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
저자 윤희경님은 30년동안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95년 중등교감 명퇴했다.
그리고 15년동안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 매료되어 솔바우 마을로 귀농해
낮엔 농사를 짓고, 밤엔 글을 쓰고있다.
처음 귀농이 힘들듯이 저자도 몇년동안 농촌생활의 힘듦을 인내하면서 결국 지금에서야
진정한 농부로 거듭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며 그 자연이 주는 혜택들을 누리면서 일구면서 살아가고있다.
그리고 이젠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농촌에서의 빠뜨려서는 안되는 일들을 하며 그 속에서 기쁨과 감사의
조건들을 찾고 다시금 자신을 돌아본다.
온통 울긋불긋하며 맑은 하늘이 반겨주는 이 가을에 이 책을 읽으니 마음에서부터 풍성함이 차고넘치는 것 같다.
국어선생님답게 쓰신 글들이 너무 이쁘다라고 표현이 가능할까!
사시사철 저자가 만나는 야생화며, 열매들이며, 생활속에서 만나는 삶들이 저자의 눈과 글을 통하면 정말
살아 움직이는듯 역동적이라고 하면 표현이 될라나?
저자가 마주하는 모든 삶과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사물들이 저자의 친구이며,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임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삶 또한 너무 아름다움을 느낀다.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 어떻게 토박이마냥 고향의 소식을 전해줄까!!! 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이방인은 낯선 땅에서 오히려 삶의 소중함과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지를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해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가 마음이 공허하고 마음의 고향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다면 그는 이미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아니라 진정한 고향의 토박이인것이다.
그가 전해주는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고고씽~~~~~*^^*
봄(春)
연두빛 3월
행진과 전진의 달이라고 하지요.
다시 시작하고 일어서는 설렘
이 봄을 바람으로 맞이하렵니다.
총각선생 시절, 제비꽃이 막 꽃물을 터트릴무렵, 자그만한 소도시 중학교로 초임발령을 받았다.
처음 대하는 수업에 아이들 이름도 채 외우지 못할 무렵, 어린 여학생이 시도때도 없이 제비꽃을 한 묶음씩
꺽어 교탁위에 놓고 수업시간에 자기만 쳐다보라고 응석을 부리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오목이"
꽃샘추위도 지났건만 오목이의 책상은 여전히 텅빈 자리. 폐렴이었다.
병문안으로 제비꽃인줄 알고 가져갔는데 팬지였다.
한 학기 지나고 오목이는 병이 악화되었고 결국 시리고 서러운 꽃물로 변했다. 그리고 소녀는,
"선생님 다음 세상엔 제비꽃으로 피어나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께요" 라고 한마디 남겼다고 한다.
푸른 비가 지나간 자리, 아무도 돌보지않고 벌 나비가 찾아오지 않아도 여기저기 잘도 피어나는 제비꽃,
화려하게 뻐기기본단 여리고 끈덕지게 살아남는 제비꽃,
보랏빛 꽃님을 아침마다 교탁 위에 꽂아놓고 꽃처럼 살라하던 오목이가 올해도 들판 가득 피어오르고 있다.
산기슭 눈과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피어나는 꽃.
행복과 건강을 몰고 와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내며 축복을 안겨주는 꽃, 복수초
땅위 불쑥 얼굴 내밀어 '땅꽃' 얼음사이를 비집고 솟아나 '얼음새꽃' 설 즈음에 핀다하여 '원일초'
연꽃을 닮아 '설연화' 봄볕을 담뿍 받고 피어나 '황금의 꽃'이란 별명을 달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크노맨'이란 공주가 있었다. 얼마나 미인이던지 그녀가 드레스자락을 나부끼면 태양은
황금빛을 내뿜고, 바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달은 머리카락을 만져보려고 가까이 다가서곤 했다.
눈을 한번 꿈쩍이면 나는 새와 기는 짐승들도 눈이 멀 지경이었다.
