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벽두의 10년을 생각하며 교회 문화에 대해 써 보려 합니다. 쉬쉬하면서 목사니까 장로니까 감싸 주고, 평신도와 못사는 사람들의 윤리는 외면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요. 이런 글은 조심해서 써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중직을 맡은 분들이 이런 글을 읽으시면 마음 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 힘을 다하시는 목회자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언짢고 섭섭하시겠죠. 그러나 주일마다 진정한 교회를 찾지 못해, 눈물 나오려는 걸 참으며 교회를 정하지 못하여 거리에서 헤매는 처량한 성도를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를 향한 지적으로 보고 늘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 이놈이, 입만 살았다고 떠드는 행위가 없는 한국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설교할 자격이 없는데도 섰습니다.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통회(痛悔)하셨던 고(故) 옥한흠 목사님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우상'을 거부하고 저항하고 뿌리째 뽑아야 할 때입니다. -(필자 주) |
그런데 또 하나 충격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는 한기총을 대표하여 거의 모든 교회가 노골적으로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가 잘못 행동해서 예언자적인 지적을 하지 않았다는 충격이다.
한나라당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김진홍 목사에게 몇 번 만류하는 말도 하고, 메일을 보내 예언자적 입장으로 돌아가라고 충고를 했는데, 그 때문인지 2주 전에 MB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이만열, <나라가 그 꼴 된 게 다 일제 탓이랴>, <한겨레> 2010. 8. 19.). 이 구절을 읽고 얼마나 서글프고 비루한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김진홍 목사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주사파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뉴라이트의 수장을 하면서, 건강한 비판력을 '좌파', '주사파'라는 말로 묵살시켰다. 그가 길러 냈던 진보적이었던 수많은 두레장학생은 실망하고, 한때 큰 스승으로 모셨던 나 역시 절벽에서 떨어지듯 낙담해야 했다. 모이면 "칠팔십 년대 그때만 하나님께서 잠깐 예언자로 쓰셨지"라는 말로 자위하는 이들도 있다.
교회는 급격히 예수 교회가 아니라, '정치 교회'가 되었다. "우리 구역에는 교회가 200개인데, 절은 3개입니다. 당연히 교회에 가서 교인인 척해야죠"라는 어느 국회위원의 말은 역으로 교회가 얼마나 권력화 되었는가를 역설한다.
귀족 체제의 유지에 봉사했던 러시아 정교회에 분노한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도 오늘 이 나라에 오면 슬퍼할 거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부활한 예수가 교회를 찾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에게 대제사장이 말한다. "당신 왜, 부활했소. 당신 때문에 교회가 복잡해져요."
정치 교회에서 바른 말을 하면, "당신 때문에 교회가 복잡해져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예언자들은 하늘의 말을 대언(代言)한 사람들이다.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늘의 말을 잘 들었다. 모든 목회자, 학자, 정치가, 평신도들이 하늘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을까.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할 기갈이라(암 8:11)."
여호와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는 것이 한국 개신교의 병이 아닐까.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롬 3:13)"라는 지독한 독설이 국민의 입에서 정치 목사들을 향해 뱉어지고 있다. 종교인들 특히 개신교들은 비루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욕을 받아도 고개 숙여야 하는 비루한 시대다. 개신교도로서.
그의(HIS) 뜻을 따라 <국민일보> 이태형 기자는 '전병욱 목사에게'(<국민일보> 2010. 11. 7.)라는 글에서 한국 개신교가 진정 회복해야 할 태도를 이렇게 말했다.
"'존 스토트의 후예'인 라이트 대표가 이번 로잔 대회에서 강조한 것은 36년 전 스토트 목사가 말한 것과 비슷하다. 라이트는 지도자들에게 'HIS'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겸손(Humility)과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의 영문자 이니셜을 딴 것이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3대 우상을 'GPS', 즉 탐욕(Greed)과 권력(Power), 성공(Success)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를 타파할 개념으로 'HIS'를 제시했다. 라이트는 '36년 전(로잔 1차대회) 교회를 향한 도전으로 지적된 많은 것들이 아직도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통탄스럽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도전들(성공과 탐욕과 권력)을 제거하고 겸손과 정직, 단순함을 세워 나가는 노력은 지금 시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증상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길게 한국 개신교에 대해 쓴 이유는 아픈 증상을 바로 알아야 치료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다. 현재 한국 개신교는 GPS, 곧 탐욕(Greed=샤머니즘적 기복 신앙)·권력(Power=정치 교회)·성공(Success=백화점식 경영)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HIS) 뜻을 망각하면 안 될 것이다. 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 그 길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겸손(Humility)은 종교적 지도자와 온 신도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타 종교를 최소한 '문화'(나는 불교를 융과 프로이트와 비교 안 될 최고의 심리학으로 존경한다)로 존중하고, 스스로 무당의 교만에서 예수님처럼 저잣거리로 내려와야 한다.
나는 '겸손한 공동체'로 '감자탕 교회'로 알려진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를 소개하고 싶다. 감자탕 교회에는 교회 구석구석에 전동 휠체어가 있어 장애인들이 이용하고, 노인들, 외국인 젊은이들이 구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대화한다. 무료로 머리를 깎아 주고 미용해 주는 자리에는 노인들이 옆으로 이어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빌린 상가 건물 방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병실, 무료로 머리 깎아 주는 이발소, 독거노인의 방, 유아방, 성경 공부방이 있다.
엄청 많이 주는 공짜 미역국밥에 반찬은 김치뿐이었지만 맛있고, 세 들어 산다는 교회 전체 가 영혼과 육체의 구호 센터다. 이 교회는 교회 건축이나 주차장 확장은커녕, 전국이든 필리핀이든 문제가 나면 어디든 구호물자를 들고 떠나는, 구제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교회를 표어로 삼고 있다.
