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란 어떤 노래인가
신라 향가 14수는 우리 시가의 원류이며 모태로서 더없이 귀중한 우리 문학의 유산으로, 삼국유사에 실려 전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향가의 내용적 특질과 이들 작품이 실려 있는 기록의 형식적 특징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 전하는 작품만으로 그 장르의 내용적 특성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대강의 얼개만은 추정할 수가 있다. 그러면 대표적인 몇 작품을 통해서 그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가 잘 아는 처용가를 보자.
“처용의 아내는 무척 예뻤다. 그래서 역신이 흠모해서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몰래 동침했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이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동경 밝은 달에 밤들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 가랑이가 넷일러라
둘은 내 해이고 둘은 뉘 해인고
본디 내 해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꼬.
그때 역신이 본래의 모양을 나타내어 처용의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였습니다. 맹세코 이젠 공의 모양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 처용가와 관련하여, 처용이 부인과의 동침 장면을 보고도 성을 내지 않고 잘 참았으므로 이에 역신이 감동하여 물러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처용은 무당이다. 그것도 보통 무당이 아니고 벼슬하고 있는 국무(國巫)다. 그래서 그는 무당춤을 추면서 무당노래[巫歌]를 불러, 그 힘으로 역신을 물리친 것이다. 즐거워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한 마당의 굿판을 벌인 것이다. 이처럼 처용가는 그냥 목적 없이 부른 노래가 아니다.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무당이 부른 주술적인 노래가 처용가다.
신라 향가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는 한 말로 말해서 신이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향가 역시 그러한 여타의 기록들처럼, 신이한 힘의 기록이라는 범주의 영역 안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향가는 단순한 감흥을 적은 시가가 아니다. 그 시가를 불러서, 원하는 일을 이루어 내고자 하는 신이성(神異性)을 지닌 노래인 것이다.
일연은 이러한 향가의 성격을 가리켜 불교의 주문(呪文)과도 같다고 하고, 왕왕 천지귀신을 감동시키는 노래라고도 하였다. 또 고려시대 향가를 기록한 균여전(均如傳)에도, 균여가 원왕가(願王歌)를 늘 읽어서 삼 년이나 된 나필급간(那必及干)의 고질병을 고쳤다고 하였다. 그만큼 향가는 주술력을 가진 노래다.
향가에는 고도의 서정성을 담은 노래도 있고, 종교적인 노래나 동요, 노동요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향가의 외현적인 다양성 밑에는, 주술적(呪術的)인 요소가 그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서동이 마를 팔면서 서울의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마침내 선화공주와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서동요의 신이한 힘으로 서동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향가가 가진 주술성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면 신라 향가의 기층을 관류하는 그러한 주술성을, 작품을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가 잘 아는 헌화가를 보자.
자줏빛 바위 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강릉 태수 순정공(純貞公)이 행차하다가 점심을 먹으면서 보니, 동해변 석벽 위에 철쭉꽃이 만발하였다. 이를 본 그의 부인 수로(水路)가 꽃을 탐내니, 지나가던 늙은이가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불렀다는 노래다. 이것을 두고 노인이 수로 부인을 사랑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바쳤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러한 노래가 아니다. 노인과 젊은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 어색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노인은 큰무당이다. 무당이 되려면 반드시 큰무당에게 내림굿을 받아야 하는데 <헌화가>는 수로 부인이 무당이 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큰무당인 노인이 내림굿에서 수로부인에게 꽃을 주는 의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의 무당과 당시 무당의 지위는 아주 다르다. 제정일치 시대에는 왕이 무당을 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어떻든 <헌화가>는 수로 부인을 무당이 되게 하는 주술력을 발휘하고 있는 노래다.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제(祭)를 지내면서 불렀다는 <제망매가>(祭亡妹歌)도 그러한 신이한 영험을 발휘한 노래다.
생사로(生死路)가 여기 있으매 두려워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버렸는가
어느 가을 이른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진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 모르온저
아, 극락에서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련다.
월명이 이 노래를 부르자 종이돈이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는 누이가 서방정토로 갔음을 뜻한다. 그러니 제망매가는 누이를 극락왕생케 하는 주술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경덕왕 때 한기리에 사는 희명(希明)이라는 여인의 5세 된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멀어, 분황사 천수대비(千手大悲)전에 나아가 노래를 불렀더니 마침내 눈이 밝아졌다. 이때 부른 노래가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또는 맹아득안가(盲兒得眼歌)라 불리는 노래다.
무릎을 곧추며 두 손바닥 모아서
천수관음(千手觀音) 전에 빌고 또 비나이다.
천 개의 손에 달린 천 개의 눈 중에 하나를 덜어서
둘 없는 나에게 하나를 내려주소서
아, 내게 끼쳐 주시면 그 자비 얼마나 클꼬
이 노래의 신이한 힘으로 5살 아이는 다시 밝음을 얻게 되었다.
또 신충(信忠)이 지은 원가(怨歌)를 보자. 효성왕이 잠저(潛邸) 시에 어진 선비 신충과 더불어 궁전 뜰의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면서 일찍이 말하기를, “뒷날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거가 될 것이다.”하니 신충이 일어나 절을 하였다. 그런데 몇 달 뒤에 효성왕이 즉위하여 공신들에게 상을 주면서, 신충을 잊고 서열에 넣지 않았다. 신충이 원망하여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이니 나무가 말라 죽었다.
뜰의 잣이 가을에도 시들지 않듯이
너를 어찌 잊어 하신, 우러르던 모습이 계시도다
달그림자 옛 못에 가는 물결 원망하듯이
얼굴은 바라보나 세상만사는 싫은지고.
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했더니 노래를 떼어와 바쳤다. 왕은 크게 놀라면서, “정무가 바빠 그를 잊을 뻔했구나.” 하고 신충을 불러 벼슬을 주니 잣나무가 다시 살아났다.
이처럼 향가는 죽은 잣나무를 다시 살리고, 벼슬을 내려주는 영험을 발휘하였다.
나아가 향가는 하늘에 나타난 별과 해의 괴이함도 바로잡았다.
진평왕 때 거열랑, 실처랑, 보동랑 세 화랑이 금강산에 놀러가려고 하는데, 혜성이 심대성(心大星: 28수 중의 중심 별)을 범하였다. 낭도들은 이를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여행을 중지하려고 했다. 이때 융천사(融天師)가 노래를 지어 부르자 별의 괴변이 사라졌다. 이때 지어 부른 노래가 혜성가(彗星歌)란 향가다.
또 경덕왕 19년 4월 초하룻날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다. 이에 월명사가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부르니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그 노래는 이렇다.
오늘 여기에 산화가(散花歌)를 불러, 뿌린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령을 부림이니, 미륵좌주(미륵보살)를 모셔라
이외의 향가들도 다 이러한 주술성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처럼 향가는 그 노래를 불러 바라는 바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힘을 발휘하는 노래들이다. 일연은 이러한 향가의 신이한 힘에 주목하여, 기이(紀異: 신이한 것을 기록함)를 주로 삼은 향가를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