왕은 신랑감을 물색하던 중 땅부자 두더지와 결혼을 시키려고 갖은 꼼수를 다썼다. 하필이면 못난 두더지와 짝을
맺어 주려하다니 참 딱하기만 하다. 그러나 크노맨 공주는 태양만을 사랑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왕은 공주에게 벌을 내리려하자, 공주는 춥고 어두은 겨울밤 스산한 들판으로 도망을 치다 얼어죽어 노란꽃이 되었다는데......
그래서일까! 복수초는 갈색 대지위에 샛노란 얼굴을 내밀고 태양만을 기다린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 '봄의 미소' '슬픈 추억'이다.
봄의 전령사 복수초 노란 꽃술이 터질때마다 멈췄던 시간을 되돌려내고, 땅을 흔들어 깨우며 봄을 이고 나온다.
노루귀를 만나러 노루목 언덕을 넘어갑니다. 흰색, 분홍색, 청보라색의 어린 생명들이 봄을 열고 있습니다.
원산지는 한국이라 자생력이 강하고 많은 색을 가지고 있다.
흰색은 봄을 알리는 고요와 적막으로, 분홍색은 봄물이 터지는 아픔으로, 청보라색은 새로운 계절을 여는 희망으로
피어나 작은 바람에도 귀를 쫑긋거린다.
꽃은 잎보다 한발 앞서 땅속을 비집고 올라온다. 꽂줄기 끝에서 한송이씩 하늘을 향해 피어난다.
꽃송이는 쌀톨만해 허리를 굽힐줄 알고 겸손이 몸에 밴 사람에게만 모습을 보여준다.
꽃이 질때쯤 뿌리에서 뭉뚝한 잎이 세 갈래로 나오고, 잎 뒷면 흰 솜털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하여 이름지어졌다.
꽃에도 참꽂과 개꽃이 있다. 철쭉과에 속하는 진달래는 참꽃이고, 철쭉은 개꽃이다.
옛날 보릿고개나 흉년이 들면 밥 대신 진달래꽃으로 배를 채워야했기에 진달래꽃은 참꽃이 되었다.
철쭉은 연분홍빛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꽃에 진득거리는 점액이 붙어 있어서 먹지못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생각'에 진달래꽃으로 잘못 알고 철쭉을 따먹으면 큰일난다.
그러나 철쭉이 개꽃 취급만 받는것은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 신라 향가 '헌화가'를 만나면,
철쭉은 한 미모의 부인과 선승의 사랑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다.
출전: 삼국유사 <헌화가> 전문
아버님은 아들을 낳은 기념으로 소나무를, 여동생을 본 다음엔 오동나무를 심었다.
나무들마다 '소나무는 아들나무, 오동나무 딸 나무'라며 이름을 하나씩 달아놓았다.
아들이 장성하여 며느릴 맞이하면 소나무를 대들보 삼아 살림집을 지어주고,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시집 밑천으로 삼으려 했던것이다.
어머니는 어느 보름날밤 밖에서 일을 보는데 오줌발이 얼마나 힘이 좋던지 다른 날보다 넓고 따뜻하게 퍼지더라는
것이다. 그 때 갑자기 오색창연한 무지개가 오동나무에 걸려있는 것을 치마폭으로 담아내 어린생명을 얻었다했다.
이것이 어찌 예사로운 일이 아니냐며 큰 인물이 될 것이니 몸 조신해라 했다.
봉황의 봉은 수컷, 황은 암컷을 상징한다.
암수 한쌍으로 만나면 오동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신방꾸미기를 시작한다.
넉넉한 오동잎에 맺힌 아침 이슬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평생동안 파란마음을 키워간다.
금슬이 뛰어나 부부싸움 있을 수 없고, 짝 중 하나가 세상을 하직하면 따라 죽는다.
수만리 창공을 날아올라 어깨 죽지가 저려와도 아무 나무에나 앉는 법 없고 오동나무래야 자리를 함께한다 했다.
오동꽃이 함빡 피어난 요즘, 어머니가 태몽으로 보았다던 그 옛날 무지개 대신, 달빛 한자락 오동나무에 걸려있다. 어머니가 그립다.
