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주님 은총 안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볍고 산뜻한 봄 향기로 생동감 넘치는 주말에
가족과 함께 건강과 평화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우연히 이인직의 <귀의 성>이라는 신소설을
얼마 전에 새로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한말, 춘천에 살던 천민 강동지는 허영에 눈이 멀어서 하나 밖에 없는
외동 딸 길순이를 양반 관료 김승지의 소실로 시집을 보내게 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김승지의 본부인이 첩을 본 것을 시기 해서 비복들을 시켜서
온갖 학대를 하고 본부인에 과잉 충성으로 속량을 꾀하는 계집종 점순이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쁜 짓을 서슴치 않고 행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강승지의 외동 딸과 그의 어린 손자 (일명 춘천집 모자)는
김승지 본부인의 지시로 마침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은 절로 길순이 부모가 찾아가지요.
이때 길순이의 어미가 강승지를 뒤따라 가면서 하느님을 찾으며 신세 한탄을
하는 기도 아닌 기도가 참으로 진하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자기 자식이 죽었다는 천청벽력같은 소리를 들은 어미의 통곡과
절규에 가까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신을 찾고 토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십자가에 시신을 내린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했고
나도 자녀를 둔 한 어머니로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기도는 결코 거청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고민 있으면 고민을 말하면 되고, 아픔이 있으면 아프다고 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인지 모릅니다.
자녀 기도를 즐겨 들으시는 아버지께서는 기도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시는 사랑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사순절에 자주 촛불을 켜고 주님과 마음으로 만나는
부족한 죄인의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싶습니다
참된 상속자
-허찬란 신부-
루카 복음서는 이방인의 시각에서 이방인을 대상으로 쓴 예수님 이야기가
되다보니 감동적인 내용이 많이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도 그렇습니다. 한 바리사이가 기도하러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옆에 죄 많은 세리가 같이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바리사이가 성전 멀찍이서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청하러 온 세리를
반기며 악수를 하고 기도를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바리사이에게는 하느님을 향한 진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나는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고 비교를 합니다.
여기에 죄가 포함되고 교만과 독설이 자리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비유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이를 좋아하십니다. 루카 공동체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신앙에 눈을 뜨고 성령의 감도로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며
순수한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평가절하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 듯합니다.
비단 루카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도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일을 한
사람이라면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와 같은 유혹을 많이 받고 있지 않을까요?
그때 어떤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