성남시 호남향우회 김용준 회장이 사임하고 염우섭 회장권한 대행께서 본인한태 사무국장 직을 간청하여 건강 문제로 지방에서 요양하다가 상경하여 류중백 의장 선거 대책 본부장 역할 ㅡ1991년 8월 고심하다 직을 수락 하고 근무하다가 11월 월례회의때 회장,의장 등록금제로 처음 회장 2백만원 의장 1백만원과 *선거관리규정 성남시 호남향우회는 1990년까지 약 20십넌간 수억의 돈으로 친목회를 하지않고 정치을 하기의해 향응제공 회비대납 금품수수등 (금지사항) 입후보자가 직접.또는 간접적 방법으로 향응제공 회비대납. 금품 수수 등 선거부정행위와 사전선거운동이 드러난 경우에 위원장은 즉시위원회를 소집하여 재적위원 과반수의 결의로 당해 후보자의 후보자격을 박탈 할 수 있고 그경우 등록금은 환불하지 않으며 소정의 자료를 갖추어 본인에게 통보한다.
그리고 본인은 사전에 염우섭 회장 권한대행에계 1991년 12월까지 하기로 .약속하고 궐역도 목하는 친목회에서 20년의 부정선거를 이대부터 새로게 시행 약 4개월만해 제1 등록금제 제2 선거관리규정 제3 대의권 3.4분기로 규정 4제 상반기 감사실시 제5 부정선거로 돈이없어 사무장과 사무국장 봉금 변호사 선임비 추석에 교육의원사건으로 10명에계 의료금 제공 12월 총에서 고 남궁형 사모님한테 금팔지와 큰자제분에계 공로페등 많은 돈을 염우섭 회장 권한대행계서 추열 후 총회에서 회장으로 학정하고 본인은 약속대로 국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있다고 1992년도 조영이 회장님과 염우섭 의장님께서 다시 사무국장을 해달고 하여 13일만에 다시 성남시 향우회를 의헤 다시 근무하면서 전회원들의 전남북44개 시군 족보와 문유적지 인물사 특산물 책자발간 그이후 책을보고 시.군민회 모임이 본회 소속으로 20게이상 참석
총회에서 통과 등록금을 특별회게로 통장에 적립 시행하고 ✍️1995년 민선1기 지방. 선거 때 대한지방행정 공제회 감사로 재직하면서 성남시장 후보로 김병량 시장을 2회 찾아가서 설득✍️호남인의 자존심으로 출마 해 달라고 간청하여 승낙을 받고, 바로 이해학 목사님과 상의하고 수정구 중파 앞에 임시 사무실 개소 후 ✍️공직을 사임과 함께 수정 ,중원, 분당 지구당 사무실 방문하며 협조 부탁하고 모란 농협 앞에 상가에 사무실 두고 수정,중원,분당에 선정위원 120명으로 구성하여 성남시 수정구 시민회관에서 본인이 사회를 보고 출마자 3명 중 96표로 김병량 시장 후보로 확정✍️선거 결과 오성수 후보 130,374 38,94%김병량 122,797표 36,68%로 아쉬운 패배, 당시선거대책 본부장 역할✍️1996년 성남시, 중원구 조성준 국회의원 당선, 당시 수석부위원장 역할✍️1997년 7월부터 김병량 전 시장님과 함께 수정구청 앞에 사무실 두고 대선기간 적극적으로 활동으로 12월 18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1998년 민선2기 때 성남시장 선거 결과 김병량,후보 151,475표 47,96%로 당선, 당시선거대책 본부장 역할 오성수 116,123표 36,76%로 낙선✍️1998년~1999년 성남에서 시영아파트 5개단지 관리 소장직을 역임 중 1999년부터 다시 성남 호남향우회 사무총장과✍️1991년도 염우섭 회장님께서 사무국장 직을 간청하여 건강 문제로 지방에서 요양하다가 상경하여 류중백 의장 선거 대책 본부장 역할 ㅡ1999년 8월 고심하다 직을 수락 하고 근무하다가11월 월례회의 때 상정 회장,의장 등록금제로 정기 총회에서 통과 등록금을 특별회게로 통장에 적립 시행하고✍️1999년 회관건립 추진위원회 발기인 50명으로 구성하고 모금을 시작하면서2000년 4월에 회관 신축부지 매립하여 계약체결 (회관 옆 약 54,8평 2001년 3월 27일 회관 신축 (기공식) 34년이흘러1999년부터 ~ 2021년 10월 27일까지본인은 일생에 가장 큰 업적은 국장직을 수행하며34년만에 우리들의 회관의 꿈을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낸 것 🌐불가능은 없다,🏆1973년부터 성남시 호남향우회 성남2지회 발기인의 한사람으로서 본회 운영(대의원 부터)부지회장~지회장 합(6회)성남시 호남향우회 운영위원과 상임위원(15회),생활상담실장(1회), 감사 (2회),사무국장과 사무총장 합(15회)2019년부터~2025년 현재까지 고문 (7회)2007년 호향산안회 회원 172명으로 구성발기인 겸 초대회장으로 활동 시작. 2025년 9월 14일 제18주년 오대산 산행 현 회장까지 11명.✍️바보 초로 홍기섭, 나이 들수록 노년의 "삶"이 지혜로운 사람의 향기가 나고, 호남인의 자존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15년 2월 20일오전 김병량 시장님 자택에서 유언의 말씀에서✍️손을 4번이나 잡고 미안하다, 하시고 저와 마지막 이별을 하고 25일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에 27일날 전북 완주군 화산면 선영에 본인과 전형수 후배님과 추모사를 올리고 성남으로 벌써 10년 8개월 아,~ 세월은 그자리 있는데 (저 하늘나라로)✍️나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4넌간 아,~~사람들이 향기가 없다, 44,6,3,생 초로 홍기섭 바람앞에초불 이제는 성남사람 우리들의 고향이다,이제는 2004년 성남시 8도민회 사무총장으로돌아 가서 정치, 종교, 지역을 편견 없시 오히려 타인에게 거부 감을 줄 수 있습니다.^🙏^~*✍️1987년 11월 4일 호우회 (발기인) 회원 128명 때 광주기독교 방송국에 수재의연금 전달 1990년 10월 제1회 7개 군민회 체육대회✍️2025년 10월 19일 (일요일) 날
코로나 후유증으로 4년간 다 죽어가다,
다시 덤으로 사는 인생 초로 홍기섭호남향우회 한마음 대 축제장에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