매화는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봄의 선두주자로 추위와 한기를 털고 일어나 지치고 메마른 가슴에 황홀한 빛깔과 꼿꼿한 자태와 신비스런 향기를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매화는 가난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寒不賣香梅一生)
눈처럼 맑고 티없는 순수와 푸른 하늘을 닮은 서늘한 품성과 신선한 바람처럼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세상을 질퍽거리며 비린내를 풍기는 이들이 가까이 오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순수 그자체, 어린 미나리 싹과 고갱이 속 같은 마음을 가진 경건한 사람들의 차지다.
매화는 선구자들의 몫이다.
매서운 추위와 뼈속 저리는 아픔을 마다하고 눈 속을 뚫고 피어난 부지런한 꽃이기 때문이다.
칼날 끝 절정에서 굽힐 줄 모르고 세상을 개척해 가는 의지인,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여는 사람들,
새로운 하루의 삶을 준비하는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것이다.
언제 보아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매향이 풍겨난다.
험난한 세상에 매향 냄새 풍기고 다니는 친구 하나만 갖고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다.
좋은 벗을 만나자면 나도 매화가 되고, 하늘과 바람 냄새를 풍기고 몸에서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가꿔내야 할 것이다.
여름(夏)
나는 화려하고 완벽한 존재이고 싶지않다.
달개비의 흰 꽃술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작은것이 되고싶다.
하잘것 없는 들풀과 채소들을 키워내며 작은 꽃으로 남고싶다.
시계가 없던 시절 분꽃은 어머니 시계였다.
들일을 나갈때면 어린것 불러 돌려세워놓고 '아가야, 분꽃이 피어오르면 보리쌀 물에 담가놓고 저녁쌀 씻어놓아라'
공회당에 놀러가 조무래기들과 땅 뺏어먹기,비석치기,공차기 놀이를 하다보면 어느새 분꽃 피어나 저녁을 까맣게
몰고온다. 저녁쌀 생각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분꽃 옆에서 서성거리면 언제인듯싶게
'어서 손발 씻고 저녁 먹으렴' 하신 어머니. 그때 엄마 얼굴이 분꽃보다 더 곱고 아름답게 보였다.
분꽃은 저녁 무렵에 꽃이 피기에 서양에선
'beuty of the night'(저녁의 미녀), 오후 네시경에 피어나 'four o'clock이라 한다.
해마다 다른 색으로 피어나기에 꽃말이 '우리 사랑 의심스러워요'이다.
옛날 폴란드의 한 성주가 자식이 없었다. 후손을 점지해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정성기도가 통해 자식은 주어졌지만 딸이었다. 성주는 욕심쟁이어서 아들을 낳아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다.
어려서부터 남장을 시켜 이름도 '미나비니스'라 하고 남자처럼 교육을 시켰다.
활쏘기, 말타기, 사냥, 술과 담배도 남자처럼 마시고 피우라했다.
그러나 남장소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성주의 부하였다.
어느날, 아버지 성주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결혼을 허락해 달라했으나, 욕심쟁이 성주는 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소녀는 갖고있던 칼을 땅 바닥에 꽂아 놓고 여자처럼 울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여린고 시린 꽃 한송이 피어났으니 '분꽃'이었다라고 전해진다.
분꽃은 오늘도 여러색으로 변해간다. 아마도 소녀가 남장을 벗고 성전환으로 쓰라린 몸부림 치느라 그런것 아닐까!
더구나 분꽃 열매는 소녀가 '나는 여자가 되고싶어요'하며 소리치던 울부짖음과 가슴앓이로 색까맣게 된것 아닐까!
겉은 검지만 씨앗속에 하얀 꽃가루가 가득하다.
납 성분이 있는 파우더보다 훨씬 더 윤이 나고 흡인력이 강하다고 전해온다. 자연화장품의 원조...
사위질빵... 낙엽덩굴식물로 언덕배기,관목 사이를 사정없이 뻗어 올라간다.
눈꽃처럼 하얀색이다 아침이슬이나 비를 맞으면 우유빛처럼 빛난다.
