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면 큰일납니다
글- 강원수필문학회 정 재 홍 수필가
추천- 德田
“수술을 하셔야겠습니다.”
주치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뜻밖의 말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였다. 몸에 아주 커다란 이상이라도 생긴 것인가? 의사와 나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위궤양으로 복통이 심했기 때문이다. 직장 선배는 진료를 잘하는 의사를 알고 있다며 소개해 주었다. 대학병원 내과의사에게 특진을 받았다. 처음 대하는 의사의 모습은 중후하게 보였다. 더군다나 이곳은 시설이 좋은 대학병원이니 궤양쯤은 쉽게 치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입원을 하게 되면 오직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에 따르고 몸을 맡겨야 한다. 어려움을 참으며 치료를 잘 받고 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는지 의사는 입원한지 열흘째 되던 날 수술이야기를 꺼냈다.
의사는 왜 수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가는 유문이 좁아져 음식물이 내려가지 못하니 수술로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외과에 진료를 의뢰해 놓았으니 상담을 하고 수술을 받으라는 것이다. 잡다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외과로 향했다. 외과의사는 연락을 받았다며 수술 절차를 이야기했다. 위장에서 십이지장으로 음식물이 통과하도록 관으로 연결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관을 언제 제거하는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평생 가지고 살아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수술이 꼭 필요하면 해야겠지만 가족들과 상의해보겠노라며 진료실을 나왔다.
아들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아산병원에다 진료를 예약하였다.
진료 예약일에 가지고 간 영상자료와 입원기록을 접수시켰다. 의사는 매스컴에도 출연하는 명의로 알려져 진료를 잘 하리라 기대를 하였다. 환자가 많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다. 진료실에서 처음 대면한 의사는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술하면 큰일 납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옥과 천당을 동시에 맛본 기분이었다. 약을 처방하여 줄 테니 한 달 후에 만나자고 하였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약을 복용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복통은 깨끗이 사라졌다.
식사도 정상으로 하게 되었다.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몇 개월 동안 약을 복용하였다.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의사와 헤어질 때 진실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만약 지방 대학병원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더라면 진짜 큰일이 났을 것이다.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이 비켜 지나갔음에 안도하였다. 환자가 좋은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아내는 척추협착증 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다.
춘천에서 치료를 잘한다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 통증클리닉 등을 찾았다. 병원마다 의사들 대부분은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으나, 효과는 없었다. 서울로 눈을 돌려 강남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에 한 달이 넘도록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퇴원하고 며칠 후에 통증은 재발되었다. 치료비 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날려버리고 소득 없이 끝났다.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서울의 병원들을 찾아 상담을 하였다. 의사마다 약물, 시술, 수술 등 치료방법을 달리 이야기했다. 그중에 척추전문병원에서 하루는 외래진료를 하고 다음날은 수술을 한다는 의사를 만났다. 말투로 보아 성격이 직선적이고 강해 보였다. 검사한 사진을 보더니 수술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내는 그 의사를 믿고 수술을 결심했다. 다행이도 수술은 잘 되어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다. 지금은 수술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불편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명의를 만난 덕분이다.
아픔과 관련하여 유년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침통을 가지고 다니셨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손과 발에 침을 놓으셨다. 아픔을 참고 침을 맞으면 잠시 후 복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더위를 먹으면 열을 내려야한다며 쓰디쓴 익모초를 찧어서 만든 물을 마시도록 했다. 두 처방 모두는 효과 만점이었으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1950, 60년대 시골에는 의료기관이 전무하였다. 이웃사람들은 몸이 불편하면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무면허였지만 침 치료는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환자들은 침을 맞으면 낫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병세를 크게 호전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어느 병원이나 환자들이 넘쳐난다.
국제질병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인간이 앓고 있는 질병은 무려 8천여 가지가 넘는다고 전한다. 질병이 많다보니 진료과목이 많아지고 의사의 숫자도 급증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계속 늘려나간다. 질병의 원인구명을 위한 진단기술의 향상, 치료제의 개발, 예방의학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는 매일같이 신약이 만들어지고 있다. 불치병으로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던 환자가 기적처럼 완치되어 퇴원하는 모습도 본다. 인생 100세 시대를 뛰어넘어 150세로 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이 발전해도 환자는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하면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환자나 가족들은 의사들이 모든 질병을 알고 치료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의사를 잘못만나 초기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오진을 하여 엉뚱한 치료를 하거나, 의사의 실수로 의료사고도 발생한다. 우리 인체의 구조와 생명력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복잡한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의사도 사람이니 완벽할 수는 없다. 같은 질병이라도 의사마다 진단과 치료방법이 다르니 치료효과도 다르다.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맹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자는 명의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의사를 신뢰할 때 치료의 효과가 좋게 나타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와 ‘수술하면 큰일 난다.’는 두 의사의 얼굴이 번갈아 떠오른다. (끝)