단순함(Simplicity)은 백화점식 영업을 근간으로 목회하는 방식에서 최소한의 경영으로 인격적으로 전도하는 목회 방식으로의 회복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단순한 공동체'로 숙대 앞 청파교회(김기석 목사)를 소개하고 싶다. 삼일교회 성폭행 사건이 알려졌을 때, 그 교회 다니다가 실망해 있는, 내 수업을 듣는 숙대 학생들에게 나는 김기석 목사님 교회로 가라고 권했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아직 많다.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깊이 있는 설교가 매주 강해되고 있는 산울교회(소설가 조성기 교수, 숭실대)도 기억해야 할 공동체다. 주일에 11시 예배만 있고, 십일조를 강조 안 하는 단순한 교회지만, 모자란 내가 추천하고 싶은 매력적인 공동체다. 이 교회들은 영화 <밀양>의 주인공이 낙담하여 자른 머리카락이 개숫대에 굴러갈 때, 그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비밀스런 빛, 밀양(密陽)처럼, 잠, 잠, 히 사랑하시는 절대자의 깊은 뜻을 가르치는 교회다.
정직(Integrity)은 정치 교회에 필요하다. 그린벨트 허가를 위해 여당과 협작하고, 교인들의 헌금을 전도사들을 시켜 정치자금으로 넣는 행위는 인터넷만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고, 거의 죄악에 가까운 짓이다. 부끄러운 줄 알고 남 탓하기 전에 회개해야 할 일이다.
정치 교회가 파시즘과 손잡은 비루한 시대 속에,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용산참사의 본질은 도시 재개발이라는 거짓 언어 이전에, 거기서 생활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계를 강탈했던 과정에서 생겨난 참사다. 정치 교회 목사님들에게 지난 1999년 용산 철거민 사건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묻고 싶다.
다행히 그 자리에 그 상한 영혼들을 신부님 목사님 스님들이 마음 모아 1년을 지키셨다. 냉동고에 있는 5구, 그리고 아직도 감방에 가족들이 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3일이 40주기였던 전태일의 삶을 다시 반성적으로 고찰했으면 한다.
전태일은 1970년 삼각산 엠마뉴엘수도원에서 교회 신축 공사를 하면서 마지막 결단을 전태일의 일기에 남긴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나는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1970년 8월 9일의 일기에서)."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지금도 크리스천이고, 전태일은 교회 유년부 교사까지 했었다. 삼각산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원 건물 짓는 곳에서 노동하며 4개월 동안 생활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계시던 한 목사님과 종종 성경 교리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70년 11월 13일 그가 운명하자, 22일 새문안교회 대학생부 40여 명은 전태일의 죽음에 사회가 책임이 있고 자신들도 공모자라며 속죄의 금식 기도회를 열었다. 25일에는 기독교계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 집전으로 추모 예배를 거행했는데, 고(古) 장공 김재준 목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위해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고 속죄했다.
"1970년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전태일이란 이름 석 자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그것은 폭풍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노학(勞學) 연대의 싹이 돋았다. 종교인들은 참회와 속죄의 기도회를 열었다(구혜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비, 2002)."
"전태일 군이 죽은 다음 저는 주일에 경동교회에서 '밀알 한 알이 되자'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밀알 한 알이 땅에서 썩음으로써 수많은 밀알을 낳습니다. 전태일의 죽음은 수많은 밀알을 맺는 하나의 밀알이라는 의미였는데, 그날의 설교가 마치 예언처럼 오늘 이 자리에서 이뤄졌습니다(강원룡 목사. 전태일거리 기념식 추모사)."
이런 설교를 들은 지도 이제는 까마득해졌다. 그렇다고 전태일 사건 뒤에 시대는 더욱 좋아졌는가? 겉으로는 G20, 안으로는 4대강, 서울은 디자인 서울이라 하지만, 떠들썩하기만 하고 나아지는 것이 없어 서글프다. 겉만 번드르르하지만, 사태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빈부 차를 극대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 과반수가 비정규직이고, 노동자들 간에도 격차가 점점 벌어져 정규직 여부가 곧 '신분'이 됐다.
2000년대 들어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사람이 18명이나 되는데 이 중 17명이 비정규직이었다. 그렇지만, 정규직·비정규직·이주민·노동자로 차별이 생겨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분열되어 있다. 전태일 사건 이후 사회는 발전했고 전태일 시대와는 또 다른 문제점들이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지경에 다시 전태일을 생각해야 하는가?
편의점에서는 삼각 김밥이나 샌드위치는 하루 두 번 유통기한이 체크되고, 그 시간이 지나면 처분된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로 뱃속을 채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같은 성도들의 헐한 영혼의 빈곤을 정치 목사들이 헤아렸으면 한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가진다. 교회의 역사는 '남은 자'(remnant)들에 의해 잠잠히 이루어져 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롬 5:8)"라는 말씀처럼, 잠잠히 핍박받으면서 일하시는 들꽃향린교회(김경호 목사) 교인 등 청빈한 목사님과 성도들이 주변인과 철거민들 곁에 함께한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론으로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주장했다. 작은 행동의 변화로 엄청난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직 꿈은 남아 있다. 예수님, 그의(HIS) 뜻을 따르는 공동체가 나비효과를 거두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본질은 샤머니즘이며 백화점이며 정치꾼이면서도, 예배당인 척하는 골빈당은 거부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은 월간<기독교사상> 2010년 12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필자 주 |
김응교 / 시인, 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