이북에선 '질빵풀' 서양에선 'virgin's bower'(처녀의 은신처)라 부른다.
처녀가 숨어도 안심할만큼 덤불숲은 넉넉하고 안전하다.
'질빵'은 짐을 지는데 쓰는 줄이다. 지게에 매어 걸머지면 밀삐(두 어깨에 거는 끈)라 하고, 한쪽 어깨에 둘러메면 외질빵이라 부른다. 멜빵은 짐을 걸어 양쪽 어께에 둘러메면 멜빵끈이 된다.
요즘엔 가방이 크고 끈이 튼실해야 사람노릇을 잘하지만, 옛날엔 지게와 밀삐가 단단해야 농사꾼 체면이 섰다.
사위가 처갓집 일손을 도우려고 지게를 질라치면 장모는 이때부터 안달이 난다. '아이고, 우리사위 허리 부러지네'
사위가 올때쯤이면 '사위지게'밀삐를 따로 만들어 지게했다.
허리 약한 사위가 일하던 모습을 보다못해 생각해낸 방도이다.
오늘도 사위질빵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무줄기 타고 무더위를 식히며 하얀 웃음 짓고있다.
어느새 질빵 속으로 장모님 목소리 환청되어 울린다. '이 사람아, 무거운 짐 지지말고 쉬엄쉬엄 하게나'
<불두화> <부처손> <부처꽃> <지장보살>
초파일이 며칠앞이다. 이맘때 되면 부처님 쏙 빼닮은 꽃들을 떠올려본다.
부처님의 곱슬한 머리를 닮아 불두화가 되었다고 한다. 하얀 고깔모양을 보고 스님들은 승무화라 부르기도 한다.
불두화는 연초록색으로 피어난다. 연초록일때 가장 풋풋하고 스님들이 출가해 처음 머리를 깎을때 모습 그대로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하얀색으로 변한다. 스님들이 도 닦아 마음을 비우고 무소유 경지까지 불심이 깊어가는 모습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고 할까?
부처님은 천개의 손과 눈을 가지고 있다. 부처손.
험난한 세상에 보듬고 쓰다듬어 줘야할 중생이 수도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손이 많아야 하는 까닭이다.
암을 비롯해 부인병을 다스리고 기관지 천식과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데 많은 효험을 갖고 있다고 전해오고있다.
부처꽃은 호수, 정열, 사랑의 슬픔이다.
애별이고(愛別離苦)란 말처럼 고통중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큼 더한 슬픔은 없다.
누구든 좋아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지장보살(풀솜대)는 부처님 사멸후 미륵불이 나타날띠까지 불(佛)이 없는 세상에서 중생을 구원해내는 보살.
솜대는 대나무의 일종으로 솜같은 하얀 반점이 일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얀 가루에서 절 냄새와 스님들의 향기가 풍겨나 지장보살이라 부른다.
인동초란 매서운 추위속에서도 잎이 말라 줄지않고 살아남아 강인하고 줄기찬 생명력의 원동력으로 상징되는 풀.
겨울을 이겨낸 꽃답지 않게 꽃물은 여리다. 시간이 지나면 하얀색은 노랗게 변해간다. 그래서 '금은화'?
오랜 옛날, 이곳 삼팔접경 양지말에 쌍둥이 자매가 살았다.
쌍둥이들은 마음씀씀이가 곱고 예쁜 짓만 골라해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꽃처럼 태가 고와 언니를 '금화' 동생을 '은화'라 불렀다.
마음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요새말로 장티푸스 '염병'이다.
금화가 먼저 병에 걸려 몸이 여위고 머리가 하나둘 빠지더니 은화에게 옮아갔다.
몹쓸병은 동네를 휩쓸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동네사람들은 죽은 금화와 은화를 가마니뙤기에 둘둘 말아 양지 말 뒷산 돌무더기에 묻어줬다.
이듬해 봄, 무덤가에 덩쿨이 솟기 시작했다.
