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최고 금속공예품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김영조
막상 서울에가서 향로를 볼 계획을 세우고 나니 다시 가슴이 쿵쿵거렸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을 했다.
규모가 웅장해서 내 마음이 넉넉해졌다.
서울에 살 때 경복궁 내에 있는 박물관은 접근성이 좋아 거의 내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그 박물관이 새로운 곳에 더 멋진 모습으로 탄생했다니 기립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런데 그곳에 '백제 금동 대 향로'를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놨다니.
나는 새박물관에 오직 그 향로를 보기 위해 갔다.
서예실, 미술실, 도자실, 공예실....그 숱한 유혹을 다 물리치고
백제실에 있을 향로를 향해 갔다.
서울역에 내리니 9시 30분. 부산에서 서울까지 정확히 3시간.
4호선을 타고 이촌역은 지척이다. 이촌역에 내리니 선명한 이정표. '국립중앙박물관'
나는 느린 걸음으로 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쌀쌀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낯선 색깔의 시내버스들이 지나친다.
뒤에 보이는 남산타워가 무색하리만치 박물관 건물은 멋있었다.
그리고 입장권을 손에 쥐고 부터는 내 발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한 걸음 한 걸음... 향로와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 가. 까. 워. 진. 다....
나는 곧바로 백제실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향로를 턱~~!!하고 마주 대하고 말았다.
한동안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눈인사를 보내며 설레이는 가슴을 그대로 간직하며 한참이나 서서 향로을 알현했다.
향로는 아주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고나 할까.
숨을 죽이며 향로 본래의 모습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도를 깨친 대 선사같은 모습.
아니다 애밀레 종신에 새겨진 비천상의 젖대 소리를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까.
아니다 왕국의 찬란한 영화를 한 몸에 지닌 지존의 모습이었다.
아니다 조국에 혼신을 다했을, 그 총혼의 당당함을 후세에 전하고 있었다.
아니다 가슴 에이는 사랑. 그 사랑 앞에 바치는 장인의 마지막 선혈. 바로 그것이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향로는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다.
나는 내내 향로만 바라보았다.
그토록 오래 향로 주변에 머물수 있는,
내 인상이 험악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 덩치가 크지 않아서 다행이다.
보안 요원들이 끊임없이 지나치고 또 지나친다.
그러다가 두시간, 세시간..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미소로 묻는다.
"훔치실래요?" "그렇게 좋으세요?" "아직도 계시는군요?" " 참 멋진 향로죠?"
급기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폼을 잡아보라고 한다.
향로을 배경으로 어정쩡하게 섰더니 자세를 고쳐주시는데 나는 자꾸 물었다.
"향로가 다 보입니까?" 라고.
그 물음에 당연하다는듯 그분은 또 웃는다.
다리가 아픈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향로 곁에 있었다.
멀리 갔다가 가까이 갔다가 봉황을 보다가 용을 보다가
신선을 보다가 물소리를 듣다가, 그러다가 홀연히 나타난 구름 속에 숨어보다가
그러다 나도 악기 하나 들고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들짐승을 보고 놀라다가
코 끝을 자극하는 연꽃 내음에 눈을 감아 보다가
그러다가 용의 뒤틀림을 보았는가 싶어서 상체를 굽히다가
날카로운 발톱을 보고 흠칫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역린은 어디쯤에 있을까 궁금해서 장난기어린 눈으로 용신을 더듬어 보는데
그 장난기를 거두는 용의 날카로운 눈빛을 발견하고는 흡~~!!! 숨이 멎었다.
받침대가 된 용은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네 다리 중에서 물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다리만으로도 예술혼에 눈을 감고 싶은데
허공으로 처든 한 개의 다리.
그 세련된 형상은 백제 예술이 아니라면 이뤄낼수 없는 감각이리라.
앞에서 보면 용이 살아있고,
옆에서 보면 가능빈가가 살아있다.
어느 여름 새벽에 만난 연곡사 부도.
그 부도에 새겨진 가릉빈가.
태평성대에 나타나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한다는 새.
그 새를 지리산 깊이 숨어 있는 연곡사에서 처음 만났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나도 두 팔을 벌리면 날아 오를것 같은 착각을 주는
그 가벼운 날개짓.
가릉빈가는 민간에서 말하는 봉황이었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새.
환상의 상서로운 연곡사 동부도, 서부도의 가릉빈가.
지리산에서 왔을까.
향로의 맨 꼭대기에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었다.
나는 내내 날개보다 하늘로 치켜 올라간 꼬리에 빠져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그렇게 날렵하게 날아 올랐을까.
어쩌면 그렇게 세련된 곡선을 가질수 있을까.
출렁이는 물결속에 용이 살아있었고,
연꽃이 피어나는 현세 위에
봉우리마다 선계가 펼쳐지고, 그곳에서 노니는 행복한 만물상.
그리고 천상의 봉황.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머물다가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를 먹으면서도
백제 대 향로, 도무지 눈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첫댓글 가입기념으로 두 달전에 썼던 글을 옮깁니다. 여행기인지, 대향로 감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어디에 이 글을 올릴지 또 망설였는데, 여기가 맞나요? ㅎㅎㅎㅎ
재밌게 잘읽었어요~ 그동안 무심히 봐았던 향로를 다시한번 보게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