은색 꽃이 피어나 금색으로 변했다. 두송이의 꽃은 자매의 얼굴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릐 넋이 되살아난 것이 틀림없다며 '금은화'라 불렀다는데...
인동초의 어린꽃 순과 잎줄기를 따다 그늘에 말려 차로 마시면 몸이 개운해온다.
털동자 피어나면 장마가 시작되고, 제비동자 피면 제비 새끼들이 나는 연습을 한다.
이름과는 달리 한여름 높은 산 초원에서 핀다.
강원도 어느 깊은 산속에 노스님 한분이 부모를 잃고 떠도는 어린 동자를 데려다 길렀다.
겨울 날 대처로 쌀 동냥을 갔다 눈이 쌓여 암자로 돌아오질 못했다.
허기와 추위에 지친 동자는 암자 밖에서 스님을 기다리다 얼음으로 변했다.
스님은 그 자리에 어린 것을 묻고 아침저녁 관세음을 염하며 좋은곳으로 환생하도록 천도를 했다.
다음해 여름 동자의 얼굴을 닮은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어린 동자를 떠올리며 '동자꽃'이라 불렀다.
그래서일까? 동자꽃은 어린아이 얼굴을 빼닮았다.
꽃받침은 젖병꼭지 모양으로 꽃잎 사이마다 보조개가 옴폭하다.
꼭지 속으로 바람이 돌아나올때마다 보조개가 푹푹 파여 홍색으로 물들어간다.
주황색이면서도 되바라지지 않은 앙증맞은 꽃이다.
야생초는 농사꾼에겐 골치덩어리이고 원수이다. 그러나,
풀에다 사랑과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주면 풀은 더이상 잡초로 보이지 않는다.
닭의 장풀도 농부에겐 골칫덩이고 귀찮은 존재이다.
아무리 뽑아내도 끈덕지게 살아남아 되알진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침이슬을 머금고 파란 날개를 팔락이며 다가서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수명이 짧아 피자마자 진다. 그래서 이 작은 요정은,
아침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의 꽃이며 새로운 세상을 꾸려가는 깨끗한 사람들의 몫이다.
꽃잎은 석장이고 푸른색이 두장, 흰색이 한장. 푸른꽃잎은 닭 벼슬처럼 날렵하고 흰색은 보일듯 말듯 수줍은 모습.
노란꽃술은 어린 병아리의 주둥이를 대하듯 앙증스럽다.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고집스레 세상을 살아가는 풀이 있다. 삼지구엽초.
세가닥 가지에 잎이 세개씩 돋아나 아홉개의 잎이 달린다. 나비를 닮은 꽃을 피워낸다.
꽃이지면 뾰족한 깍지 꼬투리를 달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팍'터져 종자를 퍼뜨린다.
씨가 터지기전 채집하여 두었다가 가을에 뿌려놓으면 봄에 새싹을 만나 볼수있다.
종자가 멸종위기에 처해 보호식물로 되어있다.
구엽초를 즐겨먹는 숫산양 한마리가 백마리의 암컷들을 거느리며 왕노릇을 한다하고,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산에 올라 이 풀을 뜯어먹으면 내려올땐 지팡이를 내던지고 휘파람 불며 하산한다고 한다.
한방에선 '음양곽'이라 해서 귀한 대접을 받고있다.
이렇게 몸에 좋다면 사람들이 다 뿌리채 뽑아 자연을 망가뜨리기에 멸종위기에 처해 보호식물이 된것이다.
비오는 날에도 꿈꾸는 나무가 있다. 자귀나무, 밤마다 꿈을 꾸기에 '잠자는 귀신 꽃'이라 한다.
원산지는 아시아 또는 중동지방으로 알려졌으나 우리 생활과 가까운 정원수이다.
나무가 자리 잎이 무성하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자식들에게 짝을 맺어주고 신방을 꾸리게했다.
잎과 꽃이 넉넉하고 흐트러져 다산을 뜻한다고 믿었기에...
합환목, 합환수, 야합수, 유정수.. 이름만큼 부부의 금슬을 돈독히 해내는 '애정목'으로 사랑 받아온 나무이다.
농부의 여름은 바쁘다.
땅을 일구어야 되고, 모를 심어야되고.... 트랙터와 이양기가 있어서 그래도 예전보다 편하게 일을 할수있다.
귀퉁이쪽 이양기가 심을 수 없는 자투리땅은 아낙들의 몫이다.
이렇게 벼를 심는것이 농부는 마냥 기쁘기만 한것은 아니다. 쌀시장이 개방된다고 하니....
그래도 농부가 농사일을 팽개칠수는 없는 법...
농부는 죽어도 논배미를 베고 다리를 뻗어야 진정한 농군이 된다고 한다.
저자의 글 속엔 이렇게 진정으로 농촌을 생각하는 여린 마음들이 잘 드러난다.
감자를 수확하고, 하지 감자를 캔다. 일손구하기도 힘든데, 자원봉사 겸 농사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 고맙다.
자신이 캔 감자 남 주기는 아깝다며 손수 캔것은 자신들이 몽땅 사가겠다고 한다.
책을 읽고 있는 나도 그들의 그 마음들이 참 이뻐보인다.
감자전도 부쳐내어 함께 나눈다. 저자는,
'즐거운 순간이다. 감자가 맛있다니 농사꾼에게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다"고.....
농사꾼에겐 진정으로 땀의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 고마운가보다.
올창묵은 강원도 사투리로 올챙이 국수를 말한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올챙이국수를 만드는법을 보고, 먹는 사람들을 보았다.
'맛을 보고 씹을 사이도 없이 목구멍을 타고 꼴딱 넘어가 버린다'... 이것이 바로 정답이지!!!
저자는 산을 자주 오른다. 자연의 먹거리를 찾아서.... 송이를 찾아서
산에서의 한밤을 꿈과 함께 깨어 또 다음 날 송이를 찾아서... 그러나 찾는 송이는 못 찾고,
귀하디 귀한 산삼을 찾게 되었다. 산신령의 선물인가보다.
역시 눈에 불을 켜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
아무 욕심없이 산 타는것 자체를 즐기면 혹여 또 좋은 귀한 선물이 대기하고 있는것은 만고의 불변의 진리 아닐까!
농촌에서의 삶은 무수한 만남들이 있다.
뱀과의 만남도 불쾌하지만 그래도 그 만남속엔 또다른 의미들이 있지 않을까! 저자는
그 만남조차 매정하게 내려치지 않는다.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또 하나의 기억이며 떨림의 순간이다.
매미는 먹고마시고 배설도 하지않아 신의 경지를 넘나드는 곤충으로 우러름을 받는다.
올림픽 발상지 아테네에선 가문의 문장(紋章)으로, 서양 사람들은 꿈을 먹고 사는 가난한 음영시인으로 비유한다.
중국의 육운이란 사람은 매미의 다섯가지 덕을 칭하였다.
아롱진 무늬와 머리 모양새가 관(冠) 끈이 늘어진 형상을 닮았다.
평생을 맑은 이슬만 마시고 살다 죽는다.
곡식을 먹지 않는다.
집이 없다.
허물을 벗고 노래를 불러 계절을 알려준다.
가을(秋)
아침이면 세수를 하고 옆에 서있는 산,
날마다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얼굴을 내미는 산,
열다섯 해를 보고 살아도 바라보면 가슴이 뛰는 산,
저 산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도 부러울 것이 없다.
수련은 오월부터 개화를 시작해 삼일간격으로 피어 지고, 지고 피기를 거듭하다 구월에 가서 꽃피기를 멈춘다.
밤엔 잠을 자고 아침에 피어난 그 이름이 '잠자는 연꽃' 즉 수련(睡蓮)이라 부른다.
물위에 떠있는 신비함으로 물의 요정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련을 따려고 손 내밀면 물속으로 빨려들어가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전설도 있다.
이집트에선 '나일강의 신부'라고 불린다.
둥근 잎은 우너만하고 부드럽다. 함부러 촐싹대는 법 없고 다소곳해 좋다.
이세상 온갖 번뇌 아픈 마음 다 받아주고도 남을만큼 넉넉하고 포근하다.
수련의 수련다움은 깨끗한 마무리에 있다.
해가 뜨면 꽃잎을 열고 날이 기울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평상으로의 되풀이.
시든 꽃은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추한 꼴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나, 가요' 조용히 몸을 숨기는 잔잔한 몸짓.
시어미 심술에 뱃속이 부글거리고 울화가 차오르면 배꼽 닮은 꽃이 피어난다.
며느리들의 애옥살이 논물로 피어나는 꽃 '며느리 배꼽'
배꼽에도 손금처럼 무늬가 있어 사람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며느리 배꼽무늬가
좌로 돌았으면 아들, 바른쪽으로 돌았다면 딸만 날 팔자, 갈고리 모양이면 남편은 영락없이 공처가가 된다는 얘기.
배꼽이 깊어 위쪽을 향하고 있으면 자식이 출세해 가문이 번성, 얕고 아래로 처지는 날엔 가난을 면치 못한다고 함.
애옥살이 눈물 자국에 피어난 며느리 배꼽은 가을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엷은 녹백색 열매로 변한다.
분홍색으로 한을 토해내다 가을이 깊어가면 흑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버거운 세월에 뱃속이 까맣게 타들어 한도 눈물도 서러움도 녹아내려 흑진주가 된다.
***** 그리운것은 산 밑에 있다.
가을산 아래 가을볕이 좋다. 숨쉬기가 미안할 정도로 부드럽고 편하다.
가을햇볕 속으로 맑은 공기가 따라나선다 싶더니 도처에 가을 열매들이 풍성하고 충만하다.
오막살이를 둘러싼 그리운 것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며칠 남지않은 추석. 고향을 숨차게 달려오는 모든 이들에게 풍성하고 넉넉한 가을선물들 듬뿍 나눠주고 싶다.
당신들에게 하루가 투명하게 다가서는 가을 산과 햇볕과 볕이 익혀낸 열매들을 안겨주고 싶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고향냄새와 향기와 그리운 것들을 되돌려주고 싶다.
이렇게 저자는 자신이 찾아낸 또다른 고향에서 맛본 행복감과 누린 풍성함을 함께 공유하길 원한다.
저자의 봄여름가을겨울 모든 삶이 나눔이었다.
농촌의 풍성한 가을 빨알간 태양초 고추를 따고 말리고....
가을이 더 깊어가 서리가 내리기전에 무들도 뽑고 땅속에 다시 묻고 무청은 시원한 곳에 매달아야 가을걷이가
끝나간다고 한다.
무청을 묶고 매달면 시래기가 된다. 시래기를 버리면 쓰레기로 변해 구질구질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농사꾼들에겐 더할나위없는 겨울양식이다.
시래기만한 겨울반찬이 또 있을까싶다. 지금은 시래기조차 귀한 음식이 되어버린것 같다.
적어도 도심에선.... 나두 김장을 하고 난 뒤 무청을 버리지않고 말려야겠다.
시래기로 만들어 건강에 너무 좋은 겨울양식하나 비축해서 먹어봐야겠다. 된장국으로의 재탄생...벌써 기대된다.
겨울(冬)
오늘밤엔,
한해동안 무디어진 눈과 귀를 풍경소리에 담아
깨끗이 털어버리고, 영혼의 울림을 되새김질하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할까 봅니다.
산골마을에 메주가 익어간다. 겨울의 일감이다.
동네아낙네들이 여럿이 모여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정답다.
메주콩을 쑤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바로 장 맛을 좌우하니깐....
물길을 조절하고 불기를 조절하는것이 관건이다.
콩은 '땅에서 나는 쇠고기'라 하여 예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메주에 항암효과와 뇌졸증, 치매예방, 해독제와 혈압에도 뛰어난 효험이 있다한다.
자신을 발효시켜 새롭게 태어나 아미노산과 단백질 덩어리로 변하는 메주...
힘들게 만들어낸 메주덩이에 건강한 에너지가 매달려있다.
해마다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24절기 중 20번째)을 즈음해 김장을 담는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시골 살림중 반농사이다. 김장도 품앗이를 한다.
배추 씻는 소리, 무채 써는 도마질 소리, 마늘 생강다지는 소리... 여인들이 쏟아내는 질펀한 농담까지.....
그래서 시골 김장은 더 맛나보입니다. 여러 소리들이 들어있고, 여러 손맛들이 들어있으니깐....
김치거리들을 바라보는 농부 저자의 뿌뜻함이 느껴진다. 행복감까지 스친다.
무, 배추, 고추, 마늘, 쪽파.... 모두가 여름내 땀 흘려 손수 길러낸 자식들이기에.....
음력 시월상달엔 고사를 지낸다. 상달은 '햇곡식을 신에게 바치기 가장 좋은 달'이란 뜻이다.
고사떡의 대표는 시루떡이다.
붉은 노을이 어둠에 쫒겨 달아나고, 땅거미가 어둑하게 저녁을 끌고 집안으로 기어들어가면 고사는 시작된다.
집안의 무고와 풍년농사, 가족건강....
떡을 접시에 담아 집안 한바퀴 돌며 여러 신에게 골고루 고사를 올린다.
고사떡은 이웃과 나눠 먹는것은 필수.
24절기 중 22번째 절기가 동지이다. 일년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날은 태양이 부활하고 생명력과 광명이 다시 솟아나는 날로 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이다.
동지를 지내야 한 살 더 먹는다하여 '작은 설'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공공씨의 망나니가 죽어 외로이 하늘을 떠돌다 동지날 땅으로 내려와 기둥에 달라붙으면 천연두가 여문다했다.
이 망나니가 평상시에 붉은 색을 무서워해 동지 날이면 팥죽을 쑤어 대문이나 기둥에다 바르면 천연두가 사란진다고
믿었다. 새알심은 나이만큼 빚어 먹어야 귀신이 나쁜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하고, 뱀 사(蛇)자를 써서 기둥에
거꾸러 붙이면 악귀가 집안을 넘조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팥죽을 먹지않으면 다음해에 잔병이 많이 생기고 쉬이 늙는다는 민간신앙이 전해오고 있다.
잔병예방과 노화방지를 위해 그 옛날처럼 팥죽을 먹고있는데 자꾸만 하얀 눈이 내린다.
새알심은 나이만큼 먹어야 귀신이 붙지 않는다기에 나이를 채우자니 배가 터질것만 같다.
도시보다 더 일찍 겨울이 찾아오는 농촌마을. 그리고 더 일찍 첫눈이 내리는 마을.
농한기이기에 어느때보다 더욱 스산하기도 하지만, 늘 기쁨으로 깨어있는 이곳은 한가할 틈이 없는것 같다.
어린 아이와 함께 길쭉한 수정 고드름을 하나씩 따들고 햇살이 내리쬐는 짚 똥가리 밑에 자리를 잡고,
엿가락처럼 하나둘 똑똑 잘라먹는 재미도 누려보고, 아이와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 노래도 부르고....
이렇게 겨울의 농촌은 한가할 틈이 없는것이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고드름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세요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낮에는 햇님이 문안하시고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밤에는 달님이 놀러오시네.
윤극영 곡 <고드름> 전문
감나무 없는 시골에 살다보니 까치밥이 매달린 감나무가 그립다.
마늘심기를 끝으로 마지막으로 올 농사를 끝내고 허리를 펴니 초겨울햇살이 말갛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홍시와 어머니, 내 어머니의 젖무덤은 대봉감 홍시만큼이나 불룩했다.
젖무덤만 큰게 아니고 손도 크고 마음도 넉넉했다.
감나무에 까치밥을 넉넉히 남겨놓아야 겨울이 따스해오듯,...
남긴다는 것은 곧 아끼는 일, 풍요와 여유라는 진리를 깨우쳐준다.
예비와 준비 희망, 몫을 나눈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음에랴........
첫댓글 귀한 사진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